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리필
너 고기 좋아해?
오늘 하루 두 번이나 만났는데, 그냥 헤어질 수 없었지,
이젠 내가 먼저 가겠다는 말도 못하고…… 아메리칸 레스
토랑 스타일인 줄 알았는데, 네가 갑자기 물었어 고기, 고
기라……
회식하고 집에 가다 버스에서 잠든 적이 있지 깨보니 주
변엔 아무도 없고, 기사 아저씨도 없는데, 어디서 고기 냄
새가 나는 거야 침샘이 폭발했지 내 옷에서 나는 냄새였어
우리는 먹었지 목살이랑, 삼겹살이랑, 계속 가져다 먹었
어 먹자골목에서 네가 찍은 집, 구두 벗고 들어가기 싫다니
까 깔깔깔 네가 하이파이브를 해줬지
신을 벗으면 고기랑 너무 멀어지잖아
불판을 여섯 번이나 갈면서, 말도 없이 먹었다 양파, 고
기, 마늘, 고기, 쌈장, 고기…… 올릴 수 있는 건 다 올려
서 씹었어
들려?
응?
우리 살찌는 소리
정말이네, 털보 언니가 미소 지으며 다운 패딩 입혀주는
느낌, 그래, 난 좀비 언니들이 떼로 와서 기모 레깅스랑 펠
트 워머를 같이 입혀주나봐, 무서워, 우리 얼른 먹어서 이
무서운 것들을 다 없애버리자
둘이서 칠 인분은 먹었나봐, 된장국에 공깃밥까지 먹으
려다 그건 못했지 너는 젓가락을 덜덜 떨며 말했다 못살아,
왜 이것밖에 못 먹는 거야……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구
나…… 그니까, 먹은 것보다 못 먹은 게 무한이라서 무한 리
필인 건가, 나도 같이 울었어
모공들이 다 열려버려서, 우린 기름종이를 나누어 가졌지
립밤도 다시 발랐어 그래도 한 정거장쯤은 걸을까? 미안해
얘들아, 천국에 못 간 돼지들, 걔네들이 아직도 붙어 있나
봐, 밤거리를 걸었지만 숨이 차소, 반 정거장도 못 걸었지,
포기하자 다 포기하고, 택시를 잡아타자
불빛 찬란한 밤거리
이렇게 달릴 때가 제일 빛나지
다들 걸어가는데 우리만 달려가니까
우리만 앞으로 나가는 것 같으니까
연두부처럼 맘이 풀려서는 내가 물었어
무슨 생각해?
음, 구역질나게 배부르고, ……멍해서, 좋다는 생각
멍한 것 뒤에는 더 멍한 게 있을까 아님 아무것도 없는 걸
까, 뭐가 더 좋은 걸까? 우리는 계속 달렸지 입을 벌리고 차
창 바람을 먹으며, 에코처럼, 네가 물었어
넌 무슨 생각 하는데?
아까 남긴 고기 생각
내릴 때가 되니까 네가 붙어 앉았지, 길게, 한숨을 내쉬고
는 뭐라고 속삭였어 분홍색 면봉이 귓바퀴를 들락날락, 근
데 무슨 말인지 안 들리잖아, 내 손을 잡고, 빤히 보면서, 네
입술이 움직였지
가지 마
오늘
같이 있자.
오늘 같이 있어
박상수, 문학동네시인선 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