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도시우스 1세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선언한 이후로 로마의 황제는 기독교 세계의 수호자라는 새로운 직함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이는 달리 말하자면 기독교 세계의 지도자인 주교들과의 충돌이 생길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기독교 주교들에게는 파문이라는 강력한 권한이 있었으며 파문을 당했다는 사실 자체가 기독교 공동체에서 쫓겨나 기독교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한이 모두 금지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기독교 세계의 수호자인 황제에게 이는 자신의 정통성을 부정당하는 치명적인 조치였기에 파문을 사면받기 위해 황제는 주교가 명하는 행위를 고분고분히 따라야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로마의 황제들이 가만히 앉아 주교들의 파문에 잠자코 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세속적 권력의 정점인 황제 역시 자신의 의중에 반항하는 주교들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었다.
1. 주교 서임권
총대주교에게 파문당한 황제가 총대주교에게 반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은 바로 자신을 파문한 총대주교를 해임하는 것이다. 총대주교가 교권의 정점이라한들 세속에서는 황제의 밑이었기에 황제는 자신에게 반항하는 총대주교를 해임하고 자신에게 순종적인 주교를 골라 총대주교로 임명하여 자신의 파문을 사면받을 수도 있었다.
더욱이 황제, 즉 바실렙스가 아닌 제국의 권력자인 카이사르라 하더라도 경우가 된다면 충분히 총대주교를 해임하고 새로이 임명할 수 있었다.
2. 재산 몰수
교회와 수도원이 보유하고 있는 재산을 몰수해 버리는 것도 황제가 교회를 견제하는 또다른 방법이었다. 특히 거대한 성당이나 수도원의 경우 신도들의 헌금 등으로 인해 많은 재화를 보유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들은 로마 정부가 아닌 교구의 주교들에게 세금을 내는 경우가 많았기에 이를 몰수하는 것 역시 황제가 교회를 견제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였다.
3. 교구 재조정
총대주교를 임명/해임하고 재산을 몰수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계속해서 반항하면 황제는 자신에게 반항하는 주교의 교구를 축소시켜 충성하는 주교의 교구에 할당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아무리 로마 교황이나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라 한들 황제가 교구를 빼앗아버리면 거기에 대항할 수단이 없었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총대주교 임명/해임보다도 더 극단적인 방법이자 교회의 격렬한 반대를 불러일으키는 방법이었기에 몇 번의 사례 외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가지고 성상파괴시기에 로마 교황이 '성상파괴주의는 이단인데스' 하니까 레온 3세가 개빡쳐서 교황 죽이려고 하다가 실패했던 것이고 ㅇㅇ
751년에 라벤나 총독부를 점령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의 주교는 결국 황제의 신하였지.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로마 교황은 황제 - 라벤나 총독 - 교황순으로 지배를 받는 것이었고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황제의 직속으로 지배를 받는 것이었고 그래서 마음에 안드는 교황을 갈아치울 때는 라벤나 총독을 통해서 잡아가는 방법을 썼고 콘스탄티노플은 그냥 해임-임명을 시키는 방법을 썼음
일단 교황이나 총대주교가 쏘는 파문빔은 황제건 일반인이건 평등하게 한방인데다가 서한 같은 것으로 황제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것도 황제의 정치적 위신에 손상을 입히기에도 충분했음
본래 교황의 관할이었던 시칠리아와 남부 이탈리아 등을 콘스탄티노플에게 뺏겨가지고 ㅇㅅㅇ
헐 이렇게 또 배워 가네영
사실 3번은 나도 이번에 연재글 쓰다가 알게된 것이라서 ㅇㅅㅇ
그런데 라벤나 총독부가 없어지기 전에 교회가 황제한테 덤비는게 물리적으로 가능한 거였음? 그 때까진 황제가 주도하는 공의회의 절대 권력 앞에 교회는 그냥 황제의 도구 같은 느낌인 줄 알았는데
일단 교황이나 총대주교가 쏘는 파문빔은 황제건 일반인이건 평등하게 한방인데다가 서한 같은 것으로 황제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것도 황제의 정치적 위신에 손상을 입히기에도 충분했음
그래가지고 성상파괴시기에 로마 교황이 '성상파괴주의는 이단인데스' 하니까 레온 3세가 개빡쳐서 교황 죽이려고 하다가 실패했던 것이고 ㅇㅇ
아 하긴 테오도시우스가 국교로 공인한 이상에는 결국 불협화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치적 부담이 있을테니. 황제 본인이야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가 제일이라고 생각해도 교회 내의 로마 수위권은 어쩔 수 없었을테고.
751년에 라벤나 총독부를 점령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의 주교는 결국 황제의 신하였지.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로마 교황은 황제 - 라벤나 총독 - 교황순으로 지배를 받는 것이었고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황제의 직속으로 지배를 받는 것이었고 그래서 마음에 안드는 교황을 갈아치울 때는 라벤나 총독을 통해서 잡아가는 방법을 썼고 콘스탄티노플은 그냥 해임-임명을 시키는 방법을 썼음
사실 기독교 내에서의 형식적 수위권은 로마인게 베드로가 순교한 땅인데다가 교황이 있던 동네라 동로마 제국 주교들도 이 사실을 인정은 했음.
교황이 11세기가 도래할 때까지 이탈리아 남부의 비잔틴 세력을 고깝게 보고 치워버리고 싶어했던 이유 중 하나가 되지 않음? 뭐 나중에는 중세버젼 나폴레옹한테 둬 터지지만
본래 교황의 관할이었던 시칠리아와 남부 이탈리아 등을 콘스탄티노플에게 뺏겨가지고 ㅇㅅ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