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터에 놓여 있는 성모마리아상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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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길에서 벗어나 있는 고풍스러운 마을이다.
바다에 연한 차도를 벗어나자 곧장 골목이고
양철지붕들이 처마를 맞대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마른 오징어 냄새가 물씬 나는 술
집에서는
지붕들 너머로 바다가 보인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던 그 집에서 우리는 저녁때까지
술을 마셨다.
중년의 여주인은 우리말을 못 알아들었지만 안주를 장만
하며 술잔을 채우며 연신 ‘하이하이’다.
외국 손님은 처음이란다.
동네 사람들 몇이 들어와 인사를 하고 낯선 이방인들 술
마시는 모습이 신기해서 지켜본다.
카운터에 성모마리아상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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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이 보여주는 쓰나미가 휩쓸고 간 바다 마을이 바로
그 동네다.
어, 어 하는 사이 양철지붕들이 종이딱지처럼 물에 뜨고
집들이 성냥갑보다 더 가볍게 둥둥 물살 위를 떠다닌다.
사람들은 흡사 장난꾼 아이가 쏘아대는 물대포 앞에 놓
인 개미떼다.
필사적으로 육지를 향해 달리던 차들이 헛되이 물속으로
곤두박질치고
마을은 순식간에 폐허가 된다.
저들 중에는 매니페스토를 열독한 사람도 있고 적군파에
열광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류에 취한 사람도 있고 독도를 타께시마라 믿는 사람
도 있을 것이다.
선한 사람도 있고 악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슨 상관이랴, 개미가 어떻게 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바가 없는 것.
3
하느님은 카운터에 놓여 있던 성모마리아상만은 거두시
었을까.
사진관집 이층
신경림, 창비시선 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