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쓰다
어머니는 글자를 모른다. 글자를 모르는 어머니는 자연
이 하는 말을 받아 땅 위에 적었다. 봄비가 오면 참깨 모종
을 들고 밭으로 달려갔고, 가을 햇살이 좋으면 돌담에 호
박쪼가리를 널어두었다가 점심때 와서 다시 뒤집어 널었
다. 아침에 비가 오면 “아침 비 맞고는 서울도 간다”고 비
옷을 챙기지 않았고 “야야, 빗낯 들었다”며 비의 얼굴을
미리 보고 장독을 덮고 들에 나갔다. 평생 바다를 보지 못
했어도 아침저녁 못자리에 뜨는 볍씨를 보고 조금과 사리
를 알았다. 감잎에 떨어지는 소낙비, 밤에 우는 소쩍새, 새
벽하늘 구석의 조각달, 달무리 속에 갇힌 보름달, 하얗게
뒤집어지는 참나무 잎, 서산머리의 샛별이 글자였다. 난관
에 처할 때마다 어머니는 살다가보면 무슨 수가 난다고 했
다. 세상에는 내가 가보지 못한 수가 얼마나 많은가. 마을
에서 일어나는 일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했다. 사람이 그
러면 못쓴다고 했다. 어머니는 해와 달이, 별과 바람이 시
키는 일을 알고 그것들이 하는 말을 땅에 받아적으며 있는
힘을 다하여 살았다.
울고 들어온 너에게
김용택, 창비시선 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