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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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당신...이였구나. 날 그렇게 만든 것은.”
나는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물론 뫼비우스 박사를 무조건적으로 저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가 가진 철충에 대한 지식이 아니었다면 바이오로이드 아이들과 나는 지금까지 있었던 위기들을 극복하지 못했을 테니까.
하지만 나와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이 철충의 감염을 해결하지 못하고 새로운 육신을 받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할 수 있었을까? 오르카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공포, 그리고 낯섦... 그리고 멸망전쟁 이전의 유일한 내 다른 인간과의 연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나는 잠시간 침묵을 지켰다.
“자, 앉게. 아무런 장치도 설치되어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뫼비우스 박사의 말이 끝나자 바닥이 열리고 의자가 지면으로 튀어나왔다.
나는 박사의 말에 따라 지면에서 나온 의자에 앉아 숨을 골랐다.
“그 모든 것은 최후의 전쟁이 있던 몇십년 전부터 시작됐네. 그러니까, 자네에 대한 시술은 한참 그 뒤의 일이네만 야망가...김지석에 대한 일이라고 봐야겠지.”
뫼비우스 박사는 슬픈 듯 말 끝을 흐렸다.
“지석이와 애덤이는 어린 시절부터 의기투합했다. 남에게 쉽사리 이해받지 못하는 주제에 대해 교류했지. 물론 사회성은 괜찮았네만... 뭐, 있잖은가. 공상적인 주제에 대해 말이야.”
스크린에 펍 헤드의 모습이 나타났다.
“당시로서 사이보그 시술과 AGS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단순히 공무적인 의미가 아닌 인문적인 의미로도 말이야. 생각해보게. 인류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존재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으니 말이야. 하늘을 날아다니는 개인용 자동차... 주인과의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정말 인공지능이라 불릴만한 로봇들... 홀로그램... 그 모든 것들을 우리는 하나 둘 일상에까지 거머쥐기 시작했다.”
뫼비우스 박사가 말을 마치자, 라비아타와 에바의 모습이 나타났다.
“지석이와 애덤은 그에 그치지 않고 정말 살아있는 인간형의 생명을 창조하고자 마음먹었네.
그리하여 학회에 발표했네만... 자네도 알다시피...”
“반응이 좋지 않았군..”
“그래.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그 둘과 관련자들에게 쏟아진 야유는...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네.”
“...당시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겠지. 그정도는.. 나도 짐작이 가. 바이오로이드 아이들과 동고동락한 나로써는... 잘 그려지지 않지만.”
“애덤은 그 야유에 크게 상처받았으면서도 인간성을 잃었다고 할 정도로 상처받지 않았네. 하지만 지석이는... 그때 내가 말렸다면 이 모든 것들이 달라졌을까? 자네, 인류... 그리고 그 아이와 나의 우정까지도.
어느날 나와 술을 마시던 도중 내게 말했네. 누가 진짜 선구자인지 가르쳐주겠다... 라고.
내 한평생 지금까지도 분노와 복수심에 찬 눈빛은 본적이 없네. 다만, 오해는 말게. 친구로써의 동정심일 뿐, 지석이가 해온 악행에 대해 합리화 시킬 생각은 없어. 특히나 그의 야망에... 어쩌면 제일 큰 피해를 본 자네 앞에서 어찌 그러겠는가?”
“...”
스크린에 한 건물이 점점 커져나가 거대한 도시를 이루는 것이 나타났다.
“한 사람의 야망은 다른 한 사람을 끌여들여 둘이 되고, 그 둘의 여파는 다른 넷, 넷은 열... 그리고 열은 마침내 겉잡을 수 없이 불어나 수많은 이들을 집어삼킨다... 딱 그러했지. 김지석과 애덤은 처음엔 작은 사업체로 시작해, 끝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나는 내 스스로의 분야인 생명공학을 연구하면서 그 둘을 응원했지. 때때로 재정적인... 혹은 인적인 지원이 필요할 때면 소소하게 도와주곤 했고. 그러던 와중에 연락이 왔네. 새로운 세상에는 자네가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말이야. 나는 삼안의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밝은 면“에 속해있었기에... 지석이가 그저... 나쁜 면이 있는 사업가로써 군림하고 있었을 줄만 알았지 그런 천하의 악당이 되어있을줄은 잘 알지 못했네.
아니... 이제와서 생각하면... 어쩌면, 친구라는 이름 아래 그 모든 병폐를 무시하려고 애를 쓴건 아닐지 생각이 드는군.”
스크린에 철충 유충이 나타났다.
“그간의 우여곡절은 거두절미하고, 나도 모르는 일로 애덤이 망가진 일... 애덤의 부인인 에바 프로토타입이 복제품에 시술을 한 줄 알았으나 에바 존스 그녀 자신이 바이오로이드 시술을 받았다는 가슴이 찣어지는 진실을 알게 된 후 무력한 내 자신에게 실망을 금치 못하고 있던 나날의 와중에 철충과의 전면전은 그 모든 인류의 도덕적 방패를 내려놓게 만들고 인적, 물적 자원 모든 것을 동원해 생존을 걱정해야 할 문제가 되었네. 당대의 수없는 천재들이 각종 기술과 이론을 내놓았고 비정상적인 방향으로 기술의 발전이 치솟는 순간 나는...”
우리 둘은 침묵을 이어나갔다.
나에게 있어서는 이제부터 내... 자신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고, 이 뫼비우스 박사에게 있어서는... 스스로의 잘못을 실토해야 하는 순간일테니까.
“...철충의 네트워크에 잠입한다는 발상을 하게 되었네.”
“...”
스크린에 철충의 신경회로와 인간의 시냅스 회로의 비교도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기계생명에, 명령을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자의가 없는 생물이라고 생각했던 철충은... 놀랍게도 인간의 신경과 비슷했네. 그 와중에, 나와 다른 연구진은 한가지 사실을 알게되었지. 상위 개체와 하위 개체가 통신을 할 때에 일정한 패턴으로 지연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말이야. 마치.. 상급자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 이것은 매우 미세한 순간의 타이밍에 발생하는 패턴이기에 그들의 언어적 구조를 해석하기는 어려웠네만... 인류의 멸망이 눈앞에 있는 그 순간에 무엇을 더 망설이겠는가? 우리는 즉시 그 가설을 통해 한가지 계획을 세웠네. 이 신호를 역이용해서 그들의 중심 네트워크에 있는 정보를 다운로드 하기로 말이야. 무언가... 인류가 불리한 방향으로써라도 교섭해서 최대한 한사람이라도 더 살리려고 했지.”
“그랬군...”
“물론, 지금은 너무나도 오랜 세월이 흐른 뒤이기에 그들의 코드도 달라져 내 연구 결과가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군. 자네에게 비유하자면... 자네는 군 통수권자이기 때문에 작전을 지칭하는 암구호가 매번 달라지는 것을 떠올리면 쉬울걸세.”
스크린에 물음표가 나타났다.
“문제는, 테스트로 인간에게 철충의 신경계에 직접 접촉하려고 하면 뭔가... 뭔가 끔찍한 진실을 알아챈 듯 경련을 일으키려고 하더군. 당대의 내로라하는 연산칩을 장착한 사이보그에게조차도 말이야. 나는 피실험자들에게 그런 것을 자행하고 싶지 않아 이 연구를 중단하고 지석이에게 보고를 올렸네. 그러나... 그러지 말고 차라리 내가 좌천되더라도 보고서를 폐기해야만 했어, 그렇지 않았다면 자네가...!”
“...어짜피 일어난건 일어난 일이오, 박사. 이야기를 계속 해 주시오. 부탁이오.”
뫼비우스 박사는 긴 침묵을 이어가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참으로 웃기는군, 컴퓨터에 의식을 통째로 옮겼기에 슬픔이라는 감정은 느껴지지만 더 이상 인간의 육신이 아니기에 눈물을 흘릴 수는 없으니...”
뫼비우스 박사는 스크린에 내 원래 몸과 비슷하게 생긴 무언가의 설계도를 띄웠다.
“김지석이 지휘권을 잡은 이후, 우리는 철충이 바이오로이드들에게는 덜 호전성을 띄운다는 사실에 입각하여 피실험자로써 인격을 최소한으로 갖춘 바이오로이드에게 철충의 네트워크에 단편적으로 접속시켰네. 그러자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인류의 살 길을 찾았다며 너도나도 좋아했지. 그러나, 그런 바이오로이드들로는 단기간의 네트워크 체류 이상으로 많은 정보를 캐올 수 없었고 우리는 더 많은 정보를 캐오고 싶었네. 단순한 과학적인 성과가 아닌 인류 전체의 존망이 걸린 문제였으니. 그러나...”
“...더 큰 야망을 품었겠군?”
“그래... 지석이는 끝내 자신이 인류의 구세주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네. 그들의 정보를 해석하여... 전황을 뒤집어 인류의 구세주이자 선구자가 되겠다고 생각했지. 우리는 실험을 계속한 결과 마음이 어린아이처럼 백지 상태인 코어일수록 네트워크가 더 잘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이 역할에 전담할 바이오로이드를 찾거나 제작하기로 마음먹었네.
블랙 리버나 펙스 연합체와 같은 이들에게 소식을 잡혀서는 안되고 공을 오직 삼안과 지석이에게만 독차지하게 만들기 위해서 제작비 등의 흔적을 남기는 등 소리소문없이 일을 행해야만 했고, 마침 그의 눈에 띄인 것은 겉으로는 회사 소속이었던 에바의 아들이었던...”
“....나였던건가요?”
“...그래. 자네였다네. 애덤에게도, 에바게에게도 유일하게 살아갈 이유나 다름없던 자네말이야.... 마침 에바가 시술을 받은 후 애덤과의 정을 통해 자네를 낳았으니 반은 인간이기에 언젠가는 바이오로이드가 없이 인간으로써도 네트워크에 접속할 방법은 없는지 찾고자 하는 용도까지 겸했였네.”
“...이 결정이 내려지던 때, 나는 지석의 명령으로 다른 일을 하고 있다가 복귀했지. 아마도... 내가 반대할 것임을 인지하고 있었던 듯 하네.”
[박사님의 추론대로 피실험체의 철충 감염 농도를 올리자 네트워크와 동기화가 더욱 안정적으로 상승하였습니다. 온 인류가 당신의 공헌을 기억할테니, 너무 죄책감 가지지 마시죠.]
[지석이, 이사람아! 분명 말했잖나. 저 아이에게 철충들의 정보를 다운로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그런데... 이젠 철충에 대한 전술 기록까지 응용해서 학습시킨 다음 지휘관을 대체하는 병기로 써먹겠다고?! 소년병과 다를게 뭐가 있냔 말이야! 내가 기억하던 과학 꿈나무 지석이는 어디갔냐고!]
[그 꿈나무는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잘 알텐데? 잘 생각해 봐. 이건 우리에게 있어 절대적인 기회다. 우리는 역사에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업적을 이루게 되는거야. 그 누구도 우리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하겠지.]
[박사님, 엄마는 왜 매일 울어요? 제가 철충들하고 싸우는 실험할때마다 아파해서요?]
[엄마가 미안해..! 이 망할 년들, 내 아들에게 이딴 짓을 저지르다니, 이 저주받을 놈들...!]
[콘스탄챠 누나는 어디있어요? 엄마랑 있을때도 좋지만, 콘스탄챠 누나랑 동기화 시간을 가지면 그때두 좋은데!]
[엄마, 박사님이랑 밖에 산책갔다가 이 꽃 주웠어요! 엄마 매일 제 걱정하시느라 우시니까 기운내시라고 이 꽃 줄게요, 헤헤...!]
수많은 기억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전에도 이런 적이 몇 번 있었지만 이 모든 것들을 알아버린 지금... 무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걸까, 이 실험의 단초를 제공한 뫼비우스 박사? 아니면 김지석의 명을 묵묵히 수행한 다른 연구원들? 아니면 욕망의 근원 자체인 김지석?
“일개 개인으로써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 어리석은 과오로 상처입은 자네에게 최대한 인도적으로 대하는 것.... 그방법 뿐이었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