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완의 시작과 함께, 눈에 띄는 그림이 몇 장 나온다. 총 10장으로, 어린 아이가 그린 것 같은 크레파스 그림이 5장, 섬세한 펜 터치로 그린 현실적인 그림이 또 5장이다. 먼저 나온 크레파스 그림은, 22화에서 아스카의 내면을 다룰 때 나왔던 것과 같다. 분노한 사람의 얼굴, 살인 장면, 피를 튀기는 사람 등, 얼핏 봐도 기분 나쁜 그림들이다. 정신적 질환을 앓는 아이가 그린 것 같기도 하며, 리뷰 20편에서 설명한 대로 데스트루도의 발현을 상징하기 위한 연출로 생각할 수도 있다. 나머지 5장은 조금 다른 느낌인데, 나온 순서대로 양동이에 담긴 물고기 두 마리, 내장이 튀어 나온 개의 모습, 파리 떼와 함께 병에 담긴 목 잘린 생선, 상처를 핥는 고양이 모습이다. 크레파스 그림과 인상은 좀 달라도 역시 기분이 좀 나쁘고, 전체적으로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을 상기시키는 작품들이다. 기차 신호등 그림이 조금 별개의 이미지로 보이나, 앞서 언급한 대로 기차는 곧 보완의 상징인 만큼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이 10장의 스케치는 타인에 대한 분노와 죽음에 대한 공포 등 보완의 욕구를 상징하며, 이와 함께 안티 AT 필드, 즉 데스트루도 형이하화의 결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아주 잠깐 나온다.
그 시각, 지구 상공에서는 양산기의 대열이 변하고 있었다. 생명의 나무를 중앙에 둔 채, 검은 달과 함께 상승하며 ‘트라이퀘트라’를 형성하고 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세 가지 ‘위격’을 취하는 신에 대한 상징이다. 초호기를 그 신의 자리에 세우며 의식이 절정에 이르는 부분이다.
거대 레이의 날개
후유츠키 "거프의 방이 열린다. 세계의 시작과 종국의 문이, 마침내 열리는 것인가!"
거대 레이의 등에는 12개의 날개가 돋아 나온다. ‘신에 가까운 존재의 각성’을 의미하는 이 열 두 갈래 날개는 전설 속 사탄의 날개 숫자와 같아 죄의 상징으로 볼 수도 있다. 또 후유츠키는 거대 레이의 날개를 보며 ‘거프의 방이 열린다.’고 말했기 때문에, 날개를 거프의 방과의 연계 장치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다. 과거 카츠라기 조사대가 남극을 탐사할 때 아담에게서 날개가 나왔던 것도 세컨드 임팩트, 즉 거프의 방이 열리는 전조였음을 생각하면 꽤 일리가 있다. 실제로 거프의 방이 다시 닫힐 땐 거대 레이의 날개도 함께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거프의 방?!
그런데 잠깐, 거프의 방이 대체 뭔가? 작품 전체에 걸쳐 이 용어가 등장한 것은 세 번뿐이다. 위에 언급한 아담 각성 당시, 21화의 영상 자료 멘트를 통해 한 번. 23화에서 리츠코의 말 “거프의 방은 닫혀 있었어.”에서 또 한 번. 그리고 마지막이 방금 후유츠키의 대사에서 나온 것이다. 일단 리츠코의 대사는 논외로 둬야 할 것이, 그녀는 거프의 방이란 개념을 ‘더미 안에는 진짜 영혼을 담을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비유적 표현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머지 두 번의 경우에선, 실질적인 의미로 거프의 방이란 표현을 쓰고 있으며, 그 뜻을 간단히 말하면 ‘인간의 영혼이 본래 있던 곳’, 후유츠키의 말을 빌려 ‘세계의 시작이자 끝이 되는 곳’이다. 영혼에 대한 개념인 만큼, 거프의 방은 디라크의 바다와 같이 다른 차원에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3차원 세계에서 그 물리적 형태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다만 후유츠키의 말 직후 릴리스의 두 손에 구멍이 뚫리며, 그 안으로 들어간 영혼들이 코어와 닮은 구체로 향하는 장면이 있어, 그 붉은 구체가 거프의 방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거대 레이가 보완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 붉은 빛으로 묘사되는 사람들의 영혼을 우선 ‘검은 달’ 주변에 모은 후, 다시 그것을 몸 안으로 넣는 식인데, 이렇게 굳이 검은 달에서 한 번 거르는 이유는, 일종의 영혼 정화 작업을 표현한 게 아닌가 싶다. 인류의 근원이 되는 곳이니, 인간의 기억과 자아 경계의 소각을 담당하는 부분이기도 한 셈이다.
그로테스크의 절정
그와 함께, 양산기는 복제 롱기누스의 창으로 각자의 코어를 뚫는다. 지금 양산기는 AT 필드 공명을 통해 거대 레이와 일체화된 상태이다. 거대 레이의 의지와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다. 양산기의 코어에도 그 정체가 불명일 뿐 영혼은 있으며, 따라서 그 영혼도 보완 의식에 참여할 수 있게끔, ‘영혼 방출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다. 작품은 ‘영혼의 해방’이라는 특이 감각을, 고통이 아닌 쾌락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흡사 오르가슴을 느끼는 양산기와 함께, 지구의 전 인류는 고통의 비명 대신 엑스터시의 환희로 보완을 장식한다.
코어에 주목!
영혼이 나가는 순간
영혼이 육체 밖으로 빠져 나가는 순간을, 에반게리온은 다양한 방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첫째, 코어의 반짝임이다. 양산기가 코어에 창을 찌르는 순간을 유심히 보면, 코어가 붉게 한 번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순간이 바로 영혼을 방출하는 때이다. 20화에서, 초호기에 흡수되었던 신지가 에바 밖으로 나왔을 때에도, 이와 같이 코어가 반짝이는 연출이 있었다. 둘째, 물속의 공기 방울이다. 정확히는 화면을 가득 메운 액체 속에서 기체 입자가 수면 위로 빠져 나가는 식의 연출인데, 양산기가 코어를 찌를 때 한 번, 신지가 유이와 작별하여 세상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에 또 한 번 나왔다. 셋째, 십자가 상징이다. 지구의 모든 인류는 거대한 녹색 십자가를 쏘아 올리며 영혼을 방출한다. 단순히 영혼의 방사를 표현하기 위한 장치로 봐도 좋고, 기독교 상징이 말하는 대로 신과 인간 사이를 잇는 다리 개념으로 이해해도 된다.
십자가 상징
다음으로, 에반게리온 주요 인물들의 LCL화 과정은 개별적으로 묘사되는 만큼 여기서도 따로 다루려고 한다.
우선 가장 먼저 나온 휴가. 휴가 앞에 선 레이는 미사토의 모습이 되어 그를 죽음으로 유혹한다. 알다시피 마야나 후유츠키 또한, 각자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안긴 채 LCL이 되었던 만큼, 사랑하는 대상의 환영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영혼 방출을 위한 하나의 통과 의례로 보인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인류의 어머니 릴리스의 마지막 배려일까? 그렇게도 볼 수 있으나 나는 보다 실질적인 이유를 대고 싶다. 아마 이 부분은, 데스트루도에 감응하는 과정 중 하나인, ‘리비도의 방출’을 표현한 게 아닐까 싶다. 결과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극도의 성적 쾌락 등을 느끼며 육체에 잔류하는 AT 필드 상응 에너지, 리비도를 방출한 뒤 LCL로 환원된다는 것이다. 양산기가 코어를 뚫을 때 유사한 반응을 보인 것도 같은 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다음 차례, 아오바가 좀 애매하다. 그의 경우, 다른 사람과는 달리 ‘레이 그 자체’를 목격하며, 쾌락이 아닌 두려움 속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이에 대해, 우선은 아오바가 생전에 성적 관심을 느낀 대상이 없었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그러고 보면 나머지 2명의 오퍼레이터가 각각 이성애와 동성애라는, 사랑의 두 형태를 대표하고 있으니, 제3의 인물인 아오바로 무성애(Aㅅㅅuality)와 같은 또 다른 사랑을 표현하려 했을 수 있겠다. 그게 아니어도 표면적인 선에서, 아오바의 케이스를 특별하게 연출한 이유는, 제작자 입장에서 ‘죽음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여러 반응’을 고루 담고 싶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오바는 사랑의 유무를 떠나 삶에 대한 미련이 있었고, 그래서 죽음 앞에서 솔직하게, 두려움을 표현할 수 있었던 거다.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드 임팩트라는 것은 개인의 미약한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도 강조할 수 있었다.
킬 "시작과 끝은 같은 곳에 있다. 이것으로 됐다."
제레의 킬 또한 아오바와 같이 환영 없는 죽음을 맞이했는데, 이 경우 아오바와는 또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킬은 삶에 대한 일말의 미련도, 죽음에 대한 공포도 보이지 않은 채 그저 덤덤히, 자신의 죽음에 대해 ‘만족’하고 있었다.
마야 "AT 필드가, 모두의 AT 필드가…사라져 가고 있어…이게 대답인 거야…? 내가 구하고 있던…?"
마야 "……?!"
"선배님…!"
리츠코 "…마야."
노트북 주목
마야 "선배…선배…선배…!"
마야의 케이스는 또 다른 각도에서 주목할 부분이 있는데, 그녀가 리츠코의 환영과 만나는 순간 노트북이 바닥 한 구석으로 밀려 나가는 부분 말이다. 영상만으론 제대로 파악할 수 없으나, 스토리 보드에는 마야가 직접 발로 찬다는 식으로 나와 있다. 마야가 네르프에 존재하는 이유가 그 노트북 안에 모두 담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서드 임팩트 앞에서 두려움에 떨던 그녀가 사랑하는 리츠코에게 안긴 즉시 스스로 노트북을 차버리고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은, 결국 마야가 원하던 것, 또 구하려던 대답이 그저 한 사람의 진심이며 사랑이었다는 완곡한 표현이 된다. 그녀의 환상이 노트북에 적어 놓은 ‘I need you.’라는 말, 지금은 마야의 개인적인 갈망에 불과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훨씬 더 큰 울림이 되어 다시 돌아온다.
후유츠키 "이카리…자네도 유이를 만났는가…!"
후유츠키는 또 어떤가. 그 역시 겐도우와 함께, 유이와 다시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마음 깊은 곳에 감춰 두고 있었다. 이브가 된 유이와 같은 위치에 설 수 없음은 잘 알고 있으나, 애초에 그것은 유이가 살아생전에도 다를 바 없었다. 겐도우가 있는 한, 그의 사랑은 혼자만의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최후 후유츠키에게 나타난 유이의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사와도 같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봤던 유이가 날개 달린 다이브 슈트를 입고 있었기 때문일까? 생각해 보면, 과거 겐도우가 그에게 무심히 건넨 결혼 카드 위에도, 날개를 단 푸른 머리의 천사 그림이 있었다. 그에게 유이란, 아주 긴 시간 동안 숨기고 있었던, 남은 미련이었다.
자, 문제는 다음이다. 이카리 겐도우. 그는 대체 어떻게 되었는가?
겐도우 "간신히 만났군…."
"…유이."
바라던 대로 유이는 만났으나, 계획은 진작 실패했다. 유이를 만날 면목은 없었다. 그래서 억지로 아담이 되어 그녀 옆에 서려던 것이었다. 그 스스로가 유이에게 자신이 없으니,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존재이고 싶었던 게다. 아내인 유이도, 아들인 신지도, 지금의 겐도우에겐 그저 두려운 ‘타인’일 뿐이다. 멋대로 손에 이식해 하나가 되려 했던 아담과, 멋대로 손을 넣어 하나가 되려 했던 릴리스가 ‘완전한 타인’, 다른 말로 ‘공포’가 되어 다시 그를 만나러 왔다. 사랑했던 유이와 함께.
겐도우 "내가 곁에 있으면, 신지에게 상처만 줄 뿐이다. 그러니까, 아무 것도 안 하는 게 나아."
유이 "신지가 두려웠군요."
겐도우 "남에게 받는 사랑은, 믿을 수 없다. 내겐 그럴 자격도 없어."
카오루 "그냥 도망치는 것뿐이야. 자기가 상처 입는 게 두려워, 세상을 거부하는 거지."
유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 있는, 형태도 없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이…."
레이 "그게 두려워, 마음을 닫았던 거네요."
겐도우 "그 응보란 게 이 꼴인가…미안했다, 신지."
겐도우가 하는 말을 잘 들어 보자. 굉장히 익숙하다. 신지가 R-20 구역에서 미사토와 마지막으로 나눴던 대화 말이다.
신지 "사람을 상처 입히면서까지, 죽이면서까지 에바에 타다니, 내겐 그럴 자격 없어요.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일 같은 거, 내겐 아무 것도 없어!"
"난 무엇을 해도 남에게 상처만 줄 뿐이야, 그렇다면 아무 것도 안 하는 게 나아!"
겐도우는 지금, 당시의 유약한 신지가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것은, 신지에겐 진심을 줄 미사토라는 어른이 곁에 있었으나, 겐도우에게는 아무도 없었다. 누구 하나 믿어 줄 상대가 없었다. 언제나 혼자이길 바랐던 겐도우의 최종 결론은, 결국 성장도 보완도 아닌 영원한 도망이었다. 신지에게 상처를 줄 뿐이라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낫다는 그의 말, 이제 우리는 그 의미를 잘 안다. 그는 다만 그 스스로가 두려웠을 뿐이다. 자신을 사랑한 적이 없으니, 남을 사랑할 수도 없었던 거다. 에반게리온은 겐도우라는, 정신적으로 정체한 캐릭터를 통해, 타인과의 교류를 거부한 개인의 고독한 최후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응보는, 아내와 아들-초호기가 맡게 됐다. 겐도우의 환상은 사랑하는 상대가 아니라, 자신의 죄책감에 응당한 벌을 내릴, 공포의 대상-말 그대로 타인이었다.
다리만 남은 겐도우. 애도.
사실 이 응보 과정은 단순 환상이라 보기엔 어렵다. 바로 다음 컷에서, 겐도우는 실제로 하반신만 남긴 채 목숨을 거뒀다. 정상적인 LCL 환원 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며, 따라서 보완에 참여했다고 확언할 수 없다. 그에 대한 이 잔혹한 처벌은, ‘릴리스의 복수’라고도 생각할 수 있는데, 겐도우가 초호기에 의해 상반신을 뜯기고 다리만 남긴 것은, 과거 릴리스가 상반신만 남기고 다리를 뜯겼던 아픔과 의미 있게 대응한다.
신지 "잘도 토우지를 다치게 하고 어머니를 죽였겠다…!"
또한 신지의 ‘아버지에 대한 증오’라고도 생각할 수 있는데, 이미 20화의 환상 속에서, 신지는 초호기를 통해 겐도우를 죽이려 했고, 이후 아버지에 대한 심리 변화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의지를 반영한 보완은 겐도우를 허락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이렇게 두면, 26화 마지막의 ‘아버지, 고마워요.’라는 텔롭을 해석할 때 껄끄러움을 피할 수 없다. 물론 두 시점의 신지는, 마음의 성장 여부를 기준으로 큰 차이가 있으나 그렇다고 굳이 미성숙한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잔인한 장면을 연출할 이유가 있나 싶다. 따라서 나는 이 부분을 좀 더 완곡하게 이해하여, 어머니가 아들 대신 죄를 업고 증오를 씻어 준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 부분을 설명하기 전에, 여러분 혹시, 위 장면에서 유이에게 재밌는 변화가 있었다는 걸 눈치 챘는가? 그렇다, 유이의 옷이 변한다! 처음엔 가운 속에 분홍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보라색 터틀넥으로 바뀌어 있다.
분명 의도적인 연출일 텐데, 이를 통해 말하려는 바가 대체 뭘까. 우선 알아야 할 것은, 첫 번째 분홍색 옷의 경우, 유이가 후유츠키를 처음 만났을 때 입던 것이고, 두 번째 보라색 옷은 후유츠키가 게히른에 들어온 뒤, ‘신지의 어머니’ 유이가 입던 것이다. 우리가 두 옷의 차이에서 꺼낼 수 있는 정보는 따라서, ‘여자’와 ‘어머니’의 차이라 할 수 있다.
보완 중 겐도우가 유이를 처음 마주했을 때, 우선 그의 눈에 보인 것은 여성 유이였다. 좋은 남자가 있다면 주부로 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지닌 그 아가씨. 그러나 어느 순간 겐도우의 앞에 서 있는 건 그를 ‘불행한 남편’으로 만든, 어머니 유이였다. 더는 나를 사랑해 줄 것 같지 않아서 두려웠던 타인이었다. 또한 그녀의 보라색 옷은 초호기의 컬러링과도 의미 있게 겹치고 있어, 아마 안노는 이 옷의 변화를 통해, 지금 초호기가 그녀의 의지를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걸 강조하려 했던 것 같다. 구체적으로는 아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괜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도록, 어머니가 대신 벌을 준 셈이다. 겐도우의 죄는, 아내라는 이유로 쉬이 사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으니까.
또 하나, 여기서 레이는, 유이의 옷이 변함과 동시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겐도우의 시각에서, ‘여성 유이’가 레이에게 옮겨 갔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반대로 유이 입장에선 겐도우에 대한 사랑을 이미 레이라는 샐비지 육체에 모두 넘겼다는 표현일 수도 있겠다.
레이 "……."
세 명의 레이가 겐도우의 최후를 보고 있다. 더미 레이, 초대 레이, 2대 레이. 마치 레이라는 투명한 개체가,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분명한 색깔을 찾으며 인간이 되는 과정을 표현한 것 같지 않은가. 그 여정의 끝에 선 2대 레이가, 겐도우의 안경을 조용히 줍는다. 겐도우에게는 타인에 대한 벽이었던, 레이에게는 타인에 대한 희망이었던.
제3의 눈
영혼의 바다
이제 마지막 남은 인간의 영혼, 생명의 나무가 된 신지 차례다. 다른 영혼과는 달리, 신이 된 소년은 거대 레이 이마에 달린 제3의 눈으로 직접 들어간다. 제3의 눈은 인간 정신의 중심이 되는 차크라이다. 그 눈의 각성은 곧 ‘신의 세계로의 입회’를 의미하는, 의식의 마지막이다. 생명의 나무가 레이와 융합하는 순간을 마치 남녀 성기의 결합과 같이 묘사한 것이 흥미롭다.
신지는 거인의 몸 안에서, 중앙의 붉은 구체를 향해 헤엄치는 무수한 영혼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 모습을 난자로 향하는 정자의 움직임과 같이 그려 놨는데, 위의 융합 장면과 더불어 ‘태초로의 회귀 모티브’를 표현한 것 같다. 지금 사람들의 영혼은 모두 하나같이 레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검은 달의 정화 과정을 거친 덕에 개인의 특이 자아가 없으며, 때문에 우주에 유일하게 실존하는 레이의 모습을 빌리고 있을 뿐이다.
신지 "아야나미…레이…?!"
응?!
그 기괴한 광경에 놀라는 신지를 보고, 영혼들은 순간적으로 신지의 얼굴로 모습을 바꾼다. 자타의 구분이 사라진 세상이다.
-찰싹!
초록색 비상구가 보인다. 그 위에 보완으로 향하는 기차의 모습이 오버랩, 잠시 후 뺨 때리는 소리와 함께 비상구 불빛이 꺼진다. 신지를 포함해 모든 인류의 자아 경계가 소멸하여, 비로소 마음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온갖 마음이 섞인 채 정처 없이 떠도는 혼돈의 시간이다. 성적 흥분에 도취한 여성의 가쁜 숨소리, 다층 셀에 그려 넣은 여성의 음란한 모습, 그리고 중구난방으로 들리는 욕설 등, 신지가 지닌 인간 소망의 마지막 고통을 표현하고 있다.
천천히 움직이는 그네
미사토 "그렇게 힘들었다면…이제 그만 둬도 좋아요."
레이 "그렇게 싫었다면…이제 도망쳐도 좋아요."
-홀가분해 지고 싶겠죠?
-나와 하나가 되고 싶죠?
"그래도…."
"너하고만은…."
"절대로…죽어도…싫어."
보완을 허용하는 레이나 미사토와는 달리, 아스카는 이 와중에도 끝까지 ‘신지와의 경계’를 수호하려 한다. 신지를 보는 아스카의 증오 섞인 눈빛은 인간적인 악감정이 아니라, 그저 자존심을 지키고 싶다는 강렬한 소망에 더 가까워 보인다. 신지에게 타인으로서의 미련을 남겼다는 것은, 여전히 그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는 표현이기도 하니까. 아스카의 이 기개 넘치는 거절은, 영화의 피날레가 되는 ‘너와 나의 재회’ 장면으로 이어지며 그녀의 성장을 무게 있게 표현해 준다. 그러고 보면 아스카가 이렇게 완강하게 보완을 거부한 덕에, 보완을 주도한 신지 다음으로 가장 먼저 진짜 세상에 다시 발을 들일 수 있었던 셈이다. 과연 아스카다.
그러나 아스카가 무엇을 바라든, 또 신지가 그것을 어떻게 여기든, 이제 세상은 정말로 끝이 났다. 작품은 기존 세계의 붕괴를 표현하기 위해, 실사 세계를 촬영하여 스크린에 띄우는 특별한 방식을 사용했다.
아주 영리한 방법이지 싶다. 애니메이션 세상을 기준으로, 우리가 사는 현실은 곧 환상의 세계라 할 수 있으니까. 2차원에선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우주’에서, 놀이터의 그네는 다시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고, 기차도 소리 없이 달리고 있다.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이란 잔잔한 클래식 넘버를 배경으로, 사람들의 평화로운 일상이 눈앞을 무정히 스친다. 어떠한 마음의 변화도 없다. 아픔도, 그 대신 즐거움도 없는 적막한 세상이다.
저 사람…?!
이 시퀀스에서 우선 특별히 눈이 가는 부분은, 영화관의 실제 객석을 화면에 비추는 연출이다. 앞자리에서 레이와 아스카 인형을 손에 든 남자를 봤다면 알았겠지만, 데스 앤 리버스 상영 당시 실제 객석 화면이다. 과연 신지가 작품에서 말하는 ‘꿈과 현실’은, 3차원 세계에 사는 우리네 입장에선 ‘애니메이션과 바깥 세계’로 이해할 수 있겠다.
신지 "…있잖아…."
미사토 "뭐?"
신지 "꿈이란 건, 뭘까?"
아스카 "꿈?"
레이 "그래, 꿈…."
신지의 물음에 대해, 텔롭은 그 대답을 상영관의 객석으로 돌린다. 당신이 지금 꾸는 꿈은 어떤 것입니까, 하고. 앞서 아스카가 신지의 영화를 보며 화를 냈던 것과 같이, 안노는 지금 에반게리온을 통해 우리 자신의 영화에 대한 ‘솔직한 감상’을 묻고 있는 셈이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감독은 데스 앤 리버스라는 ‘안노의 영화’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감상을 보여 준다. 일반적인, 평범한 리뷰도 있고, 굉장히 공격적인, 협박에 가까운 반응도 눈에 띈다. 어차피 정답은 없다. 다만 이런 식으로 각자의 답을 추구해 달라는 감독의 메시지이다. 그리고 그 하나의 답, 아마 안노 본인의 생각이 신지의 입을 통해 나오고 있다. 함께 보도록 하자.
신지 "모르겠어…현실은, 잘 모르겠어…."
레이(유이라 생각해도 좋다.) "타인의 현실도, 자신의 진실도…잘 알 수 없구나…."
신지 "행복이 어디 있는 건가, 잘 모르겠어."
레이 "꿈 바깥에서는, 행복을 찾을 수 없구나…."
내 꿈, 기분 좋으냐고? 모르겠어. 사실은, 현실도 잘 모르겠어. 신지가 답했다. 여기서 현실이란 우리 입장에선 상영관 바깥의 세상. 나와 작품이 아닌, 나와 타인이 대면하는 공간이 된다. 실사 세계라는 ‘낯설게 하기’ 기법을 통해 감독은 우리를 잠깐 영화 바깥으로 데리고 나간다. 미사토, 아스카, 레이의 성우가 캐릭터가 아닌 본인의 모습으로 우리의 눈을 본다. 이어 각 캐릭터의 코스튬 플레이를 하는 세 사람의 모습. 우리가 서 있는 곳이 대개 현실과 꿈의 그 미묘한 경계이다. ‘다루기 쉬운 꿈’의 유혹 때문에, 진짜 현실을 망각하는 경우도 꽤 있다. 혹은, 아무리 노력해도 알 수 없다는 핑계로, 무시하기도 한다. 현실이란-우리의 의지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너무나 견고하여, 그래서 섣불리 건드렸다간 상처 입기 쉬운 세상이니까.
신지 "그러니까 이건 현실이 아니네…아무도 없는 세계다."
레이 "그래…꿈."
신지 "그러니까, 여기에는, 내가 없어…."
그러나 지금 신지가 만들어 낸 보완의 세계에는, 괴로움이라곤 없다. 모든 인류가 하나가 됐으니까, 타인에 대한 공포도 없다. 그러나 나만이 존재하는 세계에는, 타인도 없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도 있을 수 없다. ‘나’라는 건 타인과의 인연을 통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니까. 그래서 여기는, 아무도 없는 꿈과 같은 세상이다. 현실이라 부를 수 없는 곳이다. 신지를 보며 레이는 말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저, 괴로운 현실에서 꿈의 세계로 도망쳐 왔을 뿐이군요. 정말로 이런 세계를 원한 게 아니라, 다만 고통을 받지 않기 위해, ‘덜 괴로운 곳’에 잠깐 기대고 싶었을 뿐이군요. 신지는 물었다. 그게 나쁜 거냐고. 그러면 안 되는 거냐고.
레이 "그럴싸하게 둘러대는 식으로 현실에 복수를 하고 있었구나."
신지 "안 된다는 거야?"
레이 "허구 속으로 도망쳐서, 현실을 무시하고 있었구나."
신지 "나 혼자만의 꿈을 보는 게, 나쁘다는 거야?"
레이 "그건 꿈이 아냐. 그냥…."
"…현실 도피야."
레이는 다만, 신지가 착각하고 있음을 가르쳐 준다. 지금 그가 있는 곳은 꿈이라 부를 수 없단다. 얼핏 이상하게 들린다. 아까는 신지가 꿈속으로 도망친 것이라 했으면서 지금은 또 이게 꿈이 아니라니? 중요한 것은, 신지가 ‘도망쳤다’는 사실에 있다. 꿈을 현실의 도피처로 삼는 순간 그 공간은 이미 꿈이 아니게 된다. 말 그대로, 현실 도피일 뿐이다. 레이의 짧은 말과 함께, 음악이 멈춘다. 객석을 가득 메우던 사람들의 모습도 사라지고 없다. 이제는, 스크린을 보고 있는 당신 하나만이 남았다. 이런 방법으로 감독은, 당신이 영화를 보는 이 순간을, 꿈의 경계를 넘어, 안노라는 타인과 당신 자신의 실질적인 대면 시간으로 바꾸려는 셈이다.
신지 "…그럼, 나의 꿈은 어디에 있어?"
레이 "그것은, 현실의 연속."
그래서 더욱, 이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레이는, 꿈을 부정하고 있는 게 아니다! 이 시퀀스의 대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에반게리온을 더러 오타쿠를 마냥 비판하려는 작품이라 생각하는데, 이는 명백한 작품 오독이다. 레이의 입을 통해 안노가 비판하는 대상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아니라, 현실에서 도망친 채 이 공간을 자신의 꿈이라 착각하며 위안 삼으려는 사람들이다. 현실을 무시한 꿈에는 괴로움도 없는 대신 행복도 없다. 꿈은 언제나 현실과 함께 있는 것이며, 마땅히 그래야 한다. 진짜 행복은 그 안에 있다. 애니메이션 역시 하나의 꿈이며, 그 꿈을 탐닉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현실의 눈을 닫고 꿈의 세계로 도피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애니메이션이란 꿈으로 가장한 위선일 뿐이다. 정말로 꿈을 아끼는 사람은 현실도 아끼는 법이다. 현실 없이는 꿈도 존재할 수 없으니까.
신지 "…그렇다면, 내 현실은, 어디에?"
레이 "그것은…."
"…꿈의 끝이야."
BGM Liberation of Souls : The Enlargement of Obstruction
현실에는 고통도 있으나, 즐거움도 있다. 그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면, 일단 꿈에서 깨야만 한다. 타인을, 진짜 세상을 마주해야만 한다. 꿈을 부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신지가, 그러니까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이 진짜 행복을 얻을 수 있도록, 우선은 꿈을 놓고 눈을 떠야만 한다.
26화의 영어 부제, ‘Take care of yourself’는 이 모든 메시지를 집대성하고 있는 문장이며, 에반게리온이 먼 길을 돌아 우리에게 전하려 했던 것들의 응축이다. 당신의 소중한 꿈을 위하여, 당신의 현실을 먼저 소중히 해 달라는 것. 바로 그러기 위해, 당신 자신을 아껴 달라는 것이다. 행복한 꿈은 행복한 현실에서만 꿀 수 있는 법이며, 그 현실은, 우리 모두가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안노의 말에 따르면, 에반게리온이라는 작품은 그가 아주 오랜 시간 도망치지 않으려 노력하며 일구어 낸 하나의 ‘진실’이지,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한 싸구려 허구가 아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 이름이 신지, 즉 ‘진실’인 이유이기도 할 테다. 진정한 꿈은 현실 안에, 현실은 너와 나의 관계 속에, 그 관계는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으며, 따라서 행복은 그 안의 어디쯤, 바로 당신의 손 안에 담겨 있는 셈이다.
“꿈의 끝”이라는 레이의 말과 함께, 거대 레이의 목에 커다란 금이 하나 그어진다. 신지에게 있어, 레이라는 존재는 꿈의 상징이기도 하다. 꿈처럼 만나 꿈처럼 이별하는, 그리고 인류 보완이라는 영원할 것만 같은 꿈을 선사한 그녀. 진정한 꿈에 대해 깨닫게 된 신지의 의지를 반영한 걸까, 레이의 목에서 선홍색 피가 뿜어져 나온다. 그러나 아프진 않다. 레이는 웃고 있다. 아주 거룩한 성장이니까. 마침내, 신지가 꿈에서 깨기 시작한 것이다.
2화의 낯선 천장
26화의 낯선 천장
아스카 "이제야 안 거야, 바보 신지?!"
신지 "아야나미…?"
신지 "여기는…."
레이 "LCL의 바다, 생명의 원천. AT 필드를, 자기 형태를 잃은 세계."
"나는, 죽은 거야?"
"아니, 모든 것이 하나가 되었을 뿐. 이게 네가 바란 세계야."
"…하지만, 이건 달라…다르다고 생각해."
"지금 다시 타인의 존재를 원하면, 다시 타인의 공포가 시작되는 거야."
"…괜찮아."
"고마워."
신지가 바라는 대로,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마음에 벽을 세운다. 그러나 그 덕분에, 신지는 다시 한 번 그녀를 ‘아야나미’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다시 한 번 그녀와 악수를 나누고,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이다.
신지 "…현실은 항상 괴로웠어. 그러니까, 도망쳐도 됐던 거야. 그치만, 도망친 곳에서도, 좋은 일은 없더라."
"왜냐면, 거기엔 내가 없었으니까. 아무도 없는 것과 같았으니까…."
카오루 "다시 AT 필드가, 너나 다른 사람들을 상처 입혀도 괜찮아?"
신지 "…상관 없어. 그런데, 내 안에 있는 너희는 그럼 누구야?"
레이 "희망이란 거야."
"사람들이 서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그런 거…."
카오루 "좋아한다-는 말과 함께 말이지."
신지 "자기 멋대로인 믿음 말이지. 계속될 수가 없는 거야. 결국엔 날 배신하고 말겠지. 나를 아프게 하겠지."
"그치만…."
"…한 번 더,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어."
"그 때의 마음은, 진짜라고 생각했으니까…."
너와 나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타인은 공포이며 고통일 뿐이다. 그러나 너와 나를 믿는 사람에게, 타인은 희망이며 행복이 된다. 신지가 여러 사람과 함께 진심으로 웃고 있는 저 감동적인 컷을 보라. 그들이 바로, 신지 안에 새롭게 살게 된, 희망이라는 이름의 타인들이다. 26화의 후반을 장식한, ‘행복한 드라마’를 함께 연출한 사람들이다. TV판의 엔딩에서, 신지에게 마음을 다해 축하의 박수를 쳐 줬던, 그 사람들이다. 이제 됐다. 신지는, 괜찮을 것이다.
거프의 방이 다시 닫히고, 거대 레이의 붉은 눈을 초호기가 뚫고 나온다. 온 우주에, 신지의, 초호기의 용맹한 포효 소리가 울려 퍼진다. 세상의 중심에서 나를 외치는 짐승이다!
[에반게리온] 35(完). 진심을, 너에게 : I need you/에서 계속.
이제 이 정도 스크롤은 문제 없죠? ^^ 왜일까, 오늘은 뭔가 유난을 떨고 싶은데 참도록 하겠어요. ㅋㅋ 35편은 다시 6일 뒤, 다음 주 목요일 늦은 밤에 들고 오겠습니다.(이제 이 정도 텀도 문제 없죠? ㅋㅋㅋ) 그럼 마지막까지, 서비스, 서비스! 감사합니다. 서른 네 번 감사합니다.
[심슨 가족] 1. 우리는 무엇을 해석하려 하는가? 아 병맛.
완결을 앞둔 슬픔의 중심에서 추천을 누질르는 1人
제가 생각하기에는 AT필드가 없으므로 타인을 구분하는 잣대중 하나인 남녀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카오루가 등장하면서 레이나 신지가 옷을 입으니까 하나가된 상황에서 다시 각자 개인으로 나눠지는걸 상징할 수 있으니까요
'어째서 카오루만 나체가 아니냐' 쪽을 생각하는 게 편할 것 같네요. 보완 이후 AT 필드를 새롭게 생성하여 저렇게 몸을 분리, 감동적인 악수를 나누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사람의 가장 순수한 모습을 표현하는 것이 맞겠죠? 그렇다면 왜 카오루는 나체가 아니냐, 인데, 글쎄요. 일단 카오루는 레이와 달리 AT 필드 관련 연출은 없고, 저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어요. 저 상태에서 옷을 벗고 서 있으면 그것도 좀 이상할 것 같긴 한데 ㅋㅋㅋ
이제 이 정도 스크롤은 문제 없죠? ^^ 왜일까, 오늘은 뭔가 유난을 떨고 싶은데 참도록 하겠어요. ㅋㅋ 35편은 다시 6일 뒤, 다음 주 목요일 늦은 밤에 들고 오겠습니다.(이제 이 정도 텀도 문제 없죠? ㅋㅋㅋ) 그럼 마지막까지, 서비스, 서비스! 감사합니다. 서른 네 번 감사합니다.
완결을 앞둔 슬픔의 중심에서 추천을 누질르는 1人
안 끝나면 안 되요??
괜찮아요 저희에겐 극장판이 있어요!
오옷 ~~~ 감사합니다 ^^
무조건 선추천 입니다 ~ ^^
재미있게 감상하겠습니다!!! +ㅁ+!!!! 여기 짐승한마리 추가요오~~~!!!
드디어 나왔군요! 언제나 좋은 리뷰 잘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EOE 마지막에 검은 달이 쪼개지는 장면은 수정란이 분화되는 모습과 비슷한 것 같은데, 이는 즉 생명의 잉태를 노린 연출인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마 다음 시간에 또 짚을 겁니다. ^^
선추천후 감상..
저 다담주 월욜날 군대가는데 에필로그까지 볼 수 있을까요 ㅠㅠ
네! 다행입니다! ㅋㅋ ^^
선추천 후감상!
선감상 후추천!!
ㅋㅋㅋㅋ 네 ㅋㅋㅋㅋ 그래도 항상 리뷰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 그리고 한가지 더 궁금한게 있는데, 신지와 레이의 담화 장면에서 두 캐릭터가 나체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순한 팬 서비스는 아닌 것 같고, 일부러 나체 연출을 한 것 같은데 말입니다. 게다가 그 와중에도 카오루는 착의를 하고 있으니 리츠코의 나체 장면처럼 뭔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아닐까요. 공공장소에서 EOE보다가 창피당해서 '아니 굳이 왜 나체를...'하고 생각난 질문입니다.
'어째서 카오루만 나체가 아니냐' 쪽을 생각하는 게 편할 것 같네요. 보완 이후 AT 필드를 새롭게 생성하여 저렇게 몸을 분리, 감동적인 악수를 나누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사람의 가장 순수한 모습을 표현하는 것이 맞겠죠? 그렇다면 왜 카오루는 나체가 아니냐, 인데, 글쎄요. 일단 카오루는 레이와 달리 AT 필드 관련 연출은 없고, 저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어요. 저 상태에서 옷을 벗고 서 있으면 그것도 좀 이상할 것 같긴 한데 ㅋㅋㅋ
하긴 저 자세에서 카오루가 벗고있으면... 진짜로 BL물 속성을 지니게 되는건가요...ㅋㅋ
제가 생각하기에는 AT필드가 없으므로 타인을 구분하는 잣대중 하나인 남녀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카오루가 등장하면서 레이나 신지가 옷을 입으니까 하나가된 상황에서 다시 각자 개인으로 나눠지는걸 상징할 수 있으니까요
저상태의 레이와 카오루는 극중에서도 직접적으로 말하듯, 신지 안의 그들이 아닌가싶습니다. 신지가 좋아했고 신지가 믿었고 신지가 마음을 열어보였던 그 레이와 카오루.. 그렇기때문에 레이와 카오루 역시 자신들을 "희망"이라고 지칭하죠. 그것은 신지에게뿐만 아니라 레이와 카오루에게 역시 신지는 "희망"이었을 겁니다. 레이는 릴리스라는 하나의 개체이자 신지에게 보완의 형태를 보여주는 역할이었기에 신지나 다른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옷을 입지않은 모습이었지만 카오루와 레이는 분명히 그와중에도 자기 의식이 있는 만큼 신지 안의 레이와 카오루라고 받아들이는게 적합할듯 싶습니다.
전 신지가 다시 나와 타인의 벽을 다시 세워서라고 생각합니다 옷이라는것은 자신의 몸을 가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체라는것이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는것이잖아요. 제 생각에 안노는 옷을 at필드로 비유를 한 것 같습니다. 신지와 레이가 나체로 붙어있다가(타인과의 합일) 신지가 괜찮다고 한 후 떨어졌습니다 (다시 at필드가 생김) 그래서 카오루가 옷을 입고있는것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타인과의 경계가 다시 생겨났다는것을 명백히 드러내기 위해 일부러 입힌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에반게리온은 끝이 참 깔끔 하면서도 뒷맛이 있는작품인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번에 Q도 제발 신극장판의 장엄한 결말의 초석이기를 기대합니다. p.s벌써 완결 이라니요 이제 애갤에서 무슨낙으로 기다립니까
뒷맛이 없으면 애초에 사골을 끓일 수 없죠. 항상 재밌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리뷰 아직 남았어요! ^^
벌써 완결인가요...에반게리온 외에 리뷰하실 작품은 없으신가요?
이런 식의 리뷰는 에바 외엔 없을 겁니다. ^^ㅋ 제가 이렇게 비상한 수준으로 생각을 담는 작품이 에반게리온과 심슨(?!) 뿐이기도 하구요.
심슨 콜~!
[심슨 가족] 1. 우리는 무엇을 해석하려 하는가? 아 병맛.
복 받을거에요~~!!!
누가요, 제가요? ㅋㅋㅋㅋ 복 많이 받으세요!
항상 느끼는거지만 에반게리온 만한 해피엔딩이 없는거 같아요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우워어!!! (ㅋㅋㅋㅋㅋㅋ)
근데 또, 에반게리온 만한 꺼림칙한 헤피엔딩도 없는 것 같아요
아, 아주 좋은 표현입니다. '꺼림칙한 해피 엔딩.' 와우.
기분 나빠.
오늘도 일단 추천부터 누르고 글을 읽습니다. 이번에도 스크롤이 굉장하네요. 본편이 워낙 저런데다 꽤 수위 높은 상징도 많이 사용하다보니 언급을 일부러 피하신 것 같은 부분도 조금 있네요. 사실 예상했던 것 보다 더 직접적인 이미지도 넣으셔서 수위가 괜찮은건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이제 본편 하나와 후일담이 남은거죠? 멋지게 마무리하실거라 기대하고 있답니다^^
어유,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수위가, 그렇네요. 쉿! 괜찮아!! ㅋㅋㅋㅋ 사실 안 그래도 걱정을 좀 하긴 했으나, 저런 그림도 못 넣으면 에반게리온 얘기를 제대로 할 수가 없어요. ㅋㅋㅋ
엄디저트님이 여러차례 에반게리온은 치유물로 귀결된다고 강조하셨는데 실사 장면에 대한 해석도 그렇고 이후의 장면에 대한 해석을 통해 그 이유가 이번 글에서 나타난 듯 보이네요 그리고 유이의 옷 변화의 의미도 엄디저트님을 통해 알게 되었네요.
에반게리온으로 상처 입은 멘탈은 에반게리온으로 힐링할 수 있다. -엄디저트
아 머릿속에 쏙쏙들어오는 강의다
머리가 좋으신 겁니다. A+
결국 TV-데스엔리버스도 신극장판 엔딩곡과 같은 내용이라는거네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삭제된 댓글입니다.
귀신 같은 안노. 제가 에반게리온에 빠진 이유. ^^ (+되게 좋은 지적이십니다!)
엄디저트님의 리뷰를 4.5편쯤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어느날부터인가 몇일뒤에 올라옵니다 라는 말이 있음에도 매일매일 기다리게 되더군요.. 어느새 이 부분이군요..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만.. 곧 끝난다 생각하니 아쉬워서 원..ㅎㅎㅎ 언제나 저 꿈의 끝이야. 부분부터 전율이 일어서는 양산기가 하강하는 부분까지 멍하니 보게 되서.. 정말 좋아하는 씬이지만 어떻게 설명하기가 힘들었는데, 엄디저트님께서 잘 써주신거 같아 기쁩니다. :> 그리고 LCL에서 레이와 있는 상황*^v^*도 눈길이 가지만, 엄디저트님의 미사토 리뷰 이후부턴 목걸이에 눈길이 가네요. 자신으로써 깰 수 있었던 것. 지금 마주할 수 있는것도 미사토의 의지가 연결되어있다는 기분입니다. :> 근데..다음편도 기대되는데 곧 완결이라니 아이고..그래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v^
트위터 계정 활용은 없으나, 피드백을 위해 종종 검색을 하기 때문에 Danhu님은 이미 잘 알고 있답니다.(굉장한 스토커죠?!) 항상 재밌게 봐 주시고 주소 남겨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남은 시간도 잘 부탁합니다. ^^
검색하셨을줄이야 ㅎㅎㅎㅎ 제 트친분들중에 에바 좋아하는 분들이 많다보니 나눌려고 트윗하고 그랬었는데 ㅎㅎ 왠지 기쁘네요~ ㅎㅎㅎ^∀^)> ㅎㅎ
EOE를 여러번 보면서 항상 드는 의문점이 왜 겐도만 LCL로 환원이 안되고 저렇게 반토막이 났나... 라는 생각이었는데 오늘 드디어 의문을 해소 하네요.... 유이의 옷이 바뀐것도 오늘 처음 알았구요..ㅋㅋㅋㅋ 오늘도 잘 읽고가요 ^^
재밌는 부분이 많죠?(저만 그런가요? ㅋㅋ) 오늘도 감사합니다! ^^
질문한가지더.. 신극장판에 대한 리뷰를 질문하기 전에 신극장판도 이런식에 리뷰가 가능할까요? 저도 Q를 국내개봉기다리는입장이라..딱 뭐라하기힘든상황이긴한데요
나와 보면 알겠죠? 완결이 난 후 어쨌든 신판 리뷰도 들고 올 겁니다...언젠간요.
그냥 여기서 뭔가 더 덧붙이면 사족이 될 것 같네요... 추천 꾹 누르고 EOE 다시 보러 갑니다.
감사합니다. _(__)_
궁금한게 있는데요. 마야가 LCL로 환원되기 직전에 노트북에 I need you, J 라고 쓰여져 있는 걸 봤던 기억이 아는데 그 J는 어떤 상징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저도 처음에 살짝 고민한 부분인데, 자세히 보시면 그냥 엔터 키 표시란 걸 아실 수 있을 겁니다. ㅎㅎ
정말로 그냥 엔터 키 표시였네요 ㅋㅋ
이제 드디어 문제의 섬 장면만이 남았군요.... 두둥!
큰 기대는 하지 맙시다, 우리. ㅋㅋㅋㅋ
이제 무슨 낙으로 일주일 일주일을 버틸까 싶습니다 ㅠㅠ
세상에 즐거운 일은 많습니다. ㅋㅋ 재밌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ㅠㅠ 저도 좀 슬프네요.
헤헤 그렇지만 에바Q의 떡밥은 무궁무진하니까 신극장판 시리즈를 기다려봐야겠네요! 교수님, 기대합니다
전 겐도의 죽음은 겐도에 대한 신지 내면의 살의의 형상화라 생각했는데 엄디저트 님은 유이가 그를 대신한 거라 보시는군요. 확실히 유이 복장의 변화가 의미심장하네요. 뭐 절충하자면 신지 내면의 살의가 겐도에 대한 죽음을 초래하긴 했으나 그걸 유이가 자기 손으로 수행해냈다... 라고도 볼 수 있으려나요. 양산형 에바들의 복제 롱기누스의 창꽂기는 주변의 수많은 인류의 보완을 이루기 위해 그들을 파괴하는 일종의 의식으로 여겼는데 에바 내부의 영혼들의 보완으로 보시는군요. 확실히, 수면 위의 파문을 생각하면 절묘합니다. 근데 신지를 바라보던 레이들의 얼굴이 신지 얼굴로 바뀌는 거... 이거... TS인 걸까요. 팬들 및 게임상에서의 누구의 염원이 이미 현실로? (빠직) 사족으로 신지가 아스카 목을 조른 뒤 나타난 음산한 그림들 중 내장이 튀어나온 개와 머리만 남은 생선은 에바 2호기를 연상시키는 것 같습니다. 근데 아래의 신지와 레이가 겹친(...) 장면... 괜찮을까요. 공지의 칼날이 날아드는 거 아닐지. ;;; 어쨌든 다음이 마지막이고 잘 해야 그 뒤 번외편 하나로군요. 오랫동안 정말 수고많으셨습니다. 엄디저트 님의 노고에 답하고자 저도 그 동안 귀차니즘에 미뤄뒀던 큐베와의 인터뷰를 완성시켜야... (뽀각) 죄송합니다.
스펜터님의 분석도 잘 봤습니다. 역시 훌륭하신 해석이었죠. 뭐, 어떻든 상관 없습니다. 저는 겐도우가 그리 좋진 않거든요. ㅋㅋ 신지 얼굴 부분 말인데, 사실 저렇게 무난한 해석 말고 다른 게 있을 것도 같습니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그리 유명한 장면이 아닌 터라, 이 발견을 아주 기쁘고 놀랍게 여기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네요. ㅋㅋㅋ 항상 감사합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합니까. 제 글이 더 나은 글이 될 수 있도록 여러 시각의 좋은 말씀 해 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 봅시다. 큐베 인터뷰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공지...좀 봐 주세요들. ㅋㅋㅋ 저거 야해요? 응? 저게 왜? 저게 왜 야해요, 응? ㅋㅋ 힘 있는 분께서 경고 날려 주시면 소리 없이 사진 수정하겠습니다. 하지만 숭고한 의미를 담은 건전한 장면이라 생각합니다. ㅠㅠ 사랑해요.(?)
글에서도 표현되있지만, 겐도가 죽은것은 유이 또는 리리스의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지는 아버지에게 분노하고 화를 냈지만 동시에 사랑을 원하는 존재기도 하기에 저런식으로 할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이가 했다고 한다면.. 아들 잘 봐달랬더니 막장 만들어놔서 빡친거 말고는 떠오르지 않네요 -_-; 겐도가 죽고 남은 부분이 하반신이니 가장 유력한건 리리스일 경우도 크죠 아니면 아예, 겐도가 죽으면서 생각한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네요.
그리고 안야해요! 저 세계는 남녀 구별이 없는 곳이라 그냥 형태일 뿐입니다![ㅌㅌ]
와 .... 에반게리온 ost 듣다가 딱 소름돋네요... 정말 감탄했습니다 다음글 기대하겠습니다!
참 좋은 곡이죠. 오늘도 감사합니다. ^^ 또 봅시다!
어느덧 마지막이 다가오고있네요 1편부터 항상 본방(?) 사수를 해오며 눈팅만 하다가 처음으로 댓글을 답니다. 사실은 마지막편이나 에필로그에서 글을 남길까했는데 장문의 글과 분석한 글을 보고선 도저히 그때까지 참을수가 없어 이렇게 글을다네요 ㅎㅎ 무엇보다 한주한주 기다리며 기대하던 엄디저트님의 분석글이 이렇게 몇편 안남았다는것에 다시한번 슬퍼지려하네요-_-; 아무쪼록 마지막까지 최선을다해 스크롤의 압박을 느낄수 있는 분량을 기다리겠습니다.^^
소중한 첫 댓글 정말로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도 좋은 글로 찾아 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ㅎㅎㅎ
애니갤러리 관리자들이라면 에바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그게 어떤 연출인지 충분히 판단하리라 생각합니다. 단순히 야하다고 자르는게 아니라 충분히 관리자들이 의미를 알고 있으니, 삭제당하진 않을거 같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사실 나름 공지 위반 않겠답시고 해당 장면 중요 부분은 포샵한 상태입니다. *-_-*
신지와 레이의 도킹(?)장면은 두사람의 표정이 여러모로 맘에 듭니다. 뭔가 나른한듯한게 정말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군요...
도킹 ㅋㅋ 저도 저 장면이 너무 좋습니다. ㅠ.ㅠ
브금하고 같이 읽었더니 왜 이렇게 눈물이 날까요ㅠㅠ 요즘 다시 보니까 에바는 참 희망찬 작품인데 말이에요....
그렇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 에반게리온이 용기와 희망을 준다니까요. 진짜로! ㅎㅎ
저는 LCL로 환원되는 장면을 보면서, 각자 바라던 무언가를 원한게 아닐까 하네요.
네, 맞는 해석이십니다. ㅎㅎ
, 나온 순서대로 양동이에 담긴 물고기 두 마리, 내장이 튀어 나온 개의 모습, 파리 떼와 함께 병에 담긴 목 잘린 생선, 상처를 핥는 고양이 모습이다. 크레파스 그림과 인상은 좀 달라도 역시 기분이 좀 나쁘고, 음 이부분은 주관적인건가요? 아니면 감독이나 코멘터리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한건가요?
아뇨, 그런데 어떤 부분이...그림이 지칭하는 바는 분명하고, 기분이 나쁜 건 공론에 속한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관련 언급은 없습니다. 주관 맞아요.
아 주관이군요.. 음 내용전부가 감독언급이나 코멘터리에서 나온 해설인줄 알았는데 ㅎㅎ 알겟습니다
모든 리뷰 전편을 통틀어 감독이 정확히 코멘터리 했다고 하는 요소는 "미사토가 카지를 죽인것이 아니다." 정도입니다. 그외에 작품 내용 해석에 대한 코멘터리는 전무. 엄디저트님의 주관적인 내용이긴하나 작품의 이해를 돕기위한 근거와 해석을 확실하게 제시하고 계시기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감독이 의도한 정답을 제시하고계신다 생각됩니다. 단,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누군가의 제시가 아니라 개개인의 감상이기때문에 감독은 어떤 코멘터리도 하지않을것이고 들을수도없을겁니다. 그점을 감안하시고 리뷰를 읽고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스스로 생각하시면 좋은 감상이 되겠지요^^
아.. 진짜 몇번을 봐도 난해하고 괴상한 작품이었고 EOE의 대강의 의미와 틀을 알고 봐도 뭔지 이해가 안가는 장면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이렇게 찝어주시니까 유아용 애니 보듯이 간단명료하고 머리에 쏙쏙 들어오네요.. 대단하십니다 정말 ㅠㅠ 대단하세요.. 정말 엄디저트님 아니었으면 저 모든걸 그냥 놓칠뻔했는데 감사합니다 매번!! 그리고 개인적으로 양산기가 코어를 창으로 뚫는 순간..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LCL화 되고 십자가가 세워질때 그때 그 효과음은 몇번을 봐도 절규와 공포에 가득찬 비명으로만 들려서 섬뜩했었는데.. 저 비쥬얼에서 환희의 함성이라니 그것도 나름 섬뜩하네요ㅋㅋ;;
어유 아닙니다. ㅠㅠ 재밌게 봐 주시니 제가 훨씬 감사합니다. 입이 지겨울 것 같네요. ㅋㅋ 남은 시간도 잘 부탁해요. 좋은 밤 되세요. ^^
저게 비명같기도 하지만 상당히 에로한 신음이기도 합니다. 전 그래서 영상과 행동이 안맞아서 보기 좋은 장면으로 느껴지진 않았어요..
엄교수님 치사하셔요 왜 마지막 장면만을 남겨놓습니까 ㅜㅜ 제일 궁금한걸 6일이나 기다리게 만드시다니 너무 가혹하셔요 ㅜㅜ 이번 리뷰도 잘 보고 갑니다 ㅎ 확실히 에바는 성적 비유를 은유적으로 잘표현했네요 ( 제대로 했다면 바로 방송에 걸려들었겠지만요 ㄷㄷ) 유이 복장 변화는 꿈도 몰랐는데, 숨은 곳까지 긁어주셔서 고맙습니다 ㅎ 그런데 확실히 마지막 장면들이 함축이 많아서, 리뷰도 상당히 난해하네요;; 몇가지 질문좀 올려도 되지요? ㄷㄷ 도중에 에반게리온은 오타쿠 비판 작품이 아니라고 하셨잖아요. 꿈은 탐닉하는것은 잘못이 아니라고 하니까요 ㅎ 그러면 여기서 오타쿠의 정의는 단순히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현실에 대한꿈을 꾸는 사람, 다시말해 애니메이션을 많이 보는 사람'이라고 해야하나요?? ㄷㄷ 그러면 안노 감독의 비판 대상은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현실에 대한 꿈을 꾸는'오타쿠가 아닌, '애니메이션을 보면 꿈을 꾸되, 현실은 잊은 채 폐쇄적으로 사는 ' 사람들이라고 해야하나요?? (여기서 제가 사용한 오타쿠 표현이 적절치 않다면 지적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서드 임팩트가 어느 정도 진행 된 후, 표현된 3차원 현실세계는, 서드임팩트로 인해 붕괴된 신지의 세계, 즉 애니메이션 세계라고 봐야하나요?? 밤늦게 리뷰를 봐서 그런지, 이해가 하나도 안되네요 ;; 낮에 다시 곱씹어 봐야겠습니다 ㅜㅜ 안노 감독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같네요;;; 만약 이게 영화나 드라마 등으로 나왔다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각광받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학부모나 성인들을 포함해서, 현재 성인이 되는 제 또래의 친구들까지도 애니메이션에 대한 편견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삶에 대한 허무감 때문에 방향을 찾고자 에반게리온과 슬레이어즈를 본 저를 오타쿠로 몬 것은 좀 서운하더군요 ㄷㄷ). 6일후 리뷰에서도 적고 싶지만, 오늘날 인터넷으로 일회용식의 가벼운 만남을 하고, 묻지마 살인 등으로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타인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알리는 에반게리온은 어쩌면 오늘날 현대사회의 힐링물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ㅎ 제목 자체가 생각해보면, 그런 의미를 담은 것 같습니다 ㅋㅋ 리뷰고맙습니다 ^^ 마지막 리뷰 기대하겠습니다 ㅎ 더불어 신극장판 리뷰도 기대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우선 중요한 게 '오타쿠'라는 것의 의미 전제겠네요. 워낙 단어 자체가 해석 방향이 여러 갈래 있는 탓에 논란이 생길 수 있으나, 저는 오타쿠라는 단어 자체는 일단 가치중립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생각합니다. 애니메이션, 영화, 특촬 따위에 매니아 동급 이상의 열정을 갖고 마음을 쏟는 사람들 말이죠. 다만 일본이나 특히 국내에서 오타쿠, 하면 생각하는 이미지가 정말 히키코모리 수준이라, 그런 의미의 오타쿠를 생각하는 사람에게 에반게리온이 '오타쿠를 비판하는 작품은 아니다.'라 하면 웃긴 말이죠. 에반게리온이 오타쿠를 비판하는 작품이다-라는 명제를 제가 본문에서 부정하긴 해도 '부정적인 오타쿠'는 비판하고 있으며, 그것을 본문에서, 그리고 작품에선 '현실에서 도피한 채 꿈을 나 자신의 대체물로 생각하는 사람들'로 표현하고 있죠. 반대로 오타쿠(가치중립적인 의미로)라 해도 건전한 현실의 삶을 살며, 꿈에 대해 명확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비판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러나 국내 인식에선 에반게리온이 그런 오타쿠도 비판하는 식으로 이해하여 결과적으로 <오타쿠(안노)의 오타쿠 까는 작품>이란 식으로 설명되곤 하죠. 그런 감상은 가지만을 보고 나무 이름을 정하는 수준이며, 따라서 이 글은 그에 대한 반박이기도 해요. 레이가 꿈에서 깨라는 것 때문에 꿈은 나쁜 거라고 생각하는 게 오독의 중심이 되는 부분입니다. 꿈은 인정하되, 그 꿈을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 일단 현실을 보란 말이니까요. 3차원 실사 세계 연출은, 신지의 입장에서는 보완 이후, 꿈의 세계와도 같으나 그렇다고 영화의 나오는 부분 이꼴 보완 이후의 세계라고 보는 건 곤란할 것 같습니다. 그 분위기, 그 상징을 파악하고 감독이 말하려는 바를 캐치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일종의 은유며, 우리가 감히 사고할 수 없는 전혀 다른 환상의 세계를 그리려 할 때, 차원을 건너 뛴 표현 만큼 용이한 게 없죠. 우리가 일반 감각을 통해 개체로 인지할 수 있는 유이한 두 차원이 2,3차원이니 말입니다. 에반게리온이 말하는 메시지이기도 하고, 사실 굉장히 일반적인 메시지라 '교훈'에 더 가깝죠. 사람이 어떤 것에 빠지는 건 좋으나, 자칫 그게 중독이나 도피의 형태로 보이면 곤란하잖아요. 그렇지 않은 선에서 모든 취미 활동은 존중 받아 마땅한 훌륭한 인간 특능입니다. 애니메이션에 대한 편견은 저도 많이 느끼긴 해도, 편견을 가진 쪽이 잘못이란 걸 알기 때문에 상관 없습니다. 과거의 그런 인식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 애니메이션에는 폭력도, ㅅㅅ도 있으나 꿈과 희망도 있으며, 저는 후자 쪽이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감상 감사합니다. ^^
글구 궁금한것이 마야의 팔이 LCL화 안되고 그냥 굴러떨어진다고 해서 기계팔이 아니었느니 소리도 많앗는데 아시는거 있으신지?
마야의 팔은 LCL때문에 형체가 무너지며 잠깐 떨어져나온것을 보여줬을뿐 마찬가지로 직후에 본체(?)와 마찬가지로 LCL화 되었을것이라 생각됩니다. 보여주는 연출로도 거의 그렇게 보였고 설사 마야의 팔이 기계팔이라고 쳐도 그에 대한 떡밥이나 어떠한 의미조차 찾을수없다는데에서 신빙성이 떨어지는 가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노트북 화면에 띄워져있는 글자를 잠깐 보여줬다 가리기 위한 노련한 연출의 일종에 가깝다는게 맞지않나 싶습니다.
케젠님 설명에 동의합니다.
신지라는 한 인간의 각성의 과정이 전통적인 서사로 표현될 수 있었다면 에반게리온은 장르를 뛰어넘어 정말 흠없는 인류의 걸작이 되었을 텐데(물론 지금도 충분히 걸작이긴 하지만요)... 분량의 한계인지 표현방식의 한계인지 여하튼 다소 변칙적인 방법으로밖에는 표현될 수 없었던 점이 약간 아쉽습니다. 여하튼 엄디저트님의 손을 거치고 나니 흔히 오타쿠들의 현실도피물로 폄훼되었던 에반게리온이라는 작품이 여러 등장인물(특히 유이와 미사토)들의 기백(氣魄)이 넘치는 숭고한 이야기로 다시 태어나네요! 다음 35편도 기대하겠습니다.
최근에 들어서는 거의 이렇게 돌려말하는 작품이 전무하죠..살짝 숨기고있는듯해도 이내 직설적으로 알려주는 작품들이 허다합니다 ㅎㅎ 하지만 그런 작품들 보다도 이렇게 은유적으로 숨겨놓은 메시지가 정답이 되어 자신에게 다가왔을때, 그 메시지가 와닿는게 차원이 다르지않나요?ㅎㅎ 물론 분량과 표현의 한계라는 맹점도 없진않았겠지만 저는 이런 표현이 안노식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술 작품에도 추상적인 작품과 사실적인 작품이 있듯이 영상매체에도 그만의 표현예술이 존재하니까요^^
인정하고 납득하되, 제 개인적인 시선에선 일부 부정합니다. 제가 에반게리온에 깊이 빠지게 된 이유가 바로 그 변칙성과 특이성에 있기 때문이죠. ㅎㅎ 만약 신지의 성장 궤적을 그저 평범한 기승전결, 전통적인 서사 방식으로만 표현했다면 지금 우리가 말하는 에반게리온만의 매력이 많이 덜할 것 같아요. 그런 이야기는 깔끔하고 정갈하겠지만 사실 현실이라는 게 마냥 이쁘지만은 않죠. 동네 잔치 밥상 비슷하게 군데 군데 쓰레기나 뼈다귀도 놓여 있는 그런 거요. TV판 제작 당시엔 분량과 표현 방식의 한계가 있었으나 극장판은 최소한 그런 제약이 감독의 역량을 방해한 것 같진 않습니다. 오히려 그 TV판도, 재정적, 시간적 제약이 안노의 능력을 강조해 준 꼴이죠. 저는 그 많은 '반칙' 덕분에 에반게리온이 좋습니다. ^^
루리웹-507084362님 댓글 밑으로 내일 다시 답글 달겠습니다. 오늘은 일찍 좀 갑니다. 내일 아침에 일이 있는 터라. ^^ 좋은 꿈 꾸세요!
앗 답글 보고 잘려고 했는데 ㅋㅋㅋ 아무튼 고맙습니다 ^^
유이의 옷모양새로 여성과 어머니의 차이를 연출한건 왜 이제 알았을까요;; 몇번씩 재탕도 했는데 도킹에나 관심만 갖고-_- 게다가 초호기의 색상과의 연계....어찌보면 대놓고 표현한건데 숨겼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더 못찾게 되는것 같아요. 그것참 희안하네...
그리 캐치하기 쉬운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선의 포인트가 아닌 부분이라 안노가 숨긴 퍼즐 조각 중에서도 난이도가 높은 편이라 생각해요.(는 제 기준으로 늦게 발견했다는 말. ㅋㅋ) 이렇게 숨은 조각 찾는 맛이 에반게리온의 매력입니다. 또 있을 것 같은데?!
소름돋는 ㄷㄷ
과연, 정말 에바가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작품이었군요. 실사 영상에 그런 의미가 숨어있다고 볼 수도 있다는 사실에 감동했습니다. 그래요, 애니를 좋아하는건 나쁘지 않은거죠! 단지 그곳으로 도망치는 사람들이 나쁠 뿐.....(뜨끔;;)
사실 도망치는 사람들이 나쁘다기 보다는, 안노와 같이 꿈과 현실이 거의 하나가 된 사람이 볼 때, '안타깝고 아쉬운 것'이겠죠. 취미 활동을 가진 사람 중 이런 멘트에 대해 전혀 뜨금하지 않을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겁니다. ㅎㅎ 저도 그래요. 사람이 뭔가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자력으로는 그 선을 긋기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자주 반성도 하고, 뜨끔도 하면서, 현실을 사는 거겠죠. ^^
오늘 올리신다는 것을 깜빡했군요.... 이렇게 보면 eoe도 꿈과 희망을 주는 전개 인데... 마지막 장면 때문에 eoe의 편가가 부정적으로 갈렸죠... 그러나 엄교수니 이라면 마지막 장면을 왜 안도가 넣었는지 설명래 주시겠져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