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령 백작 이성계
이성계가 단순히 뛰어난 무장 수준이 아니고
한반도 북부 일대의 세력가였다는 건 알려져 있지만
공식적으로 고려의 '백작'이기도 했음.
게다가 백작령은 현재의 함경남도 남부지역인 화령
이름 : (고려의 북방 변경인) 화령 백작
실제 : 북방 일대에서 자체적인 군권을 행사하며 변경을 방위하는 역할
즉 이름과 실제가 모두 변경백 그 자체였던 인물.
관련해서 로판발 북부대공 설도 있는데 역할상 그렇긴 하지만
이성계 실제 작위는 어디까지나 백작이니까 변경백이 맞음.
이성계가 북부에서 행사한 영향력이 워낙 컸기 때문에
고려가 조선으로 바뀐 과정을 단순히 반란이나 혁명을 넘어서 이성계의 화령국(...)이 고려를 합병한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음
이성계가 왕에 오른 후
새 국명 후보에 화령을 넣기도 했으니까
화령국 운운이 아예 근본 없는 얘기도 아니고.
이런 이성계의 역할은 한국사 교과서의 지도만 봐도 알 수 있음.
고려말까지의 지배 영역이 함경남도 일대에 머물러 있다가
조선 개국과 함께 (별다른 정복전쟁도 없이) 함경북도 일대까지 확장돼 있는데
화령 백작 이성계의 영지가 고려 영토에 더해진 결과
라고 해석하면 간단함.
가별초를 이끌고 홍건적과 왜놈들 머리통을 날려버린 무시무시한 양반이니...
팩트 : 변경'백' 이라고 백작이 아니다.... 번역이 그따위인거지 변경백은 그냥 공후백자남하고 무관한 별개 작위다.... 영어로 Margrave 라고 한다
??? : 주인나리가 나랏님이 되셨다구요? 아유 저희가 그냥 따릅죠 ( 자연스레 합병)
그래서 태종때 바로 오등작 폐지되지.
여진문화(이민족 문화)가 크게 융합안된걸 제외하면 베트남 응우옌 왕조가 조선의 후대판 느낌이내
애초에 고려시대의 봉작 역시 실효가 있는 책봉은 아니고 그냥 명예직이었음. 진짜로 진주를 영지로 받아버린 최씨정권 수장들을 제외하면.
호옿 흥미롭
[미안하지만 댓글 하나만 적을게] 렉카야 왜 내 글 복사하냐?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66254185
여진문화(이민족 문화)가 크게 융합안된걸 제외하면 베트남 응우옌 왕조가 조선의 후대판 느낌이내
국명후보는 구색용이라고 알았는대
구색용이 맞음.
구색은 맞는데 구색도 어느정도 당위성이 있어야 제시할 수 있다는거지.
그냥 고향이라고 넣었다고 알았어서
가별초를 이끌고 홍건적과 왜놈들 머리통을 날려버린 무시무시한 양반이니...
오랑캐놈의 시끼들
땅끄 몰고가실러나
내 지금 기병을 몰고가서! 니놈들 머리통을 다 날려버리겠어!
생각해보니 오등작이 조선 들어서 유명무실해진게 신기하긴 하네
야자와 니코니코
그래서 태종때 바로 오등작 폐지되지.
덕분에 중앙집권화 국가 된 거기도 하지만
이름이 바뀐거임. ~군, ~부원군이 국공/후/백 등의 봉작제를 바꿔서 만든 것.
야자와 니코니코
애초에 고려시대의 봉작 역시 실효가 있는 책봉은 아니고 그냥 명예직이었음. 진짜로 진주를 영지로 받아버린 최씨정권 수장들을 제외하면.
조선은 귀족이나 호족같은 특별계급을 혐오하던 사람들이 주축이 되서 만들어진 국가니까... 다만 양반이 호족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고여갔다는게 문제지만
친족에게 수여한 왕위(~군)를 봉작제랑 같다고 보기는 어려움.
군은 왕족에게만 주는게 아니라 큰 공을 세운 이들에게도 주는거임. 류성룡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부원군을 받았음. 그 점도 고려의 봉작제와 같아. 고려의 봉작제가 대대로 이어가는 귀족계급이 아님. 그냥 당대에 받는 명예직이야.
왕족들에게 봉작을 뿌린 것도 같고. 군/부원군 자체가 공후백 등을 고쳐서 만든거라서 쓰임이 같아. 제후국 체제에 맞게 한다고 바꾼거임.
모를적: 올려치기 쩌네 알고나선: 왜 진짠데요?
왠지 백년전쟁 이전의 영국이 떠오르네. 브루고뉴 백작이 영국으로 영지를 늘린.
??? : 주인나리가 나랏님이 되셨다구요? 아유 저희가 그냥 따릅죠 ( 자연스레 합병)
팩트 : 변경'백' 이라고 백작이 아니다.... 번역이 그따위인거지 변경백은 그냥 공후백자남하고 무관한 별개 작위다.... 영어로 Margrave 라고 한다
단순 별개작위는 아니고 실제로 공후백 사이 어딘가 취급임...
그냥 별개 였으면 바덴 변경백국이 왜 나중가선 바덴 대공국되냐...
애초에 공후백자남으로 번역하는 것부터 무리수임 정확하게 유럽 중세에는 그런 작위간의 상하관계 같은 거 없고, 직책보다는 직급에 가까운 호칭임 공작이라고 백작보다 상위 계급이나 작위가 아님 그러다보니까 유럽사 이야기 듣다보면 윌리엄 공작이 백작한테 맞아죽을 뻔한 이야기 같은거 들으면 이해를 못하는 사람이 많지... "백작이 공작을 쳐죽이려고 했다고??? 하극상이잖아???" 이러면서...
하극상 맞고 봉건계약에 따라서 이뤄지는거다보니 중세 유럽에 넘치는게 하극상임...
공작, 후작, 백작하고 별개니까 변경백국이 대공국이 되겠지?
아니얔ㅋㅋ 전형적인 한국식 판타지 작위 개념을 가지고 있구나.
당장 바이에른 공작 가문을 12세기부터 세습한 비텔스바흐 가문은 바이에른 공작 세습하기 이전에 '샤이에른 백작' 칭호를 썼고 이걸 안쓰기 시작한건 바이에른 공작위 받은 시기부터임. 상위 작위를 받았기에 하위작위를 더는 쓸 이유가 없어서임
? 크킹 한국겜설
뭔 소리냐 진짜...상위작위를 쓸 기회가 되니 굳이 하위작위로 자기 위신을 낮출 이유가 없는거잖아
가령 A라는 왕을 모시고 있는 B라는 백작과 C라는 남작이 있어 우리가 생각할 때는 A > B > C 계급구조 같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A(왕) > B(백작) = C(남작)임 백작이니 남작이니 하는 것은 그냥 직급인 거지 상하계급이 아님.
독일어로는요?
크킹도 완벽한 중세고증을 한게 아니라 최대한 간략하게 요약하다 보니 생긴 거야 실제 중세고증하려면 문장학 부터 부활시켜서 유저들이 알아야 하니까. 작위개념은 엄청 복잡해.
? 절대 아님;; 영지의 크기, 군사력, 결혼동맹등으로 바뀔 수 있지만 그 경우엔 어지간해선 B의 위신은 대개 C보다 높아지고 결혼동맹의 범위도 높아짐
상하관계가 아니라고. 상하관계가. 백작이라고 남작보다 상급자가 아니야. 백작에게 충성하는 남작이면 백작이 상급자겠지. 종사제도에 따라서 스스로 밑으로 들어갔으니까. 근데 같은 왕을 모시고 있다 쳤을 때 둘은 삼성 과장과 일쥐 대리 급으로 그냥 별개 남남이란 것임
당장 남프랑스를 예시로 들어도 아퀴텐 공국이 실질적으로 자신의 영지로 확실히 한건 푸아티에 지대인데 왜 푸아티에 백작을 자기 상징으로 안씀?
이러니까 영국 드라마에서 백작 부인과 남작 부인이 맞먹고 기싸움하니까 한국인들이 이해를 못하는 구나....
삼성전자 과장과 타부서 대리 수준의 관계일 수는 있음. 근데 그게 사회적 상하가 아예 성립되지 않는 관계가 아니란거임. 참모총장 전속부관 소령이 타군단장과 남남임?
뭔 소리냐 진짜...작위의 종사제도상 별개가 될 수 있어서도 직급상 상하는 있다니깐?
백작(카운트)의 유래는 독립적인 지역 지배자에서 왕에게 들어간 신분이고 남작(바론)의 유래는 왕에게 임명되어서 특정 지역의 통치를 위임 받은 신분이라 위신상으로 백작이 더 있는 것은 맞음. 왕 입장에서 파트너와 직원 정도의 차이니까 근데 왕의 파트너라고 직원의 상급자가 아니라고.
니가 말한 정복왕 윌리엄과 백작간 싸움 어쩌고가 노르망디 내전기 시절인지, 앙주 백작이나 플랑드르 백작과의 다툼기인지는 내가 애매하니 넘기는데, Count랑 Duke,Prince는 사회적 상하관계가 적용되는 직책임 엄밀히 따져서
니가 말한건 공작 얘기고 Count,Graf는 중앙정부에게서 임명받아서 해당지역 통제를 맡은 행정관에서 분화된 직책임. 공작이라도 자신의 통제권 바깥의 백작,남작은 남남 맞음. 근데 그게 사회적 상하관계가 없는 직책이 아니라니깐?
애초에 백작이라고 남작한테 이래라 저래라 할 수도 없고, 실제 13세기 이후 가면 남작들이 상거래에 요충지들 먹고 백작보다 힘이 세지는 경우가 수두룩해. 물론 이때쯤되면 흑사병 돌고 봉건제가 거의 붕괴되는 시기라 구시대적 관념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관료제에 편입되면서 그냥 왕이 주는 직급 정도로 바뀌어서 '기왕이면 있어보이는' 것을 선호하긴 하는데, 백작이 남작의 상급자는 아니야 마찬가지로 공작이 후작의 상급자도 아니고. 근데 이렇게 설명해도 그냥 양판소 세계에서 살고 싶으면 그렇게 살아.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지
너는 지금 중세 끝물 이후 생긴 고정관념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거야
13세기 이후에? 강도남작 전성기도 아니고 그시절 남작이 자신보다 더 위의 위신가지고 결혼동맹도 더 탄탄한 백작한테 어떻게 힘이 쎄지냐? 아니 사회적으로 더 위의 직급이란거 맞냐 아니냐?
Graf가 애초에 독일어로 서기고 Count가 라틴어로 군사행정관에서 나온 말인데 뭔 고정관념이냐? 당장 벨프 가문 시조부터 바이에른에 카롤링거 가문이 파견한 중앙 행정관 '백작'인건 암? 그게 중세 끝물임?
공후백작남 시스템 자체가 동양에서나 탄탄한거지 서양은 지맘대로 세계인데 판소로 배운 애들은 타이틀에 엄청 집착함ㅋㅋ
After the Norman Conquest in 1066, the Norman dynasty introduced an adaptation of the French feudal system to the Kingdom of England. Initially, the term "baron" on its own was not a title or rank, but the "barons of the King" were the men of the king. Previously, in the Anglo-Saxon kingdom of England, the king's companions held the title of earl and in Scotland, the title of thane. All who held their feudal barony "in-chief of the king", that is with the king as his immediate overlord, became alike barones regis ("barons of the king"), bound to perform a stipulated annual military service and obliged to attend his council. The greatest of the nobles, especially those in the Marches, such as the Earls of Chester and the Bishops of Durham, whose territories were often deemed palatine, that is to say "worthy of a prince", might refer to their own tenants as "barons", where lesser magnates spoke simply of their "men" (homines) and lords of the manor might reference "bondmen"
Initially those who held land directly from the king by military service, from earls downwards, all bore alike the title of baron, which was thus the factor uniting all members of the ancient baronage as peers one of another. Under King Henry II, the Dialogus de Scaccario already distinguished between greater barons, who held per baroniam by knight's service, and lesser barons, who held manors. Thus in this historical sense, Lords of Manors are barons, or freemen; however they are not entitled to be styled as such. John Selden writes in Titles of Honour, "The word Baro (Latin for Baron) hath been also so much communicated, that not only all Lords of Mannors have been from ancient time, and are at this day called sometimes Barons (as in the stile of their Court Barons, which is Curia Baronis, &c. And I have read hors de son Barony in a barr to an Avowry for hors de son fee) But also the Judges of the Exchequer have it from antient time fixed on them."
설마 노르망디 점령기 일부 남작이나 백작의 위세가 더 강해졌다고 그렇게 판단하는거임? 11~13세기 잉글랜드는 완전 유럽의 변경인데;;
그런데 그 변경백이라는 단어를 유럽에 적용한게 틀린거지 저 이성계는 변경에서 백작작위 가지고 사병 쓰면서 땅 지켰으니 그냥 일상적으로 쓰는 변경백이라는 단어에 딱맞아떨어지는거 아님?
당연히 이 경우는 웨ㅅㅅ 왕조의 통일 잉글랜드가 데인족의 침략과 북해제국 성립등으로 중앙정부가 붕괴한데서 나오는거고 일부의 경우지 전체적 경우가 아님
Margrave는 Duke,Prince에 비해서 사회적으로 떨어지는 직급은 맞다니깐? 아예 별개가 아니라고
남작이란 작위는 백작하고 아예 별개 작위로 시작햇고, 11세기까지도 그냥 별개 개념으로 존재했어.
에휴... 그래그래 양판소에서 계속 살아라. 설명을 해도 이해를 못하니 걍 양판소 세계관을 현실 세계로 알고 살아
Baro란 직급은 프랑크 자유민 전사에서 비롯된건 맞지만, 사회적으로 별개 직급이 아님. 위신적으로 Count에 비해서 떨어지는 직급이었고, 당장 카롤링거 시기 왕가가 Count나 Duke에 혼인동맹을 한건 있어도 Baro에 혼인동맹을 했단 기록은 없음. 이시기에 이미 사회적 위신이 나뉘었단 얘기임
아니 별개라고 말하는게 아니라... 오등작이 원래 동아시아에서 쓰던 방식이니까 이성계가 백작 맞고 변경에서 사병쓰면서 땅지키던 사람이라고 설명한 글이라고 말했을 뿐인데...
아니 유럽 작위제도에서 Margeave는 Vicery같이 작위제도와의 별개 직급이 아니라니깐 뭔 양판소야 진짜
내말은 그게 아니라 변경백이 유럽작위와 별개인 작위란 말 반박하는거잖아
님한데 단 말이 아니에요...
ㅋㅋㅋㅋ 당장 이성계가 없었다면 나하추는 어떻게 막으려고
그리고 이런 변경백을 숙청하겠다고 명나라 보낸 왕은 진짜 미쳤던게 아닐까 숙청하겠다고 보낸게 아니였으면 더더욱 미친거였고
어라 그게 그렇게 되는...?
함경도가 척박하다지만 함경도땅의 거의 1/3정도가 이성계 변경백의 영지가 되었고 조선이 세워지면서 그게 그대로 왕의 사유재산이 되서 내탕금 기반이 되고 해서 장난 아니게 되었다고 듣긴 했지
함경도 전체를 보면 척박한데 함흥 땅은 비옥한 땅임. 평야가 널리 펼쳐져 있고.
그럼 이성계가 함경도 간 것도 왕위 물려주고 자기 영지 돌아간 걸로 해석해도 되네
아하!
재밌는 관점이군 그러면 태종대의 조사의의 난은 화령백국과의 조선왕국과의 전쟁으로 볼 수도 있겠다
지도로 보는 변경백(!) 영역 시기상 이자춘-이성계 부자가 일군 땅
이성계 본명이 변경백이었구나 좋은 정보 감사
그래서 화령변씨임
이성계의 집안 병력인 가별초 역시 의흥친군위로 정리된 뒤에도 태종 초기까지 국가의 군대라기보다 왕가의 개인 군대에 가까웠음. 이후 점차 국가의 공적인 군대로 전환되지만.
변경에서 이민족 부족까지 휘하에 부린 이성계 당신은 대체
1.왜적의 두려움 대상 2.백성들에게 인기가 많은 전쟁영웅 3.독자적으로 세력을 가지고 있고 그 지역의 세금을 군자금으로 활용 4.왕이 두려워함 이순신 장군 얘기임....
선조는 이순신을 믿으려 했으나 덕수 이씨에게서 자신의 조상과 같은 그림자를 보게 되고...
변경백은 어거지로 5등작에 붙여넣을 꺼면 후작이 맞지, 솔직히 후작이 뭘하는건지 모르잖아, 공작은 왕이랑 맞먹지만 국가가 작은거고, 백작은 힘있지만 왕이랑 비교하면 너무작고, 근데 변경백이나 제후로서의 후작은 영토는 크지 않아도 변경을 지키다 보니 군대가 넘사벽으로 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