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킥킥킥킥, 흐히히히, 이거 재밌네.”
언제나 그러했듯, 나스호른은 오늘도 농땡이를 치고 있었다. 단말로 멸망 전의 드라마를 시청하며 감자칩을 우적우적 씹는다. 감자칩 부스러기가 사방으로 흩날려 온 방안이 엉망이 되고 있었지만, 나스호른은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
“....”
다만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나스호른을 제외한 아이언 메이든 부대원들은 지금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부대원들은 침낭과 모포까지 끌고 와서 빈둥대는 나스호른을 곁눈질하면서도 작업하는 손길을 늦추지 않았다.
“대장. 원래부터 일이라고는 질색하시던 분이었으니 일 안하는 걸로 뭐라 하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끝끝내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는지, 블러디팬서가 총대를 메고 입을 열었다.
“최소한 작업하고 있는 부대원들 앞에서 대놓고 뺑끼 치지는 말아야죠!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그녀의 울분에 찬 외침에도, 나스호른은 더없이 담담했다.
“팬서야, 뺑끼친다니 말이 너무 심하구나. 말했잖니. 정말로 내가 필요한 때를 위해서 힘을 아끼고 있는 거라고.
내가 이런 작업을 하다가 전력 손실이라도 나 봐라. 나중에 내 화력이 꼭 필요한 상황이 생겼는데 내가 병실에 누워 있으면 우리 부대원들 뿐만 아니라 오르카 전체에 크나큰 위기가 올 수 있어요.
나도 너희만 고생하는걸 가만 보고 있자니 마음이 너무 아프단다. 그러니 너희도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이해해 주렴.”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뻔뻔하게 변명하는 모습에 블러디팬서의 관자놀이가 분노로 움찔움찔 떨려온다.
“그런 소리나 할 거면! 당장! 생활관으로 돌아가십쇼! 저 열불나서 죽게 하고 싶은거 아니면!”
“히잉, 부대장이 대장 잡는다~.”
나스호른은 짐짓 슬픈 체를 하며 모포와 침낭을 주섬주섬 챙겼다. 하지만 그녀의 입가에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기왕 농땡이를 피울 거라면 야외보다 아늑한 자신의 방 안이 훨씬 나았기 때문이다.
“그럼 팬서가 들어가라니까 어쩔 수 없이 먼저 갈게 얘들아! 작업 잘 끝내고 와라!”
신이 나서 막사로 돌아가는 나스호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블러디팬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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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오늘따라 블러디팬서가 축축 늘어져 있길래 이유를 물었더니, 장장 30분에 걸쳐 나스호른에 대한 불평불만을 쏟아냈다.
“팬서가 항상 고생이 많아. 내가 나스호른한테 뭐라고 한마디 할까?”
“됐습니다. 사령관님이 혼내셔도 잠깐 하는 시늉만 하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버릴게 뻔합니다.”
무엇이라도 도와줄 것이 있을까 그리 물었더니, 소용없다며 고개를 내젓는다.
“근본적으로 고치려면 뭔가 대장이 혹할만한 미끼를 내밀어야 하는데, 너무 대충대충 사는 분이라 귓등으로도 안 듣습니다.”
블러디팬서가 머리를 감싸쥐고 온몸을 비튼다. 그간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던 모양이다.
“...잠깐, 그러고 보니 나스호른 대장 아직 사령관님이랑 해본 적 없지 않습니까?”
“어… 그렇긴 해.”
블러디팬서는 순간 무언가 떠올랐는지 눈을 반짝이며 내게 물었다. 나스호른은 이상하리만치 성관계에 관심이 없어 지금까지 나도 특별히 먼저 제안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럼… 이런 작전은 어떻습니까? 괜찮을 것 같지 않습니까?”
“뭐어? 그게 먹힐까?”
“해보지않고는 모르는 일 아니겠습니까.”
블러디팬서가 제안한 작전은 꽤나 예상 밖이었다. 성공하리라는 확신이 없어 재차 물었지만, 그녀는 무언가 생각하는 바가 있던 모양이다.
“그래? 네가 그렇다면야….”
“고맙습니다. 그럼 바로 내일 작전 실행하겠습니다.”
블러디팬서는 승리를 확신한 듯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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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호른 대장.”
다음날, 빙긋빙긋 웃으며 나스호른에게 찾아간 블러디팬서.
“어, 팬서 왔니. 난 지금 드라마 보느라 바쁘니까 내일… 아니, 다음주에 오렴.”
나스호른은 블러디팬서를 거들떠도 보지않고 축객령을 내렸다.
“대장님은 사령관님의 성처리 업무를 맡아 주셔야 하겠습니다.”
그런 반응 정도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블러디팬서는 표정을 바꾸지 않고 나스호른에게 말했다.
“뭐? 싫어. 그거 땀나고 힘든 거잖아. 귀찮아, 귀찮아.”
나스호른도 만만찮은 상대가 아니었기에, 손을 대충 흔들며 거절의 뜻을 밝힌다.
“반년 전에 저한테 대장 권한 위임해주신거 기억하시죠? 지금 아머드 메이든 소속 모든 부대원에 대한 명령권은 저한테 있습니다. 대장을 포함해서요.
정당한 사유 없이 불복하신다면 명령 불복종으로 영창에 보내겠습니다. 영창 가면 하루종일 정좌한 상태로 벽만 보고 있어야 하는 거 아시죠?
영창 근무병들은 타 부대 소속이라 아주 인정사정 없을 겁니다. 저처럼 말로 대충 넘어갈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않으시는게 좋을걸요?”
나스호른은 이제서야 블러디팬서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드라마 재생을 멈춘 후 그녀를 바라보았다.
“야!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아무리 권한 줬어도 대장은 나지! 이거 하극상이야!”
“하극상 아닙니다. 여기 보십시오. 상호 동의 하에 대장 권한 위임받았으면 명령 불복종으로 영창 보내는 것도 가능합니다. 제가 이 한 문장 찾으려고 블랙리버 군법서 목차부터 마지막 장까지 다 뒤져봤습니다.”
나스호른은 블러디팬서가 내민 군법서의 밑줄쳐 진 부분을 읽고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아니! 그런게 어딨어! 그럼 대장 권한 다시 줘!”
“제 동의 없이는 안됩니다. 권한 되찾는 것도 상호 동의 있어야 가능합니다. 물론 전 동의 안 할 거고요. 지금 대장은 저고, 대장은 제 명령을 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해했습니까?”
“이익…!”
조목조목 따져가며 빈틈없이 몰아치는 블러디팬서. 나스호른은 볼멘소리를 내며 부관을 째려본다. 귀찮다고 대충 권한 넘겨준 것이 이제 와서야 후회되기 시작했다.
‘하아… 일났네. 이럴 줄 알았으면 대충 작업 도와주는 시늉이라도 할걸.
성처리 맡기는 귀찮지만, 그것마저도 안 한다고 하면 영창 보내거나 빡센 작업 시키겠지?’
나스호른이 턱을 쓰다듬으며 머리를 굴린다. 주어진 선택지 중 그나마 편한 쪽을 고르기 위해서.
‘성처리라고 해봐야 그냥 사령관님 싸게 만들면 끝 아닌가? 별거 아닐 것 같은데.
그냥 그거 한다고 하고 파바박 끝낸다음 꿀 빨아야지.’
오랜 농땡이로 단련된 나스호른의 잔머리가 빠르게 결론을 도출했다.
“그래, 알았어. 할게. 사령관님 성처리 업무.”
“좋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사령관실로 가서 업무 보십시오.”
“지금 바로? 나 드라마 이번 화까지만 보고 가면 안돼?”
“마저 보시고 영창 가셔도 됩니다. 편한 쪽으로 하세요.”
“...갈게.”
결국 나스호른은 블러디팬서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애매하게 끊은 드라마의 내용이 머릿속에 맴돌지만, 조금이라도 늑장을 부리면 진짜로 영창에 가게 될 것 같았다.
“사령관님? 저 나스호른인데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어, 들어와! 기다리고 있었어!”
나스호른이 사령관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편한 차림을 한 사령관이 그녀를 맞이했다.
“자, 거두절미하고 빨리 끝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보던 드라마가 있어서.”
방에 들어가자마자 당당하고 뻔뻔하게 요구하는 나스호른. 사령관은 당황스레 눈을 두어 번 깜빡이고는 그녀를 집무실 구석의 침대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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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블랙리버 군법 어쩌고는 대충 지어낸 내용입니다.
다음화는 라오19게에 올라갑니다.
팬서가 남 좋은 일만 하게되는거 아닐까싶긴한데.
팬서도 좋은일 시켜줄 예정입니다
라비아타는 사랑입니다
팬서가 남 좋은 일만 하게되는거 아닐까싶긴한데.
팬서도 좋은일 시켜줄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