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절에서의 눈송이 낚시
심리적 오독과 주관적 발췌독의 차이, 딕션과 풍자의
차이, 밥 딜런과 딜런 토마스의 차이, 유물론과 유심론의
차이,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차이, 생강과
앵앙의 차이,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차이
치바이스齊白石, 1864~1957를 잘 모르는 나는 그의 말을
이렇게 바꿔본다
‘시를 씀에 있어서 자신의 마음과 같음과 같지 않음의
사이에 있는 것이 묘하다, 너무 같으면 세상에 아첨하는
것이 되고, 같지 않으면 시를 속이는 것이다’
모든 글이 위악이든 위선이든 우리가 세계라고 믿는 이
곳은 어쩌면 글로 쓰여진 한 장의 종이에 지나지 않을지도
글은 어쩌면 존재의 참을 수 없는 패악질일 수도, 설령
그것이 패악질이라도 쓰인 글 위에만 존재하는 세계여
이 세상의 많은 질문들은 결국 타인을 거쳐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
인식의 옳고 그름을 떠나 사유와 실천의 문제를 떠나
심리적 오독과 주관적 발췌독은 자아의 반영일 뿐
하늘 아래 새로운 것도 절대적인 것도 없으리니 누군가
의 생이 끝나도 누군가의 생은 끝내 알 수 없으리
우리(나)는 그저 그렇게 살다가 그저 그렇게 죽으리라
태어나지도 않은 자가 무책임하게 삶에 대하여 말하노
니 무책임의 무궁함으로 나(우리)는 끝내 자유롭다
그리고 미셸 우엘르베끄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반으로 쪼개지는 작고 하얀 타원형 알약이다
그것은 무엇인가를 창조해내지도 변화시키지도 않는다
다만 해석을 가할 뿐이다
결정적이었던 것을 한시적인 것으로 만들고, 필연적이
었던 것을 우연한 것으로 만든다
그것은 생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게 해준다
덜 다채롭고, 보다 인위적이며, 어떤 경직성으로 점철된
방식으로. 어떤 형태의 행복감도 주지 않고, 실질적인 안
도감조차 보장하지 않는다
그것의 기능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바로 삶을 의례적으로 행해야 하는 일들의 연속으로 변
형시켜 변화를 유도해내는 것
그것은 처음엔 인간이 살아갈 수 있도록, 적어도 죽지
않게 해준다
일정 기간 동안은 말이다
그럼에도 죽음은 끝내 대두되고야 만다
분자 결합에 균열이 생기며 다시 해리 과정이 일어난다
해리 과정은 아마 세상에 한 번도 속한 적이 없던 이들,
요컨대 삶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는 걸 늘 느껴온 이들
에게 더 빠를 것이다
그런 이들은 다수이고, 흔히 말하듯, 후회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내 경우는 그렇지 않다
사실 신은 우리를 굽어살피고 있다
신은 매 순간 우리를 생각하고, 더러 우리에게 매우 구
체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우리의 생물학적 특성과 한낱 영장류인 처지를 고렿
본다면 설명이 되지 않는 저 계시, 저 황홀경
우리의 가슴속에 숨이 막히도록 흘러드는 저 사랑의 격
정들이 바로 극도로 자명한 신호들이다
이제 나는 그리스도의 입장을, 딱딱하게 굳은 심장들
앞에서 표출하던 그 반복된 노여움을 이해한다
저들은 모든 신호를 받고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나는 정말로 저 미욱한 자들을 위해 다시 한번 내 목숨
을 내주어야 하는 것일까?
정말 그렇게까지 구체적이어야 하는가?
답은 그렇다, 일 것이다(1)
(1) 미셸 우엘르베끄『세로토닌』의 마지막 구절이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밤을 안고 태어난다(2)
(2)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구이다, 밤이다
눈 속을 여행하는 오랑캐의 말
박정대, 달아실시선 0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