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이후에 유명세를 토대로
인플루언서로 전향하는 케이스는
AV 배우들에게 흔하지 않은 케이스.
다수의 여배우들은
취업, 결혼, 육아 등을 위해서
AV 배우라는 과거를 지우고 산다.
그러나 AV 배우를 은퇴해도
그녀들의 인생은 계속된다.
와세다 대학 재학 중에 AV에 데뷔하고
은퇴 후에 작가로 변신한 와타나베 마오씨에게
이야기를 들어본다.
지인에게 소개받은 회사에서
지금은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어요.
재택근무라서 꽤 자유롭게 살고 있어요.
구직을 하면 회사에서 신원조회를 하잖아요?
제 이름을 검색하면
'와타나베 마오'라는 이름부터 등장하니깐
대기업으로 취업은 어렵다고 생각하던 차에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아 운이 좋았어요.
현역 여대생이라는 타이틀로
데뷔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역 와세다 대학 재학생으로
미디어에 소개가 되었습니다.
AV를 데뷔하고 제 신분이 노출될 것이라는 건
이전부터 각오하고 있던 일이었어요.
AV 업계에는
퍼브(パブ, Publicity의 일본식 약자)라는
관례가 있습니다.
배우의 신상보호를 위한 규제로 노출할 미디어를
배우와 소속사간의 합의해서 제한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주간지와의 인터뷰는 안한다고 해도
인터넷의 발달로 퍼브는 무의미한 것이 되었고
업계의 사람들도 어차피 들키게 된다고 말했어요.
'어쨋든 AV 배우를 한다면 어디 한번 해보자'
라는 생각이었죠.
그렇지만 와세다 대학 재학생이라는 타이틀이
너무 화제가 되어 조롱성의 글을 많이 보았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조롱꾼들만 더 좋아할거야.'
라는 생각덕분에 견뎌낸 것 같아요.
AV 배우의 경우 데뷔작의 매출이 중요해요.
데뷔작 매출이 좋으면 전속 계약이 연장되니깐요.
저는 신상이 노출되는 덕분에 잘 팔렸어요.
소속사의 사장님도 제 매니저도 엄청 좋아하던 차에
제가 데뷔작이 잘 팔린 건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
신상이 노출되어서라고 말할 수는 없잖아요.
내가 가진 무기는 다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AV 배우에게 신상노출은 굉장한 리스크입니다.
정신적 스트레스에 노출된 마오였지만
누구에게도 상담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AV 배우 와타나베 마오'는 일회용 상품.
상업적으로 소속사는 우울함을 호소하는 배우보다는
잘 팔고 기세 넘치는 배우와 당연히 일하고 싶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혼자 밝은 척하고 있었어요.
혼자서 모든 아픔을 감내해야했고
사실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싶었어요.
와세다 대학 재학 AV 배우의 일상은 어떠했을까?
AV 배우의 프로필로는 19세였지만
데뷔 당시에 이미 대학교 3학년생이었어요.
촬영날에는 오전 8시에 매니저가 집으로 픽업을 와서
스튜디오에 도착하면 원격수업에 출석만 체크했어요.
코로나 시기였어서 모든 수업이 원격수업이었고
귀가해서는 아카이빙된 수업 영상으로 공부를 하고요.
이런 방식으로 3학년의 제 학점을 다 채웠어요.
4학년때는 졸업논문 준비를 위해서 종종 학교에 갔고
오전에 촬영을 하고서 오후에 학교에 가기도 했고요.
고맙게도 대학동기들은 제가 먼저 말하기 전까지
저에게 AV에 관한 이야기는 절대 꺼내지 않아줬어요.
인터넷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동기들은
저를 'AV 배우 와타나베 마오'가 아닌
'대학생 미우라 리리'로 존중해준 것 같요.
덕분에 대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고
좋은 인간관계를 가져서 복 받았다고 생각해요.
신상 노출을 감수하면서까지 AV 배우가 되고자 했던
와타나베 마오씨의 동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원래 섹X 자체를 싫어하지도 않았고
되려 호기심이 있었어요.
AV 배우가 되겠다고 한 건
제 인생에 전환점이 필요했고
그 전환을 위한 기폭 스위치가 바로 데뷔였달까요.
만약에 AV 배우가 아닌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면
지금의 와타나베 마오가 없었겠지만 당시에는
저에게 도착한 선물같았고 유일한 정답같았어요.
지금에 와서야 되돌아보면
그 때 혼자 결정하지 말고 사람들과 대화도 나눠보고
이래 저래 많은 정보를 더 찾아보거나 했겠지만
어려서 어떻게 제 인생을 바꿔볼지 방법을 몰랐어요.
AV 배우 데뷔 사실을 부모님께 들킨 건
바로 잡지 때문이었어요.
주간지 표지에 실려있던 제 얼굴이
친척 이모에게 발견되었거든요.
잡지가 발매되고 1주일 지나서
어머니에게 LINE이 왔어요.
"너 나하고 이야기 좀 하자."
당연히 저도 AV 배우 데뷔는
부모님께 들킬 거라고 생각했어요.
AV 배우 일을 계속하면서
부모님의 연락을 전부 거절하다보면
부모님의 임종도 못 보게 된다고도 생각했어요.
부모와 자식간의 연을 위해서 대면을 했죠.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에게 혼난 적은 거의 없어요.
온라인 구몬 학습지(원문은 進研ゼミ) 안한 정도?
알아서 스스로 공부하고
손이 많이 안 가는 아이였다고 생각하지만
그 대면 이후로는 고향에 돌아가지 않았고
아버지와 대화는 없고 어머니는 생일만 챙기네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딸이라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친오빠와 비교를 많이 당하면서 자랐어요.
오빠가 1지망으로 원했던 고등학교에
제가 단번에 합격했지만
부모님은 친척을 제외하고서는
그 어디에도 자랑하지 않았어요.
당시에는 오빠가 대입 재수중이어서
모든 관심은 오빠에게 있었구요.
시골이 늘 그렇듯 집안 체면을 위해서
장남이 잘나가야 한다는 분위기였죠.
또, 오빠에게는 재수를 허락했지만
저에게는 절대 안된다고도 했고요.
도쿄에 가고 싶으면 와세다-게이오 아래급으로는
절대 안된다고 계속 말해서 부당하다 생각했죠.
좋은 부모님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어
한 때는 자책하면서 편지를 작성해보기도 했지만
지금은 더 이상 부모님을 설득해보려 하지는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