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로봇(Imposter)
Philip K. Dick 지음
"며칠내로 휴가를 얻어야겠어."
아침을 먹고 있던 스펜스 올햄이 불쑥 말을 꺼냈다. 그는 아내를 돌아보며 말 을 계속했다.
"좀 쉬고 싶어. 지난 십년은 정말 길게 느껴졌다구."
"프로젝트는 어떻게 하시구요?"
"내가 잠시 쉰다고 해서 전쟁에 지지는 않아. 게다가 지금 상태가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란 말이야."
올햄은 식탁 옆에 앉아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뉴스머신이 외계인들이 당장이라도 지구를 점령할 것처럼 호들갑 떠는 것을 너무 믿을 필요는 없어. 당신, 내가 휴가 기간동안
무슨 일을 하려고 계획하는 지 짐작할 수 있겠어? 전처럼 교외에 있는 산으로 캠핑을 가려고 해. 그때 기억 나? 난 옻이 올라서
온몸이 팅팅 부었고, 당신은 하마트면 살모사를 밟을 뻔 했 잖아."
"서튼 숲에 가자구요? 거긴 지난 주에 산불이 났어요. 당신도 아는 줄 알았는 데. 상당히 큰 불이었나 봐요."
마리가 음식 접시를 치우면서 말했다.
"불이 난 이유는 모른대?"
올햄이 갑자기 맥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올햄은 마리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얼굴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제기랄, 이젠 그런 일에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 모두 전쟁에만 정신이 팔려 있어."
올햄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놈의 외계인들, 지겨운 전쟁, 그리고 외 계인들의 바늘 우주선......
"어디 딴데 신경쓸 여유가 있기는 한가요?"
올햄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마리의 말이 옳다. 알파 센타우리에서 온 검은 색의 조그마한 우주선들은 지구의 우주 순양함이
거북이처럼 보일 정도로 재빨랐 다. 전쟁이 시작된 이래 지구인들은 후퇴에 후퇴를 거듭해야 했다.
그러나 웨스팅하우스 연구소에서 발명한 거품 보호막이 첫선을 보이면서 상황 은 변화하였다.
처음에는 주요 도시의 둘레를 감싸다 후에는 지구 전체를 둘러싸 게 된 거품 보호막은 외계인들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보호 수단이었다.
뉴스머신이 선전하는 것처럼 외계인들에게 처음으로 쓴 맛을 보여준 지구의 희망 이었다.
하지만 전쟁에 승리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였다. 모든 연구실과 모든 프로젝트 가 외계인을 무찌를 무기를 개발하려고 밤낮없이
일하고 있었다. 올햄이 연구하 고 있는 프로젝트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가 이 프로젝트에 매달려있은 지도 이미 십년이 지났다.
올햄은 담배불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 위에 다모클레스의 칼을 대롱대롱 매달아놓고 사는 기분이야. 이젠 완전 히 지쳐버렸어. 내 소원은 오직 쉬는 것 뿐이라구.
하지만 나만 그런 생각을 가 진 것은 아니겠지."
그는 옷장에서 자켓을 꺼내들고 현관으로 나갔다. 프로젝트 연구소까지 데려다
줄 비행차가 도착할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넬슨이 늦지 않았으면 좋겠어. 벌써 일곱시가 다 되었거든."
올햄이 시계를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저기 오네요."
마리가 건물들 사이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지붕에 씌운 묵직한 납판 위로 햇살 이 빛났다. 주거지구는 무척 조용했다.
몇몇 사람들만이 바깥을 돌아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저녁에 봐요, 여보. 너무 늦게까지 일하진 마세요."
차 문을 열고 들어간 올햄은 벽에 등을 기대고 한숨을 쉬었다.
넬슨은 처음 보 는 중년 사내와 함께였다.
"어때? 뭐 재미있는 뉴스라도 있나?"
비행차가 출발하자 올햄이 입을 열었다.
"언제나 똑같지 뭐. 외계인의 우주선이 몇척 공습을 해왔고, 몇군데 소행성대 에서는 또 작전상 후퇴를 했다는군."
"프로젝트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 어쩌면 우리 프로젝트도 뉴스머신에서 하 는 과장된 선전에 불과할 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난 완전히 지쳐버렸다구. 모두 너무 어둡고 심각한 얘기뿐이라서 삶에 활기가 없어."
"선생은 전쟁을 해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하지만 선생 도 이 전쟁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중년 사내가 불쑥 입을 열었다.
"이분은 피터스 소령님이셔."
넬슨이 말했다. 올햄과 피터스 소령은 악수를 나누었다. 올햄은 피터스를 찬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로 이렇게 이른 시간에 프로젝트 연구소로 가시는 겁니까? 프로젝트 연구소에선 한번도 뵌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올햄이 말했다.
"아, 전 프로젝트에서 일하지 않습니다. 올햄씨가 하고 계신 일에 대해서 좀 알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제 직업은 좀 다르지요."
피터스와 넬슨이 서로 시선을 교환하는 것을 알아차린 올햄은 눈쌀을 찌푸렸 다.
비행차는 점점 속도를 더하여 생명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거친 황 무지를 지나 프로젝트 건물들이 늘어선 지역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혹시 보안유지때문에 말해주실 수 없는 것은 아니 겠지요?"
올햄이 물었다.
"전 정부에서 일합니다. 정확하게 말씀드려서 FSA, 그러니까 정보부 직원이지요."
"아, 이 지역에 적이 침투해 들어왔습니까?"
놀란 올햄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올햄씨, 당신을 만나러 왔습니다."
올햄은 당황했다. 그는 피터스가 한 말의 의미를 되씹어 보았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절 만나러 오셨다구요? 이유가 뭡니까?"
"전 당신을 외계인의 간첩 혐의로 체포하러 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꼭두 새벽부터 일어나 설치는 까닭이지요.
넬슨, 이 친구를 체포해!"
넬슨이 올햄의 가슴팍에 총구를 들이댔다. 감추고 있던 감정을 갑자기 드러낸 탓인지 넬슨은 창백한 얼굴을 하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깊은 숨을 들이 쉬었다 다시 내쉬었다.
"지금 없애버리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시간만 질질 끌지 말고 지금 없애버리 는게 좋을 것 같은데요."
넬슨이 피터스에게 속삭였다.
올햄은 물끄러미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목소 리가 나오지 않았다.
넬슨과 피터스는 두려운 듯 잔뜩 굳은 얼굴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올햄은 현기증을 느꼈다. 머리가 아프고 기운이 빠졌다.
"도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올햄이 중얼거렸다.
그순간 비행차는 지상을 떠나 우주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발아래로 프로 젝트 건물들이 점점 작아지다 마침내 사라졌다.
올햄은 입을 다물었다.
"시간이 좀 있으니 이 친구를 심문해 봐야겠소."
피터스가 말했다.
올햄은 멍하니 앞만 쳐다보고 있었다.
"스펜스 올햄을 체포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제 모두들 한시름 놓을 수 있겠지요."
피터스가 모니터를 향해 말했다. 모니터에는 정보부장의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별 문제는 없었나?"
"없었습니다. 놈은 아무런 의심도 없이 비행차에 탔습니다. 제가 있는 것을 보 고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더군요."
"지금 위치는 어디인가?"
"막 거품 보호막을 벗어나는 중입니다. 현재 최고 속도로 비행하고 있습니다.
위험은 거의 사라졌다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비행차에 설치한 로켓 엔진에 아무런 이상이 없어서 다행입니다.
만일 그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더라면...... 생각만 해도 끔직하군요."
"그 친구를 좀 보고 싶네."
정보부장이 말했다. 그는 무릎에 손을 올리고 멍하니 앞만 쳐다보고 있는 올햄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바로 저 친구로구먼."
정보부장은 한동안 올햄을 계속 훑어 보았다. 올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침내 정보부장은 피터스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제 됐네."
정보부장은 역겹다는 듯 얼굴을 조금 찡그렸다.
"이정도 보았으면 충분하겠지. 자네들은 정말 큰 일을 해냈어. 돌아오면 모두 표창장을 받게 될게야."
"뭘요,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피터스가 말했다.
"이제는 아무런 위험도 없겠나? 이를테면 지금이라도 폭발해버릴......"
"물론 지금이라도 터질 수는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 다. 몇마디의 단어로 구성된 암호문을 스스로
말할 경우에만 폭탄이 터진다고 들었습니다. 어쨌든 그 정도의 위험이야 감수해야겠지요."
"달 기지에 자네가 간다고 통보해 놓겠네."
그러자 피터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기지에서 꽤 떨어진 장소에 착륙할 생각입니다. 무슨 일이 생기더라 도 달기지를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지요."
"자네 뜻대로 하게."
정보부장은 올햄을 다시 흘낏 쳐다보며 눈을 끔벅였다. 다음 순간 모니터에서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올햄은 시선을 비행차의 창문으로 옮겼다. 비행차는 이미 거품 보호막을 벗어 나 우주를 향하여 속도를 점점 더하고 있었다.
피터스는 몹시 서두르고 있었다.
그의 발아래 부드럽게 떨고 있는 바닥 아래에선 로켓 엔진이 있는 힘을 다하여 불꽃을 뿜어대고 있었다. 그
들은 올햄을 두려워하여 미친듯이 서두르고 있는 것 이다.
그의 옆자리에 앉은 넬슨이 불안한 듯 몸을 뒤척였다.
"지금 해치워야 해요. 제길, 놈을 지금 해치울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 겠어요."
넬슨이 말했다.
"진정하게. 내가 이 친구를 심문할 동안 비행차의 조종을 좀 맡아주게나."
피터스는 올햄의 옆자리로 미끄러져 들어와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피터스는 신중하게 올햄의 팔과 손을 여기저기 눌렀다.
올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리에게 이 사실을 알릴 수만 있다면...마리 에게 이 사실을 알릴 방법만 있다면...
그는 비행차의 내부를 이리저리 둘러 보 았다. 어떻게? 저기 있는 통신용 모니터로? 넬슨이 총을 손에 쥐고 조종간 앞에
앉아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완전히 함정에 빠진 것이다.
하지만 왜 함정에 빠졌을까?
"내 말을 잘 듣게. 몇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는 알고 있 겠지? 우리는 지금 달을 향해 가고 있어.
한시간 후면 인적이 없는 달의 뒷면에 착륙하게 될거야. 우리가 착륙하면 자네는 바로 거기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에
게 넘겨질거야. 자네 몸은 거기서 바로 파괴되고 말겠지. 내 말 알아듣겠나?"
피터스는 손목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앞으로 두시간이면 자네 몸은 완전히 박살이 나서 여기저기 흩어지겠지. 아마 한조각도 제대로 남아나진 못할걸."
올햄은 엄습하는 무기력감을 이겨내려 애썼다.
"도대체 왜......"
"알고 싶다면 기꺼이 말해주지. 이틀전 우리는 외계인의 우주선이 거품 보호막 을 뚫고 침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네.
그 우주선엔 인간형 로봇 스파이가 타 고 있었지. 그 로봇은 어떤 사람을 제거하고 그 사람의 행세를 할 참이었다네."
피터스는 차가운 눈으로 올햄을 쳐다보았다.
"로봇의 가슴에는 원자 폭탄이 장치되어 있었지. 우리 정보원은 그 폭탄이 어 떻게 폭발하는지 알아내지는 못했다네.
하지만 특별한 암호문을 로봇이 말할 경 우에 폭발할 것 같다는 사실은 알아낼 수 있었지.
그 로봇은 자기가 죽인 사람의 행세를 하며 살아가게 되어 있었어. 로봇은 그 사람의 버릇도 직업도 사회 생활 도 모두 똑같이
흉내낼 수가 있어. 아무도 로봇이라는 사실을 알아챌 수가 없단 말이지."
올햄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 로봇이 노리고 있었던 사람은 매우 중요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고급 장교 스펜스 올햄이었다네.
올햄이 수행하던 프로젝트는 특히 중요한 것이었지.
프로젝트가 거의 완성단계에 이른 지금, 움직이는 폭탄이 프로젝트의 중심부 로 침투한다는 것은......"
"하지만 전 진짜 올햄입니다!"
올햄이 그의 두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로봇이 올햄을 찾아내어 죽인 다음, 그 친구 흉내를 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을거야.
로봇이 우주선에서 출발한 것은 8일전인 것 같아. 로봇이 올햄을 사 살한 것은 지난 주말쯤이었을 거야.
올햄이 언덕에서 산책을 하고 있던 때를 노렸겠지."
"하지만 전 진짜 올햄입니다!"
그는 조종간 앞에 앉아있는 넬슨을 향해 돌아섰다.
"날 알아보지 못하겠나? 자네와 난 이십년지기 친구야. 우리가 함께 대학에 다 니던 때가 기억나지 않아?"
올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네와 난 같은 대학에 다녔어. 그것도 같은 기숙사 룸메이트였단 말이야."
올햄이 넬슨을 향해 다가갔다.
"내게서 물러섯!"
넬슨이 으르렁거렸다.
"제발 내 말 좀 들어봐. 2학년 때 생각나지 않아? 그 여자 말야. 이름이......"
올햄은 땀에 젖은 앞 이마를 문질렀다.
"그 검은 머리 여자. 테드네 가게에서 함께 만나곤 했었잖아."
"그만둬!"
넬슨이 미친 듯이 총을 흔들어댔다.
"더이상 말하지 말아. 네 놈이 올햄을 죽였어! 이......로봇 녀석아!"
올햄은 멍하니 넬슨을 쳐다보았다.
"아니야.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어. 하지만 로봇은 날 해치지 못했 어. 뭔가 잘못된거야.
우주선이 그냥 추락했을 지도 모르잖아."
올햄은 다시 피터스를 향해 돌아섰다.
"전 정말 올햄입니다. 정말이에요. 로봇은 절 해치지 못했어요. 전 예나 지금 이나 스펜스 올햄이란 말입니다."
그는 자신의 몸 전체를 이리저리 더듬었다.
"증명할 방법이 있을거예요. 절 지구로 데려가줘요. 엑스레이나 심리 검사같은 걸로 금방 확인할 수 있을 것 아닙니까?
아니면 추락한 우주선을 찾아볼 수도 있겠죠."
피터스도 넬슨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전 올햄이에요. 전 제가 누군지 안단 말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증명을 해야 제 말을 믿겠습니까?"
피터스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로봇은 자신이 진짜 스펜스 올햄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른다네. 몸만 아니라 마음도 스펜스 올햄이 되어 버리지.
로봇은 인공 메모리 시스템과 가짜 기억을 부여 받지. 올햄처럼 생기고 올햄의 기억을 지니고 올햄의 사고와 취미 그리고
직업까지 그대로 물려받은거야.
하지만 한가지 차이점은 있어. 로봇의 가슴속에는 암호문에 의해 폭발하는 원자 폭탄이 들어있다네."
피터스는 올햄에게서 조금 물러섰다.
"그게 유일한 차이점이야. 우리가 자네를 달로 데려가는 이유가 바로 그것일세. 달에 대기중인 요원들이 자네를 해부해서
폭탄을 제거할거야. 물론 제거 작업 중에 폭발할 수도 있겠지만 거기서는 별 상관없어."
올햄은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이제 곧 도착합니다."
넬슨이 말했다.
비행차가 속도를 늦추는 동안 올햄은 자리에 앉아 미친 듯이 머리를 굴렸다.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달표면이 발 아래로 내려다 보였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해야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착륙 준비 완료."
피터스가 말했다.
이제 몇 분만 지나면 그는 목숨을 잃고 말 것이다. 아래에 빌딩처럼 생긴 조그 마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에 올햄을 발기발기 찢어버릴 분해팀이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놈들은 그의 가슴을 가르고 팔다리를 떼내어 버릴 것이다.
폭탄이 없다는 것을 알면 깜짝 놀라겠지. 그제야 비로소 실수를 깨닫겠지만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 있으랴?
올햄은 조그만 비행차 내부를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넬슨은 여전히 총을 쥐고 있었다.
저들이 스스로 실수를 깨닫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의사에게 검진받을 방법만 있다면...... 올햄이 살아남을 길은 오직
그 뿐이었다. 마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그는 다시 미친 듯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리에게 연락할 방법만 있다면......
"조심하게나."
피터스가 말했다. 비행차는 울퉁불퉁한 달 표면으로 천천히 내려 앉았다. 착륙이 끝나자 적막이 감돌았다.
올햄이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것 보세요. 내가 스펜스 올햄임을 증명할 방법이 있어요. 의사에게 연락해 주세요. 여기서 의사에게 검진을 받으면......"
"저기 좀 보십쇼. 요원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넬슨이 손짓하며 말했다. 그는 불안한 듯 올햄을 곁눈질하며 한마디 덧붙였다.
"제발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군요."
"우린 저 친구들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여길 떠날걸세. 잠시 후면 여기서 벗어 날 수 있겠지."
피터스는 우주복을 입기 시작했다. 옷을 모두 입은 그는 넬슨에게서 권총을 받아 들었다.
"자네가 갈아 입을 동안 내가 감시하고 있겠네."
넬슨은 허둥지둥 우주복을 입기 시작했다.
"이 녀석은 어떻게 하지요? 우주복을 주어야 하나요?"
넬슨이 올햄을 가리키며 물었다.
"괜찮아, 로봇이야 산소가 없어도 별 상관 없겠지."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우주선 옆까지 거의 다가와 있었다. 그들은 근처에 머물 러 기다리기 시작했다.
피터스가 그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이리로 오게!"
피터스가 손을 흔들자 사람들은 커다란 우주복 속에서 어색한 몸짓으로 비틀비
틀 걸어오기 시작했다.
"문을 열면 전 죽고 말 겁니다. 지금 살인을 하려는 겁니까?"
올햄이 말했다.
"문을 열겠습니다."
넬슨이 핸들을 향해 손을 뻗쳤다. 올햄은 넬슨의 행동을 지켜 보고 있었다. 넬슨이 금속 손잡이를 쥐는 것이 보였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면 비행차 속의 공기가 모두 빠져나가고 말 것이다. 그가 죽으면 그들은 실수를 깨닫게 될 것이다.
전쟁 중이 아니었다면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행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겁이 난다는 이유만으로 죄없는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두 겁에 질려 누구 라도 기꺼이 희생양을 삼으려 드는 것이다.
올햄은 그들에게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때문에 죽음을 당하게된 것이다. 시간이 없었다.
올햄은 넬슨을 쳐다보았다. 넬슨은 그의 오랜 친구였다. 그들은 함께 학교를 다녔다. 넬슨은 올햄의 결혼식때 들러리를 서주었다.
그런 넬슨이 지금 그를 죽 이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넬슨에게 악한 마음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 의 잘못은 아닌 것이다.
문제는 시대였다. 아마 흑사병이 유행했을 때도 이와 비 슷했을 것이다.
몸에 반점이 생긴 사람은 아무런 주저도 없이 바로 살해당했겠 지. 아무런 증거도 없이 의심만으로.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올햄에게는 그들을 탓할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살아야 했다. 올햄의 목숨은 덧없이 희생당하기엔 너무도 소중했다.
올햄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이 없을까? 그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이제 열립니다."
넬슨이 말했다.
"생각보다는 머리가 좋군."
올햄이 말했다. 그는 자신의 차가운 목소리에 스스로 놀라고 말았다. 절망이 불러일으킨 힘이리라.
"너희 말대로 내겐 공기가 필요없어. 그러니 어서 문을 열어."
넬슨과 피터스가 동작을 멈추고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뭐하는 거야? 계속해. 문을 열라구. 내겐 아무런 상관도 없다니까."
올햄은 손을 재킷 속으로 집어넣었다.
"너희가 얼마나 빨리 도망갈 수 있는지 두고 보겠어."
"도망간다고?"
"이제 십오초 남았군."
재킷 속에서 손가락이 뒤틀리는 것이 느껴졌다. 팔이 갑자기 뻣뻣해졌다. 그는 긴장을 풀면서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미안하지만 암호문에 대한 얘기만은 틀렸어. 그건 너희들의 실수였지. 이제 십사초 남았다."
둘은 충격받은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다음 순간 그들은 허둥지둥 문을 열어 제꼈다. 공기가 진공 속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피터스와 넬슨이 비행차 밖으로 퉁기듯 뛰쳐나갔다.
올햄은 재빨리 행동을 개시했다. 그는 문을 붙들고 잡아당겨 닫았다. 기압 조절 시스템이 격렬한 소리를 내며 공기를 원상회복시켰다.
올햄은 몸을 부르르 떨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초만 늦었더라면......
창문밖으로 넬슨과 피터스가 요원들과 합류하는 모습이 보였다. 다음 순간 그 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윽고 모두들 하나씩 몸을 던져 바닥 에 납작하게 업드렸다. 올햄은 조종석에 앉아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비행차가 하늘로 떠오르자 업드려 있던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 입을 딱 벌리고 쳐다보았다.
"미안합니다. 하지만 전 반드시 지구로 돌아가야 합니다."
올햄이 중얼거렸다. 그는 비행차의 기수를 지구를 향해 돌렸다.
밤이었다. 귀뚜라미 소리가 선선한 밤공기를 뚫고 비행차 주변에 울려퍼졌다.
올햄은 모니터를 조작하고 있었다. 화면이 차츰 밝아왔다. 화상 전화가 아무런 방해도 없이 연결된 것이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여보."
올햄이 말했다. 그의 얼굴을 본 여인이 놀란 소리를 질렀다.
"스펜스! 어디 계세요? 무슨 일이 생긴거죠?"
"지금 말해줄 수는 없어. 급하니까 내 말을 듣기만 해. 언제 통화가 끊어질 지 몰라. 프로젝트 연구소로 가서 챔벌레인 박사를
데려와야해. 만일 챔벌레인 박사 가 안계시면 아무 의사라도 상관없어. 집으로 데려와서 기다리란 말야. X-선 검 사기와 초음파
검사기 등 모든 검사 장비를 가져와야해."
"하지만......"
"시킨대로만 해. 서둘러야 해. 한시간 안에 모든 준비를 마쳐야 한다구."
올햄은 모니터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별 일 없었어? 당신, 지금 혼자 있나?"
"혼자 있다니요?"
"누가 찾아오지 않았냐구? 그러니까......넬슨이나 다른 누구에게서 연락없었어?"
"없었어요. 스펜스, 도대체 무슨 일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좋아. 한시간 후까지 집으로 갈께. 그동안 누구와도 연락하면 안돼. 챔벌레인 박사에게는 적당히 둘러대란 말야.
당신이 몹시 아프다고 하면 되겠지."
올햄은 모니터를 끄고 손목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그는 잠시후 비행차를 벗어나 어둠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집까지는 약 반마일 정도였다.
그는 걷기 시작했다.
창문으로 독서등이 켜진 모습이 보였다. 올햄은 울타리 옆에 무릎을 꿇고 찬찬 히 집안을 관찰하고 있었다.
아무런 소리도, 움직임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손목을 들어올려 별빛으로 시계를 보았다. 거의 한시간이 흐른 후였다.
거리를 따라 비행차가 하나 다가왔다 그대로 지나갔다.
올햄은 집안을 들여다 보았다. 의사는 이미 도착했을 것이다. 그는 방안에서 마리와 함께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갑자기 충격적인 생각이 떠올랐다. 마리는 집을 떠날 수 있었을까? 어쩌면 놈들이 그녀를 습격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는 지금 함정으로 자진해서 걸어들어가는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의사의 기록과 사진 그리고 보고서만이 유일한 기회, 올햄의 무죄를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그의 몸을 검사할 수만 있다면, 그들이 올햄의 몸을 충분 히 검진할 때까지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그는 이 방법으로 무죄를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유일한 방법이리라.
올햄의 유일한 희망은 집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챔벌레인 박사는 명망 높은 의사였다.
그는 프로젝트 연구팀의 담당 의사였다. 그의 보증은 완벽한 권위를 지니고 있었다.
챔벌레인 박사라면 확실한 증거로 그들의 히스테리와 광기 를 잠재울 수 있으리라.
광기... 그밖에는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없었다. 조금만 기다려주었더라도,
천천히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행동했더라면...... 그러나 그들은 기다릴 수 없었다. 그는 즉시 죽어야 했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어떤 종류의 재판이나 검사도 없이. 가장 간단한 검사만으로도 그가 로봇인지 여부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겐 가장 간단한 검사를 할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그들은 눈앞에 닥친 위협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오직 위협만이 그들의 관심사였다.
올햄은 자리에서 일어나 집안으로 향했다. 현관으로 올라섰다.
그는 문 앞에 멈추어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집은 적막에 휩싸 여 있었다.
너무 조용하다.
올햄은 꼼짝않고 현관에 서 있었다. 집안에 있는 사람들은 일부러 조용하려 애쓰고 있었다. 왜? 그의 집은 작은 편이었다.
몇 피트 앞의 문 건너편에는 마리와 챔벌레인 박사가 서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대화를 나누는 목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그는 문을 노려 보았다.
그가 매일 아침 저녁으로 수천번은 여닫았던 문이다.
그는 손잡이를 잡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올햄은 손잡이를 놓고 대신 벨을 눌 렀다. 집안에서 벨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올햄은 미소를 지었다. 인기척이 들렸던 것이다.
마리가 문을 열었다. 마리의 얼굴을 본 순간 그는 모든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올햄은 재빨리 덤불 속으로 몸을 던졌다. 보안 요원이 마리를 밀어 제치고 나 와 총을 쏘아댔다. 덤불이 폭발음을 내면서 튀어 올랐다.
올햄은 집 옆을 돌아 기어갔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올햄은 어둠 속으로 미친듯이 달려갔다.
서치라 이트가 켜지더니 그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올햄은 도로를 건너 울타리를 넘었다.
울타리에서 뛰어 내린 그는 뒷뜰을 지나 달려갔다. 보안 요원들이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들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 다.
숨이 턱턱 막혀왔다. 그의 폐는 공기를 갈구하고 있었다.
마리의 얼굴... 그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일자로 굳게 다문 입술과 공포에 질려 일그러진 눈. 무심코 문을 열고 들어갔더라면!
그들은 전화를 도청하고 는 통화를 끝내자 마자 즉각 달려왔던 것이다. 마리는 그들의 설명을 믿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마저 올햄이 로봇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올햄은 달리고 또 달렸다. 요원들이 뒤로 떨어져 나갔다. 그들은 달리기에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언덕을 기어올라 반대쪽으로 내려갔다.
잠시 후면 비행차로 되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어디로 가야할까?
올햄의 발걸음이 차츰 느려지다 결국 멈추었다.
비행차는 그가 세워둔 장소에 그대로 있었다. 하늘을 배경으로 비행차의 윤곽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주거 지역은 산너머에 있었다.
그는 숲이 시작되는 황무지의 외곽에 서 있었다. 올햄은 황무지를 지나 숲으로 들어섰다.
그가 다가가자 비행차의 문이 열렸다.
피터스가 불빛을 등에 지고 걸어나왔다. 그의 팔엔 육중한 광선 소총이 들려있었다. 올햄은 그 자리에 꽂힌 듯이 멈추어섰다.
피터스는 주변의 어둠 속을 돌아 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안다. 이리로 나와, 올햄. 넌 보안 요원들에게 완전
히 포위되어 있어."
올햄은 움직이지 않았다.
"내 말을 잘 들어. 너는 곧 잡히고 말거야. 넌 아직도 자신이 로봇이라는 사실 을 모르고 있겠지.
전화를 도청하고는 네가 아직도 인공 기억에 의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
하지만 넌 로봇이야. 너는 로봇이고 네 가슴 속에는 폭탄이 있어. 언제 누가 암호문을 말하게될 지 몰라. 그 순간 폭탄은 몇마일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말거야. 프로젝트 연구소, 너의 부인, 그리고 우리 모두가 죽고 말겠지. 내말 알아듣겠나?"
올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숲 속에서 사람들 이 아무런 소리도 없이 그를 향한 포위망을 좁히고 있었다.
"네가 나오지 않으면, 직접 잡으러 가겠다.
기껏해야 약간의 시간차만 생길 뿐이야. 너를 달기지로 데려가 해체할 계획은 취소되었어. 너는 발견되는 즉시 사살될거야.
폭탄이 터질 위험은 감수할 수 밖에 없어. 난 가장 뛰어난 보안 요원 들을 이 지역에 투입해 놓았다.
이 지역엔 그물눈같은 수색망이 깔려있어. 네가 달아날 길은 없어. 이 숲은 무장한 군인들이 완전히 포위하고 있어.
네가 어디에 숨었든 앞으로 여섯 시간이면 수색이 완료될 거야."
올햄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피터스는 아직도 계속 지껄이고 있었다. 올햄을 발 견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너무도 어두웠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피터스의 말은 옳았다. 그가 갈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주거 지역 건너편의 숲 외곽에 있었다. 잠시 숨을 수는 있겠지만 결국은 잡히고 말 것이다.
잡히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올햄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숲 속을 걷기 시작했다.
이 지역은 샅샅히 수색 되고 있을 것이다. 보안 요원들은 끈기있게 조금씩 포위망을 압축하고 있었다.
이제 어떤 방법이 남았을까? 올햄은 최후의 희망이었던 비행차마저 잃었다.
그 의 집에도 보안 요원들이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의 부인마저 진짜 올 햄은 죽었다고 믿고 있었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어디엔가 난파당한 외계인들의 바늘 우주선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엔 로봇의 잔해도 남아있으리라.
여기서 가까운 어디에 우주선이 추락하여 산산조각이 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엔 파괴된 로봇의 잔해도 있을 것이다.
희미한 희망의 싹이 돋아났다. 로봇의 잔해를 발견한다면? 그들에게 우주선의 잔해와 로봇을 보여준다면......
하지만 어디에? 우주선은 어디에 추락했을까?
그는 생각에 잠긴채 이리저리 걸었다. 아마도 그다지 멀지 않은 어딘가일 것이다.
로봇은 틀림없이 프로젝트 연구소 근처에 착륙하여 나머지 거리는 걸어갈 생 각이었을 것이다.
그는 언덕 위로 올라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추락하여 불탔을 것이다. 단서가 될만한 것이 없을까? 단서가 될만한 내용을 우연히 읽거나
들은 적이 없을까? 걸어갈 수도 있는 가까운 장소이리라. 사람이 살지 않는 황폐한 땅.
갑자기 올햄은 미소를 지었다. 추락하여 불이 났겠지......
서튼 숲이다.
그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침이 되었다.
부서진 나무들 사이로 언덕을 기어오르는 남자를 향해 햇빛이 비쳤다. 올햄은 가끔 고개를 들고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몇분이면 다가올 수 있는 가까운 거리까지 포위망을 압축하고 있었다. 올햄은 미소를 지었다.
발아래 한때는 서튼 숲이었던 검게 타버린 숯더미 속에 뭉그러진 우주선의 잔해가 놓여 있었다.
햇살을 받은 잔해가 어두운 빛깔로 약간 반짝거렸다. 잔해를 찾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는 서튼 숲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서튼 숲을 자주 등반했기 때문이다. 그는 잔해가 있을만한 장소를 알고 있었다.
서튼 숲에는 갑작스럽게 솟아오른 봉우리가 하나 있었다.
숲의 지리를 잘 모르는 우주선이라면 이 봉우리를 피하기 어려웠으리라. 그리 고 이제 그 우주선의 잔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올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낮은 목소리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바로 근처까지 와 있는 것이다. 그는 약간 긴장했다.
남은 것은 누가 그를 먼저 발견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만일 넬슨이라면 살아남을 기회는 거의 없을 것이다.
넬슨은 그를 발견하자마자 쏘아버릴 것이다. 올햄은 그들이 우주선을 발견하기도 전에 죽고말 것이다.
하지만 설명할 시간을 조금만 얻을 수 있다면...... 그정도 면 충분하리라.
그들이 우주선을 발견하면 그의 무죄는 쉽게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먼저 쏘기부터 한다면......
검게 탄 나뭇가지가 버스럭 소리를 냈다. 누군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를 발견하지는 못한 것 같았다.
올햄은 심호흡을 했다. 이제 몇초 안남았다. 어쩌면 그의 인생의 마지막 몇초가 될지도 모른다.
그는 손등을 이마에 대고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피터스였다.
"피터스!"
올햄이 팔을 흔들었다. 피터스가 총을 들어 겨냥했다.
"쏘지 말아요!"
목소리가 떨렸다.
"잠시만 기다려줘요. 내 뒤를 좀 보세요. 저 건너편이요."
"올햄을 찾았다!"
피터스가 외쳤다. 불타버린 숲에서 보안 요원들이 쏟아져 나왔다.
"쏘지 말아요. 내 뒤를 좀 보라구요. 저기에 우주선이, 바늘 우주선이 있어요. 외계인의 우주선이라고요! 제발 좀 봐요!"
피터스는 망설이기 시작했다. 총구가 흔들리고 있었다.
올햄은 황급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 아래에 있어요. 우주선이 여기 있을줄 알았다구요. 불에 탄 숲속이요. 이 제 제 말을 믿을 수 있을 겁니다.
우주선 속에 로봇의 잔해가 남아있을거라구요. 제발 확인해주세요, 네?"
"아래에 무언가 보입니다."
보안 요원중 하나가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쏴버려!"
누군가 말했다. 넬슨이었다.
"기다려."
피터스가 재빨리 돌아보며 말했다.
"명령은 내가 내린다. 아무도 쏘지마라. 그의 말이 사실일지도 몰라."
"쏴버려요. 그놈이 올햄을 죽였어요. 이제 우리 모두를 죽일 겁니다. 폭탄이 터지면......"
"닥쳐."
피터스가 비탈을 향해 다가갔다. 그는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저길 좀 보게."
그는 손짓으로 부하 둘을 불렀다.
"아래에 내려가서 저게 뭔지 확인해 봐."
요원들은 급히 비탈을 타고 내려갔다. 그들은 몸을 굽히고 우주선의 잔해를 이리저리 들쑤셨다.
"어떤가?"
피터스가 물었다.
올햄은 숨을 멈추었다. 그는 미소를 약간 지었다. 틀림없이 저기에 있을 것이다. 그에겐 직접 살펴볼 시간까지는 없었다.
하지만 틀림없이 저기에 있을 것이다. 그때 갑자기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만일 로봇이 저 장소를 벗어날만큼 오래 버틸 수 있었다면?
추락시의 충격으로 로봇의 몸체가 완전히 분해되었다면 ? 불길에 완전히 타버렸다면?
올햄은 입술을 빨았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넬슨은 그를 노려보고 있었 다. 그의 얼굴은 아직도 경직되어 있었다.
넬슨의 가슴이 들먹이는 것이 보였다.
"저 놈이 우리를 죽이기 전에 먼저 해치워야 해요."
넬슨이 말했다.
잔해를 조사하던 요원들이 몸을 일으켰다.
"뭘 좀 찾았나?"
피터스가 말했다. 그는 총을 꼭 붙들고 있었다.
"뭐가 있나?"
"바늘 우주선의 잔해가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옆에 뭔가 있는데요."
"내가 직접 살펴보지."
피터스는 올햄의 곁을 지나 성큼성큼 걸어갔다. 올햄은 그가 언덕을 내려가 요원들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머지는 모두 피터스를 따랐다.
"뭔지 모르겠지만 사람의 몸뚱아리처럼 보이는데? 아니, 이것 좀 봐!"
피터스가 말했다.
올햄은 그들의 뒤를 따랐다. 모두 원을 그리며 둘러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닥에는 이상하게 일그러지고 구부러진 모습의 몸체가 놓여 있었다. 마치 사람의 몸처럼 보였다.
기괴한 모습으로 구부러지고 팔다리가 이리저리 흩어져있다는 사실만 제외한다면. 입을 딱 벌리고, 눈은 마치 유리알처럼 보였다.
"부서진 기계같구먼."
피터스가 웅얼거렸다.
올햄은 약하게 미소를 지었다.
"어떻습니까?"
피터스가 그를 쳐다보았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 자네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어."
"로봇은 저를 죽이지 못했습니다."
올햄이 말했다. 그는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바늘 로봇은 우주선이 추락했을 때 파괴되었죠. 당신들은 전쟁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외곽 숲에 갑자기 불이 난 이유를 조사할 생각도
못했던 겁니다. 이제 모 두 아셨겠죠."
올햄은 요원들을 바라보며 계속 담배를 피웠다. 그들은 그로테스크한 모습의 잔해를 우주선에서 끌어내리고 있었다.
몸은 뻣뻣했고 팔다리는 완전히 경직되어 있었다.
"이제 폭탄을 찾을 수 있을겁니다."
올햄이 말했다. 요원들은 로봇의 몸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피터스가 몸을 구부렸다.
"여기 폭탄의 흔적이 보이는 것 같군."
피터스가 손을 뻗어 로봇의 가슴을 톡톡 건드렸다.
로봇의 가슴은 열려있었다. 입을 떡 벌린 상처 사이로 금속성의 물질이 반짝거 렸다. 사람들은 아무 말없이 그 금속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마트면 저게 우리 모두를 죽일 뻔했지. 저기 있는 저 금속 상자가 말이야."
피터스가 말했다.
모두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자네에게 큰 빚을 진 것 같군."
피터스가 말했다.
"자네에겐 악몽같았을거야. 자네가 탈출하지 못했더라면, 우리는......"
피터스는 말을 끝까지 맺지 못했다. 올햄은 담배를 껐다.
"압니다. 다행히 로봇은 저를 죽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증명할 방법이 없었죠. 때로는 진실을 증명하기가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게 문제였습니다. 제가 올 햄이라는 것을 보여줄 방법을 찾을 수 없었으니까요."
"휴가를 가는게 어떻겠나? 자네에게 한달 정도 휴가를 줄 수 있을 것 같네. 편히 쉬라구."
"그것보다 먼저 집에 가고 싶습니다."
"좋아, 좋아. 뭐든지 자네가 원하는 대로 하게나."
넬슨은 땅바닥에 무릎을 대고 로봇의 잔해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가슴 속에 보이는 금속을 향해 손을 뻗쳤다.
"손대지 말아. 아직도 폭발할 수 있어. 폭발물 제거 요원들이 올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아."
넬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그는 손을 가슴속에 집어넣고 금속을 붙들었다. 넬슨은 힘껏 잡아당겼다.
"뭐하는 짓이야?"
올햄이 고함쳤다.
넬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손에는 금속 물체가 들려있었다. 그의 얼굴에 는 공포의 빛이 서려있었다.
그것은 금속 나이프였다. 피로 범벅이 된 외계인들의 바늘 나이프.
"이것이 올햄을 죽였지요. 내 친구는 이 걸로 살해된 겁니다."
넬슨이 속삭이듯 말했다. 그는 올햄을 쳐다보았다.
"네놈이 이걸로 올햄을 죽인 다음 우주선 옆에다 버린거야."
올햄은 덜덜 떨고 있었다. 이빨이 딱딱 부딪혔다. 그는 칼과 시체를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이게 올햄일리가 없어."
올햄이 말했다. 어지러워졌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었다.
"그럼 내가 틀린 걸까?"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만일 저것이 올햄이라면, 그렇다면 내가 바로......"
그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첫마디 만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폭발은 알파 센타우리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었다.
----------------------------------------------------------------------------------------
전 이걸 영화 임포스터로 먼저 감상했습니다.
영화라 좀 스케일이 커지고 각색도 되었지만 반전의 묘미는 잘 살렸더군요.
물론 반전 부분도 원작과는 약간 다르지만요.
이거.....바늘로봇? 번역이 이상하네요......제가 읽었을땐 사기꾼로봇 이란 이름으로 번역된걸 읽었는데... 원 제목도 임포스터(사기꾼, 협작꾼)..........아무튼 SF반전드라마는 필립 K 딕은 甲임
네타방지용 제목인듯여. 원래 사기군 로봇이 맞긴 합니다. 근데 퍼온곳에서 제목을 교묘히 바꿈.
올햄 박사, 당신은 살해당한 겁니다!
그 머리 안에 폭탄이 장치되어 지금의 당신은 인간 로봇이야!!
이거.....바늘로봇? 번역이 이상하네요......제가 읽었을땐 사기꾼로봇 이란 이름으로 번역된걸 읽었는데... 원 제목도 임포스터(사기꾼, 협작꾼)..........아무튼 SF반전드라마는 필립 K 딕은 甲임
네타방지용 제목인듯여. 원래 사기군 로봇이 맞긴 합니다. 근데 퍼온곳에서 제목을 교묘히 바꿈.
참고로 영화판에서 주인공은 CSI 뉴욕의 멕반장 게리 시나이즈...
영화를 좀 싸게 찍었는지 중간에 영화 아마겟돈 장면도 몰래 스쳐지나가더군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