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유비에게
(주 27) [산양공재기]山陽公載記 – 유비가 돌아와 좌우에게 말했다,
“손거기(孫車騎-거기장군 손권)는 상체가 길고 하체가 짧으니 그의 아랫사람이 되기는 어렵다. 나는 다시 그를 만나지 않을 것이다”
-선주전-
이렇게 무시당했던 애송이 손권이
『아들을 낳으려면 응당 손중모(손권) 같아야지 유경승(유표)의 아들들은 개돼지와 같구나!』
-오주전-
조조에게 인정받고
손권이 말했다.
『이는 빌렸으면서 돌려주지 않는 것이며, 공허한 말로 시간을 끌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주전-
유비에게 분노하고
당초 선주는 손권이 관우를 습격한 일에 분노하여 장차 동쪽을 정벌하려 했었다.
-선주전-
"근자에 현덕(玄德 ; 유비)의 글을 얻어 읽었는데, 대단히 깊이 있고 자신의 잘못을 탓하며, 예전의 좋았던 사이로 되돌리기를 바란다. 전에 서쪽에서 촉(蜀)이라고 하던 것은 한(漢)나라 황제가 아직 있었기 때문이고, 지금 한나라가 이미 폐하였으니 스스로 한중왕(漢中王)이라 할 만하구나."
-오주전-
유비의 오른팔인 관우를 죽이고 유비에게 반성문을 받아내고
가을 8월, 손권이 환구(皖口)에 도착하여 장군 육손을 파견하여 장수들을 이끌고 석정에서 조휴를 크게 격파시켰다. 대사마(大司馬) 여범(呂範)이 죽었다.
7일, 손권은 남쪽 교외에서 황제의 지위에 즉위하였으며, 이날 대사면을 실시하고 연호를 바꿨다.
6월, 촉은 위위(衛尉) 진진(陳震)을 파견하여 손권이 제위에 오른 것을 축하했다. 손권은 곧 촉과 협의하여 천하를 나누어서 예주(豫), 청주(青), 서주(徐), 유주(幽)는 오에 속하게 하고, 연주(兗), 기주(冀), 병주(并), 양주(涼)는 촉에 귀속시켰다. 사주(司州) 땅은 함곡관(函谷關)을 경계로 삼았다. 맹약의 말을 정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주전-
끝내는 한실부흥이 목표인 촉과 동맹해서 천하를 양분하자는 협약으로 명분도 인정받음
클리셰상 끼어들 틈이 없지만 결국 운명의 수레바퀴를 바꾼게 손권의 매력같음
이릉은 낭만이라는 의견이 많음
유비 저거 무시하는 말은 아닐거야 오히려 본인이 도약할때 쯔음에야 무시했지 초반은 무시못할 인물로 여겼을거야
말년을 그렇게 조져먹지만 않았어도 합비도 못뚫은 놈 타이틀 까진 커버칠수 있었는데
정쟁으로 끝나서 관도, 이릉보다 덜함
아니 저렇게 쩌는 인간이 말년에 왜 저렇게 된 거지 머리 비상한 사람이 치매걸린단 어르신 말이 진짜인가
그래도 나라 망할 급은 아님
말년치면 유비도아웃인데
사실 이런글 올려봐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궁색하게 그래서 말년은 운운하는데 삼국지에 나오는 말년 추한 군주 중에서 유비를 논하지 않으면서 손권을 논하는 자들은 논할 가치도 없는 인간들이라 생각함
군주 감정으로 대패해서 꺾인 것도 창작물에서 추해질 수 있음
말년에 추한 것은 유비든 손권든 둘다 까는 것이 아님?
이릉은 낭만이라는 의견이 많음
유비 저거 무시하는 말은 아닐거야 오히려 본인이 도약할때 쯔음에야 무시했지 초반은 무시못할 인물로 여겼을거야
익주 얻고 급발진해서 외모는 아니어도 경험의 부족으로 무시했을 가능성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