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주로 장사 이야기를 하면서 이따금 여행 사진도 올리는 창업 7년차 여행 가방 장사꾼 인사드립니다. 기나긴 시국의 존버를 마치고 마침내 새 가방을 만들었습니다. 감개가 무량하여 벅차오르는 마음 안고 조심스레 운을 띄웁니다.
워낙에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몇 년 동안의 기록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사진도 많고 글도 꽤나 길 것 같습니다. 존버의 알을 깨고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온 게 너무나 감격스러운 탓입니다. 부디 너그러이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시작은 대략 반 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저는 제 브랜드의 주력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 베트남으로 출장을 떠났습니다.
이 시국을 맞이한 이후로 처음 다녀온 해외였고, 참으로 오랜만의 생산 출장이었습니다. 너무나 간만이었지만 공장은 크게 변한 게 없었습니다. 직원 분들도, 공장에 놓인 미싱도 그대로였죠.
비로소 실감이 났습니다. 도저히 끝이 보일 것 같지 않더니 우째 다 지나왔구나.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안도감이기도 했고, 약간의 회한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검수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살짝 훌쩍인 건 안 비밀입니다.
공장에서 검수를 했지만 아직 한 발 남았습니다. 무사히 한국에 도착했으니 다시 한 번 검수의 시간.
모조리 열고 찬찬히 훑어봅니다. 여러 파트로 구성된 가방이기 때문에 누락된 건 없는지, 포장은 제대로 했는지 등등 챙길 게 많습니다. 하지만 대충 볼 수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게 있으면 모조리 잡아내고 그 자리에서 해결합니다. 몇 가지의 사소한 문제가 있었지만 다행히 공장 신세를 져야 하는 녀석들은 없습니다. 해결을 마치고 마음 편하게 집으로 복귀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밀린 숙제를 할 시간이구나'
그렇게 저의 시선은 한쪽 벽면에 오랫동안 걸어둔 캔버스 가방으로 향했습니다.
꽤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2021년에 만든 녀석입니다.
조만간 코시국이 끝날 거라 생각해서 만든 놈입니다.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 이렇게나 오래 걸릴 줄은 몰랐습니다. 여행은 돌아올 생각을 않았습니다. 게다가 주변의 반응도 생각보다 좋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평범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결국 이 녀석은 저만 열심히 쓰는 가방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묵힐 수 없었습니다. 2년 동안 직접 써 본 결과 꽤 쓸 만한 녀석이었기 때문입니다. 일단 편합니다. 그리고 일도 엄청 잘합니다. 게다가 생긴 것도 그런 대로 괜찮습니다. 물론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기에 마음에 안 드는 부분들도 있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손 보면 아주 좋은 가방이 될 재목이 분명했습니다.
가방과 커피 한 잔, 필기구를 들고 집 근처 대학교로 산책을 나섰습니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야 할 때에는 답답한 집보다 드넓은 대자연의 품이 좋죠.
두 세 시간 남짓의 고군분투 끝에 대략적인 틀이 잡힙니다. 물론 실제로는 훨씬 더 오래 걸렸습니다. 2주 남짓한 고민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죠.
낙서처럼 보이긴 하지만 이건 저만 알아볼 수 있는 일종의 암호문입니다. 기존에 불편했던 점들, 추가해야 하는 기능, 덜어내야 하는 것들이 몇 장의 그림 속에 모조리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본격적인 스케치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엄격하게 비례를 맞추고 모든 치수와 원단의 느낌, 재질 등을 상세하게 기록합니다.
정확하게 하루하고 반나절이 걸렸습니다. 도면이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새 가방의 탄생을 위한 여정의 출발선에 섰습니다.
스케치가 끝났으니 당분간은 신설동의 지박령이 될 것입니다. 여기는 신설동 종합 시장입니다. 동묘에서 멀지 않습니다. 가방 자재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곳이죠. 제 삶의 터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매장을 다 돌아다닙니다. 어차피 원단, 부자재 합쳐서 백 곳도 되지 않기 때문에 하나도 빠짐없이 모조리 돌아 줍니다. 마음에 드는 자재들을 수집하고 상세하게 기록합니다.
사실 제가 수집한 자재들을 쓰는 경우는 웬만하면 없습니다. 보통은 생산을 담당하는 벤더사에서 비슷하지만 더 품질 좋은 자재들을 자체적으로 수배를 합니다. 하지만 꼼꼼하게 살펴 줍니다. 제가 더 열심히 싸돌아 댕길수록 벤더사는 더 좋은 자재를 수배합니다.
금방 끝날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꼬박 3일을 출근한 끝에 겨우 원하는 자재의 수급을 마쳤습니다. 구현하고 싶은 질감과 두께감을 만족하는 원단의 수배가 너무 힘들었던 탓입니다.
도저히 원단을 찾을 수가 없어서 결국 비슷한 원단이 들어간 가방 하나를 샀습니다. 들고 돌아다니면서 부지런히 수소문했습니다. 그렇게 원단을 구하기까지 딱 3일이 걸렸습니다.
거의 다 왔습니다. 이쯤 하면 7부 능선을 넘는 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격적인 대장정의 서막이죠.
자재들을 펼쳐 놓고 도면을 따라 배치해 봅니다. 생각하던 느낌이 구현되는지 확인하기 위함입니다.
평면과 입체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짬이 쌓인 지금은 머릿속으로 느낌을 그릴 수 있습니다.
이게 뭔가 싶으실 겁니다. 하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습니다. 마침내 벤더사로 갈 시간입니다. 가방 만들러 갑시다.
예전에 만든 가방과 도면, 자재를 들고 가서 기나긴 난상 토론을 펼칩니다. 생산이 가능한 형태인지, 수정할 부분은 없는지, 예상되는 난관은 어떤 것이 있는지 등을 꼼꼼하게 체크합니다.
그리고 자재 교체의 시간. 제가 어떤 자재를 수배하든 벤더사는 그보다 더 좋은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군용 제품을 만들고 납품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기능성과 튼튼함만큼은 확실하게 보장합니다. 공돌이 출신인 저에게는 너무나 매력적인 부분이죠.
디자이너님께서 제대로 된 도면도 완성하셨습니다. 정말로 샘플 작업을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이제부터 남은 것은 한 달 남짓의 기다림과 정갈한 마음으로 목욕재계 하는 것뿐입니다.
그 사이에 저는 가족들과 함께 홍콩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마지막 홍콩 여행으로부터 무려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홍콩은 여전히 아름다웠습니다.
샘플 작업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른 이후부터는 다른 가방 구경도 무척 열심히 다녔습니다. 의도한 건 아니었습니다만 자꾸만 눈에 밟힙니다. 새로운 가방이 보일 때마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겼습니다.
그렇게 3주 남짓 동안 구경한 가방이 백 개가 조금 더 되는 것 같습니다.
11월 초의 어느날이었습니다. 벤더사 직원 분으로부터 두 장의 사진이 날아들었습니다. 마침내 샘플이 완성된 것입니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사진을 확인했고, 그 순간 뇌정지가 왔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것과 너무 달랐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생각보다 너무 별로였습니다. 어느 정도였냐면, 사진을 확인한 저의 첫마디가 '망했네'였을 정도입니다.
물론 실망하긴 이릅니다. 실물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그 어떤 판단도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자꾸만 불안한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 녀석이 한국 땅을 밟기까지는 3일이 걸렸습니다. 아마 올해 중 가장 길었던 3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직도 처음 받아 본 사진의 정체를 모르겠습니다. 정작 제가 만난 건 완전히 다른 가방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좋은 의미로 말이죠.
제가 생각하던 디자인, 제가 생각하던 기능과 느낌. 모든 게 상상하던 그대로였습니다.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옵니다.
샘플이 나왔으니 이후로는 일사천리입니다.
가방 사진 찍을 장소를 부지런히 섭외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서울의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빛이 예쁜 곳과 원하는 빛이 들이치는 시간을 부지런히 기록하고 기억합니다.
모델은 저의 대학 동기 놈과 그놈의 여자친구 분께서 수고해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이 녀석의 이름은 '여가 서울'입니다. 여행 가방의 줄임말이면서 여가 활동을 뜻하는 '여가'와 제 일상이 머무르는 도시인 서울을 합친 이름입니다.
그동안은 멀리 떠나기 위한, 완전히 여행에 치우친 가방을 주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만든 가방은 조금 더 일상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여가 서울'입니다.
참고로 예전 가방들의 이름은 '여가 홍콩'과 '여가 오사카'입니다. 그에 비하면 서울은 지극히 우리들의 일상과 가까운 동네죠.
글이 정신없이 길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녀석인지만 소개를 드리고 마무리 하겠습니다. 조금만 더 양해 부탁 드립니다.
일단 생각보다 큽니다. 나름 작게 만들려고 했는데 큼지막합니다. 사진에 있는 것들은 당연히 다 들어가는데 그러고도 공간이 꽤나 남습니다.
짐이 저것밖에 없는 이유는 사진 찍는 날에 들고 간 짐이 저것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안에는 주머니가 두 개 달려있습니다. 하나는 지퍼가 있는 주머니고 다른 한 개는 오픈 포켓입니다. 용도에 따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바깥에도 주머니가 있습니다. 자잘한 것들 넣고 다니기 좋습니다. 보기에는 작은데 생각보다 이것저것 많이 들어갑니다. 안에는 메쉬 포켓도 있어서 나름 공간 분리도 되어 있는 구조입니다.
노트북 당연히 들어갑니다. 15.6인치까지 들어갑니다.
집에 있는 MSI 15.6인치 게이밍 노트북을 넣어 봤습니다. 넉넉하게 들어갑니다. 그러니깐 노트북 수납 걱정은 안 하셔도 될 듯합니다.
여행 가방이니깐 캐리어에 고정할 수 있는 스트랩 당연히 있습니다. 꽤나 폭이 넓고 박음질도 빡세게 해서 튼튼합니다.
굉장히 유용한 기능입니다. 가방 등판쪽에는 여권을 보관할 수 있는 비밀 주머니가 있습니다.
조금 많이 체계적입니다. 주머니가 두 칸에 고무 밴드로 나뉜 칸이 네 개입니다. 여권도 넣고 환전한 돈도 넣고 교통카드 같은 것도 넣고 다닐 수 있죠.
모든 걸 다 넣고 10,000mAh짜리 보조배터리도 넣어서 하루 종일 돌아다녀 봤습니다.
벤더사에서는 등에 배기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만 직접 메고 다니면서 확인한 결과 문제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부피가 있는 것까지 중요한 것들은 모조리 넣고 다니시면 됩니다.
가방을 뺏기지 않는 한 무조건 안전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죠. 이 가방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뜻밖의 특장점도 발견했습니다. 의도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방수 성능이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굉장합니다.
애초에 비가 스며들 수 없는 구조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나 의도한 방식 그대로 작동할 줄은 몰랐습니다. 가방을 만들기 전 플라스틱 연구원으로 일하던 시절이 잠시 생각났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게 왜 되지?'의 순간이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유용한 장점입니다. 비 오는 날 가방에 비가 맞든 말든 신경 쓸 필요가 하나도 없거든요. 덕분에 우산 쓰기가 훨씬 편해졌습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마침내 이 글도 끝자락을 향하고 있습니다.
정말 오랜 시간의 존버와 기다림의 끝에 탄생한 녀석입니다. 그만큼 열심히 만들었고, 애정도 큽니다. 너무나 간만에 다시 딛는 발걸음이라서 겁이 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설레는 마음이 더 큽니다. 지나간 시간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을 테죠.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시간이 저에게는 더 소중하고 중요합니다.
'여가 서울'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
현재 텀블벅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걸음하셔서 구경도 하시고 마음에 들면 후원에도 참여해 주시면 무척 기쁠 것 같습니다.
엄청나게 장문의 글 읽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여기까지 함께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즐거운 연말, 건강하고 행복한 새해 되시길 바랍니다. 안녕히 계세요!
요즘 다들 궐련형 전자담배를 들고다니면서 가방에 사이드포켓이 있거나 프런트포켓이 세분화되어 있는게 맘에 들더라구요. (자주, 빠르고 쉽게 넣고 꺼내기위한 고정공간)
요즘 다들 궐련형 전자담배를 들고다니면서 가방에 사이드포켓이 있거나 프런트포켓이 세분화되어 있는게 맘에 들더라구요. (자주, 빠르고 쉽게 넣고 꺼내기위한 고정공간)
너무 과한 건 지양해야 하지만 가방을 만들어 보니 주머니는 공간이 허락하는 한 많으면 많을수록 좋더라구요..!
제가 저런 비슷한 가방이 있었는데요. 쇼핑하고 가방에 뭘 넣을때마다 저부분을 열기가 너무 불편하더라구요. 그러다 일본에서 디자인도 비슷한데 기능하나가 더 추가됐더라구요. 옆구리에 지퍼가 있었습니다. 위에 모델이 착용한 것처럼 한쪽으로 메고 다니다가 물건 사고 나서 겨드랑이 쪽으로 가방 빼서 지퍼 열고 물건 넣고 다시 등 뒤로 쓰윽 이게 너무 편하더라구요. 저 가방도 그런 지퍼가 있음 너무 편할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