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은 선호에 대한 경계심이 없으면 획일화로 수렴한다
그리고 PC는 이미 상당 부분 수렴중에 있다 고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다양성이란 다양성으로 분해될 수 없는 진실이 존재하고,
그 진실은 일단 온전히 사람에게 반영될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은 진실을 '해석' 해서 사회에 반영하며
그 '해석' 이 다양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인데
PC는 이런 관점에서 몇 가지 다른 지점을 가지고 있어보임.
첫째는 '다양성으로 분해될 수 없는 진실' 에 대해 고려하지 않거나, 혹은 부분적인 취사선택을 하고 있어 보이고
둘째는 다양성으로 자신의 관점을 옹호하기 때문에, '다른 다양성' 의 가능성을 별 다른 이유 없이 무시하거나 고려하지 않고 있어 보인다는거지
그리고 이러한 '다른 지점'은 모두 'PC 자신에 대한 선호에 매몰되었기 때문에' 라고 생각하면 맞아떨어지는 편이고.
이러한 선호에 대한 매몰은 PC가 선호하는 PC 자신에 대한 선호가, '다양성' 이라는 점에서 아이러니한 게 되어버림.
즉, 다양성이 획일화로 수렴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는 셈임. 선호에 대한 매몰을 매개로.
또한 이러한 선호에 대한 경계와 다양성의 관계는 다른 몇 가지 관점으로 분화할 수 있는데
첫째로 '다양한 해석' 자체는 옳은 것. 왜냐하면 해석까지 획일화되는 것은 전근대적 가치관으로 귀결되기 때문에.
둘째로 '다양성으로 분해될 수 없는 진실' 은 속단할 수 없는 것. 왜냐하면, 그것에 대한 인식은 어디까지나 해석이지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
즉 대안우파로 대표되는, PC에 대한 비판 논리 또한 이러한 선호와 획일화라는 관점에서 벗어날 수 없는 비판점을 띄고 있다는거임.
그리고 PC와 PC에 대한 비판 논리 모두가 동일한 관점에서 비판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것들이 비판받는 지점이, 실제로는 같은 논리에서 기반하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생각함.
그 같은 논리란 바로 자신들의 선호를 정당화하는 논리겠지.
가장 대표적인 건 피해자 논리. 자기 자신을 소수자, 혹은 피해자로써 '스스로에게 동정심을 보내고 있다' 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