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굴루스가 회의실에 들어서자, 하라쉬 오겐은 이미 그를 맞이할 준비를 마친 듯 화면을 켰다. 하라쉬는 자신이 이끄는 기술 혁신을 자랑할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레굴루스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곧바로 말을 꺼냈다.
“레굴루스, 직접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라쉬는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이룬 성과를 보십시오. 자율주행과 우주 진출 기술로 우리는 세상을 바꾸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합니다. 당신이 가진 진보된 인공지능 기술을 우리가 배울 수 있다면, 모든 것이 훨씬 더 고도화될 것입니다. 세상은 완전히 달라질 겁니다.”
레굴루스는 화면 속에서 자랑스럽게 나열된 성과들을 보며, 과거의 자신을 떠올렸다. 한때 인간이었을 때, 그도 하라쉬 오겐의 기술에 깊이 매료되었고, 자율주행과 우주 진출 기술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그것들이 인류의 미래를 구원할 혁신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기술이 초래할 도덕적, 사회적 문제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그저 기술의 성취에만 취해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
이제는 달랐다. 레굴루스는 기술들이 가져올 위험과 그 책임의 무게를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지구에 기술을 제공할 당시, 그는 악용될 가능성을 예상하고 여러 대비책을 마련했지만, 인간의 창의성은 그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제공된 기술은 변형되어 전혀 예상치 못한 위협으로 변했고, 결국 레굴루스는 그 기술이 오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직접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경험은 그에게 깊은 교훈을 남겼고, 지금 하라쉬 오겐 역시 같은 위험한 길을 걷고 있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하라쉬는 여전히 자신만만하게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혁신을 이끌고 있으며, 그 혁신이 인류를 더 나은 미래로 이끌 것입니다. 진보된 인공지능이 있다면, 그 발전은 훨씬 더 빠를 겁니다.”
레굴루스는 하라쉬가 기술의 성취에만 몰두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순간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들었다. 하라쉬는 도덕적, 사회적 문제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과거에도 그랬듯, 책임을 피할 가능성이 컸다. '혁신'이라는 단어에 가려진 무책임을.
레굴루스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대는 그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하라쉬는 당황한 듯 머뭇거렸다. "물론... 우리는 항상—"
레굴루스는 그의 말을 끊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대의 자율주행 기술이 실패해 어린아이가 목숨을 잃었을 때, 그대는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 로비를 벌였다. 그리고 우주 진출 기술이 우주 잔해 문제를 일으켜 국제적인 논란을 초래하지 않았는가. 그대는 그 책임을 지지 않았다.”
하라쉬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치부를 들킨 듯 당혹감과 부끄러움이 얼굴에 드러났고, 변명하려 했지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대는 과거 인류가 방사능의 위험을 처음 다루었을 때를 아는가?” 레굴루스는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가 말했다. “방사능의 파괴적 영향력을 알지 못한 채 무분별하게 실험하고, 그 대가로 수많은 생명들이 위험에 처했다. 제대로 된 규제가 도입된 것은 그 후 수십 년이 지나서였다.”
하라쉬는 말을 잇지 못하고 레굴루스를 바라보았다.
레굴루스는 속으로 자신이 지나치게 몰아붙였다고 느꼈다. 하라쉬가 지금 당장 심각한 실수를 저지른 것은 아니었지만, 인류가 반복해 저지르는 실수들에 지쳐 있었다. 하지만 그는 감정을 억누르며 차분하게 다시 입을 열었다.
"그대들이 짊어질 위협은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다." 레굴루스는 차분하면서도 강하게 말했다. "진보된 인공지능뿐만 아니라, 모든 진보된 기술은 그대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사회적, 도덕적 책임을 요구한다.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기술은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하라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레굴루스를 응시했다. 그는 입술을 약간 떨며 무언가 말을 하려 했지만, 그 말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레굴루스는 그의 침묵을 보고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레굴루스는 이 대화를 더 이어갈 필요가 없음을 느꼈다. 하라쉬는 여전히 기술적 성과에만 집착하고 있었다. 그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레굴루스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마음속에서 실망이 서서히 차오르고 있었지만, 그는 그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그대가 원하는 기술은 넘겨줄 수 없다. 하지만 그대가 기술의 책임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레굴루스는 마지막으로 하라쉬를 바라본 뒤, 조용히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의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하라쉬가 기술의 책임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날이 올지 알 수 없었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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