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시대에 한림학사 '박유'라는 대신이 몽골의 예를 본받아서 우리도 처를 여럿 둘 필요가 있다고 조정 회의 때 건의를 했는데,
박유가 조정 회의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개경에 있는 아녀자들이 길거리에서 박유를 발견하자마자
"저 영감탱이가 아내를 여럿 두자고 주장한 놈이다!"라고 소리치면서 몰려들어 그에게 돌팔매질을 가할 정도였음.
당시 고려 사회에서 여성들 사이에서는 왕 말고 다른 사람들이 아내를 여럿 두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는 일이었거든.
그정도로 고려 시대에는 여성들의 여권이 상당히 쏐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인데, 물론 고려 말에 가서는 '향처'와 '경처'라고 해서
개경에 있는 부인을 따로 두는 편법이 성행하기 시작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음.
바로 조선을 건국한 그 이성계만 해도 고향이자 근거지인 동북면에 있는 쳣째 아내이자 향처인 신의왕후 한씨가 있었고
개경에 엤는 경처이자 둘째 아내인 신덕왕후 강씨가 따로 있었을 정도로 고려의 세도가에서는 마치 유행처럼 번졌었지.
첩이 아니라 처가 많으면...나중에 재산분배하기 골때린다고
장자상속없으면 크킹할때 아들 두놈이상 나오면 다 죽이고싶은데 첩까지둬?
축첩제랑 다처제는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제도임 어차피 첩 들일거면서 저 양반들이 뭐하러 다처제를 주장했는지는 노이해 ㅇㅇ
한반도에서 일처다부제는 한번도 없었을꺼야
??: 뭐가 다른 거죠? 역사학자: 처와 첩은 다릅니다. 유산 나눌 때는 더더욱.
그 영감님 이름값 잘하시네
크킹 해봤는데 첩보다 처가 많으면 정말 불쾌해..나중에 다 죽여야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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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파이
그 영감님 이름값 잘하시네
ㅋㅋㅋㅋㅋ
첩이 아니라 처가 많으면...나중에 재산분배하기 골때린다고
재산분배(세자자리)
미깡질렸어
크킹 해봤는데 첩보다 처가 많으면 정말 불쾌해..나중에 다 죽여야된다고
햄산주의
솔직히 첩의 자식들도 아예 승계권 없애고 해야됨 사생아 불쾌해서 가신들이 첩 들라고해도 무시하고 안들었음
재산분배만 그러는거면 몰라도 사회적으로 차별하고 벼슬길도 못 나가고 차별이 너무 심해서...
승계권 재산은 없되 평민보다는 높은 계급정도의 명예직 주면 될것같음
그게 중인 신분임 ㅇㅇ
그런이유 ㅋㅋㅋㅋㅋ
어릴 적에 한국 역사 중에 일부다처제가 아니라 다부일처제라고 해야 하나 여자는 한 명인데 남편이 여러명인 경우도 있었다던데 내가 제대로 본 게맞나 긴가민가함
그건 선사시대 이야기 아닌가?
내 기억으로는 고려시대라고 했던 거 같은데.... 이게 재현 극장 같은 걸로 본 거라.....
산딸기들딸기
한반도에서 일처다부제는 한번도 없었을꺼야
아씨 그럼 내가 봤던 건 뭐지..... 인생최초의 NTR 물이라 아직도 기억나는데
형사취수제랑 헷갈린거 아냐? 고국천왕이랑 산상왕이랑 왕후 우씨 얘기
한국 최초 ntr물이라 하면 떠오르는게 처용가 밖에 안떠올...
한국역사에는 없고 세계사적으로도 극히 드뭄. 티벳이나 아마존 오지 같은 곳의 소수민족들이 성비균형이 무너지면 궁여지책으로 하는 건데, 인류역사를 통털어 수렵채집, 중노동, 전쟁 때문에 언제나 남자들이 많이, 일찍 죽기 때문에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항상 남자가 부족하니 일처다부제가 생길 일이 없었음
장자상속없으면 크킹할때 아들 두놈이상 나오면 다 죽이고싶은데 첩까지둬?
아들 두 놈 다 죽으면 셋째가 아쉬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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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산주의
오피스 와이프랑 자식까지 본거지 머
??: 뭐가 다른 거죠? 역사학자: 처와 첩은 다릅니다. 유산 나눌 때는 더더욱.
현대 한국에 필요하지 않을까. 돈 많은 사람은 처첩 많이 두고 애 많이 낳으라고
굳이 할 거면 남녀공평하게 다부다처제로 해야해.
그걸 주장했다간 그 당은 역사책에나 남을거임
그거라면 지금도 하고 있는데 굳이 법제화 하고 싶진 않을 걸. 그러면 재산이 쪼개지잖아.
그러라고 하는거지
이성계의 경처인 신덕왕후 강씨는 당시 권세가 중 하나였다는 권문세족 중 하나라 정치적인 파트너에 가깝지 않았을까 싶긴한데
한씨도 동북면에서는 만만찮은 집안일걸?
예나 지금이나 결혼에는 그런 게 좀 있지.
정치적 파트너 겸 사랑하는 애처 둘 다임 이성계가 자신을 중앙에 자리잡고 크게 해준게 신덕왕후의 집안의 힘이 컷던지라 신덕왕후를 엄청나게 총애했고 그래서 신덕왕후 소생의 아들을 후계자로 하려고 했을 정도
축첩제랑 다처제는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제도임 어차피 첩 들일거면서 저 양반들이 뭐하러 다처제를 주장했는지는 노이해 ㅇㅇ
근데 실제로 아내가 여럿이면 가정불화 일어나기 쉬워. 재산이나 지위 차지 때문에 배다른 딴 아내 자식 죽이려고 피튀기는 싸움이 일어나지.
박♂️유↘️
어느 시대건 마누라는 무서웠구나
루리웹-283715315
현대 인권으로 따지면 좋은 말인데 당시 시대상에서 가능 할 것이냐는 뭐... 차별을 제하다 보면 결국 처첩자녀에게 동등하게 재산분할! 권력분할! 이런 결론이 날 수밖에 없는데 당연히 처쪽 가문이 월등한 상황에서 첩 가문의 자식이 재산을 제대로 물려받을 것이며, 혹 물려받더라도 그걸 간 수 할 수 있을 것이냐... 여러 문제가 많았지. 현대 사회에서도 배우자 가문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데 신분제 있는 사회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움
그래도 첩의 자식이라도 차별하지 말자는 좋은거같은데
해외 다처제도 딱히 좋아보이진 않더라고. 돈도 돈이거느니와 평등하게 대할수 있을까?
그런 이유로 하렘엔딩은 성립가능성은 둘째치고 이상적으로 운영하는 거 자체가 진짜 판타지지.
하렘구성원과 그자식들이 전부 권력에 욕심이 없어야만 가능한 구성 ㅋㅋㅋㅋ
누구누구의 몇번째 부인이란 타이틀에 만족할수 있는 여자는 거의 존재하지 않아. 그러니까 재난상황때 여자를 많이 살리는게 인구증가에 좋다는 개소리는 하지 말도록 하자. 여자들이 거부함
일부다처제 까면서 예시로 드는 이야기가 네 부인이 되니느 연얘인 누구누구의 100번째 부인이 되는걸 선호할걸? 이딴 개소리를 자주 하는데 현실은 그 연얘인 누구누구가 이혼했단 사례 겁나 많음. 유일한 와이프 타이틀도 마다하는데 100번째 부인 잘도 하고 싶어하겠다.
햄산주의
그 이슬람이라는 국가가 너무 특이 케이스인거임. 현실의 벽이 높아서 타협을 안할수가 없는거지.
현대 사회 시스템 내에서는 그런 타이틀에 만족하는 여자가 확실히 거의 없지 근데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데다 혹독한 바깥일과 전쟁으로 남자들이 무더기로 죽어나가는 전근대 농경사회로 가면 이야기는 좀 달라짐.
본문 안읽었음? 고려 시대에서조차 거부함.
왕건 시대 박유가 아니라 동명이인이구나;
근데 고려는 왕빼고는 첩도 들일수 없었잖아.
햄산주의
애시당초 첩이 인정안되니까 적자 빼곤 전부 인정안되지 않았나. 서자, 서녀 라는 개념자체가 없던걸로 기억하는데.
저땐 원나라가 여자들 끌고가던 때라 그런 이유로 말한 거 아닐까
첩으로 받아도 그 지경이였는데 처가 많아지면 집안 싸움 얼마나 살벌할지....
유교가 참 보면 한국한테 악영향을 많이 끼친듯
오쭉했으면 박유 후손 기록마저 지워짐
일반 백성들은 하나 있는 부인에 딸린 자식들 해서 부양하고 살기도 벅찼을 텐데, 그 시절 남자나 여자나 대부분 난쟁이 박색들인데 퍽이나 서로의 니즈가 맞았겠다.
Park you
루리웹-534789504
글쎄 돈있는 놈들은 상속문제 때문에라도 정실은 하나만 두고 세컨드부터는 여전히 지금처럼 갈거 같은데
이때 법제화 되서 서열정리가 됐으면 왕자의 난은 안 일어나지 않았을까?? 계승권이 애매한 상태에서 이성계가 맘대로 하려다 생긴 사건이니
처와 첩의 차이일까?? 고려시대가 몽골간섭기를 거치고 조선시대로 넘어가면서 문화가 바뀌는거군
사실 저 시기 여성의 지위를 생각해보면 박유의 주장은 패기가 넘치는 주장이었음. 저 때 남자들 중에 집안이 한미한데 과거의 급제하면 바로 세도가 집안에 데릴사위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이런 경우 사위가 그 집 제사를 지내줘야했음. 그러니까 사실상 출세하려면 권세가 집안 딸한테 남자들이 도리어 아양을 떨어야 되는 그런 시절인데 그 상황에서 일부다처제를 실시한다고 한들, 실제로 다처할 수 있는 남자들이 많지 않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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