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계간 미스터리》 가을호의 부제는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란 짧은 문장으로 요약된다.
늘 사회의 그늘진 곳을 들여다보는 미스터리의 장르적 특성상 이번 호에도 일그러진 사랑의 형태가 여럿 등장한다.
신인상은 이용연의 <냉장고에 들어간 남자들>이 선정되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 못해 식상하기까지 한 가정폭력과 데이트폭력을 하나로 묶어서 뚝심 있게 끌고 나간 점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집으로는 우리가 막연하게 흥신소나 심부름센터 정도로만 알고 있는
탐정의 진짜 모습을 알려주는 <실재하는 탐정의 세계>와 조동신 작가의 지난 여름추리소설학교 참관기를 준비했다.
목차
2024 가을호를 펴내며
[특집]
1. 실재하는 탐정의 세계 염건령/김미옥/장희선
2. “한국 미스터리, 다양성의 날개를 펼치다”
- 여름추리소설학교 참관기_조동신
[신인상]
냉장고에 들어간 남자들_이용연
심사평
수상자 인터뷰
[중편소설]
깊은 산속 풀빌라의 기괴한 살인_김범석
[단편소설]
망_무경
살인자의 냄새_홍선주
[연재]
한국 미스터리를 읽는 네 가지 키워드
: ③ 미스터리의 탐색담과 공진화(共進化)_박인성
[인터뷰]
“미스터리는 ‘공공의 이야기’일 때 유의미하다” 문학 평론가 박인성_김소망
[미스터리 영상 리뷰]
뛰어난 심리 묘사가 충격적인 반전을 극대화한다
- 영국 미스터리 스릴러 드라마 〈브로드처치〉_쥬한량
[신간 리뷰]
《계간 미스터리》 편집위원들의 한줄평
[트릭의 재구성]
볼링공은 죄가 없다_황세연
2024 여름호 독자 리뷰
접기
책속에서
2020년도부터 헌법재판소 판결에 따라 탐정업에 대한 전면적인 허용이 이뤄지면서 최근 4년간 우리나라의 탐정 산업은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다. 탐정은 한층 전문화된 증거 수집 서비스와 조사 활동에서 신속한 소송업무 지원을 변호사에게 제공해줄 수 있다.
_특집1 <실재하는 탐정의 세계>
가장 인상 깊은 분야는 평판 조사를 전문으로 하는 탐정이었다. 예를 들어 연예기획사에서 아이돌 하나를 길러내는 데 수십억 원이 들기 때문에 계약하기 전에 기본적으로 평판 조사를 시행한다. 종종 논란이 벌어지는 것처럼 데뷔 후 학교폭력 가해자였다든지 하는 사실이 밝혀지면 회사가 막대한 손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기업정보 유
언제나 청테이프로 칭칭 붙여놨던 김치냉장고의 뚜껑이 활짝 열려 있었다. ‘금이라도 넣어두신 거예요? 꽁꽁 싸매두시게?’ 하고 일화가 농을 건넸던 바로 그 냉장고였다. 냉장고 주변으로 뜯어진 청테이프가 뱀 허물처럼 떨어져 있었다. 악취의 진원지는 냉장고라는 듯 파리가 떼 지어 그 위를 날아다녔다. 일화는 성호를 긋는 것도 잊은 채 ...
대학생 시절, 친구들과 나는 모두 포커에 미쳐 살았다. 인정하긴 싫지만, 포커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문제였다. 친구들은 포커에 미쳐살았으면서도 돈을 크게 잃지 않았고, 적절한 순간에 도박을 끊을 수 있었다. 반면에 나는 돈을 계속 잃었고, 도박 중독자가 되었다. 그러니 포커는 죄가 없고, 내가 죄 많은 인간인 셈이다.
나라가 망했네.
기별도 없이 찾아온 박 공이 대뜸 말했다.
할 말부터 던지는 게 지극히 그다웠다. 늘 용모 단정하게 가다듬는 수수하고 고루한 선비처럼 꾸몄지만, 깊은 흉중엔 마른 섶에 덤벼드는 불꽃처럼 격렬한 성정이 끓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_무경, <망>
놈의 냄새다. 죽은 식물의 냄새.
상큼한 귤과 촉촉한 이슬을 머금은 인공 향수로 그걸 가리기 위해 애를 썼지만, 나는 단박에 알아차렸다. 자연을 흉내 낸 향들이 드리운 막을 한꺼풀 걷어내고 코를 들이밀면 흙냄새 같으면서도 묘하게 화학약품에 내려앉은 먼지와도 같은 냄새 아래로 느껴지는 역겨운 지린내. 이건 분명 누나를 죽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