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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망, 전황은?”
오르카의 야전 막사. 사령관이 미간을 꾹 누르면서 부관들에게 묻는다. 연일 격무에 시달린 탓에 눈가가 파리하고 안색이 퀭하지만, 그는 애써 내색하지 않았다.
“키클라데스 제도, 사르데냐, 시칠리아를 향한 철충의 공격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섬을 빼앗기면 비행형 철충들은 그곳을 거점으로 더욱 매섭게 공격할거야. 대공 화력을 보강하고 파손된 진지 복구에 총력을 다하도록 지시해.
내륙 쪽은 어떻지, 알파?”
“캅카스 산맥과 메세타고원, 발칸산맥을 기점으로 성공적으로 방어해내고는 있지만, 철충의 공세가 일점에 집중되는 추세를 보여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어요. 특히 캅카스 산맥 방어선을 지휘하는 마리 소장의 의견으로는 앞으로 96시간 내에 방어선 돌파가 예상되어 일시 후퇴를 고려해야 할 것 같다고….”
“마리가 후퇴를 제안했다고? 후우… 상황이 정말 심각한가보네. 캅카스 산맥 방어선에 제5공병대와 제13공병대, 제11의무대 추가로 투입해. 그리고 퇴각할 때 매설해야 할 수도 있으니 대철충지뢰 지원해주고.
아르망, 물자 현황 보고해줘.”
“전투자극제와 수복용 나노머신, 그외 기타 의료 자원의 잔량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추세가 계속된다면 3주 내로 전선에 공급이 중단될 것 같습니다.”
“본대 예비 물자에서 90… 아니, 95%만큼 차출해서 최전선으로 투입해. 방어선이 뚫리면 어차피 쓸모없어질 테니까. 지시한 재생산라인 구축은 얼마나 남았지? 24시간 내로 생산 들어갈 수 있도록 마무리해.
다음은….”
“칸 소장의 긴급 연락이에요! 현시각 제3기동타격대 56-34 지점에서 철충에게 포위, 돈좌 위험! 포격 지원 및 전투 지휘 요청!”
“제12정찰비행대대 당장 출격시켜!
제7포병단에게 명령 하달, 54-33, 54-32, 54-31 지역에 일제사격!
제12정찰비행대대가 도착하는 즉시 전투 지휘 개시한다. 칸에게는 포격으로 생긴 공백이 회복되기 전에 일점돌파할 예정이라고 전파해.”
“제14보병대에서 긴급 보고입니다! 현시각 연결체급 철충과 조우! 미확인 개체입니다!
전고 약 8m, 전장, 전폭 약 15m! 4족보행형, 고에너지 역장 및 통신 교란 전파 발생 가능!
Mk.47 고속유탄기관총 및 M829A4탄으로 응사했으나 무력화 실패!”
“제4폭격비행대대 출격시켜! 제14보병대에게는 연결체 발만 묶고 있으라고 전달해!
그리고 제4폭격비행대대와 제14보병대에게 하달, 통신 교란 위험이 있으니 폭격 15초 전 적색 연기로 폭격 예고! 예고 확인 즉시 폭격 반경 바깥으로 대피할 것!”
“제12정찰비행대대 도착 30초 전이에요!”
“제3기동타격대와 통신 연결해. 현시각 전투 지휘 개시!”
시시각각 변하는 전장의 환경 탓에 막사는 순식간에 분주해진다. 아르망과 알파를 필두로 구성된 사령부 인원들이 다급하게 전장의 상황을 공유하고 사령관의 명령을 하달하기를 반복한다.
“제3기동타격대, 안전지대까지 돌파 성공했어요. 본대 복귀 도중 철충 조우 확률은 3% 미만으로 예상되네요.”
“제14보병대 보고입니다. 공중폭격 후 철충 연결체 침묵 확인, 하위 철충 개체 퇴각하였으며 현시각 교전 중지되었습니다.”
“후우우….”
돌발 상황을 성공적으로 처리한 후 겨우 한숨 돌리는 사령관.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아, 맞아. 코헤이 교단, 덴세츠 엔터테인먼트 합동 전장 위문 일정 브리핑 부탁할게.”
“아, 네. 현재 12그룹으로 편성되어 순회 중입니다. 특이사항으로는, 위문부대 인원들이 전투에 참여하게 해달라고 지속적으로 요청 중입니다.”
“전투부대원들만이 고통받고 있는 것에 대해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어요. 차라리 함께 싸우고 싶다고….”
“...지금은 전선의 사기 유지가 무엇보다 중요해. 이 위기를 이겨내고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모두에게 심어줘야 해.
비전투 인원들까지 모두 전선에 투입했다가는 사기 하락으로 연쇄적으로 무너질 위험이 있어. 총력전은 마지막 순간까지 보류할거야.”
“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안건으로….”
“레모네이드 감마의 해상 지원 활용에 관련해서 제안하고 싶은데요…”
하지만 길게 쉴 여유가 없었다. 사령관은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채찍질해가며 회의를 이어나갔다.
“주인님, 아주 잠깐이라도 좋으니 제발 쉬세요.”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폐하. 전선의 병사들이 사기를 잃지 않고 굳건히 버틸 수 있는 것은 폐하가 계신 덕입니다.”
“바이오로이드들을 걱정하시다가 주인님이 쓰러지시기라도 하면 본말전도에요. 그랬다가는 전황이 순식간에 악화될 테니까요.”
“한동안은 저희들끼리 충분히 대응할 수 있으니 폐하께서는 아무 걱정 말고 쉬다 오십시오.”
그렇게 약 두시간에 걸쳐 회의를 하는 한편, 틈틈이 전장의 긴급대응까지 마치고 상황이 일단락되자, 알파와 아르망은 사령관을 억지로 떠밀어 반강제로 쉬게 만들었다. 사령관은 자신 못지 않게 안색이 나쁜 부관들을 보며 어떻게든 막사에 남아있으려고 하였으나, 워낙 완고한 태도라 어쩔 수 없이 쫓겨나듯 막사를 떠났다.
“사령관님.”
“주인님!”
“오빠!”
“각하.”
막사에서 나가 멍하니 걷고 있으니, 마주치는 바이오로이드들이 하나같이 미소지으며 사령관을 반긴다. 각 잡힌 경례로 경의를 표하는 이들도, 고개를 숙여 예를 지키는 이들도, 쪼르르 달려와 품에 안기는 이들도 있었다. 표현하는 방식은 제각기 달랐지만, 모두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전하고 싶어한다는 것은 같았다.
‘이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그런 바이오로이드들의 마음을 확인하여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근심이 앞선다. 유일한 인간이자 총사령관으로서, 이토록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저울질을 해야 했으니까. 어떻게든 사망자가 생기지 않도록 애를 쓰고 있고 아직까지는 운이 따라주고 있지만, 전투 개시 이후 중상자는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가며 겨우겨우 버텨내고는 있으나, 지금 추세로는 결국 시간문제다. 방어선이 돌파당해 함락당하는 것도, 전체를 구해내기 위해 일부를 사지로 내모는 것도.
‘철충은 전체가 곧 하나, 하나가 곧 전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로지 군체의 목적을 위해 행동하는 기계.’
사령관은 방수포에 덮인 물자 더미에 털썩 앉아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지만 바이오로이드들은 반대…. 죽음을 두려워하고, 고통에 울부짖고, 상실에 슬퍼하는 인격체.
숨을 쉬고, 피를 흘리고, 때때로 웃고 또 눈물짓는 생명이지.
무슨 대가를 치러서라도,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반드시 지켜야만 해.’
터무니없는 강적 철충에 대항하여 소중한 바이오로이드들을 지킬 방법을 끊임없이 강구하며.
-삑, 삑, 삑.
그때, 사령관의 단말이 울린다. 감마로부터 연락이 왔음을 알리는 소리였다.
“여, 오르카의 사령관.”
“감마.”
“이야, 얼굴이 아주 난리인데? 척 봐도 뼈빠지게 고생하고 있다는게 느껴지는걸.”
“하하… 고생은 고생이지.”
화면 너머의 감마가 친근하게 웃으며 인사한다. 사령관 역시 그녀에게 옅은 미소로 답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감마에게는 마음 깊이 감사하고 있으니까. 철충의 대량 발생 후 곧바로 나타나 대규모 화력 지원을 해준 감마가 아니었다면 방어선의 후퇴 속도는 최소 30%는 당겨졌을 것이다.
“무슨 일이야?”
“아, 별건 아니고. 깜짝 선물이 있어서 말야.”
“깜짝 선물? 뭔데?”
“순순히 알려주면 깜짝 선물이 아니잖아? 그래도 분명 만족할거야. 기대해도 좋다고.”
감마가 능글거리며 생색을 낸다. 숨겨놓았던 포세이돈 인더스트리의 비장의 기함이라도 내주려는 걸까?
“주, 주인님!”
그때, 등 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색이 새파래진 알파였다.
“철충들이 남동쪽 방면에서 일제히 진군하기 시작했어요!
여, 연결체급 개체도 지금 확인된 것만 20기 이상…! 정찰되지 않은 부분까지 생각하면 최소 30기는 있는 것 같아요!”
“...뭐라고?!”
“오, 이런. 한가롭게 잡담이나 할 때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럼 난 이만. 나중에 또 얘기하자고.”
경악하는 사령관을 보며 어깨를 으쓱하는 감마. 사령관은 통신을 곧바로 종료하고 막사로 달려 돌아갔다.
“폐, 폐하…. 현시각 관측된 위성자료입니다….”
아르망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위성정찰 이미지를 건넨다. 방어선과 맞닿은 위치에 형형색색의 점이 빽빽히 찍혀 있었다.
“...지금 후방 대기중인 부대 전부 동원해. 예비전력을 남겨둘 때가 아니야.”
사령관이 자못 심각해진 목소리로 명령을 내린다. 그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사령부 인원들. 그 사이에 사령관은 가장 거센 공세를 받고 있는 제1보병대에게 통신을 연결했다. 불굴의 마리가 현장에서 직접 지휘하고 있는 부대였다.
“사령관 각하.”
“마리!”
통신이 연결된 순간 화면이 흔들리며 흙먼지가 튄다. 지근거리에서 포탄이 폭발한 것이다. 마리는 담담하게 부대원들에게 지시를 내린 후 다시 사령관과 눈을 맞추었다.
“마리, 너도 알겠지만 철충의 총공세가 시작됐어. 지금 당장 동원 가능한 모든 부대를 보낼게! 지원병력이 도착하기 전까지만 버텨 줘!”
사령관이 다급하게 소식을 전하며 그녀를 안심시키려 노력한다. 어쩐 일인지 마리는 급박한 상황과 다르게 담담한 표정이었다.
“각하, 지원병력은 이곳보다 다른 부대로 보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 철충들의 수를 생각하면 지원병력이 와 본들 얼마 버티지 못할테니까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지원병력을 다른 곳으로 보내라니. 그럼 너하고 네 부대는?”
“죽겠죠.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제 휘하의 모든 부대원들은 이곳에서 죽을 각오를 했습니다.”
“마리! 바보같은 소리 하지 마! 반드시 구할 테니까 그런 말은…”
“최강의 부대, 스틸라인의 진면목을 보여드리죠. 저놈들의 발을 한시라도 더 오래 묶고, 한 놈이라도 더 길동무로 데려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저희가 시간을 버는 동안, 방어선을 새로이 구축하십시오.”
“마리, 마리. 잠깐만… 잠깐만 있어 봐….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담담하게 죽을 때까지 싸우겠노라 천명하는 마리. 사령관의 목소리가 속절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각하, 그동안 각하와 함께 싸울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언제나 각하께 무운이 함께하기를 빌겠습니다.”
통신이 일방적으로 끊어진다. 텅 빈 모니터에는 사령관의 경악 어린 얼굴만이 비쳤다.
“마리? 마리! 대답해! 마리!”
사령관이 애타게 마리의 이름을 부르며 다시금 통신을 연결해보려 시도하지만, 마리 쪽에서 통신기를 부수기라도 한 것인지 도무지 연결이 되질 않았다.
“아… 으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악!!”
자신이 눈을 떴을 때부터 줄곧 함께 싸워왔던 마리가 죽는다니. 사령관은 도저히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광인처럼 목이 터져라 비명을 내질렀다. 막사 안의 누구 하나 빠질 것 없이, 그런 사령관을 보며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주, 주인님!”
그때, 침묵을 깨뜨리는 목소리가 하나.
“레모네이드 오메가가 통신 연결을 요청했어요!”
알파가 다급하게 사령관에게 단말을 건넨다. 지금 더없이 심각한 분위기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오메가의 연락은 철충 습격만큼이나 중대한 안건이었기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오랜만이야, 인간님. 나 보고 싶었어? 어머나, 표정이 안좋은걸. 혹시 내가 조금 안 좋은 타이밍에 연락한 걸까?”
화면 속의 오메가는 잔뜩 이죽거리며 거드름을 부렸다.
“지금은… 별로, 좋은 때가… 아닌 것… 같다….”
이미 감정이 극단에 치달은 사령관은 이를 악물며 거절의 뜻을 내비쳤다. 생각 같아서는 거친 욕설을 마구 쏟아내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오메가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으니 필사적으로 감정을 진정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이 상황에 오메가가 오르카를 향해 대대적인 공격을 펼치면 전멸할 것이 분명했으니까.
“뭐야, 설마 지금 울고 있는 거야?”
사령관의 눈꼬리에 가득 차오른 눈물이 한줄기 흘러내린다. 오메가는 이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꽤나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흐응…. 캅카스 산맥의 방어병력들이 철충들한테 죽는게 그렇게나 슬픈거야? 한낱 바이오로이드들을 위해 눈물까지 흘려주다니, 좋은 주인이네.”
“....”
오메가는, 피식 웃으면서 사령관을 잠시 바라보다가….
“전부터 느끼던 거지만… 정말 바보같은 남자라니까.”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막사를 뒤흔드는 거센 진동이 느껴졌다. 사령관이 다급하게 막사 밖으로 뛰쳐나가 확인해보니,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가는 수백개의 비행체가 보였다. 모든 비행체들은 철충들이 공세를 펼치는 남동쪽 방면을 향하고 있었다.
“카라카스에서 준 손수건의 답례야.”
다시 다급하게 단말의 화면을 바라보니, 오메가는 여유 넘치는 태도로 특유의 오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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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순수한 선의가 구제불능 악역을 감화시키는 스토리에 약하다 크아악!
마리가 쇼타콘 밈 때문에 웃음벨 취급받긴 하지만 이런 상황에 망설임없이 싸우다 죽기를 택할 것 같음.
온몸 바쳐서 부하들 다 구해 탈출시키고 혼자 남아서 시간 벌 것 같고....
근데 6화까지 오니까 원래 생각했던 결말에서 드리프트 박아버리고 싶어서 너무 갈등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