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 삼국 시조 모신 사당 세우라 하셔서 작업하고 있는데 당연히 옛 도읍에 세워야겠죠. 신라는 경주, 백제는 전주인데 고구려는 도읍지를 모르겠어여 ㅠㅠ
왕: 아 쫌! 모르면 관직생활 끝나냐? 옛날 기록들 찾아봐. 그리고 꼭 도읍지 아니어도 그 나라의 영토였던 곳에 세워도 되고.
허조: 자고로 제사 지내는 건 그 공에 보답하는 거죠. 근데 사실 우리나라의 법이나 제도, 문화는 신라의 제도를 기반으로 한 거니까 신라 시조에게만 제사 지내는 게 어떨까요?
왕: ㄴㄴ. 삼국이 솥발처럼 나란히 대치하고 있었으니 어떤 나라만 챙기고 어떤 나라는 버릴 수는 없는 거.
'제사'라는 건 유교의 중요한 의식인데 이걸 삼국의 시조들 모두에게 지내기를 고집한 것은 그만큼 이 한국사에 다시 없을 임금님이 "고구려, 백제, 신라는 모두 우리 조선의 조상님"이라고 뚜렷하게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지.
사실 허조의 의견은 오늘날 시각에서 보면 많이 그렇지만 당시 시각에서 보면 근거가 있는 의견임. 조선의 문물이나 제도는 근본적으로는 '당풍'을 수용해서 로컬라이징된 통일신라의 제도가 기본이 되긴 했으니까.
거기에 제사를 지내는 것도 분명 국가예산이 드는 일이니 예산 절감 차원이라는 측면도 존재했을 거고.
또 조선 초기는 아직 조선의 중앙집권체계가 완비되지는 않은 시기라서 "아직 나라가 선지 얼마 안됐는데, 굳이 옛 국가와 수도를 거론해서 정치적 혼란의 여지를 남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정권의 안정과 관련한 부분도 있을 수 있음.
하지만 세종은 '어차피 다 우리 조선의 조상들인데 야박하게 굴지 말고 그냥 삼국 다 제사지내자"고 아량을 보인 거.
동북공정이니 뭐니 해도 고구려 역시 조선의 전신 중 하나다라는 의식도 분명히 보인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