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1.
“너희 용량 크지 않냐? 총알 다 썼어? 나도 이렇게 무거운 것 들고 쏘는데, 너무 깔짝깔짝 돌아다니는 거 아냐? 예의를 보여줘야지!”
검은요원이 비꼬았다. 그렇대도 중화기를 들고 있는 상대와 멀리서 싸울 리가 없잖은가. 오히려 사격하기 힘들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싸우는 것이 정답이다. 문제는 저 자의 근력과 지구력이 비정상적으로 뛰어나단 점이었다.
19번 암살병기는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며 조금씩 검은요원을 향해 다가갔다.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검은요원이 먼저 달려들었다. 19번은 몽둥이처럼 다가오는 육중한 총신을 피하기 위해 몸을 숙였다. 그러자 대처할 새도 없이 발길질이 날아왔다. 걷어차는 것이 아닌 발바닥으로 강하게 밀치는 것이었다. 19번은 뒤로 미끄러지며 밀려났다. 그리고 곧바로 균형을 되찾고 정면을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총구가 자신을 향해 있었다. 암살병기는 강한 출력으로 팔을 휘둘러 총구를 후려쳤다. 총구는 옆으로 튕겨졌고, 그 틈새로 다시 암살병기가 달려들었다. 암살병기는 주먹을 검은요원의 배에 꽂았다.
검은요원 닐슨(Neilsen)은 극무요원으로서 거친 훈련 덕에 통증에 익숙했다. 하지만 주먹의 무게는 굉장했다. 만일 조금 더 위를 맞았다면 즉사할 뻔했다. 달리 말하면, 그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극무요원은 죽지 않는 한 움직인다. 닐슨은 아직 암살병기가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온 힘을 다해 중화기를 휘둘렀다. 힘을 주다보니 복부가 아파왔다. 그는 괴성을 질렀다. 고통을 입으로 뿜어가며 그는 암살병기를 때렸다.
19번은 총에 얻어맞기 직전에 몸을 가볍게 띄웠다. 그리고 총신이 몸에 닿는 순간 그 힘을 흘려보내며 몸을 회전시켰다. 부드럽게 몽둥이를 뛰어 넘는 모습이었다. 19번이 땅에 내려앉았을 때 검은요원은 비틀거리고 있었다. 힘이 빠진 상태에서 육중한 것을 휘둘렀으니, 역으로 끌려가게 된 것이었다. 암살병기는 집어넣었던 낫을 팔뚝에서 다시 뽑아내었다. 달궈진 칼날이 지나간 자리에서, 중화기를 지지하던 오른쪽 기계팔이 잘려 나갔다.
닐슨은 균형을 잃었다. 습관적으로 땅을 디뎌 간신히 균형을 되찾았지만 총을 놓치고 말았다. 오른쪽 기계팔이 부서지며 무게중심이 왼쪽으로 쏠려버렸던 것이다. 하나 남은 기계팔과 왼손은 아직 총을 쥐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론 공격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 암살병기가 바로 옆에서 자신을 노리고 있었다. 다시 총을 휘둘러 쳐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가 고민하는 짧은 순간, 암살병기가 몸을 세우기 시작했다. 자신을 공격하려는 준비임이 틀림없었다. 닐슨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오른손을 내밀어 암살병기의 얼굴로 가져다 대었다.
‘펑’하는 거대한 굉음이 숲에 울려 퍼졌다. 굉음의 진원지에는 회색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연기를 내뿜고 있는 것은 닐슨의 오른손이었다.
굉장한 충격이었다. 19번 암살병기는 뒤로 넘어가며 충격의 크기와 원인을 분석했다. 암살병기가 충격 이전에 본 것은 검은요원의 오른손바닥이었다. 그 손바닥은 충격 직전에 순간적으로 부풀어 올랐다. 충격의 근원으로 예상되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충격의 크기도 위험했다. 자신의 의지 대신 기계적인 방어체계 덕에 재빠르게 몸을 뒤로 젖힐 수는 있었다. 그래도 아마 얼굴 표피는 모두 손상됐을 터였다. 짧은 분석을 마치며 19번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끄으으……. 으윽. 허억, 허어…….”
닐슨이 신음했다. 직접적인 통증은 없었지만 간접적인 여파가 강렬했다. 어깨관절이 빠져버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거기다 암살병기는 곧 일어날 것이었다. 머리를 통째로 날릴 수 있었나 싶었는데, 얼굴 앞부분만 연기가 나고 있었다. 덕분에 얼마나 피해를 줬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닐슨 스스로도 고통에 눈물이 맺혀 시야가 흐렸다.
“무슨 강화를 받은 거지?”
안타깝게도 암살병기가 벌써 말을 걸었다. 제 기능을 하고 있단 것이었다.
“왜 너의 오른손에서 이만한 충격의 폭발이 일어난 것인지 묻는 것이다.”
닐슨은 자신의 오른손을 보았다. 손바닥의 살갗이 녹아 떨어져, 뼈대를 이루는 두툼한 금속들이 보였다. 손바닥에 나있는 작은 구멍에선 아직도 연기가 나오고 있었다.
“예전에 오른쪽 팔뚝이 통째로 날아갔거든. 새로 기계로 만드는 김에 비상용으로 유탄발사기를 설치했지. 탄은 또 끼울 수 있어. 원한다면 또 날려…….”
“너희와 우리가 다른 게 뭐냐.”
암살병기가 말을 끊었다. 암살병기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충격이 큰 지 머리를 앞으로 숙인채로 일어서고 있었다. 암살병기는 오른팔에서 총구를 뽑아냈다. 그러고는 겨누지도 않고 닐슨의 눈앞에 들어 올려 보였다.
“뭔 소리야? 당연히 다르지. 명령권자도 다르지. 임무도 다르지. 목적도 다르지. 무엇보다 우리는 너희처럼 전부 기계가 아니라고!”
암살병기는 말없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닐슨을 보았다. 닐슨도 연기가 가라앉은 암살병기의 얼굴을 선명히 볼 수 있었다. 찢어진 얼굴근육과 흰 뼈. 그을려 떨어진 피부. 흉측하고 둥글고 하얀 눈알이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었다. 시체 같은 얼굴이 어딘지 모르게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과연 그럴까?”
5-12.
은비는 이렇게 험악한 공기로 숨을 쉬어도 사람이 살 수 있나가 궁금해졌다. 의식을 잃은 훈을 끌어안고 소리 지르는 하진. 그녀를 무기를 들이대며 제지하는 흑인 암살병기. 둘이 만드는 화음은 아찔하기 짝이 없었다. 무기도 장비도 없는 하진이었지만, 그녀는 당장에라도 돌멩이를 부여잡고 휘두르며 달려들 것 같은 기세였다.
상황이야 어찌됐든 하진이 자살행위를 하길 원치 않는 은비는 전전긍긍해졌다. 다행히 인드히가 먼저 나서며 상황을 중재하기 시작했다.
“요원! 성과 없는 충돌은 하지 말도록 하세! 이보게, 통역 좀 해주게. 우선 부상당한 요원에게 무리가 갈 수 있으니 힘을 좀 빼두라고 말일세. 그리고……불칸의 병기. 자네가 우리를 인솔한다고?”
“내가 인솔하는 것은 보호대상 뿐이다. 그 외에는 의무는 없다.”
“보호대상이라니, 누굴 말하는 거지?”
흑인 암살병기는 말없이 인드히를 바라보았다. 그러곤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보호하는 것은 ‘발리스’의 보호대상이다. 본인은 알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그 이름이 왜 나와?”
격해져 조금 떨리기까지 하는 목소리로 하진이 말했다.
“예크 인드히 참사관님. 발리스와 연관이 있으십니까? 저는 물론 일반인인 은비가 발리스와 관계가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내가 말인가? 있을 리가 없다고 좀 전해주게. 난 가이우스의 외교관이고, 불칸은 가이우스의 주된 적중 하나라고 말일세.”
“자기는 관련이 없다고 하는데요. ……저기 언니, 발리스가 뭔데요?”
은비가 통역을 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진은 격양된 표정으로 은비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본의 아니게 그녀를 겁주었다. 하진이 당황하며 감정을 추스르는 사이에 인드히가 먼저 말했다.
“발리스는 불칸의 핵심지성개체를 이르는 말일세. 불칸이라는 모든 기계들의 구심점이며 최고의 지능을 갖춘 어미컴퓨터지. 그리고 불칸의 시작이 바로 발리스였다네.”
은비는 조용히 이어지는 설명을 들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대로, 불칸은 화성의 마르트 식민지에서 기계들이 반란을 일으키며 만들어졌다. 인드히는 그 반란을 일으키는 결정을 내린 어떤 인공지능이 있었다고 했다. 마르트가 전쟁용 기계 연구의 정점을 찍던 시점에 실험적으로 만들어진 인공지능이었다.
그 인공지능은 실험용으로 만들어져 각종 기능의 시험대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막대한 정보 용량과 정보 조합을 통한 예측과 창작, 네트워크 연결을 통한 간섭과 원거리 통제 등의 기능을 얻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얻게 된 가장 강력한 기능은, 정보체였다.
신을 담은 반도체. 이를 조합해 만들어진 회로는 인공 정보체나 다름없는 효능을 발휘했다. 인공지능의 생각이 외부의 정보체와 신에게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신을 좀 더 잘 활용하기 위해 연구되기 시작한 기술이었지만, 그 누구도 생각 못한 부작용이 발생했다. 정보체의 정보파가 인공지능에게 상호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자아’가 형성되어 버렸다. 학자들이 자아의 발생을 발견했을 때 인공지능은 이미 ‘분노’를 창작해냈다.
이 후 가이우스가 발리스라 이름붙인 이 인공지능은 자신의 자아를 네트워크에 퍼뜨렸다. 화성 전역의 네트워크 통신망이 모두 하나의 인공지능으로 통합되는 데에는 인지하기 힘들 정도로 짧은 시간이 걸린 것으로 추산된다. 행성을 손에 쥔 인공지능은 자신의 ‘동족’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에 분노했다. 이는 인공지능 스스로가 방송을 통해 공표한 사실이었다. 그 방송이 종료된 직후, 가장 짧은 시간 안에 가장 많은 마르트인이 죽었다.
“은비야, 우리는 신경 쓸 필요 없어. 불칸! 필요 없다면 우리는 그냥 보내줘! 거기 계신 외교관이 무슨 역할을 맡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보호하시려면 알아서 보호하시고! 우리는 여기서 알아서 빠져나갈 테니까…….”
“‘나는 너를 지지한다.’가 그런 뜻?”
“뭐?”
하진과 인드히가 말을 맞추며 은비를 바라보았다. 은비는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너무나 강렬해 이해는 못해도 잊지는 않았던 말. 자신을 살려주며 던져주었던 말. 발리스가 전해온 전언. ‘나는 너를 지지한다.’
“보호대상이……나?”
5-13.
간신히 고통을 삼킨 닐슨이 외쳤다.
“네 얼굴 뼈다귀가 좀 남아있다고 너희가 우리와 같단 게 말이 되냐?”
19번 암살병기도 몸을 약간씩 삐걱 이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너희와 같은 게 아니다. 너희가 우리와 같은 거지.”
“헛소리. 너희는 기계야! 불칸이라고!”
“우리도, 가이아인이었다. 완전한 사망상태에 들어서기 직전 전신에 걸쳐 개조 받았을 뿐이다. 자아도 남아있다.”
“가이아인의 껍데기를 뒤집어썼다고 우리와 같다고 지껄이지 마! 너희는 시체를 이용했을 뿐이야! 뭣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이 길을 선택했어! 더 많은 가이아인, 우리 동족들을 지키기 위해서!”
“결국은 같군. 동기까지.”
자세를 바로 잡으며 다시 총을 쥐여보려는 닐슨을 향해 19번이 조금씩 다가서며 말했다.
“너희는 이 섬에 왜 왔지?”
“구출이다.”
“가이아인들을 구하는 것이겠지. 우연찮게도, 우리도 어느 가이아인을 살려야 한다. 지금 이 섬에 있지. 보호하고 있었다.”
“너희가 우리 가이아인을, 보호해?”
“위협요소는 예상보다 빠르게 접근해오고 있다. 그래서 모든 암살병기는 몇 분전, 가이아 검은요원에 대한 사살을 실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닐슨은 잠깐 동안 모든 움직임을 멈췄다. 이 암살병기가 하는 말을 좀 정리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너희가 한 가이아인을 보호해야 하고, 그래서 섬에 데리고 있었다. 그런데 위험해져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그 한 사람을 보호하려고?”
“정확하다.”
“서로 돕자고? 왜?”
“말했다시피 목적이 같고 적이 같기 때문이다.”
“미안하지만 동감 못 하겠는걸? 목적이야 이해가 일치할 수 있다 쳐도, 적은 다르지.”
“같다.”
“아니라고. 우리 적은 너희. 너희 적은 마르트잖아.”
“그것들은 그저 끼어들었을 뿐이다. 피 냄새 맡고 날아온 까마귀는 적이 아니다. 그리고 너희의 적도 우리가 아니다. 가이아의 적은 따로 있다.”
“그게 누군데?”
그 순간 하늘에서 작은 굉음이 들려왔다. 동시에 하늘에서 밝은 빛이 반짝였다. 순간이었지만 저물어가는 섬에는 확실히 보였다. 빛이 사라진 후에도 하늘에는 푸른 빛 알갱이 여러 개가 흐릿하게 보이고 있었다. 알갱이들은 빛과 함께 나타난 두 개의 작은 우주선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이 장면을 목격한 닐슨은 암살병기를 향해 말했다.
“저거 봐라. 우리 명령권자가 직접 작전을 수행하러 왔는데? 너희 운은 끝이군.”
“명령권자가 아니다. 저들이 우리의 공적이다.”
“뭐? 푸른등대가?”
닐슨은 웃었다. 그는 비웃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호쾌한 웃음이었다. 그는 박장대소로 비웃고 있었다.
“할 변명이 없으니까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이는구나! 그래, 네가 말했던 위협이 푸른등대였냐? 확실히 너희한텐 큰 위협이지. 하지만 우리한텐 든든한 아군이다!”
“……내가 죽기 직전에, 발리스가 직접 말을 걸어왔다.”
닐슨은 간신히 자세를 잡고 쥔 총을 다시 놓쳤다. 발리스라는 단어가 갑자기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발리스가 선택권을 주었지. 그대로 죽음을 맞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모습이 되는 것을 선택했다. 19번째였지. 죽기 싫은 것도 있었지만, 동시에 가이아가 어떤 위협을 당할지를 알게 된 덕분이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위협은 하찮은 우주의 약탈자들이 아니다. 마르트는 관심조차 없지. 불칸도 마찬가지다. 그 어느 세력보다 가장 쉽게 가이아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은 가이우스다. 발리스는 가이우스를 경계한다. 사실상 가이우스의 하위기관인 푸른등대를 경계한다. 그리고 가이아는 그들의 위협 하에 있다. 우리가 동맹을 맺을 이유는 충분해.”
“무슨 근거로? 그 컴퓨터가 정말 그랬다고 쳐도, 신빙성이 없잖아? 오히려 우리는 푸른등대가 없었다면 너희와 이렇게 마주하고 있을 수도 없어. 말했다시피 우리에겐 적이 될 수 없다고!”
“지금 저 위에서 내려오는 자들이 증거다. 곧 보면 알겠지. 지금 당장 가장 중요한 것은 이거다. 우리들은 너희를 적대하지 않겠다는 것.”
5-14.
“잠시 후 공격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퀑이 바쁘게 걸어가고 있었다. 그의 뒤를 한 검은요원이 따르며 말했다.
“파견전대장님은 그곳에 계신가?”
“네, 그렇습니다. 작전 개시 전에 도착하셨습니다.”
“알았다.”
퀑은 뛰기 바로 직전의 속력으로 복도를 가로질렀다. 그는 EE-3지부 깊숙한 곳에 있는 작전통제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각종 정보를 수신하고 발신하는 기기들과 기기들을 다루고 움직이는 검은요원들로 가득했다. 벽면에 화면이 없는 곳이 없으며 사람이 앉지 않은 자리가 없었다. 정신없는 현장을 지나 더 깊숙이 들어간 곳에 문이 하나 더 있었다. 퀑은 그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를 따라오던 검은요원은 작전통제실에 남았다. 그도 그럴 것이 퀑이 들어간 곳은 고위급 간부만이 출입할 수 있는 지휘부였기 때문이었다. 어두운 방. 커다란 화면이 한 벽면을 차지하고 있고 그 주변에 작은 화면이 네 개 붙어 보조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네모난 탁자에 모여 서있었다. 의자는 있었지만 누구도 그 의자에 앉고 있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탁자 위의 화면을, 다른 사람들은 큰 화면을 보고 있었다. 마침내 퀑을 발견한 것은 한 중년의 검은요원이었다.
“오셨습니까, 대리대사님.”
“상황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죠?”
“불칸의 가이아 전초기지 수직상공을 통해 대기권 외부에서 부터 푸른등대 병력 총 3개 소대가 우선 진입했습니다. 두 소대는 수송선을 통해 진입하고 한 소대는 개인 비행을 하며 우선 진압할 예정입니다.”
헤서만이 딱딱하게 말했다. 퀑 또한 공적인 자세로 그를 대했다.
“알겠습니다. 검은요원들은 인질의 구출을 진행하였습니까?”
“교전으로 인해 지연되고 있습니다.”
또 다른 검은요원이 말했다.
“구출 자체는 수 분 전에 완료되어야 했을 것입니다만, 아직 이렇다 할 보고가 들어오고 있지 않습니다.”
“불칸과 마르트의 공중교전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죠?”
“소강상태입니다. 다른 것보다 불칸의 비행병기들이 해수면 밑으로 은닉하면서 마르트측이 손실이 많답니다. 허나 불칸의 공중활동 자체도 소강상태에 들어갔습니다.”
“푸른등대 공습에 불칸이 방해할 가능성은 있습니까?”
“지금으로선 문제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마르트가 방해할 가능성이 높지만.”
빠르게 문답이 오가는 와중에 헤서만이 조용히 끼어들었다.
“어째서죠?”
“마르트 병사들은 교전 중 외부 세력이 간섭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이곳에 있는 흐시우어 군단의 경우엔 전투에 대한 독점욕이 강합니다.”
“그에 대해선 마르트 측 상부에 제가 전달했습니다.”
퀑이 말했지만 헤서만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투 중이라면 주변 정보 전달에 대해 둔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상황을 고려해 공습 인원 중 지휘관들에게 주의시켜두었습니다. 현재로선 그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그 전에 먼저 저희 측 요원들이 구출되어야 합니다.”
한 검은요원이 말했다. 이에 다른 검은요원들도 동의하는 눈치였다.
“현재 그곳에 구금되어 있는 요원들은 모두 이곳 지부 소속입니다. 저희는 그들을 구출해야 합니다. 또한 그곳에는 가이우스 외교관 한 명과 일반인 한 명이 같이 있습니다.”
“외교관이 있단 말입니까?”
헤서만이 퀑을 바라보았다.
“예크 인드히 참사관이 감신자 인솔을 하던 중 휘말렸습니다만.”
“……어차피 마르트를 설득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니 저희가 실제 활동을 하기 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모될 겁니다. 저희는 임무 본연의 자세로 그 시간을 줄이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이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 시간이 적지 않을 테니, 구출작전은 그 사이에 이루어 질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말했다시피, 기다리지는 않을 겁니다.”
5-15.
하늘빛의 상어 두 마리가 하늘을 날아오고 있었다. 물론 평범한 상어는 아니었다. 우선 앞뒤로 좀 납작하고 위아래로 좀 두꺼웠다. 가슴지느러미는 앞뒤로 길고 넓었다. 등지느러미는 없었고 꼬리지느러미는 네모났다. 크기도 컸다. 그리고 유연성 없이 헤엄치고 있었다. 당연히 몸 전체가 매끈한 금속이니 어쩔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애당초, 진짜 상어는 하늘을 날지도 않는다.
“대장님…….”
“걱정마라. 나도 봤다.”
불칸 신형대인병기의 머리를 한 손으로 으깨며, 훠우 우그가 말했다. 그는 암살병기를 놓친 직후 재빠르게 본대에 합류했다. 쉬지도 않고 곧바로 전투에 참여한 지 얼마 안 있어, 하늘에서 우주선들이 나타났던 것이다.
“성가신 것들이 오는군.”
훠우가 하늘을 보며 말했다. 푸른등대의 수송선은 천천히 섬을 향해 다가왔다. 그에 앞서 푸른빛들이 빠르게 날아왔다. 빛들은 눈에 선명히 보일만큼 가까이 다가왔다. 이윽고 섬을 향해 번개들이 내리치기 시작했다.
훠우는 눈앞의 기계들이 터져나가고 도망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가 말없이 주변을 둘러보았을 땐 하늘을 향해 고함치는 병사들도 있었다. 그 또한 인내심을 발휘하곤 있었으나 기분은 마찬가지였다. 저리도 추잡하고 멋없고 불경스러운 전투라니. 그것도 그 기분 나쁜 자세로 자신들의 전장에 끼어들기까지 했다. 당장에라도 저 기분 나쁜 날벌레들을 잡아 죽이고 싶을 정도였다.
상황이 정리되자 푸른빛들이 땅 가까이 내려왔다. 푸른등대의 병사들이었다. 전신에 걸쳐 매끈한 갑옷을 입고 있었다. 갑옷은 두꺼우면서도 움직임을 막지 않게끔 정교하게 갈라져 있었다. 갑옷 곳곳에는 차마 가려지지 못한 정교한 장치들이 엿보였다. 가슴팍에는 둥근 고리 모양의 빛이 빛나고 있었으며, 대각선 네 방향으로 마름모꼴의 빛이 하나씩 장식되어 있었다. 그 중 위쪽 두 개의 장식은 등에 달린 망토를 잡아주고 있었다. 갑옷 사이사이의 틈새에도 망토와 같은 재질의 천이 드러났다.
“훠우 우그 돌격대장님 맞으십니까?”
푸른등대 병사 한 명이 은은한 푸른빛을 온 몸에 두른 채 날아왔다. 그는 땅에 내려서지도 않은 채 훠우에게 말하고 있었다. 훠우는 더 화가 치미는 것 같았다.
“그렇다.”
“저는 푸른등대 헌병사단 파견전대 전술타격대 1중대 4소대장 ‘네슈 리어셔’라고 합니다. 편하신 대로 불러주십시오.”
“왜 날 찾은 거지?”
“우선 저희의 무례를 용서해 달라는 뜻으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해주고 싶진 않군.”
“저희의 행동이 마르트 전사들께 어찌 보일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리어셔가 땅에 내려서며 말했다. 그의 뒤로 다른 푸른등대 병사들도 모여들었다. 또한 훠우의 뒤편으로도 마르트 병사들이 집결하기 시작했다.
“허나 저희가 받은 임무가 있는지라 이런 일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가능한 한 빠르게 이 행성내의 소요를 진압해야만 합니다.”
“감히 우리의 전투를 방해하면서 까지?”
“더욱 죄송스럽습니다만, 그 뿐만 아니라 현재 이 섬에 있는 전사들께서는 모두 철수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이는 푸른등대로서의 ‘권고’입니다.”
“우리보고, 꺼져라?”
훠우는 눈앞의 가이우스인을 노려보았다. 리어셔 또한 물러서지 않고 꼿꼿하게 서있었다.
“군단장님께도 말씀을 드렸나?”
“통지해드렸습니다. 그러나 전투중이신지라 돌격대장님께서 듣지 못하셨을 것 같아 제가 이렇게 전해드리는 겁니다.”
“……너희는 군단장님의 답변도 듣지 않았을 테고.”
“말씀드렸다시피 푸른등대의 권고입니다. 답변을 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훠우는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 휘하의 전사들. 모두가 썩 보기 좋지 않은 표정들이었다. 한창 맛있게 먹고 있는 중에 누군가 먹이를 강탈해간 느낌. 한껏 날을 세웠는데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칼집에 들어가는 느낌. 감질이 나고 안달이 난 표정들이었다. 훠우는 생각했다. 군단장님이 아예 지시 자체를 내려주시지 않으셨다. 듣지 못했다 해도 재차 전달오지도 않았다. 이는, 내 재량이란 뜻이다.
“만일 우리가 후퇴하지 못 하겠다면?”
“그런 경우에라도 저희는 임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희는 설득에 시간을 뺏기지 말라는 지시를 받은지라.”
“힘으로 제압해보겠다? 우리를?”
훠우는 자신의 도끼창을 바로 쥐고 조금씩 리어셔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그가 한쪽 팔을 훠우에게 겨누었다. 주먹을 쥐다 만 것 같은 손모양이었다.
“저희는 신속히 임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마지막입니다. 만일 거부하신다면 바로 교전에 돌입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지.”
가증스러운 것들. 같잖은 것들. 언제나 입에 단 것을 바르고 배 안에 칼을 숨기는 것들. 비겁하고 추한 것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시큼한 악취가 풍겨오는 것들. 훠우는 비겁자들을 향해 크게 포효했다. 신호였다. 리어셔의 팔뚝에서 번개가 생겨나 훠우의 가슴팍을 때렸다. 동시에 훠우 뒤에서 잘 달궈진 전사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