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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직, 우지직
높이만 족히 5m는 되는 철충이 나무를 손쉽게 밟아 부러뜨리며 쇄도한다.
“아… 으아아… 우아아악!”
머리 위로 드리워지는 철충의 그림자 속에서, 브라우니는 평정을 잃고 비명지르며 무턱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허나 그녀의 소총탄으로는 그 거체에 흠집을 조금 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철충은 그제서야 브라우니의 존재를 인식하고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그녀의 얼굴에 포구를 겨누었다. 브라우니가 들어가고도 공간이 넉넉히 남을 만큼 거대한 포구에서 포탄이 쏘아지는 순간, 그 자그만 몸은 형체도 없이 사라질 것이 분명했다. 브라우니는 포구 가장 안쪽에서 불꽃이 튀어오르는 것을 보고 눈을 질끈 감았다.
“숙이게!”
그때,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마리가 나타났다. 그녀는 매서운 기세로 철충에게 날아들어 포구의 방향을 틀었다. 불꽃과 함께 쏘아진 포탄은 브라우니를 간발의 차로 비켜갔다.
“흡!”
마리의 무기, [주시자의 눈]이 철충을 둘러싸고 일제히 벼락을 내뿜는다. 내부 회선이 합선되었는지, 철충이 스파크와 함께 불타기 시작했다. 마리는 브라우니를 안아들고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일어설 수 있겠나? 이곳에서 서쪽으로 곧장 가면 방어초소가 있네. 그곳으로 가서 부대원들과 합류하게. 굳건히 버티게나, 병사!”
“스, 스, 승리!”
멀찍이서 철충이 폭발하는 소리를 뒤로하고, 마리는 브라우니를 격려한 뒤 또 다시 온 힘을 다해 날았다.
아군이 쓰러뜨릴 수 없는 강력한 철충들을 박살내고, 고전하고 있는 아군을 지원한다. 통신 및 현장 지휘로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단 한 순간이라도 철충들의 진군을 늦추고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아군을 구하기 위해서.
사령관에게는 모두 이곳에서 목숨을 바쳐 싸우겠노라고 천명했지만, 가능하면 모두를 살리고 싶다. 목숨을 불살라서라도, 몸이 바스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죽는 것은 자신 하나뿐이었으면 한다. 다만 한가지 바라는 것은, 병사들이 자신의 죽음을 초석으로 삼아 진정한 강철로 거듭나는 것. 아군과 어깨를 맞대고 굳건히 버티고 서서, 약자를 지킬 수 있는 강철의 방패로 거듭나길 바랄 뿐.
‘이상한 기분이야. 죽음을 각오하니 되려 몸이 가벼워. 상처를 입을수록 홀가분해질 정도야. 이 한 몸이 바스라질 때까지 얼마나 많은 철충 놈들을 쓰러뜨리고 시간을 벌 수 있을지만 생각하면 그만이니.’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철충의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스스로를 부서져라 채찍질한 결과가 역력히 나타나고 있다. 피부가 찢기고 터져 피가 흘러내리고, 왼팔은 어느샌가 부러져 이상한 각도로 뒤틀려 있다. 심장과 폐는 당장 다음 순간 터져버린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아파오고, 시야 가장자리가 회색빛으로 물들고 있다. 이대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마리는 마지막 하나 남은 전투자극제를 오른쪽 허벅지에 힘껏 찔러넣고 잠시 숨을 돌렸다.
‘사령관 각하께서 구해주신 이 한 목숨을, 다시 그 분께 바치는 것 뿐. 두려움 따위는 없다. 다만….’
마리는 다시 한 번 날아오르는 순간 살아서 발을 땅에 붙일 수 없음을 직감했다. 이미 한계를 진작에 넘긴 온 몸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그것을 치사량을 넘긴 약물과 강철 같은 의지로 쥐어짜내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 몸이 다시 바닥에 내려앉는 것은 분명 숨이 끊어진 후일 것이었다.
‘이렇게 끝날 줄 알았다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안겨볼 것을. 그랬다면 이 한조각 아쉬움마저 없었을 터인데.’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사령관의 얼굴이었다. 최전선으로 떠나는 자신을 걱정스러운 얼굴으로 배웅해 주었던 그의 표정이었다. 반드시 돌아오리라는 의지를 다지기 위해 애써 미련을 접고 떠났지만, 이제 와서 짙은 후회의 감정이 솟구친다.
‘...각하, 언제까지고 변함없는 무운을.’
지척에서 철충의 기동음이 들려온다. 마리는 표정을 굳히고 다시 날아오를 각오를 마쳤다. 이 생에 마지막, 가장 화려하고 강렬한 비행이 되겠지.
“내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알맞은 적수로구나! 오너라, 이 마리와 맞서 보거라!”
육중한 철충 연결체가 마리의 기척을 알아채고 돌진한 순간 마리 역시 날아올랐다.
약 10여분간 격렬한 전투가 이어진다. 마리는 혈관을 질주하는 전투자극제와 아드레날린에 그저 몸을 맡기고 한 마리 짐승처럼 처절하게 싸웠다. 맨손으로 철충의 외피를 깨부수고, 포신을 틀어막아 내부 유폭을 유도하고, 자신마저 휘말리게 하는 강렬한 전격으로 회로를 불태운다. 철충 역시 눈앞의 바이오로이드를 부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 맞섰지만, 마리의 귀기 서린 투지를 넘어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먼저 무너져내린 것은 철충 쪽이었다.
“쿨럭!”
그러나 마리 역시 싸움의 여파로부터 무사하지는 못했다. 마리의 입에서 피가 울컥 터져나온다. 그녀는 순간 시야가 빙글 도는 듯한 착각 속에서 힘없이 질척한 흙바닥으로 추락했다.
‘내장을… 다친 건가…. 이래서는 정말로 살아날 수 없겠군….’
차디찬 흙 사이로 마리의 뜨거운 피가 퍼져나간다. 마리는 자신의 생명이 시시각각 몸에서 빠져나가고 있음을 알았지만, 손가락 하나조차 움직일 힘이 없었다. 온몸을 불태우고 으깨는 것만 같던 통증마저 사라진 것을 보니 이제는 정말로 끝이 다가온 모양이었다.
-기이익, 기이이익.
또 다른 철충 하나가 마리에게 다가온다. 철충은 외부의 카메라로 마리를 잠시 관찰하다가, 포구를 움직여 그녀의 머리를 겨누었다. 마리는 피와 비명, 투쟁으로 점철된 처절한 삶이 이곳에서 끝난다는 사실에 힘없이 웃음지었다.
-쐐애애애액!
그때, 공기를 거세게 가르는 소리와 함께 정체불명의 비행체가 날아와 흙먼지를 날리며 착륙했다.
-투카앙!
다음 순간 비행체의 표면 일부가 분리되어 튕겨져 날아가고, 그 안에서 조금 더 작은 AGS가 번개같이 튀어나와 철충에게 달려들었다. 철충은 죽어가는 마리보다 새로이 출현한 AGS를 우선하여 처리하기 위해 몸을 틀었다. AGS는 철충의 사격을 여유롭게 피해낸 뒤 그 몸의 중심부에 달라붙었다.
-쿠과광!
철충이 AGS를 떼어내기 위해 몸부림을 쳤으나, AGS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폭발했다. 동체의 중심이 도려내진 듯이 사라진 철충은 그대로 두동강나며 쓰러졌다.
‘뭐지…? 오르카에 이런 AGS가 있었나? 내가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인가?’
아득해지는 정신을 억지로 붙잡으며, 마리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마리에게 또 다른 AGS가 하나 더 다가온다. 그 AGS는 손 끝을 변형시켜 주삿바늘 모양으로 만든 뒤 마리의 목에 그대로 꽂아넣었다.
“...!”
연기처럼 희미하게 흩어져가던 온몸의 감각이 한순간에 되살아난다. 마리는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고통에 소리 없이 비명을 질렀다.
“끄으으…으으…윽!”
덜덜 경련하던 마리의 몸이 축 늘어진다. AGS는 마리의 바이탈 사인이 정상으로 돌아왔음을 확인하고 그녀를 자신의 품 안으로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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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마리, 마리! 나 알아보겠어?”
마리가 힘겹게 눈을 뜨자, 애타게 그리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각하…?”
“다행이다. 다행이야…. 정말로 다행이야….”
사령관은 눈물을 펑펑 흘리며 마리의 손을 부여잡았다.
“대체 어떻게 된… 하윽!”
마리가 몸을 일으키려다 신음소리를 토해내며 도로 털썩 쓰러진다.
“일어나지 마. 그야말로 죽다 살아난 상태니까. 최소 2주는 절대안정해야 해.”
오메가는 그런 마리를 보며 시큰둥하게 내뱉었다.
“오메가…?! 사령관님, 위험합니다! 제가-”
마리가 오메가를 보고 임전태세를 취하려 하다가 그대로 의식을 잃는다. 오메가가 타이밍 좋게 투여한 마취제 덕이었다.
“괜히 날뛰다 다칠 것 같아서 재웠어. 나중에 다시 깨면 누가 찬찬히 설명해 줘.”
오메가는 지루하다는 듯 늘어지게 하품하며 자리를 떴다. 또각이는 그녀의 하이힐 소리가 선명하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사령관은 여전히 마리를 소중히 보살피고 있었다.
“알파, 내 숙소는 어디야? 물론 가장 좋은 방으로 내주겠지?”
오메가는 곧장 알파에게로 갔다.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 사용할 방을 안내받기 위함이었다.
“아, 오메가… 당신이군요. 물론이에요. 이쪽으로.”
알파는 근처의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분주하게 지시를 내리다가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오메가를 이끌었다.
“뭐야, 여기서 지내라고? 장난해? 귀빈 대접을 이따위로 해도 되는거야?”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급조된 막사는 오메가의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그녀는 짜증을 숨기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냈다.
“미안해요. 이번 사태가 발생하고 급히 만든 시설이라 이 정도가 최선이에요.”
“쯧. 하여간, 너절하기는.”
오메가가 혀를 차며 짐을 풀어 정리하기 시작한다. 알파는 그런 오메가를 보며 우물쭈물하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어… 그 머리카락은?”
“음? 그냥 이미지 체인지야. 예전 헤어스타일로 몇백년 살았더니 좀 지겨워져서.”
알파가 오메가의 짧아진 머리카락을 가리키며 묻는다. 오메가는 대수롭지 않은 체하며 둘러댔다. 알파는 오메가가 말을 많이 아꼈음을 직감적으로 파악했지만, 일일이 캐묻기도 애매하여 입을 다물었다.
“오메가! 손이 왜 그래요? 괜찮은건가요?”
순간, 오메가가 무심코 장갑을 벗는다. 알파는 오메가의 손에 가득한 흉터를 보고 경악하며 물었다.
“아, 이거? 별거 아니니까 신경쓰지 마.”
오메가는 아차하며 다시 장갑을 껴서 상처를 숨겼다.
“...카라카스에서의 상처가 좀 곪았거든.”
그래, 곪았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진 괴물마저 쉬이 거꾸러뜨릴 수 있을 만큼 심하게.
오메가는 이 손에 감긴 그 볼품없는 손수건이 이끌어낸 결과를 다시 한 번 떠올렸다. 수백년간 암약하며 수없이 살생을 저지른 간악한 괴물이 겨우 그 손수건 한 장 때문에 무너져 내리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 절로 웃음이 터져나온다.
“이젠 다 나았어. 걱정 안 해도 돼.”
“그런…가요? 그래도 혹시 나중에 아프면 꼭 말해주세요.”
알파가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당부한다. 그녀와는 여러 악연으로 얽혀 있었지만, 그래도 자매기인 만큼 이런저런 걱정이 앞선다. 오메가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만큼 더더욱.
“알파.”
“네?”
알파가 숙소를 떠나려하는 그 때, 오메가가 알파를 불러세웠다.
“그 남자한테는 말하지 말아줘. 이 상처에 대해서.”
오메가가 조금 불편한 듯 다친 쪽의 손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부탁할게.”
부탁, 부탁이라니. 그 오메가의 입에서 부탁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다니. 알파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경악했다.
“네, 알겠어요.”
분명 저렇게까지 간절히 부탁하는 이유가 있겠지. 알파는 오랜 자매를 배려하여 이유를 묻지 않고 승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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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를 위해서 마리를 좀 빡세게 굴림
전투 개시하고 오메가 바로 왔는데 왜 이제야 도착함? > 사령관은 안전한 서유럽쪽에 있음. 거기에서 유럽-아시아 경계까지 AGS가 날아가는데 시간 걸린것
그렇게 오래 전투가 이어졌는데 왜 오메가 관련해서 전달 못받음? > 마리가 의지 다지려고 통신기 망가뜨리기도 했고 철충 쪽에 방해전파 쏘는 연결체들이 있었음
지휘관인데 왜 최전선에서 싸움? 아군을 조금 희생해서라도 이기려고 노력해야하는거 아님? > 상정했던 것을 훨씬 넘어서는 대군세가 갑자기 터져나온거라 일반병사들로는 대응하기가 어려웠음. 자신이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일부 특이개체 없애는 것이 전황에 더 도움이 될거라고 판단한 것.
ㅇ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