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인, 특히 복합도르래의 부재.
메소포타미아 시절 기초적인 지레-무게추 조합의 발상은 샤두프라는 형태의 기초적인 지레형 크레인을 낳아 이집트로 이어지고, 이후 그리스에서 복합도르래를 사용한 크레인을 발명해 각종 석조 건축에 쓰이게 됨
그리고 서양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로마가 크레인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대중화 되었고, 다양한 석조 건축물을 짓는 근간이 됐음.
물론 크레인 없이도 대형 석조 건축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경사로와 인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방식이라 비용과 인력, 시간의 소요가 매우 컸음
동양이라고 뭐 완전히 기술이 없던건 아니었고, 진한시대부터 기초적 지레와 도르래를 활용했고 만리장성 건축에도 일부 사용됨이 기록됨. 명확한 회화나 사료로 나온것만 하더라도 샤두프 수준은 널리 쓰였음이 보여지고 아편전쟁 당시 중국의 차륜 윈드라스는 영국 군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지금도 chinese windlass라고 불리게 될 정도임
또 일본에서도 9세기경에 불상을 수리하면서 사다리차에 도르래를 달아 올렸다는 기록이 있고 길다란 막대와 도르래를 통해 중량물을 옮기자... 하는 발상 자체는 동아시아 전역에서 있었다 봐야할거임
하지만 어째서인지 복합 도르래를 사용한 크레인으로 까지는 발전하지 못하고, 크레인 자체의 사용도 서양만큼 보편화 되지 못 함
이후 17세기에 명나라에 예수회 선교사들이 와서 교류하면서 들여온 기술중에 서양식 크레인이 있었고, 이는 나중에 조선에 수입되어 우리가 잘 아는 거중기로 이어짐
결국 이렇게 늦어진 크레인 발달은 한중일의 건축이 석조보다는 목조, 조적을 통해 이뤄지는 방향성에도 영향을 주게 되었을거임
물론 그건 옛날이고 지금은 아시아가 크레인 시장 절반정도 먹고 있으니 죠아쓰
중국은 인력으로 해결 가능했고 조선 일본은 저런 대형 석조물 지을 형편이 안되서 자연적으로 대형 크레인의 필요성이 없게된거 같은데 저 장비 만드는것도 돈이긴 해서
서양은 석회암이나 대리석 쓰는데 우린 화강암이라 깎아서 석조건축물 만들기 너무 빡세기도 할것같고...
소형 크레인이라도 있으면 무조건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음 당장 거중기 도입후 읍성 수리에 품이 적게 들어서 좋았다는 실록 기록이 있고 중국도 복합도르래 달린 크레인을 못 쓴거지 기초적인 도르래나 지레는 쓴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