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창한 아라드 대륙에서도 아주 번화가와는 먼 곳. 골목 사이에서도 더 골목으로 들어가야만 허름한 입구를 겨우 찾을 수 있다는 마담 슈시아의 술집에 한 남자가 앉아있다. 드문드문 세어버린 회색 머리칼을 축 늘어뜨리고 잔에 담긴 술을 마시는지 마는지, 몇 번이고 잔을 입에 대려다가 내려놓는다.
자세히 보면 꽤나 젊을 적에는 여럿 여성들의 마음을 울렸을 것 같았지만, 지금은 아무렇게나 기른 수염을 정돈할 생각조차 없이 낡은 대검만 어루만지는 남자. 이 남자의 이름은 아간조, 일찍이 비명굴로 향해 다섯번째 사도 '시로코'의 토벌에 나섰던 4인의 영웅이라고 불렸으나 멍 때리듯 술잔을 내려놓고 술집의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술집의 주인인 금발의 여성은 그 모습이 익숙한듯이 크게 신경쓰지 않았으나, 요즘 들어서 아간조가 술을 멀리하고 생각이 많아졌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다. 아마도 최근에 웨스트 코스트 연합이라는 괴상한 모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간조, 모험가가 찾아왔어요."
"아아, 그렇군. 벌써 내일인가."
아간조의 앞에 모험가라고 불린 남성이 서있었다. 아간조의 옆에 있는 대검만큼이나 큰 검을 짊어진 남성의 왼팔은 붉게 물들어있었다. 소문대로는 붉은 팔에는 귀신이 깃들어있다고 하며, 그 붉은 팔을 가진 검사들을 귀검사라고 불렀다.
그 팔을 볼 때마다 아간조의 뇌리에는 '무언가'가 스쳐지나간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간조 본인도 어떻게든 떠올리려고 노력했지만 허상처럼 지나갈뿐, 그 정체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다른 웨펀마스터들과 비명굴에 갔던 때의 무언가였다는 것만 알 수 있었지만, 그 당시의 그와 함께했었던 옛 동료들에게 물어봐도 그들은 알려주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들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아간조는 '그 당시에 어떤 것이 있었다' 라는 말을 했지만 그들에게서 들려오는 대답은 항상 '그 무엇도 없었다' 는 것이었다. 어쩌면 옛 동료들의 말이 더 신빙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비단 그들만이 아니라 아무도 아간조의 위화감과 비슷한 것조차 느끼지 못 했기 때문에.
비명굴에서 나온지 십 수년이나 지나고, 망상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망상이 이토록 가슴을 옥죄이는 것인가. 아간조는 그저 답을 알고 싶었다. 망상이라도 좋으니 자신이 가진 끝없는 공허함과 긴 세월동안 술로 보내며 가졌던 의문을 해결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답만을.
"설마 그림시커, 그들이 목숨을 바쳐서 시로코를 다시 깨울 줄이야."
모험가가 마계의 무법자 카쉬파를 토벌하고 돌아온지 채 1개월이 지나지 않았지만 그림시커라는 사도 숭배 단체가 사도를 부활시키려는 목적으로 세상에 나온 것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아간조가 옛 동료들과 함께 비명굴에서 고전했던 시로코라는 사실을 알게될 때까지는 그들의 등장 이후부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사실을 깨달은 것조차도 늦어버린 것이다.
그 추악한 다섯번째 사도는 부활한 후, 하늘성을 완전히 잠식해갔다. 아라드 대륙에서는 얻을 수 없는 막대한 에너지원, 하늘성보다 위에 존재하는 천계를 노리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는, 그라고 부를 수도 있는 그 사도는 그런 추악한 방식으로밖에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아간조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웨스트 코스트 연합이라는 괴상한 모임에 참여했고, 분명 시로코를 다시 만나면 자신이 잃어버린 그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에 모험가와 함께 시로코를 토벌할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이 술은 다음에 마시도록 하지, 슈시아."
"마시지 않는 건가요?"
"돌아올 수 있다면."
아간조는 모험가와 함께 연합의 진영으로 향한다. 본디 함께 있을 수 없는 인물들이 원탁에 앉아있었다. 여왕 스카디를 필두로 한 벨 마이어 공국, 아간조의 옛 동료인 반 발슈테트가 현재 몸담고 있는 데 로스 제국, 아간조와 함께 비명굴에 들어간 옛 동료 중 하나인 브왕가 등 아라드 대륙에서는 누구든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을만큼이나 유명하고 쟁쟁한 인물들이 모여있다.
그 중에 먼저 입을 연 것은 모인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과묵한 아간조 본인이었다.
"내일 하늘성으로 진격하기 전에 이 자리에 모인 분들께 말할 게 있소."
그 말에 먼저 반응한 것은 아간조와는 달리 정돈된 복장에 깔끔하게 머리를 넘긴 청년, 반 발슈테트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항상 능글맞은 표정으로 사람을 보는 반이지만, 이번 일만큼은 그에게도 심각하게 느껴졌는지 웃음기는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아저씨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짐작이 갑니다. 시로코를 만나려는 거겠죠. 하지만 예전에 비명굴에서 토벌했던 상황과는 다르다구요."
"내가 죽더라도 시로코와 직접 대면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있어."
아간조의 맞은 편에서 수염을 만지작거리던 브왕가도 그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던듯, 말없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 이후로 진영 안에서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연합이 창설된 후, 그동안 필요한 이야기는 모두 끝냈다. 그 외의 잡담이나 할 정도로 이들 서로간의 사이는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고, 다음날에 하늘성으로 진격한 후에는 누구라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무언가를 말하는 것은 마음을 흔들 수도 있는 쓸데없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간조는 손질한 대검을 한 손으로 가뿐히 든 채로 하늘성으로 향한다. 그 앞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등에 대검을 찬 귀수의 검사를 포함하여 붉은 머리칼을 곱게 빗은 마계의 마법사, 단검을 찬 흑요정과 거대한 십자가를 맨 남녀 등의 모험가들이었다.
"하늘이 이래서야 낮인 것 같지는 않지만, 잠은 충분히 잤나."
그들은 말 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온갖 지옥을 넘나들었던 그들이었지만, 그들에게도 이 토벌 작전은 특히나 더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늘성의 내부는 어두웠지만 기본 구조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었지만 처음에 그들을 막아선 것은 자신의 몸만큼이나 큰 대검을 한 손으로 끌고 다니는 검은 갑주였다. 아간조도, 모험가도 그 기척을 알고 있었다. 잊을리가 없었다.
"빛의 성주인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일찍이 하늘성을 점령하여 수 백년이나 하늘성의 절대 군주로 군림했었던 빛의 성주, 지그하르트였지만 지금은 그 빛을 잃고 의지마저 잃은 시로코의 수문장이 되어버린 모습에 아간조와 모험가들은 조금 씁쓸함을 느꼈지만 이제 겨우 시로코에게 다가가는 첫 걸음, 그들이 멈추거나 감상의 젖을 여유 따위는 단 1분조차도 주어지지 않았다. 아간조는 대검을 고쳐잡는다.
"죽어서도 업을 계승하는가."
이름을 잃어버린 성주가 쓰러지는 것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희미하게 고맙다는 말이 들리는 것 같았지만, 상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은 과거의 기억에서 꺼내어진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의 타락한 갑주를 쓸어내려주지 않는다. 그의 안식을 빌어줄 방법은 그저 더러움과 추악함으로 침식된 하늘성을 돌파하고 시로코를 죽이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시로코의 내면에 다다랐을 때, 그 생각에 얼마나 교만이 가득했는지 떠오르게 되었다. 드디어 시로코와 대면했건만, 시로코는 이전에 비명굴에서 그와 대면했을 때처럼 쇠약해진 불완전체가 아니었던데다 시로코를 보자마자 아간조가 충격에 휩싸인듯이 움직일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한 순간도 잊지 않았다. 너희도, 그 계집도!"
"그녀는.."
아간조가 잊고 있었던 무언가가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한다. 비명굴 안에서 쓰러진 누군가를 안고 오열하는 자신의 모습. 모두가 잊어버리고 자신만이 위화감을 품은채 기억해내려고 애썼던 마지막 동료. 그리고 자신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소중했던 단 한 사람.
아간조를 위해서 기꺼이 목숨을 버려가며 귀수와 한 몸이 되어 시로코에게 달려들었던 아간조의 연인.
[록시]
그리고 동시에 소검을 가진 흑요정이 시로코를 베어가른다. 정신 지배가 풀렸음에도 아간조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저 빛과 함께 나타난 그 흑요정만을 놀란 표정으로 주시하다가 이윽고 그녀에게 닿기 위해서 손을 크게 뻗는다.
"록..시..!"
뒤돌아본 흑요정은 싱긋 웃어보이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그녀는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었으며 죽어있는 영혼도 아니었다. 어쩌면 잔류사념 같은 존재. 그러나 그녀도 아간조와 닿고 싶었을 것이었다. 단 1초라도 더 시간이 있었다면 그들은 서로에게 닿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서로의 마음 같은 건 전혀 기다리지 않고 시간은 흘러간다.
록시의 형체가 빠른 속도로 무너진다. 닿을듯 말듯했던 서로의 손은 결국에 닿지 못 한 채로 허공을 휘젓는다. 록시의 죽음 이후 눈물이 말랐던 아간조는 다시 한 번 록시로 인해서 눈물이 흐른다.
그녀가 사라진 후에도 그는 다른 동료들이 그를 데리러 오기 전까지도 그 자리에 멈춰있었다. 그를 처음에 발견했던 브왕가에 의하면 그를 알고 지낸 이래로 가장 슬퍼보였으며, 그를 알고 지낸 이래로 가장 기뻐보였다고 한다.
시로코가 토벌되고 며칠이나 지난 후, 연합 진영에는 각국의 병사들만 몇 명이 주둔하고 있을뿐. 각국의 수장이나 대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사실상 연합은 그 필요성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었다. 모두가 자신이 있던 자리로 돌아가서 아주 잠깐일지도 모르는 평화와 일상을 누리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아라드 대륙의 허름한 뒷 골목 술집에는 여전히 수염이 짙은 남성이 조금은 여유가 생긴 표정으로 술을 마시고 있다. 분명 그 남자, 아간조가 떠올리고 싶었던 것은 죽은 연인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은 연인의 마지막 말이었을테니까.
[미안해. 내 목숨보다 조금은 네가 더 소중한걸.]
미쳤다고 월요일부터 이걸 2시간동안 쓰고 있었음;;
공대장 : 록시 ㄱㄱ 공대원 : 아간조형 형 여친 저기 날아간다 엌ㅋㅋ
??? : 거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