뒤주형은 의외로 명예사나 다름 없다
공식적으로 형이 집행된것도 아니고 그 자식까지 연좌제가 쒸이는 대참극이 벌어지지 않았으니깐
이게 뭔 개소리냐고?
왜냐면 사도가 아비 학대 고려해도 너무 많이 막죽였거든
100명죽었다는 과장이 있더라도 하루에 6명 죽였다는건 과정까지 기록되어 있음정도
웃긴게 이렇게나 죽였는데도 처벌여론이 조용했던건
왕자 신분의 혜택, 정식으로 처벌하면 세손이 피해 입을까봐였는데
그러다가 나경언의 고변과 부왕 시해시도같은 도저히 덮을수 없을 지경까지 가니깐
결국 나온 편법이 자살 종용이고 그것도 안하려드니깐 나온게 뒤주형임
현대인 뿐만 아니라 당시에도 방식은 엽기적이지만 어쨌든 공식적으로 죄인으로 죽은게 아니라서 죽자마자 바로 신원 회복하고 장례도 예법대로 진행됬고
어떻게보면 정치적으로 무서울정도로 교활한 수를 쓴거
아니었음 어디서 먼친척 데려와서 철종꼴 났겠지
일단 저 시절엔 피 안 내고 죽으면 대우해 준 거지. 사약이 死약이 아니라 賜약인 것만 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