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維 歲次 庚辰年 正月 甲子朔 二日 丙寅 辰時 琅句郡 陽都縣 諸葛家 祭主 諸葛瑾 參 土木干..."
제문을 낭독하는 소리가 낭랑하다.
그 소리가 마치 은쟁반에 옥구슬이 구르듯 하니 이에 참선비라.
지나던 학들마저 날기를 멈추고 이를 듣거늘 제갈가의 차남, 량은 뵈지 않으니 오호 통재라.
근이 이를 내심 슬피 여기노니.
"그래, 수경의 제자께서 노부에게 무슨 볼일인고."
"소생, 공의 따님을 처로 들이길 원합니다."
황승언의 잔이 가늘게 떨린다. 정월 참신제에서 도망쳐와선 대뜸 하는 소리가 딸자식을 내 놓으라니.
평소 기행으로 이름난 제갈가의 차남이지만 이 또한 어인 기행인가.
"내가 행함에 있어 아둔하여 아승阿承이라 불리긴 한다마는 자네도 노부 못지 않은 아인阿人이구먼.
노부의 여식이 아추阿醜라 불림에 있어 그 불민한 내력을 모르지는 않을 터, 그래도 처로 들이기를 원하는가?"
"무릇 사람이란 늙음에 있어 그 빛이 바래지 않는 사람이 없나노니,
외관의 미를 보고 반려를 결정한다면 필히 그 정이 떨어질터,
소생은 공의 여식의 내실을 보고 반하여 외실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나이다."
"허허허, 우스운 일이야. 참으로 우스운 일이로구나. 수경의 제자가 한낱 노부의 추한 여식이 지닌 마른 성에 반하다니,
수경이 이를 본다면 무어라 할고...허허허"
량은 말이 없다. 무릎을 꿇고 술잔을 내린 그 태가 흡사 조용히 내려앉은 한 마리의 백룡이라.
발하지 않아도 반쯤 감은 눈 사이로 정기가 흘러나오니 이야말로 이인이라.
이러한 이인이 여식의 반려가 된다면 승언으로선 거절하지 않을터, 아니 백만금을 준들 아깝지 않을 터.
"각설하고, 그럼 공자는 어이하여 여식에 눈을 들이었는고?"
일순, 량의 눈이 떠진다. 흘러나오던 기운은 갈무리하여 품었지만 승언의 눈엔 그 속에 담긴 진옥이 보이리라.
량은 천천히 승언에게 한장운에서의 일을 말하였다.
"...그리하였던 것입니다."
승언은 미소를 짓고 있다. 반면 공명의 얼굴엔 일편의 변화도 없다.
승언은 문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월영아, 월영아. 거기서 무얼 하느냐. 어서 들어와 인사드리거라."
소리없이 문이 열리고, 하느다란 옷소매로 숙인 얼굴을 가린 소녀가 죽인 발소리로 들어와 량을 향해 배한다.
승언은 량의 얼굴에서 가느다란 미소를 발견했다. 그리곤 조용히 일어나 문 밖으로 걸음한다.
"왜 고개를 들지 않는게냐."
승언의 기척이 사라지자 나직이 량이 묻는다.
"소녀의 용모가 심히 추악하여 공의 심기를 거스를까 두려워 감히 들지 못하겠나이다."
"그런가. 아아, 슬프구나. 내가 쉬이 행동한 것인가. 아니면 내가 사람을 잘못 생각한 것인가.
그대에겐 필부가 그리 비추어진 것이더냐?"
"...소녀의 생각이 짧아 공의 심기를 헤아리지 못하였나이다.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소녀는 천천히 두 팔을 내린다. 하이얀 천 위로 드러난 소녀의 얼굴에서 아추의 별명은 찾을 수 없다.
겨우 지학을 깨칠 나이건만 여타 피어난 꽃들보다 그 화영花英이 더욱 빛을 발하노니 이 어찌 아추라 하리오.
백옥과 같은 얼굴, 달을 닮은 눈, 유려하고도 미려한 선은 또한 단아하고도 수수하여 그 용모가 참으로 아름답도다.
"아추라 함은 스스로 붙인 것이더냐."
"소녀의 생각을 열 길 앞을 짚고 계시니 소녀 무어라 답을 올리지 못하겠나이다."
"한장운의 네 지모. 잊지 않았다."
"...부끄럽사옵니다. 수경 선생의 수제자께서 어찌 소녀의 얕디 얕은 생각에 놀라셨는지요."
량의 얼굴엔 승언의 앞에선 볼 수 없던 미소가 떠올라 있다. 반면 월영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미소를 찾아 볼 수 없으니,
마치 예의 승언과 량의 꼴이라.
량이 일어나 먼저 밖으로 나서며 월영에게 말하노니,
"답답하지 않느냐. 좀 걷도록 하자꾸나."
백자갈석과 흑자갈석이 펼쳐진 뜰 위로 두 사람의 발걸음이 있다.
선행하는 시원시원한 발걸음 뒤로 작고 소리없는 발걸음이 따른다.
벌써 한 식경이 넘었건만 두 발걸음의 주인들은 말이 없다. 오로지, 걷고 또한 걸음이라.
일순, 량이 멈추어 선다.
"아니되겠는가?"
"......"
량의 뜬금없는 질문에 월영은 말이 없다.
"아니되겠는가?"
"......"
두 번째의 질문. 역시 대답은 들리지 않음이라. 량이 마악 세 번째의 물음을 던지려는 순간,
"인생사 하늘의 연이 정함이라. 소녀, 감히 공에게 하늘의 뜻을 물으려 하오이다. 부디 통촉하여 탐탁지 않게 생각하지 말아주십시오."
소녀의 입술이 움직인다. 월영은 작은 주머니를 꺼내 바닥에 깔린 두 개의 돌을 주워 담았다.
"공이 소녀의 천생배필이시면 백석을 잡으실 것이요, 연이 닿지 않으신다면 흑석을 잡으시오리다."
량의 뒤에서 보이지 않음이라 생각한 것인가. 분명 소녀는 백석과 흑석이 아닌 2개의 흑석만을 주운 것이다.
거절의 뜻이련가, 감히 량의 지모를 시험하는 것인가.
량이 시험을 거부한다면 소녀 역시 량을 거부할 것이요, 량이 소녀의 잘못을 들추어 내려치면 또한 실수라 대답할 것이다.
량이 주머니 속에서 무엇을 잡던 그 것은 흑석이리라.
량은 빙긋이 웃으며 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
제갈량은 어떻게 월영의 딜레마를 해결하였을까?
혹시 이 퀴즈를 보신 분도 있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문제는 제가 대략 10년 전쯤 모 카페에서 활동할 때 작성했던 글인데
어쩌다 우연히 다시 발견하게 되어 이렇게 올려봅니다.
문제의 트릭 자체는 상당히 유명한 문제죠. 추리 게시판에 비슷한 유형의 퀴즈가 몇번 올라오기도 했구요.
다만 이 트릭을 사용해 썼던 것이 당시에 꽤 마음에 들었던지라 상당히 기억에 오래 남았던 글이네요^^;
"하늘의 뜻이라...그렇군. 하늘의 뜻이야." 량은 천천히 돌을 쥔 주먹을 빼어낸다. "자, 이 것이 백색일까, 흑색일까. 그렇지. 이는 하늘만이 아실일이지." 량은 눈을 감는다. "하늘의 뜻이라...인간이 창천의 뜻을 뜻을 어찌 알 수 있으리요. 하지만..." 일순, 량은 돌을 뒤로 던져버렸다. "인간의 지모로 뜻을 기울게 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니련가!" 타닥, 탁 예견한 일일까. 량의 기행에도 월영은 변화가 없다. 푸른 달과 같은 눈동자만이 무심히 량을 향할 뿐이다. "내가 그대에게 뜻을 정하였으니 하늘 또한 뜻을 주실 터, 내가 던진 돌은 중요치 않으나 남은 돌은 흑석이리라. 고로 내가 백석을 잡았으니 어찌 하늘의 연이 닿지 않았다 하리오." 과연, 월영의 주머니에 남은 것은 흑석이라. 소녀, 주머니를 던지고 무릎을 꿇으며 가로되, "소녀, 하늘의 뜻을 빗삼아 미숙한 성으로 공을 시험하였나이다. 공께서 그 깊디깊은 지모로 뜻을 잡으시고 소녀의 부정한 허물마저 덮어주시나니 그 은이 하해와 같나이다. 소녀의 마음은 이미 정하였나니, 이제 와 소녀의 죄를 물어 소녀를 내치신다하더라도 소녀, 공을 원망하지 않겠나이다." 하며 얼어붙었던 빙령氷英이 환히 피어나니 미소가 그 어느 천상 선녀에도 비할까.
주머니에서 돌을 꺼내자 마자 땅에 버리는거네요. 그러면 주머니에 남은 돌은 무조건 흑돌이니, 처음에 꺼낸건 백돌이 되야 하죠.
땅에 버리는 순간 보이면 "어 저거 흑돌....아닙니다.
"하늘의 뜻이라...그렇군. 하늘의 뜻이야." 량은 천천히 돌을 쥔 주먹을 빼어낸다. "자, 이 것이 백색일까, 흑색일까. 그렇지. 이는 하늘만이 아실일이지." 량은 눈을 감는다. "하늘의 뜻이라...인간이 창천의 뜻을 뜻을 어찌 알 수 있으리요. 하지만..." 일순, 량은 돌을 뒤로 던져버렸다. "인간의 지모로 뜻을 기울게 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니련가!" 타닥, 탁 예견한 일일까. 량의 기행에도 월영은 변화가 없다. 푸른 달과 같은 눈동자만이 무심히 량을 향할 뿐이다. "내가 그대에게 뜻을 정하였으니 하늘 또한 뜻을 주실 터, 내가 던진 돌은 중요치 않으나 남은 돌은 흑석이리라. 고로 내가 백석을 잡았으니 어찌 하늘의 연이 닿지 않았다 하리오." 과연, 월영의 주머니에 남은 것은 흑석이라. 소녀, 주머니를 던지고 무릎을 꿇으며 가로되, "소녀, 하늘의 뜻을 빗삼아 미숙한 성으로 공을 시험하였나이다. 공께서 그 깊디깊은 지모로 뜻을 잡으시고 소녀의 부정한 허물마저 덮어주시나니 그 은이 하해와 같나이다. 소녀의 마음은 이미 정하였나니, 이제 와 소녀의 죄를 물어 소녀를 내치신다하더라도 소녀, 공을 원망하지 않겠나이다." 하며 얼어붙었던 빙령氷英이 환히 피어나니 미소가 그 어느 천상 선녀에도 비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