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이 좌우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전날 야인(野人)과 왜인(倭人)의 사객(使客)이 함께 아회(衙會)에 참예하면, 그 반열의 서차(序次, 순서)는 야인이 앞에 있고 왜인의 사객이 뒤에 있었다."
하니, 찬성 허조(許稠)가 대답하기를,
"왜의 사객이 뒤에 있게 되면 반드시 분노를 품을 것이요, 중국이 이를 들으면 왜인과 외교(外交)를 벌이고 있다는 혐의를 가지게 될 것이오니, 일시에 같이 참예하지 말도록 하옵소서."
하매, 임금이 말하기를,
"왜인이 우리 나라에 왕래하는 것을 명나라가 어찌 모르는가. 또 본국의 화자(火者)가 중국으로 뽑혀 간 자가 꽤 많은데, 그들이 우리 나라가 왜인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실을 명백히 알고 있으며, 더욱이 왜인들도 말하기를, ‘황제께서 일찍이 이르기를, 「조선의 국왕이 능히 왜객을 열복(悅服)시켜 왕정(王庭)에 오게 했다.」고 하였다.’ 하였으니, 이 말을 비록 다 믿을 수는 없으나, 나의 생각으로는 야인과 왜객을 동서로 나누어서 들어오게 하는 것이 편하겠다."
하니, 예조 판서 신상(申商)이 아뢰기를,
"동·서로 나누어 세우라고 이미 하교를 받자왔으니, 중국에서 비록 이 사실을 듣더라도 반드시 마지못해 억지로 화친한 것이지, 진정 서로 우호 관계를 맺은 것은 아니리라고 할 것이오니, 일시에 함께 참예하게 한다 해서 해로울 것이 없습니다."
하매, 임금이 말하기를,
"옳도다."
하였다.
-세종실록 51권, 세종 13년(1431년) 1월 21일 병술 2번째기사
왜인(倭人)과 야인(野人)이 와서 숙배(肅拜)하였는데, 화라온 올적합(火剌溫兀狄哈)으로 당상직(堂上職)에 있는 자가 왜인(倭人)보다 상석(上席)에 앉으니, 왜인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우리가 어찌 올적합의 아래에 있어야 하겠습니까?"
하고는, 장차 돌아가려고 하면서 기꺼이 자리에 나아가지 아니하니, 임금이 주서(注書) 김인후(金麟厚)로 하여금 위로해 타이르게 하고 다른 대청에 따로 자리를 베풀어 대접하게 하였다.
-성종실록 262권, 성종 23년(1492년) 2월 21일 임술 5번째기사
위의 두 기록들을 잘 보시다시피, 우리나라 곧 조선국의 조정은 일본국(왜국)을 야인(만주대륙의 모든 여진족)보다 전반적으로 아래의 국제적 위상, 총체적 역량을 지닌 존재로 간주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여진족이 일본국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국제적 위상, 총체적 역량을 지녀온 것으로 간주된 거라고 볼 수 있는 것이겠지요. 조선국 포함 우리나라 역대 왕조들의 여진족들에 대한 인식 그리고 중국의 역대 왕조들의 여진(말갈. 숙신-읍루-물길-말갈-여진 이렇게 명칭이 바뀌어 왔죠.)족들에 대한 인식이 대체적으로 많이 천시(멸시)해왔었던 것은 다들 잘 아실 것이고, 이러한 여진족들보다도 낮게 대접받을 정도면 일본국의 국제적 위상, 총체적 역량이 국제사회, 국제질서에서 굉장히 낮게 인준되어왔음을 보다 분명하게 알 수 있으실 것입니다. 전근대 곧 전근현대의 일본국은 현대사로 치면 대략 나쁘게 보면 필리핀, 좋게 보면 인도네시아 정도의 국제적 위상, 총체적 역량이였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즉, 인구는 많은 편임은 물론, 긍정적인 부분들이 더러 보이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행정 체계, 학문 체계 등의 질적 수준(종합적인 선진화 수준)이 굉장히 낙후되어 있는 후진국 느낌이였다고 파악하시면 될 것인데요. 바로 위의 두 기록들이 일본국 입장에서 자국의 고대사보다도 더 부끄럽게 여겨질 수 있는 부분이라고 보여지는데요. 고대 시대 정확힌 야요이 시대, 고분 시대, 아스카 시대때 현 일본인들의 직접적인 조상이 된 야요이인, 도래인들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한국계 이주민들에 의해 문명의 개념이 이식되어서 역사가 시작된 지 약 10세기 곧 1,000여년이 흐른 시점인데도 불구하고 국제사회(국제질서)에서 여진(말갈)족보다도 낮은 국제적 위상, 총체적 역량으로 인준받는 신세에 불과했으니까요.
이를 보면, 일본국(왜국)의 자체적인 역사가 시작된 나라 시대(일본국[왜국]의 고대사인 야요이 시대, 고분 시대, 아스카 시대는 고대 한국의 이주민[야요이인, 도래인]들이 일본열도의 원주민인 조몬인[일본의 NHK가 최근에 방송한 일본인의 연원에 대한 유전자 조사를 보면, 조몬인의 근원은 태국의 소수민족인 마니족으로 밝혀졌는데, 마니족은 네그리토[동남아시아~남태평양권에 거주하는 흑인종]의 일원이지요.]들을 정벌해 멸절시키면서 이뤄낸 시대들이지요. 야요이 시대는 고조선계~마한, 진한, 변한계 이주민들이, 고분 시대는 가야계 이주민들이, 아스카 시대는 백제계 이주민들이 이뤄낸 것이기 때문에, 일본의 고대사는 고대 한국 정치 세력의 터전 범위가 일본열도로 확장된 시대, 일본열도가 고대 한국 정치 세력의 터전 범위에 포함되었던 시대 이렇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국만의 자체적인 역사가 시작이 된 시점은 기원후 700년대 중반 곧 나라 시대 중반 시점부터라고 생각됩니다.)를 시작으로 해서 일본국의 국제적 위상(총체적 역량)에 관련된 기록들을 최대한 수집해 파악해보면, 일본국은 여진(말갈)족보다도 낮게 인준되어온 것이 일반적이였었음을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세간에서 인식하는 옛 일본국의 국제적 위상보다 실제 기록들에 나타나는 옛 일본국의 국제적 위상이 상당히 낮아왔던 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구요. 그럼, 조선국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역대 왕조(고조선~조선)의 국제적 위상은 일반적으로 어떠했을까요? 아래를 참조해주세요.
또 야인(野人)이나 일본(日本)이나, 삼도(三島)나 유구국(琉球國) 같은 사이(四夷)가 모두 내정(來庭)하였으며, 아름다운 징조와 이상한 상서가 모두 모이어 만물(萬物)이 흔쾌하게 보니, 운수가 형통하고 아름다운 데에 붙어서 오직 소국(小國)만이 왕을 사모할 뿐이 아니고, 중국이 우리 전하를 대접하는 데 이르러서도 그 예(禮)와 그 의(義)는 옛보다 융숭하고, 열국(列國)보다 성대하니, 우리 전하의 공덕(功德)이 성하지 않고서는 그럴수가 있겠습니까? 삼황(三皇)도 마땅히 도(道)를 양보하고, 이제(二帝)도 마땅히 덕(德)을 양보하며, 삼후(三后)도 마땅히 공(功)을 양보할 것입니다.
-세조실록 45권, 세조 14년(1468년) 3월 25일 乙酉 4번째기사
참조:전세계 문명사에서 중국, 한국의 앞에선 그 어떤 국가라도 근본을 내세울 수 없음을 보다 분명하게 아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근현대사가 시작되기 이전인 기원후 1800년대 중반 이전까지는 전세계의 모든 문명권들 중에서 종합적으로 보았을 땐 중국, 한국을 양대 최선진국으로 하는 동아시아(동북아시아)문명권이 가장 선진적인 문명권이여왔던 것이 괜한 것이 아니죠(동아시아문명권은 유교[유학, 성리학]문명권, 한자[한문]문명권으로도 볼 수 있지요. 즉, 국가 운영 사상은 유교, 국가 공용 문자는 한자인 문명권, 문화권인 것이죠. 여기에 기인해서 보면, 예로부터 대대로 안남국, 월남국, 교지국 이렇게 불려온 베트남도 지리적으로는 동남아시아~남태평양권이지만, 문화적으로는 동아시아문명권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지요. 베트남인의 외모도 베트남의 본류인 북베트남의 사람들은 동아시아인 형태의 외모인 것과 동시에 문화적으로도 명백한 동아시아문명권이지요. 동아시아문명권은 지리적으로 보았을 때, 서방으로는 티베트고원과 위구르고원 그리고 서북방~북방으로는 몽골초원, 만주대륙 그리고 남시베리아권까지라고 할 수 있죠.).
위의 기록을 잘 보시다시피, 이는 조선국의 국제적 위상을 가장 분명하게 나타내는 기록인 것이지만, 조선 뿐만이 아니라 조선을 포함한 우리나라 역대 왕조(고조선~조선)들은 동방(해동. 만주대륙-한반도-일본[왜]열도-유구[류큐, 현 오키나와]열도)의 최강대국인 것과 동시에 전세계의 최강대국이여온 중국의 역대 조정들로부터 전세계의 압도적인 일등국에 해당되는 극진한 대접을 받아왔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우리나라 역대 왕조들의 국제적 위상 더 나아가 정체성에 대해선 또다른 중화, 동방(해동)최강, 일국지하 만국지상 이렇게 세 용어로 요약하여 표현할 수 있을 겁니다. 흥미로우니만큼, 유익한 참조가 됐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