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일
설마 그럴 리가 있을까? 아닐 거야, 뭔가 근사한 것이, 있
을 리는 없겠지만 아예 없을 수는 없는 거야
지난달까지 사무실이 꽉 찼었다 직원들이 모니터만 들여
다보느라 누가 지나가도 귀도 쫑긋 안 했어, 일벌레들, 이
정도로 달려들어야 책상을 내주는구나, 상담 주임한테 신규
애들을 세 명이나 받으면서도 난 직원들을 바라봤어 아이디
카드를 걸고, 자판을 두드리는구나
막 볕이 들 때의 테라스에서 레몬케이크를 한입, 넣는 사
람들
나 좀 끼워줘요, 말을 못했지 그런데 오늘은 달랑 직원 한
명, 누구 없나요? 소리치면 메아리가 돌아오겠어, 이거 십
오층 사무실에서 흔들바위를 만나겠어, 다들 기관지가 찢어
지도록 외쳐대다가 제 갈 길을 가버렸대 이렇게 큰 회사 사
장이 도망갈 때까지 아무도 몰랐대 그것도 학생 엄마가 전
화 줘서 안 일, 선생님, 그 회사 전화가 안 돼요, 회비는 벌
써 입금했는데……
좀벌레처럼 걷다 노래져서는 자꾸만 화단에 앉아버렸지
톨 사이즈 커피랑 핫식스를 섞어 먹고야 정신을 차렸어 시
럽이랑 생크림까지 가득 올려서는, 한 번에 쏟아부었어, 학
생 엄마한테 전화가 또 왔지 선생님, 그래도 우리 애 이번
달까지는 해주실 거죠? 멍해져서는 으음 으음 더듬으니까,
선생님, 아니 그럼 우리 애는 누가 책임질 거예요, 굉장하네
이거, 내가 이 회사 직원도 아닌데, 어쩌라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니까 지금 누구한테 뭐라고 한 거냐고 아줌마는 나
를 물고 놓아주질 않았어
(기다려요 제발, 사무실에 왔으니까)
피해자 명단에 사인하래 이름이랑 폰 넘버랑 적어두면 된
대 점심엔 KFC를 먹었나봐 치실을 써도 안 빠질 것 같은 닭
고기가 아저씨 이에 꽉 차 있었어 저걸 다 어째, 내가 계속
서 있으니까 뭐요? 아저씨가 틱틱거렸지 저, 두 달 치나 못
받았는데…… 설마 이걸로 다예요?
아저씨는 담배를 꺼내 물며 코로 말했지
내가 어떻게 알아
덜덜덜
알 수는 없지만
터질 듯한 에네르기다, 라고밖에는.
오늘 같이 있어
박상수, 문학동네시인선 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