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
인간 쇠창살인가봐, 흔들어도 꿈쩍 않겠어 형광 점퍼를
입은 남자애들이 지하철 계단을 다 막고 있었지 저 옷만 벗
으면 옷걸이는 괜찮은 애들인데, 특히 맨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쌍꺼풀 없는 남자애
웃기지 말래, 돌아가래, 여기로 못 나간다고, 무전기 아저
씨가 호랑이 눈썹으로 말했지 자기들끼리 이어폰을 두드리
며 여기 모든 사람들이 참고 기다리니까 계속 참으래 팔근
육을 울퉁불퉁 움직이며, 말 들어라 아가야, 그런 눈빛으로
아, 조폭들이 깔렸어 이러다 객사하겠어
(윙크) 그럼 우린 이승에서 못 만나는 거?
정말이야, 네 말이 정말이 되겠어 너는 땅 위에서, 나는
땅 아래서 우린 비 맞은 생쥐, 넌 방패들이 만든 길을 따라
이상한 데로 가버렸다지, 배터리도 다 돼가는데, 아, 현기
증, 지금이라면 치즈스틱 열 개는 먹겠구나 그러면 좀 살겠
는데…… 어디서 박스라도 주워와야 할까봐 자꾸 다리가 꺾
여서, 이젠 영혼까지 굿바이인가
지하철도 무정차하고, 어쩌라고?
집에 가게 출구는 내줘야 할 거 아녜요!
한 명이 외치니까 몇 명이 따라 외쳤어 왓 더 헬, 갓 뎀,
다른 출구 사람들도 슬슬 몰려들었지 무전기 아저씨가 이것
들이, 하며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어 나도 덩달아 소리쳤지
친구 만나야 한다고, 만나서 우리도 (세상에) 할말 좀 해야
겠다고 외쳐도 고개를 가로저었어 더 크게 외치려는데 누가
옆에서 중얼거렸어
젊은 년이 지껄이기는
(먹구름, 자기장, 벼락!)
그래, 이건 지난번에도 들은 것 같은데? 젊은 년은 어서
일어나라고, 중절모 영감이 말했었지 그 넓은 지하철에서
나만 골라서 지팡이로 무릎을 쳤어 맨틀이 쪼개지는 줄 알
았지 잠결에, 그만 일서버리고는 두고두고 가슴을 쳤는
데, 아직도 못 잊은 그 목소리, 내 몸 전류를 다 끌어모아 고
개를 돌렸지
니가 누구 덕에 이렇게 사는 줄 알아?
지난번 그 영감은 아니지만 엇비슷한 영감, 다 저녁에 선
글라스를 끼고는 너무 태연해서, 멀쩡하게 주름살투성이어
서, 기절할 뻔했지 나한테만 들리라고 낮게낮게 중얼대길
래, 손톱을 잔뜩 세워 그 사람 팔뚝을 잡았지 한 번에 쳐내
는 걸 이번엔 두 손으로 잡았어 핸드 마이크 사이렌 소리랑
무전 소리랑, 저 앞쪽, 사람들은 인간 쇠창살들이랑 얽혀서
는 정신이 없었지 광대버섯 백 개는 ㅁㅁ은 사람처럼 손에
힘을 줬어 그러면 될 줄 알았는데,
영감은 슬쩍 웃으면서 주먹을 들었지
설마
그건 아닐 거야
이런 거 안 재미있는데
(그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건가요, 그 주먹질 같은 마음이
어디서 와요……)
내 두 팔이 덜렁거리며 떨어졌지
하나, 또 하나,
이게 뭐야
어떻게 이런 게 다 있어.
오늘 같이 있어
박상수, 문학동네시인선 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