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은 나진우. 얼마 전에 고등학교에 입학한 파릇파릇한 신입생(?)이다. 키는 뭐 평균 정도이려나.얼굴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잘 생긴 편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몇 번인가 그렇다는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그런 걸로 자랑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얼굴이다는 아니라는 것 역시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머리카락은 약간 갈색으로 염색하고 있지만, 사실 이런 머리로 염색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다만 중학교 시절기분 전환으로 머리를 염색해 봤더니 잘 어울린다는 얘기가 많아서 그 뒤로 이렇게 하고 다니는 것뿐. 뭐종합적으로 얘기하자면,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꽤 괜찮은 남자가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까지 여자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다. 사귀기직전까지는 가 본 적이 있지만, 어쨌든 사귄 적은 없다. 사귄것과 사귀기 직전까지 간 것의 차이는 크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꽤괜찮은 외모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까지 여자를 사귀어 본 적이 없다.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내 성격이 여자에게혐오 받을 정도의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어째서 나는 아직까지 여자를 사귀지 못한 것인가. 그것은 내가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어떤 저주와도 같은 현상 때문이었다.
저주. 그것은 말 그대로 저주였다.실제로 귀신이나 외계인 같은 초자연적 현상이 존재하는 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런 건 묻지마. 어쨌든 중요한 건, 이것이 실제로 저주든 아니든 간에, 당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저주로 밖에는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학교시절부터 시작된 이 저주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다지 저주로 느껴지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사자인 나는 알 수 있다. 이것은, 저주 그 이외의 어떤 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 저주라는 건바로…
“꺄앙~”
“곰돌이 모양…”
아침의 상쾌한 등교길. 봄바람에 휘날려 나의 앞을 걷고 있던 여학생의치마가 들려져 올라간다. 나는 멍하게 여학생의 팬티에 그려져 있던 모양을 입에 담았다.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치마를 누르며 뒤돌아본 여학생이 나의 입모양을 읽고 화를 내며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벗어나고있었다.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아, 또 저질러 버렸네. 나는 한숨을 쉬며 이 망할 놈의 저주를 저주했다.
뭐, 이런 식이다. 그러니까그 저주라는 것은, 이런 식으로 내가 원하지 않아도 어떤 식으로든 나를 향해 에로한 일이 일어나게 된다는것이다. 방금 전에 바람이 불어 앞에 가던 여학생의 팬티가 보이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 타이밍이나 빈도, 대상 등은 완전히 랜덤. 때문에 나는 언제 어디에서라도 이 저주가 발동했고, 결국 여학생들로부터변태라는, 오명 아닌 오명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 현상의 무서운 점은 그 뿐만이 아니다. 이 현상에는 또하나의 짜증나는 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 현상이 일어나게 될 경우, 나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는 어떤 힘이랄까, 세뇌라고 할까, 그런 것에 의해 이 에로한 상황에 나 자신이 자동적으로 편승하게 된다는 점이다. 방금 전에 스스로 곰돌이 팬티라는 것을 입에 담은 것처럼 말이다. 이두 가지에 의해 나의 중학교 시절의 여학생들 사이에서의 평판은 더 이상 낮아질 수 없을 정도로 낮아졌고, 결국나는 여자친구를 사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굳이 해명하자면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여동생과 벌어진 해프닝 역시 이 저주의 연장이라고 할 수있는 것이다. 사실 여동생과의 이런 해프닝은 중학교 시절부터 번번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여동생도 이제는익숙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성추행에 가까운 거니까. 어쨌든 용서받을 짓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아주 약간이나마나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것은 나의 여동생이 사실은 나와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것이지만, 그래도 나를자신의 친오빠라고 알고 있을 나의 여동생이 느낄 감정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뿐이다. 내가 죽일 놈이지. 엄마에게 맞아 부어 오른 뺨을 어루만지며,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있었다.
“야, 왜 이렇게 힘이없냐.”
등 뒤를 후려치며 내 옆으로 자연스럽게 파고들어오는 녀석이 있었다. 생글거리는미소에 밝은 연갈색의 머리카락을 소년만화 주인공처럼 세우고 있는 이 녀석은 하승호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방금전의 행동에서도 알 수 있듯이, 녀석은 중학교부터의 친구로서 중학교 내내 나와 같은 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같은 고등학교로 진학하더니 또 다시 같은 반으로 배정받게 된, 악연이라면 악연이고 인연이라면 인연인, 그런 관계의 녀석이었다. 개인적으로 외모는 나와 같거나 나보다 아래라고생각하지만, 녀석에게는 나에게 걸려 있는 것과도 같은 저주가 없다. 때문에, 녀석이 나보다 여자친구를 먼저 사귀었다던가, 키스를 해봤다거나, 여자친구를 많이 사귀어 봤다거나, 이런 건 전혀 부럽지 않다. 부럽지 않다.
부럽지 않다고!
“냅 둬. 단지 어제 게임좀 하느라 잠이 부족해진 것과 그에 따른 일련의 트러블적인 사건 때문에 조금 피곤해졌을 뿐이니까.”
덧붙이자면 오늘 아침 내가 알람에 맞춰 일어나지 못한 것도 어제 늦게까지 온라인 게임을 했기 때문이지만.
“흠, 네 그 붉어진 뺨을보니 분명 아침부터 여동생과 한바탕 하고 온 게 틀림 없겠군.”
“시, 시끄러워.”
사귄 기간이 긴 만큼, 승호 역시 나에게 걸려 있는 이 ‘저주’에 대해서도 알만큼은 안다. 다만이 저주를 심각한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는 나와는 다르게 녀석은 나에게 조금 재미있는 일이 많이 일어난다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지만.
아, 그리고 여동생에 대해서라면, 이녀석은 내 여동생이 나의 친동생이라고 알고 있다. 내 여동생이 친동생이 아니라는 것은 부모님과 나를제외하면 아직 아무도 모르는 비밀로서, 나는 이제까지도 앞으로도 나의 여동생을 친동생으로 여겨왔고, 여기고 있으며, 여길 생각이다. 그렇기때문에 아무리 친한 친구에게라도 내 여동생이 사실은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얘기한 적이 없으며, 그것은아마도 무덤까지 가져갈 비밀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네 여동생이 고생이 많다. 뭐, 그런 거야 언제나의 일이니까 상관 없지만, 그보다도 부활동, 정했어? 내일까지는 정하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아, 영화 감상부나 이런 거 신청하면 넌 내 손에 죽는다.”
“영화 감상부가 뭐 어때서! 무난하고좋잖아! 평소에 모일 일도 거의 없을 거고, 클럽활동일에영화만 한 편 보고 돌아가면 되는 거니까 말이야.”
“그게 문제라고! 모일일이 없다는 게! 넌 고등학교 내내 여자와의 썸씽 없이 고등학교 생활을 보낼 생각이냐!”
“윽… 내, 냅두라고!”
은근슬쩍 영화 감상부에 들어가려고 마음 먹고 있던 나는 녀석의 말에 찔리는 것을 느꼈다. 사실, 애초에 영화 감상부에 들어가려고 생각한 목적 자체가 그거였던것이다. 애초에 여자와 얽히면 매우 높은 확률로 에로한 상황이 벌어지고 만다는 저주 때문에 평판이 떨어지게된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여자와 마주칠 환경을 만들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면 여자를 어떻게 만날 거냐고 하면지금의 나로서도 딱히 대답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일단 평판이 떨어진 상태인 이상 여자를 만난다고 해도소용은 없다. 그러니 일단 평판을 떨어지지 않게 해놓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건 그렇지만 승호 이 녀석 오지랖 쩌는구만 진짜! 중학교 시절부터그러기는 했지만, 나에게 여자친구를 만들어 주기 위해 이렇게나 열심이라니. 너나 잘해! 라고 하고 싶지만 이미 잘하고 있지. 이 녀석은.
“이왕이면 여자가 많고 모임이 많은 부활동으로 정하라고. 연극부라던가, 천문부라던가, 음악관련 부에도 꽤나 여자들이 몰릴 것 같고. 내가 가입할 축구부도 여자는 없지만 잘 하면 여자에게 인기는있을 테니 부르고 싶긴 하지만…”
“안 된다, 운동부는. 운동부는 안 돼. 절대로.”
나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성화였던 승호는, 나의 대답에 난처한 듯 미소 짓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나올 줄알았다. 너, 엄청난 몸치니까 말이지. 그 정도는 이해해 주지 못할 것도 없지.”
“그래. 그런 거다.”
나는 간단하게 승호를 납득시키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행동에 납득했다. 확실히, 운동부는 여자와 직접적인 접촉이 없으면서도 여자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이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게만은 적용되지 않는 일이다. 운동을 못하는 운동부부원라니, 원래 있던 인기조차 날아갈 것이다.
“어쩔 수 없군. 뭐, 아직 내일까지는 시간이 있으니까 말이야. 천천히 생각해 봐.”
승호는 거기까지 말한 뒤 내 어깨를 탁 치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리고는내가 처음 보는 여자아이 옆을 나란히 걸으며 여자아이와 즐겁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일부러 그러는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만 정말 짜증나는구만, 저 녀석.
그 날 점심시간, 나는 1층게시판 앞에 서서 부활동을 선전하는 포스터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학교는 학풍이 꽤 자유로운 편이라꽤나 다양한 종류의 부활동이 있는 편이었고, 많은 인원이 포함되어 있는 부활동이 있는 반면 고작 수명의 인원만이 활동하는 부활동 역시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이 정도의 각양각색의 포스터가 게시판이 모자라 그 옆의 빈 벽에까지도 빼곡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면 인원수가 그렇게나 차이 나는것도 있을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흠, 고민되는군. 어떤 부활동을 선택하는 게 좋으려나.
일단 처음에는 편한 기분으로 포스터를 구경하기로 하자. 부담 없이포스터를 구경하다 보면 끌리는 부활동이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고. 어디 보자.
일단 게시판 한 가운데를 큼지막하게 차지하고 있는 이 포스터는 복싱부의 포스터인가. 유명한 복싱 만화 캐릭터가 하얗게 불태우고 있는 그림을 내세워 큼지막한 글씨로 패기를 강조하고 있는 디자인으로서, 파이팅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겨나오는 모습이다. 개인적으로 격투기에는관심이 있고, 이런 격투계는 몸치보다는 힘과 체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므로 일단 끌리는 면은 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위험한 스포츠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인터넷영상에서도 KO당하는 장면이라던가 보면 장난 아닐 거 같고 말이지. 일단은보류이려나.
그 다음은 취주악부의 포스터. 몇 명의 날개 달린 천사가 일렬로 늘어서서눈을 감고 관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다. 확실히, 취주악부라고하면 여학생들이 많을 것 같은 느낌이지만, 실제로 어떨지는 잘 모르겠다. 여학생과 함께하고 싶다면 이런 곳을 고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취주악이라니. 나 악기 전혀 모르는데 말이지.
그 외에도 게시판에는 작은 비행기 모형 앞에서 단체로 찍은 사진이 인쇄된 항공부라든지, 플라네타리움이 비추는 별자리 사진이 붙여진 천문부, 표현의 자유라는큰 글씨 아래에 상당히 야해 보이는 여성 캐릭터가 섹시한 포즈로 그려져 있는 만화연구부(솔직히 이건나로서도 좀 끌렸다.), 신문부, 연극부, 방송부 등의 포스터가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끌리는 부활동은 많았지만반대로 말하면 어느 부든 거기서 거기처럼 보였다. 흐음, 곤란하네이거.
그렇게 나는 어떤 부활동을 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 게시판 앞을 지키고 있었다.당장 내일이 부활동 신청서 제출일인데 아직도 이러고 있으면 어떻게 하냐고. 벌써 다른 애들은마음에 드는 부활동을 찾아 실제로 견학도 해보고 친분도 쌓고 했을 텐데, 부활동에 들어가면 이미 친해질애들은 다 친해져서 끼어 들어가기 힘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젠장, 이렇게 된 이상 승호가 뭐라고 하든 말든 영화감상부나 들어갈까 하는 유혹이 생긴다.
아아, 하지만 승호 녀석, 분명그거 여자친구였지. 여자친구였겠지. 나는 아직까지 여자와사귄 적도 없는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오른다. 두고봐라. 두고 보아라. 네 여자친구보다 훨씬 예쁘고 지적이고아름다운 여자친구를 만들어 보일 테니까. 하지만 그러려면 적당한 부를 찾지 않으면…
바로 그 때, 나의 눈에 게시판을 큼지막하게 차지하고 있는 복싱부의포스터 우측 하단 부분, 다른 포스터와 겹치는 부분에 복싱부와 다른 포스터 사이로 어떤 포스터의 종이자락이 배경에 감춰져 가려져 있는 것이 보였다. 보호색이라는 건가. 우연인지일부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종이자락이 신경 쓰인 나는 복싱부 포스터의 한쪽 끝을 고정하고 있는 압정을빼고 포스터를 들춰보았다. 그러자 숨겨져 있는 포스터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 포스터에는 다른 포스터와는 달리 시선을 끌만한 일러스트나 이미지는 없었다.다만 이런 글이 색연필과 사인펜 등을 이용하여 써져 있을 뿐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그 포스터에 쓰여 있는 글을 소리 내어 읽었다.
“에로연구부. 진정한 에로가무엇인지 탐구하고 그 본질을 파헤쳐 봅시다. 더불어 섹시하지 못한 당신에게 섹시함을! 이성에게 인기를 얻고 싶다면 에로연구부로!”
뭐야 이게. 에로연구부라니. 진지하게말하는 건가. 진짜로 이런 부활동에 들어갈 녀석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에로연구부라니, 어디 가서 말도 못한다고. 이런 부활동 한다는 건. 애초에 포스터를 숨겨 놓은 걸 보면 자기들도쪽팔리다는 사실을 알긴 아는 것 같은데, 진짜로 이런 부활동이 있긴 있는 건가. 보나마나 남자들만 바글바글한, 모여서 에로 비디오 같은 걸 감상하는그런 부겠지.
나는 세로드립이나 대각선드립이 있는 게 아닐까 살펴봤지만 아무래도 그런 건 없는 듯 했다. 더 이상 볼 것도 없다. 나는 이 포스터를 못 본 것으로 하며, 혹시라도 나와 같은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원래부터 에로연구부의 포스터를 덮고 있던 복싱부의포스터를 내려, 압정으로 고정했다. 결국 오늘의 수확은 제로. 부활동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겠군. 나는 그렇게생각하며, 이제 슬슬 교실로 돌아가기 위해 게시판으로부터 몸을 돌려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향했다.
2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계단을 밟은 순간이었다. 두두두두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히 슬리퍼를 신고 계단을 질주하는소리였다고 생각한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더니, 이윽고 소리의주인공이 층계참을 돌아 그 모습을 드러냈다.
빠질 듯 짙은 푸른 색이 감도는 머리를 레귤러 스타일의 트윈테일로 묶은 소녀였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을 등지고 있었다. 단추를 잠그지 않은블레이저를 휘날리며, 소녀는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층계참을 박차 올랐다. 밑에 있던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약간 어려 보이는 귀여운 얼굴에당황한 표정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공중에 떠오른 상태다. 이미멈출 수 없다. 나 역시,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처하지못하고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움직이지 못한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순간이 지속된다. 그녀의 크게 떠진 맑은 눈동자와, 앙증맞은 작은 코와, 놀란 것처럼 벌어진 입술이, 나의 눈동자에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처럼박혀 들어온다.
멈춰있는 시간은 어느새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온다. 공중에 떠 있는그녀를 어찌할 수도 없어, 나는 손도 쓰지 못한 채 그녀의 충돌을 받아들인다. 둔탁한 충격이 뒷통수를 강타한다. 나는 눈 앞이 컴컴해지는 것을느꼈다.
“크으…”
고통은 한 박자 늦게 찾아왔다. 나는 고통을 참으며 아직도 별이 도는것 같은 머리를 들어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목이 무거웠다. 눈을뜨고 있었지만 눈 앞이 아직도 캄캄했다. 한 순간 장님이 된 건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윽고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읏.”
입술에 무언가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뺨에도 매끄러운, 따뜻한 감각이 느껴지고 있다. 동시에 약하게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들려왔다. 중학교 시절의 경험에 의한 데자뷰가 떠오른다. 분명히이 상황은…
“…!”
나는 당황하며 여자 아이의 치마 속으로부터 얼굴을 빼내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여자아이는 엉덩이를 치울 생각을 하지 않은 채 귀여운 목소리로 신음소리를 낼 뿐이었다.
“아앗… 앙……!”
“……!”
뭐, 뭐 하는 거야 이 여자! 분명히충돌이 있고 나서 꽤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하는데, 이 여자는 어째서 내 얼굴 위에서 일어나지 않는 거냐고! 나는 머리를 부딪친 아픔도 잊고 여자를 치우기 위해 여자의 몸이 있는 쪽으로 손을 뻗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상황에서 입을 열면 훨씬 더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중대한 실책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무심코 손을 뻗은 곳에는, 여자 아이의 부드럽고 말랑말랑하고마쉬멜로 같은 살덩어리가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젠장. 이거 그거로구만. 그 저주. 빌어먹을.
“아앙…!”
내가 그 여자아이의 가슴을 쥐자, 여자아이는 신음 소리를 더 높이기시작했다. 아니, 그런 것보다 어서 비키라고! 치마 속도 이제 점점 덥고 습기가 차기 시작해서, 내 얼굴에 땀이맺히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아아, 이젠 모르겠어. 나는 가슴이고 뭐고 이 정신 이상해 보이는 여자를 치우기 위해 손에 힘을 가해 밀었다. 하지만 내가 여자를 미는 것과 동시에, 여자는 스스로 몸을 뺀다. 암흑 속에 묻혀 있던 얼굴이 드디어 시원한 공기를 맛본다. 푸하! 하지만 여자는 내 몸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내 가슴팍에엉덩이를 걸친 채 나를 내려다 본다. 나는 약간 화가 난 표정을 한 채 소녀를 노려보았다.
“변태.”
푸른 머리의 소녀가 순진한 얼굴로 제일 먼저 꺼낸 말은, 아무 것도하지 않은 나를 심하게 매도하는 말이었다.
“누가 변태냐! 변태는너겠지! 애초에 이렇게 된 건 네가 다짜고짜 내 얼굴에 올라타고 비키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잖아!”
내 필사적인 항변을 귀담아 듣는 척도 하지 않고, 소녀는 갑자기 다른말을 꺼냈다.
“있잖아, 어땠어? 방금 그 시츄에이션.”
“뭐, 뭐?”
예상치 못한 질문에, 나는 당황하며 소녀를 올려다보았다. 소녀는 순진해 보이는 눈을 반짝이며 다시 한 번 질문했다.
“어땠어? 나 말야, 야하게 느껴졌어? 내 목소리, 섹시했어?”
“무, 무슨 말 하는 건지지금 잘 이해가 안 되는데 말이지!”
눈 앞의 순진해 보이는, 섹시라고는 눈꼽만큼도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소녀가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낸 것에, 나는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예쁘지않은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방금 전 소녀의 얼굴을 마주친 순간, 아주잠깐의 순간이지만, 나는 별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듯한 착각에 빠졌으니까. 어느 쪽이냐고 하면 귀여운 얼굴이다. 그것도 무지 귀엽다. 입학 한 지 얼마 지나지는 않았지만, 이런 소녀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사실 자체가 놀라울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녀로서의 매력에 불과하다. 어른으로서의, 성적인 매력을 논하라고 한다면, 나에게는 자신이 없다. 가슴이 눈에 띄게 큰 것도 아니고, 섹시한 옷을 입은 것도 아니고, 얼굴 표정 역시 어른의 요염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어디까지나눈 앞의 소녀는 예쁜 것이지 섹시한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런 이유로,나는 소녀의 질문에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멀뚱멀뚱 소녀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음… 그러니까 좀 더알기 쉬운 말로 바꿔서 말하자면 말이지.”
소녀는 손가락을 입에 물고 약간 고민하더니, 나로서는 감히 상상도하지 못한 말을 입에 담았다.
“꼴렸어?”
“푸훗- 콜록콜록…”
마신 것도 없는데 사래가 들릴 정도였다. 내 기침이 끝나기를 기다려, 소녀는 얼굴이 붉어지는 일도 없이 얼굴을 가까이 하며 재차 물어왔다.
“대답해줘. 방금 전의시츄에이션, 어떻게 생각해?”
“모, 몰라, 그런 거!”
붉어진 얼굴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나는 억지로 앞의 소녀를 치우고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 이상한 소녀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 잠깐만!”
소녀가 나의 팔을 붙잡아서, 나는 약간 신경질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푸른 머리의 소녀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소녀는 나보다 머리한 개 약간 안 되는 정도로 키가 작은 것 같았다. 내가 무언으로 바라보자, 소녀는 갑자기 자기 소개를 시작했다.
“내 이름은 김마요라고 해. 어머니가밥을 김하고 마요네즈하고 같이 먹는 걸 좋아해서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야.”
“어쩌라고! 그게 대체지금 무슨 상관인 건데!”
그야말로 아무래도 상관 없는 자기 소개를 들으며, 나는 나도 모르게태클을 걸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올해 이 학교에 입학한 신입생. 반은 3반. 그쪽도 신입생이지? 이름이 뭐야?”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올해 입학한 신입생들은 아직학년을 상징하는 색이 그려져 있는 명찰을 달고 있지 않다. 때문에 명찰이 없다는 것으로 신입생이라는것은 파악할 수 있지만, 이름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내 이름은 나진우. 1학년 1반. 근데 그건 갑자기 어째서 물어보는 거야.”
“부탁이 있어.”
마요는 진지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더니, 갑자기 허리를 숙여 90도로 만들었다. 나는 당황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마요의뒷통수를 쳐다보았다.
“부디 아까의 감상을 제대로 말해주었으면 해!”
“……”
통성명을 하고 머리까지 숙여가면서 부탁한다는 게 고작 그런 부탁이라니. 나는약간 어이가 없기도 하고, 질리기도 해서, 한동안 말 없이서 있었다.
“…한 가지 이쪽에서 물어봐도 될까?”
“물론이야.”
“어째서 그런 게 궁금한 거야?”
솔직히 어째서 이렇게 이상한 짓을 하느냐고도 묻고 싶었지만, 아무리그래도 초면에 실례인 것 같아 자제하기로 한다. 마요는 허리를 숙인 상태에서 머리만 들어올려 내 질문에대답했다.
“연구를 해야 하니까!”
“여… 연구?”
“응. 여자로서의 매력을갖추기 위한 연구.”
“……”
대단한 걸 기대한 건 아니지만, 뭐랄까. 너무 정직한 답변이라 김이 샜다고 할까.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는곰곰히 생각해보기로 했다. 솔직히 별로 내키지는 않았다. 에로비디오를 감상하고 감상문을 제출하시오 같은 문제도 아니고 낯 뜨겁다고, 이런 건. 하지만 이렇게까지 부탁하는 마요를 눈 앞에 두고 거절하는 것도 왠지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아직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어서, 나는 질문을 했다.
“그 연구를 굳이 나를 대상으로 하는 이유라도?”
“사실은 다른 남학생들에게도 하려고 했지만 말야, 다들 어째선지 도망가 버려서. 그런데 마침 이런 시츄에이션이 일어나서, 이미 일어나 버린 건 어쩔 수 없는 거고, 그렇다면 이미 일어난김에 데이터를 얻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아니, 애초에 중간까지는어쩔 수 없이 일어나 버렸다고 해도 후반부는 완전히 네가 일으킨 거잖아.”
하아, 어쩔 수 없지. 어쩌면겉모습만 예쁘고 실제로는 괴짜라고 불리는 부류에 속하는 여자아이일지도 모르겠다. 괜히 얽히는 건 싫지만, 여기서 거절해도 나중에 마주치면 더 곤란할 수 있기 때문에 빨리 끝내고 헤어지는 게 나을 지도 모른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학생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대충 대답한다고 해도 알아서 받아들여 주겠지. 나는 작게 고개를끄덕였다. 마요는 그 즉시 허리를 펴고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에게 다가선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고마워! 그러면 첫 번째의질문인데, 아까의 일로 발기했어?”
“그, 그런 표현은 조금자제해 주지 않을래.”
나는 헛기침을 한 후, 약간 부끄러움을 느끼며 작게 말했다.
“해, 했어. 아, 착각은 하지 마. 아주조금이니까.”
“그렇구나! 좋아, 메모메모…”
마요는 치마에 달려 있는 주머니를 뒤적거려 수첩과 펜을 꺼내 들고는 뭔가를 열심히 적어 내려갔다. 여, 열심이네. 나름대로.
“그러면 처음으로 흥분한 건 언제?”
“그, 그러니까… 내 얼굴이 여자 아이의 치마 속이라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을 때려나.”
“그 때의 느낌을 자세히 말해줘.”
“느, 느낌이라니.”
“그 때 느낀 감각이라거나 기분 같은 걸 말해줘.”
“자, 잠깐만, 그건 갑자기 왜 물어보는 건데!”
“빨리!”
마요는 눈을 반짝이며 얼굴을 들이대고 있었다. 여자 아이와 이렇게가까이 있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나는 약간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그래서일까, 나의 입은 어느새 마요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뱉어내고 있었다.
“카, 캄캄한데 뭔가 부드럽고따뜻한 느낌이 들었어. 그러다가 네 신음소리를 듣고 무슨 상황인지 깨달았지. 아마도 그 상황 자체가 문제였다고 생각해. 이, 인식하자 마자 그런 느낌이 들었으니까.”
“더 자세히 말해줘!”
마요는 메모장에 뭔가를 격렬히 써 갈기며 그렇게 말했다.
“여, 여기서 뭘 더 자세히말하라는 거야!”
“부드럽다는 건 어떻게 부드러웠다는 거야? 신음소리는 어떤 부분에서 흥분되는 걸 느꼈어? 냄새는 어땠어?”
“내, 냄새는 상관 없잖아! 당황스러워서 제대로 숨도 쉬지 못했다고!”
“후각은 차단된 상태…”
화를 내려고 했지만 그러기에는 마요가 데이터 수집에 들이는 열정이 너무 눈부셨다. 나는 부끄러워서 얼굴이 달아오를 것만 같았지만,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입술하고 코에 그, 뭐, 뭐랄까, 그게 느껴져서, 숨을쉴 수가 없었어. 말도 할 수 없었고. 그, 뭐, 뭐냐, 거기서 움직이면, 고, 곤란하잖아. 다, 단지 네 허벅지가, 내 얼굴에 찰싹 붙어 있다는 것 자체가, 뭐, 뭐랄까, 참기 힘든느낌이 들었어. 스, 스멀스멀 올라오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네 신음소리가 들려서, 그,그러니까, 참을 수가 없었어.”
“뭐를 참을 수가 없었는데?”
“그, 그 정도는 알아서해석해라!”
“나를 덮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
“들겠냐! 그 상황에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남자애 앞에서 이런 말을 태연하게 할 수 있는 이 멘탈은 도대체 뭐냐고! 납득이 안 돼!
“그러면 야한 짓 하고 싶은 생각은 들었어?”
“나도 남자니까, 아주조금 정도는…”
“그러면 지금은 어때? 아까처럼가슴 만지고 싶어?”
“만지고 싶어서 만진 게 아냐!”
“좋아하는 에로 비디오 종류는 뭐야?누님계? 아니면 어린 아이 취향? 아, 그 전에 2D취향인지 3D취향인지를물어봤어야 했는데…”
“잠깐만, 아까부터 너아무래도 상관 없는 질문만 계속하고 있지 않냐!”
마요의 태도로 보아 이 질문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은 알겠지만, 아무리그래도 이 정도까지 질문세례를 받는 것은 지치는 일이다. 게다가 해줄 만한 대답은 다 해줬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이쯤에서 마요에게 맞춰주는 것을 끝내기로 했다.
“그러면 난 이제 돌아갈 테니까 말이야.”
“아, 잠깐만 다른 질문을조금만 더…”
“정말 끈질기구나, 너!”
나는 약간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마요는 약간 충격을받은 눈빛으로 입을 다물었다. 약간 미안한 생각이 들어, 먼저사과하기로 했다.
“아, 미, 미안. 화를 낼 생각은 없었는데.”
“아니야. 내 잘못인걸. 막상 연구라고는 해도 이런 상황은 좀처럼 없어서, 갑자기 이런 연구재료가 눈 앞에 나타나서 너무 흥분했나 봐… 미안해.”
마요는 한숨을 내쉬며 방금 전까지와는 반대로 풀 죽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젠장, 이러면 내가 왠지 나쁜 놈 같잖아.
“…미안할 것까지는 없잖아. 질문이조금 외설스럽기는 하지만, 그런 사정이 있다면 확실하게 얘기를 하라고.조, 조금 부끄럽기는 하지만 대답해주지 못할 것까진 없으니까 말야. …..너무 이상한 질문만 아니라면.”
그러자 마요의 눈빛이 다시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지마. 제발, 부탁이니까.
“고, 고마워! 그러면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자위는 하루에 몇 번…”
이크, 조금 잠잠해졌나 싶었더니 다시 질문 세례냐! 어쩔 수 없지. 나는 비장의 기술을 꺼내들었다.
“그, 그러고 보니 너아까 뭔가 서두르고 있지 않았냐?”
“아, 맞아. 회의에 맞추려고 서두르고 있었는데! 나머지는 그러면 나중에 질문할게! 고마워! 그러면 나중에 봐!”
“아니, 별로 나중에라도보고 싶지는 않은데…”
그리고 나서 마요는 복도를 달려 사라졌다. 갑작스러운 등장처럼 갑작스러운퇴장이었다. 나는 지친 어깨를 늘어뜨린 채 교실로 돌아가기 위해 계단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날 저녁, 나는 거실에서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예능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벌써 몇 주 전에 본방송된 프로그램이지만, 그때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나에게는 이번이 처음이다. 예능인들이 게임을 하며 재미있는 장면을 만들어낼 때마다나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이미 몇 주 전의 방송인데도 장난 아니게 웃겼다. 나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예능 프로그램에 빠져들었다.
“오빠, 저녁밥 차려놨어.”
미래가 집에서 입는 평상복 위에 에이프런을 두른 채로 나를 불렀다. 나는그제서야 밥 먹을 시간도 잊은 채 예능 프로그램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은 부모님이 저녁에나가셔서 나와 미래 둘이서 밥을 지어 먹어야 했던 것이다.
“미래, 너 또 혼자서밥한 거야? 어제도 네가 먼저 했으니까 이번에는 내 차례라고 했잖아.”
“그, 그치만 오빠를 방해하는거 같아서… 그리고 나 요리하는 거 좋아하니까 괜찮아. 매일내가 요리해도.”
미래가 헤헤, 하고 수줍게 웃는 얼굴로 뺨을 붉힌다. 나 참, 내 동생은 착해도 너무 착해서 문제라니까. 나는 한숨을 쉬고는,
“다음부터는 밥 시간 되면 불러. 절대로. 적어도 쌀 씻는 거라도 도와줄 테니까.”
라고 말했다.
“응. 고마워.”
기쁜 듯 미소 짓는 여동생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 이런 여동생이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신기하게생각되었다. 요즘의 남매는 서로에게 전투 태세를 취하는 게 보통이니까 말이다. 주변의 얘기를 들어 봐도, 인터넷을 봐도, 여동생이라고 하는 건 오빠와 싸우기 위해 태어났다는 얘기는 있어도 오빠에게 순종하는 얌전한 여동생의 얘기는들어본 적이 없다. 아니, 애초에 요즘 시대에 얌전한 여자자체가 별로 없을 지도 모르지만. 그런 의미에서 미래는 굉장히 희귀한 케이스임에는 분명했다. 아, 물론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오히려 매우 만족하고 있다. 날 위해서 요리해주는 것도 모자라 배려하는 말 한 마디에 부끄러운듯 뺨을 붉히는 여동생에게 불만이 있다면, 그거야 말로 사람 된 도리가 아니지 않을까.
나는 미래의 뒤를 따라 부엌으로 향했다. 식탁 위에는 갓 지어진 밥과미역국이 모락모락 김을 피어올리고 있었다. 중앙에 위치한 메인 요리는 돈까스. 기름에 노릇노릇 튀겨져 바삭바삭한 껍질이 씌워져 있는 돈까스가 돈까스망 위에 먹기 좋은 크기로 썰려 놓여져있고, 그 위를 갈색의 돈까스 소스가 장식하고 있다. 돈까스소스에 의해 껍질이 눅눅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소스의 양을 조절한 미래의 배려심이 돋보인다. 같은접시에 샐러드가 드레싱 소스가 뿌려진 채 놓여져 있고, 단 맛이 느껴지는 콩 요리와 감자 튀김이 곁들여져있다. 그 외에도 식탁 위에는 김치나 숙주 나물, 오이 소박이, 전 요리 등이 빈틈 없이 놓여져 있었다. 언제나 생각하지만, 내 동생은 밥 차리는 것을 너무 야단스럽게 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까지요리에 성의를 보이면, 성의를 받는 이쪽으로서는 전부 먹어주지 않을 수 없잖아! 나는 급허기를 느끼며 식탁에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기세 좋게 외치며, 나는 눈 앞에 펼쳐져 있는 요리의 대군을 향해돌격했다. 식탁이라는 이름의 평원 위에 빼곡히 늘어서 나를 맞이하고 있던 음식이라는 이름의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나라고 하는 괴물의 입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우걱우걱… 마이쪙!”
“천천히 먹어, 오빠.”
미래가 물컵에 물을 담아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컵을 받아 단숨에들이킨 뒤 숨을 돌렸다.
“언제나 하는 생각이지만, 미래가차리는 식탁은 정말 빈틈이 없어. 내 취향을 고려해 바삭바삭함을 극한까지 살린 돈까스는 물론이고 수저역시 가지런하게 짝이 맞춰져 놓여져 있었지. 우리 집의 수저는 다양한 종류가 한 수저통에 섞여 있다는것을 고려하면 매일매일 짝을 맞춰 수저를 놓는 미래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어. 게다가허겁지겁 먹느라 목이 메인 것을 금새 눈치채고 물을 가져다 주는 센스까지! 크으, 미래는 미래에 정말 좋은 신부가 될 거야.”
나는 미소를 지르며 미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래가 부끄러운 듯얼굴을 붉혔다.
“그, 그렇지 않아~ 저, 정말이지. 오빠몰라!”
미래는 흥, 하고 얼굴을 돌리고는 삐진 것처럼 볼을 부풀렸다. 안 그래도 볼살 때문에 어려 보이는 여동생이지만, 이렇게 볼을 부풀리니털이 곤두설 정도로 귀여운 느낌이 든다.
“뭐, 뭐야 또 왜 삐진건데~”
“안 삐졌는걸!”
“칭찬해줬는데 대체 왜 삐진 거냐고~”
그러자 미래는 약간 부끄러운 것처럼 기어들어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 나 나중에 결혼같은 거 할 생각 없는 걸.”
“응? 그러면 미래는 독신주의자? 이 오빠는 슬퍼요. 애지중지하는 동생이 미래에 쓸쓸하게 혼자 살아가다니, 여동생의 행복을 바라는 오빠로서 가슴이 아파요.”
“그, 그러면 오빠가 같이있어주면 되잖아…”
“응?”
나는 약간 당황하며 미래를 쳐다보았다. 주먹 쥔 손을 입에 대고 약간부끄러운 듯 뺨을 붉히며 눈을 내리깔고 있는 미래의 모습은 “나는 크면 오빠의 신부가 될 거야~”라고 말하던 6살 때의 미래의 모습을 연령만 높여서 보여주는 것과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말로, 미래는 어렸을 때부터 하나도변하지 않았다. 오빠로서 이런 여동생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솔직히 기쁘지만 걱정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언젠가 드넓은 사회의 바다로 나아가야 할 여동생이 나 하나만 바라보고 있어서야 걱정되지 않는 게 이상하다. 고등학생이나 되어서 여동생의 이런 면을 걱정해주고 있다니, 이런게 소위 시스터 콤플렉스라는 건가. 정말로 난처하다.
“이, 이야, 한 방 먹었는걸! 설마 여동생으로부터 동거하자는 고백을 받을 줄이야. 하지만 그건 안 되는 거에요. 착한 아이는 커서 오빠하고 같이 살지않아요.”
“그, 그러면 나 착한아이 안 할래! 나, 오빠랑 언제까지나 같이 있고 싶은걸…”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여동생이커서 좋은 남자와 결혼하는 걸 보는 게 오빠의 행복이랍니다.”
“그, 그런…”
미래는 입을 앙다문 채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그런여동생을 지켜보는 것은 솔직히 가슴이 아팠지만 이것도 전부 여동생을 위해서다. 독수리는 강한 새끼를기르기 위해 자신의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뜨린다고 하던가. 그런 심정이었다.
“우우… 그치마안…”
미래는 뭐가 억울한 지 어미를 늘이며 나를 올려다보는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나의태도는 확고했다. 이 확고함 밑에 어떤 안타까운 심정이 날뛰고 있는지 미래 너는 모르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어. 미래를 위해, 나는 이 정도의 각오를 하고 있는 거다! 라고 속으로 말해본다. 닿을 리는 없겠지만.
“으응… 어쩔 수 없지. 오빠와 여동생 사이인 걸. 그, 그러면그 대신에…”
미래는 풀 죽은 표정을 지우고는, 다시 뭔가를 바라는 듯한 눈빛으로나를 올려다 본다. 그 표정으로부터 무언가를 읽어낸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안 돼.”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어차피 또 ‘그거’ 해달라고 할 거잖아. 다 큰 여자애가 오빠한테 그런 거 해달라고하는 거 아니야.”
“우우… 부탁해도 안 돼?”
“안 돼.”
“돈까스 만들어 줬는데 안 돼?”
“부, 분명히 돈까스는맛있었지만 그래도 그건 안 돼.”
“EBS교육방송 폴더…”
“푸웃!”
나는 물을 들이키려다 도리어 물을 뿜어내고 말았다. 미래가 방금 말한 EBS교육방송 폴더라는 것은,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거다. 그거. 전국의, 아니 컴퓨터가 있다는 전제 하에 전 세계의 청소년들이 각종 어둠의 루트를 통해 컴퓨터에 저장하고 있는 그것. 왕성하게 넘쳐나는 정력을 발산하도록 만들어주는 바로 그것. 일명야동이라고 불리는 그것. 그것을, 나는 EBS교육방송 폴더 안에 실제의 EBS 강의와 같은 시리즈의 이름을붙여 저장해놓았던 것이다. 분명 컴퓨터의 avi 확장자 검색으로도동영상의 제목 때문에 구분해내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인데… 그것을 어느 새 찾아낸 거지.
만약에 이 사실을 엄마가 알아내게 되면 큰 일이야. 분명 엄마의 성격으로봐서 크게 혼날 게 분명하다. 나는 공포로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 그것을 도대체 어떻게…”
“응? 한 번만 해주면엄마한테 이르지 않을 테니까~”
“크, 크윽… 이런 식으로 협박을 하다니…”
꽤 소중하게 모으고 있던 콜렉션이지만, 이렇게 된 이상 다른 방법을강구하지 않으면 안 되겠군. 외장하드라도 하나 장만해야 하는 건가.
“하아, 어쩔 수 없지. 이번만이다.”
“응, 알았어, 오빠♡”
미래는 언제 울먹거렸냐는 듯 벙글거리는 미소를 띄우며 나에게 다가왔다. 어렸을때에야 어렸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다 큰 지금에 와서 그것을 하는 것은 조금 망설여지지만, 어쩔 수 없지. 나는 각오를 다지고, 자리에서 일어서 미래에게 다가섰다.
나는 수줍게 눈을 다른 쪽으로 향하고 있는 미래의 머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렇게마주보고 서면 키 차이 때문에 내가 약간 고개를 숙였을 때 코가 미래의 머리에 닿을 정도가 된다. 미래의갈색의 윤기 있는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물결치며 어깨 아래까지 내려오고 있다. 두 손은 기도하는 것처럼가슴 앞에 모은 채다. 나는 각오를 다지며, 손을 뻗어 앞에있는 이 작은 동물을 살포시 껴안아주었다.
미래의 작은 몸은 내가 껴안는 것에 딱 들어맞는 사이즈였다. 부드럽고따뜻한 미래의 존재감이 온 몸으로 전해져 온다. 미래의 아직 어린 여성으로서의 부드러움이, 기분 좋게 느껴지는 36.5도의 체온이, 나의 두 팔과 가슴을 통해 나에게 전해져 오고 있었다. 살짝 내린고개에 미래의 머리가 나의 코와 뺨에 닿고 있다. 숨을 쉴 때마다 전해지는 향기로운 샴푸 냄새가 기분좋다.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느껴지는 안정감. 편안함. 이런 것들이 나의 심장 박동을 더할 나위 없이 온화하게 가라앉혀 주었다. 나는저절로 눈이 감기는 것을 느꼈다.
미래가 앞으로 모은 손을 슬금슬금 뻗어 나의 등 뒤로 감아 나를 껴안는 것이 느껴졌다. 주저하는 것처럼 소극적인 그 움직임이 어쩐지 귀엽다. 건방지다고말하려고 했지만, 그만 두기로 했다.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 대신, 미래의 등 뒤에 두른 팔에 힘을 줘 더 꽉 안아주었다. 그와 동시에 미래의 팔에도 더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치유의 시간이 끝나고, 나는 이제 슬슬 여동생을 놓아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남매 사이로서 이 이상은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서서히 팔에들어간 힘을 빼 여동생을 놓아주었다. 하지만 미래는 아직 팔에 들어간 힘을 빼지 않고 있었다.
“미, 미래야, 이제 그만 놓아주지 않을래? 너무 오랫동안 껴안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러자 미래는 내 품 속에서 머리를 도리도리 하며 거절의 뜻을 내비쳤다.
“싫어! 아직 충전이 덜됐단 말이야.”
“추, 충전이라니…”
미래는 나를 더 세게 껴안으며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한숨을쉬며 미래가 나를 놓아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미래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놓아준 것은 미래가 차려준 밥상이 서서히 식어가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기분 탓인지 미래의 피부가 더 매끄러워진 듯한 기분이 든다. 반면에나는 구미호에게 홀린 서생처럼 기운이 빠져 있었다. 저, 정말로한 거냐. 충전.
“다시 말하지만 이번이 끝이야. 다른집에서는 보통 안 이런다고.”
“그럴까나? 남매의 우애를다지는 방법으로는 보통이라고 생각하는데.”
“분명히 오해라고 생각한다, 그거.”
나는 다시 식탁에 앉아 남아 있는 음식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조금식기는 했지만 그래도 본연의 맛은 어디 가지 않는다. 나는 만족스럽게 배를 두드리며 식사를 끝마쳤다.
식사를 마친 후 나는 다시 거실로 향했다. 소화되는 것을 기다리며소파에 누워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한다. 한참 동안 웃다 보니 설거지를 마친 미래가 와서 소파의 옆자리에앉는다.
“오빠 오늘 학교는 어땠어?”
“그야 물론 별 일 없…”
었다고 대답하려다, 나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말을 흐렸다. 그러고 보니 있었지. 이상한 아이와 마주쳐서, 험한 꼴을 당했지. 하지만 동생에게는 말하지 않는 편이 좋으려나.
“…었어.”
다행히 원래 하려던 대로 말을 끝마쳤지만 미래는 중간의 침묵이 신경 쓰이는 듯 이쪽을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은근히 눈치가 빠르단 말이지. 평소에는 순한 양처럼 웃고 있는 주제에!
“정말로?”
“정말로.”
“수상해, 오빠.”
“뭐가 수상해. 그보다부활동을 뭐로 하는 게 좋을까나.”
나는 재빨리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부활동의 얘기를 꺼냈다. 다행히미래는 내 어설픈 화제 전환에 맞춰 손가락을 입에 물고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역으로 질문해왔다.
“아직 부활동 안 정한 거야?”
“원래는 정했었지만, 갑자기사정이 생겨서 말이야. 여자에게 인기 있는 부활동을 하려고 생각 중이야. 무슨 부가 좋을 거라고 생각해?”
“에에, 여자에게 인기있는 부활동…?”
미래가 싫은 표정을 지으며 볼을 부풀렸다. 이 오빠가 여자에게 인기를얻는 게 그렇게도 싫은 거냐, 동생이여.
“그냥 보통의 부활동에 들어가면 좋을 텐데.”
“이 오빠가 중학교 내내 여자친구도 못 사귄 것도 모자라 고등학교까지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니, 동생아.”
“그, 그런 건 아니지만… 우우…”
미래는 여전히 불만스러운 듯한 표정이다. 분명히 아까도 저런 표정을지었던 것 같은데. 어째서일까.
“하, 하지만 오빠는 여자아이한테다가가면 이상한 일이 일어나잖아.”
“흠, 무, 물론 그렇기는 하지. 그건 분명히 문제이긴 하지만…”
미래는 승호와 더불어 나의 저주(?)에 대해 눈치채고 있는 유이한인물 중 하나다. 사실 여태까지 나에게 성희롱에 가까운 꼴을 몇 번이나 당하면서도 내 여동생이 나를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것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알고 있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부활동은 되도록이면 여자가 없는 곳으로 가면 될… 거라고 생각할까나.”
“그래서는 여자들과 친해질 수가 없다고. 완전 본말전도잖아.”
으으! 나는 머리를 쥐어짜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여자들에게 다가가야 여자를 사귈 수 있다. 하지만 여자에게 다가가면이 저주 때문에 여자들에게 미움 받게 된다. 그래서 여자들과 거리를 두려고 하면 여자와 사귈 수 없는것은 마찬가지. 나는 이런 식으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을 중학교 내내 겪어왔던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딱한 명 있었다. 이 저주에 의해 가슴이 만져졌는데도 화를 내지 않은 여자 아이. 나는 머리를 쥐어짜는 것을 멈추고, 그 여자 아이를 떠올렸다. 그것은 오늘 점심 시간에 우연히 얽히게 된, 4차원의 여자 아이. 김마요라고 하는 아이였다.
나름 재밌긴한것 같은데 글 좀 뛰워쓰는게 좋을듯
들여쓰기까지는 무리라도 문단은 확실히 구분 해주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