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조리병출신이었음
우리 부대는 50여명 있는 독립중대고 중식만 식사 인원이 3배로 늘어나는 특이한 부대였지만 조리병이 평균 2명이었어서 일이 힘들진 않았던데다 민간 조리원 이모님이 있어서 사실상 3명이서 일하는 개꿀 부대였음
그런데 해군 특성상 밥에 돈을 엄청 쏟아주는데다 부대가 예산이 남으면 소진하는걸 거의 부식에 써서 (조리장이 군번이 두개인 짬킹이였어서 가능했던 일.) 조리병이 원한다면 눈에만 안띄게 메뉴를 은근슬쩍 바꿔줄수도 있었음
예를 들면 카레밥이 메뉴라 깡통카레가 들어왔다면 거기에 양파를 볶고 감자 당근을 데쳐 으깨서 일식카레로 바꿔버리는 정도?
그렇게 짬밥 퀄리티가 다른 모든 해군 육상부대뿐 아니라 일부 해상식당이나 소규모 함선이랑 비빌정도로 수준이 높아서 조리병에대한 시선은 상당히 좋은 부대였다고 생각함.
그리고 그런 부대였다보니 부식으로 보급하는 라면은 안먹고 버리거나 일부 식성 특이한 부대원한테만 주고 px에서 싸제 라면 사와서 먹었단 말임.
어차피 컵라면 쌀국수 같은거라 나한테도 요리에 쓸 가치가 없어서 폐기하건 말건 그냥 냅뒀는데
어느날 부식 라면으로 굵은 면을 가진 컵라면이 두세개 들어옴
부식비가 남아서 특별히 더 청구했다고 했음
근데 우리 부대는 전자레인지용 라면용기를 구비해둬서 굵은 면 가진 컵라면이 다른 부대라면 귀하고 일용할 양식이겠지만 그냥 px에서 봉지라면 사와서 끓여먹으면 되는데 하고 대부분 그냥 관물함에 짱박았단 말임
그러다가 마침 그 주에 우리 부대에 짜장밥 메뉴가 편성되었는데 우리 부대 짜장밥은 뭔 짓거리를 해도 맛이 없어서 조리병들이 다 포기한 메뉴였음
예전 조리병들은 그냥 깡통 짜장 그대로 끓여서 내줘서 쇠맛나고 맛대가리도 없는거 양파랑 냉동에 가끔 남아서 굴러다니는 목살같은거라도 썰어넣어서 볶아내주는걸로 바꿨었는데 그래도 맛이 그지같을정도로 맛없는 짜장이었음
거기서 내가 조리장이랑 이모님한테 건의한게
"우리 컵라면 남는거 부대원들한테 불출해서 짜장면 끓여줄까요?"
라고 건의함
물론 짜장밥이 메뉴이니 대외적으로는 짜장밥으로 준비하고, 간부들 대부분 퇴근하고 난 뒤인 석식으로 제공하기로했음. 천만 다행으로 짜장밥을 대체할 수 있었던데다 간부들도 대부분 짜장밥을 싫어해서 가능했던 일이었음
이거 큰결심인게 매 달 한번씩 사령부에서 위생 감사 도는데 거기에 쓸 보존식으로 갑자기 중식이 아닌 석식에 짜장밥이 나와서 메뉴랑 다른 식단이 나오면 부대 뒤집어지는거라 입막음도 잘 해야했고 간부들한테 걸리면 귀찮고 여튼 그랬음
점심에 제육볶음을 대신 내서 간부들 입막음을 시키고 대망에 암암리에 모아온 컵라면을 모조리 모아서 솥에다가 펄펄끓인 물을 국솥에다가 쏱아부은 다음, 면 익힌 물을 버릴 대야도 퇴식구 옆에다 준비해두고 당시 조리병 왕고였던 나와 이모님이 함께 조리시작 1시간 전부터 야채 볶고 고기 볶고 푹 끓여서 잡내 싹 잡은 여태껏 한 적 없던 최고 퀄리티의 짜장을 준비해 배식을 시작함
당연히 반응도 좋았고 다음에도 또 해달라고 난리피웠을 정도로 다들 맛있게 잘 먹은건 좋았는데
어떤 씹새끼가 퇴식구에 라면그릇 그대로 쳐박고 가고 남은 컵라면 스프들 정수기나 식탁 위에 그대로 올려놓고 간거 보고는 개빡쳐서 그대로 조리장한테 보고때려서 다음부턴 절대로 식단 변경 안했었음
씹새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