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니와 석이 다른 단위였어?
1가마니 80에 두배면 160인데 1석은 또 144로군
아니... 뭐 전근대식 도량형이 다 그렇겠지 대충대충 반 섬을 한 가마니라 할수도... 있는거 아닌가?
그러나 우리 도량형은10홉=1되, 10되=1말,10말=1섬으로 전근대적이긴 했어도 칼같은 10진식 체계를 갖추고 있었음
그럼 이 중간에 슬쩍 끼어든 가마니는 도대체 어디서 온 도량형일까?
정답은 일본식 쌀 1섬인 [俵]. 이도 실제로는 조선에서만 도입되어 쓰인 80이 아니라 실제로는 60kg가량이었다.
10되가 1두, 4두가 1표로 이어지는 상당히 임페리얼리스틱한 구조를 보여준다
아니 그럼 왜 60kg으로 그대로 들어온것도 아니고
1섬의 절반인 72kg으로 딱떨어지게 로컬라이징 된것도 아니고
하필 80kg=1가마니이지?
이는 규격화된 가마니 짜는 기계로 나올 수 있는 최대 사이즈에 최대한 쌀을 꽉꽉 담아낸 무게가 바로 80kg이기 때문
왜 굳이 그렇게까지?
앗.... 아아....
도량형 그지같이 만드는건 섬나라 종특이여?
수탈 최적화 도량형인가
도량형 그지같이 만드는건 섬나라 종특이여?
수탈 최적화 도량형인가
근데 가마니가 섬보다 장점이 커서 금방 보급되었고 단위도 같이 따라간 거지. https://www.nongmin.com/article/20240522500660 쌀 무역량이 늘어나면서 조선에서도 가마니를 1907년부터 제조했다. 가마니는 섬보다 부피는 작지만 한사람이 운반하기에 비교적 적당한 80㎏을 담을 수 있다. 또한 두께가 두껍고 사이가 촘촘해 곡물이 흘러나오지 않는 장점이 있어 단위로 굳어지게 됐다. 현대에 들어서도 쌀에 관한 통계나 기록을 여전히 80㎏ 단위로 나타내는 것은 일제강점기 시절 형성된 관성과 무관하지 않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0159 가마니가 들어오기 전 우리나라에서는 섬을 썼으나, 섬은 날 사이가 성기어서 낱알이 작거나 도정(搗精)된 곡물은 담지 못하고 오직 벼 · 보리 · 콩 등만 담았다. 가마니에 비해 담을 수 있는 양은 많으나, 그만큼 무거워서 한 사람이 들어 옮기기도 어려웠다. 그에 비하여 가마니는 한 사람이 나르기에 적당하고 높이 쌓기에 편리하며 날과 날 사이가 잘 다져져서 어떤 곡물도 담을 수 있다. 그뿐 아니라 빈 가마니는 차곡차곡 재어놓기도 좋으며, 더욱이 반으로 접을 수 있어 보관에도 편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