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포거(砲車)' 포를 수레 위에 얹어서 쏘는 거다.
그니까 사극과 조선 유적지 단골출연하는 저 받침대가 없었다는거다.
그럼 어떻게 쐈어요?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사실 포라는 물건의 원리는 통안에 화약이랑 날려보낼걸 넣고 뻥하고 터트려서 슝 날린다는 직관적인 원리기에,
어떻게든 대충 고정만 하고 쏘면 쏘는거 자체는 별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튼튼한 수레를 못 만들면 없는것보다 못한 경우도 많아 대형 화포는 현대에 와서도 고정 포가를 쓰는 경우가 잦으니 말이다.
엥? 융원필비에서는 동차에 싣고 쏜다 나와있던데요! 하지만 그건 1800년대, 그니까 조선 후기에 가서 나온 서적이다.
그러면 조선은 어떻게 쏘았는가, 하면 임란직후 쓰여진 신기비결에 답이 나와있다.
땅 고르고... 거적 대고.. 말뚝박아서 고정하고...
전반적으로 유럽 중세 초기 공성포 쏘는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이뤄진 것이다. 특히 이 상황에서 포신위에 달린 손잡이는 매우 유용하였을 것이다.
명나라는 포르투갈 해적단이랑 맞짱뜨면서 불랑기랑 유럽 포거를 뜯어오기도 했고, 자체적으로 제작한 포거들도 상당수 운용한 사료가 있지만
어째서인지 조선에는 전래되지 못한 모양
이후 고종대에 들어 불랑기 동거 등을 제조해보고
1869년에는 제대로된 근대식 포거를 제작하게 된다
원시고대 야포
산악지형에서 딱히 바퀴이용한 이동능력이 그렇게까지 있을필욘 없다본건가 나중가서 생각보다 문제없다 보고 도입했다던가
원래 군사쪽은 보수적이고 도입의 필요성을 느낀다면 전쟁이 났거나 군주가 밀어 붙여야 하는데 조선은 다 해당사항이 없었지
조선 주 전장이 북쪽이었고 화차도 잘 썼던거 보면 조선이 수레기술이 후퇴한거랑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는데 고려때도 썼다는 말 딱히 없는거 보면 왜 그런지 몰?루겠음 애초에 함경 평안은 조선 전기에도 수레 사용 활발하던 지역이기도 하고 아님 쓰긴 썼는데 한반도 종특의 기술 기록 미비로 전해지지 않았다거나... 하기에도 신기비결서는 땅에 박고 쏴라! 소리 나오고
손잡이 채로 주조된건 비포장 험지에서 운용을 전제로 도수운반하는걸 가정한거 아닌가 싶어서 그럼 생각나는건 산악전 딱하나인데 근데 산악전 하나만 보고 포거 안썻다기엔 후기에 조총 화차 적극적으로 이용한 마차 전술이 있다는걸로 알고 있어서 이것도 아닌거 같고 참 기묘하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