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선배가 말했다.
“산에 도끼를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뭐하는 사람일까?”
전조도 없는 뜬금없는 소리였지만 후배는 당황하지 않았다. 후배는 선배가 뜬금없는 소리를 자주하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에 침착하게 커피를 홀짝인 후에 대답했다.
“나무꾼이겠죠.”
“창의성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대답일세.”
“제 창의성은 한정된 자원이라서 아무런 이득이 없는 데에는 안 쓰거든요.”
“지금 마시는 커피 누가 산거지?”
선배였다. 캔커피이긴 하지만 사준 건 사준 것이기에 후배는 선배가 사준 커피를 다시 홀짝이고 물었다.
“……일단 첫 번째 질문이 나온 이유가 뭔지 궁금한데요.”
선배는 방금 전까지 보고 있던 책의 표지를 들어 보여주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단편선』
“이 책에 있는 ‘덤불 속’이라는 단편이 있는데. 한 도적이 무사를 살해하고 그의 아내를 겁간한 한 가지 사건에 대해서 여러 사람들이 자신에게 유리하지만 다른 사람의 주장과는 엇갈리는 진술을 하는 이야기지.”
“그거랑 방금 전의 질문이랑 무슨 상관인데요?”
“등장인물 중에 나무꾼이 있거든.”
“나무꾼이라는 대답이 맞았네요.”
“그리고 내가 이어서 생각한 게 ‘금도끼 은도끼’야.”
“그건 또 왜요?”
“만약에 금도끼 은도끼가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면 진실은 무엇일까?”
“예? 어차피 동화잖아요.”
“그러니까 가정해보자고. 만약에 금도끼 은도끼가 실제로 일어났다면 어떤 일이 있었겠는가?”
후배는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초현실적인 이야기였기에 제대로 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선배는 후배가 헤매는 것을 알아채고 넌지시 방향을 잡아주었다.
“네가 마을 사람이라고 가정하고 생각해보자. 나무꾼이 산에 올라갔다. 그리고 산에 올라갔던 나무꾼이 다시 마을로 내려왔을 때에는 금과 은으로 된 도끼를 가지고 있었다.”
선배는 섬뜩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과연 산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후배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도박으로 땄겠죠.”
“응?”
선배는 후배가 자신이 원하던 대답과 다른 대답을 하자 당황했다.
“산에서 도박판이 벌어져서 나무꾼이 거기에 참가해서 도박에서 이겨서 판돈으로 금도끼와 은도끼를 가지고 내려왔을 수도 있죠. 나중에 산에 올라간 다른 나무꾼은 도박에 져서 개털 된 거고요.”
후배는 다시 커피를 홀짝였다.
“선배, 지금 반응을 보니 제가 ‘나무꾼이 사실은 산적이었고 산신령은 희생자였다’라고 대답하길 원하셨던 거 같은데요?”
정답이었다.
“뭐 그것도 정답일 수는 있겠죠. 임팩트도 그쪽이 더 크고요. 하지만 전 정답이 없는 문제를 가지고 무의미하게 토론을 하기보다는 다른 동화에 대해서 논하고 싶은데요?”
“어떤 거?”
“밤이 되면 사람의 일을 대신 해주는 작은 요정요. 어떤 구두장인이 구두를 만들다가 잠이 들었는데 요정이 나타나서 대신 구두를 만들어줬다는 동화는 들어본 적 있으시죠?”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동화를 가지고 사람들은 ‘훈훈하다.’, ‘요정들이 귀엽다.’, ‘하늘은 노력하는 자를 돕는다.’ 같은 감상을 했고 저도 옛날에는 비슷한 감상을 했거든요. 그런데 최근에 그 동화를 다시 보니까 다른 감상이 생기더라고요. 아마 선배도 그 동화를 다시 보시면 비슷한 감상을 하게 되실 걸요?”
“어떤 생각을 했는데?”
“사람 사는 건 예나지금이나 똑같다.”
“뭐야 그건 또?”
“지금 우리가 야심한 밤에 둘이서 만나고 있는 이유가 뭐죠?”
“다른 사람들 들으면 오해할 소리를 하네. 졸작때문이잖아.”
“졸작을 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니죠?”
“그렇지.”
“누가 대신 해줬으면 좋겠죠?”
“그렇……아!”
선배는 대답하던 중간에 후배의 말을 이해했다. 그래서 동조해줬다.
“사람 사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
“구두장인과 요정 이야기가 동화로 포장되기는 했지만 그 동화의 근간은 인간의 게으름이 만들어낸 망상이죠. 아마 구두를 만들던 장인이 일을 하다가 ‘아, 누가 대신 좀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라고 한탄한 게 동화가 되지 않았을까요?”
“진짜 꿈도 희망도 없네.”
후배는 커피를 마저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꿈도, 희망도, 요정도 없지요. 선배. 구두 장인이 한탄하면 동화가 되지만 우리가 한탄하면 졸업유예가 됩니다. 쉬는 시간 끝났어요. 졸작하러 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