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 게임은 다양한 장르가 있다. 장애물을 피하고 넘는 플랫포머, 총을 이용하여 싸우는 슈터, 우주선을 타고 싸우는 스페이스 심…
그 중에서도 ‘액션’ 하면 떠오르는 것은, 주먹이나 창, 칼등의 냉병기를 갖고 적과 면대면으로 싸우는 3D 게임들일 것이다. 데빌 메이 크라이도 좋고, 삼국무쌍 시리즈 좋고, 최근 떠오르는(떠오른지 10년 넘은) 소울즈 시리즈도 좋다. 전투를 중심으로 하는 2D 게임들도 포함해서, 이 글에서는 이들을 전부 “근접 액션 게임”이라고 부를 것이다.
하지만, “근접 액션 게임”의 재미가 어디서 오는지, 사람들에게는 많은 오해가 있는 듯하다. 앞으로 설명할 것이지만 액션 게임들의 장르가 편중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전까지 반복적으로 플레이하여 랭크를 올리는 데서 보람을 느꼈던 아케이드 스타일이 먹히지 않는 시대가 와서 그렇기도 하다. 그래서 이 장르에게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막막한 질문들이 있다.
“야 넌 맨날 싸우는 겜 하면서 왜 격겜은 안하냐?”
“난 피지컬이 안되서 이런 게임은 못하겠어”
“그거 적 패턴 파훼하면 끝 아냐?”
이 글은 이런 질문이나 오해들에 대해 답해가면서 초보들~중수들의 시점에서, 일반적으로 “근접 액션 게임”을 더 재미있게 즐기는 방법에 대해서 써보고자 한다. 초보들에게는 이 안내서를 통해서 “아, 이 게임은 이런 요소에 집중한 게임이구나” 혹은 “그 때 그 글에서 이런 얘기를 했는데 좀 신경 써볼까?”하는 식의 생각을 갖게 되고, 중수들에게는 이미 몸으로 체득한 내용을 다시 한 번 검토할 수 있다면 이 글의 목적은 달성된 것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럼 본론으로 넘어가, “근접 액션 게임”의 메커니즘에 있어서 중요한 세 가지 요소를 소개할 것이다.
첫째는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공방
둘째는 대 분대전에서 필요로 해지는 전술성
셋째는 이들을 아우르는 유연성의 정도
1. 공방
가장 기초가 되는, 적과 1:1 상황이 되었을 때 공방을 의미한다.
입문자나 근접 액션 장르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이 갖는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이게 근접 액션 게임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기본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적과의 공방은 중요하다. 플레이어가 아예 피하고 막고를 못하면 게임을 진행할 수 없을 것이다(그래서 피지컬이 안되서 게임을 못하겠다는 이야기는 어느 정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라는 것이 이 글에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다. 만일 그것 뿐이라면, 모든 근접 액션 게임은 격투 게임이란 장르의 하위 호환에 그칠 것이다. 사람과 심리전까지 걸 수 있는 공방의 재미는 격투 게임에 이미 있으니까. 그걸 염두에 두고, 공방의 요소에 대해서 짧게 적어보고자 한다.
ㄱ) 주인공 캐릭터의 조작
흔히들 말하는 “타격감”은 매우매우 광범위한 단어이다. 시각적 청각적, 나아가 진동을 통한 촉각적 피드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캐릭터의 모션의 유연함이나 혹은 그렇지 않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또는 캐릭터에게 적용되는 여러가지 환경적인 요소(중력가속도, 딜레이)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많은 플레이어들은 컨트롤러를 쥐어봤을 때 직관적으로 느끼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것은 공방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몬스터 헌터나 인왕은 대체로 한 동작을 중간에 끊고 다음 동작으로 강제로 이행하는 “애니메이션 캔슬”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게임들은 한 번 조작을 잘못하면 중단하거나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조금 더 신중한 싸움을 요구한다. 데빌 메이 크라이나 베요네타 등으로 유명한 스타일리시 액션 게임은 애니메이션 캔슬을 장려하며, 그렇기 때문에 적들도 더 빠르게 공격하고 플레이어들도 빠르게 대응하는 것을 요구한다.
어떤 종류의 게임을 더 선호하느냐는 있을 수 있겠지만, 이것만으로 어느 게임이 절대적으로 더 재밌고 어느 것이 덜 재밌냐는 말할 수 없다. 다양한 게임을 즐겨가면서, 자신에게 맞는 게임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캐릭터 조작은 다음의 요소로 이어진다.
ㄴ) 리치 싸움
슈터와 근접 액션 게임의 가장 큰 차이는, 주인공 캐릭터가 적 캐릭터에 닿을 수 있는 리치가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총과 같은 무기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특수 무기이거나, 일반적인 슈터만큼 결정적으로 승부를 가릴 수 있는 무기들은 아니다. 넓은 범위를 커버할 수 있는 봉이나 낫과 같은 무기들은, 대체로 후 딜레이가 크다거나 휘두르는 속도 자체가 느려서 기본 무기(보통 검이나 맨손)보다는 DPS가 덜 나온다는 식으로 패널티를 주고 있다.
공방에서는 이러한 리치 싸움이 중요하다. 위에서 말한 봉이나 낫과 같은 넓은 범위를 커버하는 무기를 들고 있다면, 상대가 리치 닿지 않는 곳에서 내가 공격할 수 있는 거리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반대로 상대보다 짧지만 빠르게 공격할 수 있는 단검 따위를 들고 있다면, 상대의 공격에 유의하면서 틈 안으로 파고들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배트맨 아캄 시리즈에서 소개된 프리 플로우는, 이러한 리치 싸움을 거의 완전히 제거한 게임이다. 반격 기능이 우수할 뿐만 아니라, 평타 버튼을 연타하면 배트맨이 자동적으로 다음 적을 향해서 이동하기 때문이다. 아캄 시리즈의 전투가 “네모랑 세모만 누르면 되는 게임”이라는 비아냥을 산 것도 여기에 있다. 글쓴이는 아캄 시리즈의 전투에도 즐길만한 요소들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리치 싸움을 통한 재미를 느끼긴 어려운 게임이 된 건 사실이다.
반대로 소울즈 시리즈에서 인간형 적과의 전투는, 서로 기동성이 부족한 대신에 이런 리치 싸움의 묘미를 매우 잘 살렸다고 볼 수 있다. 상대가 들고 있는 무기와 내 무기의 특성을 보고, 언제 치고 언제 빠져야할지, 혹은 좀 더 상대의 리치에 가까워질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배후를 잡아서 백스탭(뒤 찌르기)를 할지 그런 리치 싸움의 긴장감이 대단한 시리즈다.
ㄷ) 공방의 옵션들
리치가 서로 비슷하다고 가정할 때, 공방에도 여러가지 옵션들이 있다. 이것을 제한함으로써 게임의 재미를 얻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이것들을 풀어줌으로써 게임의 재미를 얻는 경우도 있다.
다크 소울즈 1이라면, 상대가 공격했을 때 반격방법은 무엇일까? 구르기와 방어, 패리 혹은 발동이 더 빠른 공격들로 상대의 공격을 저지하는 방법이 있을 수가 있겠다.
데빌 메이 크라이 3라면, 구르기와 방어(로열가드), 발동이 더 빠른 공격 뿐이 물론 갖춰져 있다. 하지만 거기에 더해서 (이단) 점프 하기, 대시, 벽타기, 머리 위로 순간이동, 찌르기 공격(스팅어) 등의 리치싸움에서 우위를 선점할 수 있는, 뛰어난 기동성이 마련되어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아주 짧은 반응속도를 요구하지만 적의 공격을 반격하는 기술이나, 초필살 상태(데빌 트리거) 발동으로 공격 무시 등과 같은 옵션들이 있다.
그렇다면 무조건 데빌 메이 크라이 3가 공방이 뛰어난 게임일까? 그것은 아니다. 데빌 메이 크라이 3의 적들은 플레이어의 옵션에 맞춰서 대체로 넓은 범위를 공격할 수 있는 낫을 들고 있으며, 순간이동을 하거나 멀리서부터 대시 해오는 녀석이 초반부터 등장한다. 공중에 떠다니다가 활강해서 몸통박치기하는 녀석들도 금방 소개된다. 말하자면 플레이어의 능력을 방해할 만한 장애물로 적들이 등장하고, 이들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할 부분이 생긴다.
단순히 옵션이 많기 때문이 아니라, 그 옵션들 중에 무엇을 택해서 어떻게 전황을 풀어나갈지 고민해야 하기 때문에 데빌 메이 크라이 3의 공방은 재밌다.
반면 제대로 된 대공옵션이 없는 다크 소울즈 1에 공중에 떠다니는 녀석들이 필드에 널려있다고 한다면 플레이어는 짜증만 날 것이다. 대응할 수단이 매우 적거나(활이나 마법이 있긴 하다), 거의 없기 때문에, 분명 난이도는 높아지지만 재미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다크 소울즈 1은 초반부터 그런 적들을 내보내진 않는다. 그런 적들이 나오긴 하지만 데메크3처럼 자주 나오지도 않고, 게임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후에 등장하는 것이다(물론 초반에 등장하는 미니보스형 용을 잡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주 실력자가 아니라면 대체로 1회차에선 그냥 피해갈 것이다;).
즉, 공방의 양상은 주인공 캐릭터의 조작성 뿐만 아니라, 적군 캐릭터의 구성도 아주 중요해진다.
그리고 적군 캐릭터의 구성을 얘기한다면, 지금까지 1:1 공방만을 가정해왔던 것에서 더 멀리 나아갈 필요가 있다.
2. 전술성
글쓴이가 보기에 근접 액션 게임의 재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보스전도 재미있지만, 보스전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자주 일어나는 것은 일반 몹과의 필드전이다. 그리고 일반몹들은 대체로 ‘분대’를 이뤄서 등장한다. 이런 식으로 분대에 의해 주인공 캐릭터가 둘러싸여 있을 때야말로, 근접 액션 게임 필드전의 묘미, 아래에서 말할 초월감이 발생한다. 왜 그럴까? 공방의 양상이 달라지는 것도 있다. 그러나 그 공방의 양상을 다르게 만드는, 다른 적들에 의해 가해지는 ‘압력’을 조절하는 것이 게임의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ㄱ) 우선순위 선정
조금 추상적인 예를 들어보자. 당신은 가드, 대시, 더블점프와 기본무기인 한손검을 지닌 주인공 캐릭터를 갖고 시작한다.
한 편 적은 ‘잡몹’이다. 일반적인 펀치를 두 세번하고 빠지고, 가끔 준비동작이 큰 어퍼컷으로 플레이어의 가드를 무시하고 스턴 시키며, 한 서너대 맞으면 죽는다. 이런 ‘잡몹’은 한 마리보다야 일곱 마리가 어렵겠지만, 전투의 양상을 크게 바꾸지는 않는다. 그냥 가드를 잡고 있다가 한 마리씩 잘라내면 그만이거나, 범위가 넓은 기술로 한방에 보내버리면 그만이다. 준비동작이 큰 어퍼컷은 그냥 대시나 더블점프로 빠지면 되니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적 ‘덩치’를 가정해보자. 체력이 높고 경직이 적으며, 기본 공격이 스턴 공격이고, 멀리 있으면 달려와서 덮치는 ‘잡기’ 공격을 쓰는 몹이다. 물론 ‘잡몹’보다는 ‘덩치’가 위협적이다. 하지만 ‘덩치’ 혼자라고 한다면, 대체로 대시든 더블점프든 잡기 공격할 때 빠져나온 뒤에 반격할 타이밍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잡몹’ 일곱 마리와 ‘덩치’ 한 마리의 조합이라면 어떨까? 그럼 ‘덩치’만을 상대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그러다가 ‘잡몹’에게 공격당해서 스턴을 먹을 수도 있고 펀치를 맞아서 체력 게이지를 깎일 수도 있다. 당신은 최대한 잡몹을 먼저 제거하고 ‘덩치’를 견제하는 방식으로 플레이하게 될 것이다. 잡몹이라는 ‘압력’을 줄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적 종류 ‘돌팔매’를 더 해보자. 멀리서 돌을 세번 연속 던져서 높은 데미지를 주는 적이다. 이들도 당연히 따로 따로 있을 때는 플레이어가 기동성이 높기 때문에 별로 어려울 것 없다. 적당히 가드를 하면서 리치를 줄이면 그만이다.
하지만 ‘잡몹’ 일곱마리, ‘덩치’ 두 마리, ‘돌팔매’ 세 마리의 구성이 되면 어떨까? ‘덩치’의 공격을 허용하게 만들 수 있는 ‘돌팔매’의 위협은 압도적이다. 당신은 대체로 ‘돌팔매’부터 우선적으로 없애 버리고, ‘잡몹’을 줄이면서 ‘덩치’를 견제하는 식으로 플레이할 것이다. 하지만 ‘돌팔매’와의 거리가 너무나 멀다면, 일단 ‘잡몹’을 줄여가면서 ‘돌팔매’에게 다가가는 식으로 플레이하게 될 것이다.
조금 추상적인 예시지만, 대충 이해가 갔을 것이다. 적들은 분대를 이뤄 진형을 만들고, 플레이어는 이 진형을 무너뜨림으로써 더욱 유리한 상황으로 자신을 이끄는 것이다. 이때, 어떤 적부터 먼저 골라내야할지 적들의 우선순위를 선정하고, 적 캐릭터와 내 캐릭터의 상황(리치, 패턴, 지형…)을 보고 가능한 효율적인 옵션을 골라서 전술적으로 신속하게 행동하는 것이 내게 있어서는 근접 액션 게임의 진짜 묘미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게임들도 있다. 보스 러쉬만 이어지는 게임도 그렇고, 소울즈 시리즈에서도 분명 대 분대형 전투가 있지만 그렇다고 고려해야 할 수가 엄청나게 많은 것은 아니다. 그런 게임들이 무조건 근접 액션 게임으로서 수준 떨어지는 게임이라고 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다대일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대분대전이 근접 액션 게임만의 묘미이며, 격투게임처럼 1:1 공방이 뛰어나게 발전하더라도 구현할 수 없는 것이다.
ㄴ) 위치 선정
이는 1. 공방에서 ㄴ) 리치 싸움이 전술성을 통해서 확장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위에서 말한 대 분대전의 경우에, 적들이 포위망을 형성하기 때문에 이를 테면 ‘잡몹’의 리치를 벗어나서 공격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게 ‘덩치’의 바로 옆이라면 플레이어에겐 메리트가 없다. 플레이어는 때로는 공격을 포기하더라도 적들의 포위망을 빠져나와 비교적 안전한 자리로 옮길 필요가 있다. 혹은, 역으로 적이 갖고 있는 포지션을 이용하여 적을 분대로부터 고립시키고 빠르게 처리하는 방식도 있다. 사실 공중콤보라는 수단은, 멋있어 보이는 것도 크지만 굳이 ‘그라운드 콤보’가 아니라 ‘공중’을 택하는 이유로써, 플레이어가 적을 고립시켜서 비교적 분대로부터 안전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있다.
또한 공방에 이기고 난 뒤에도 끊임없이 포지션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적을 고립시키지 않고 포위망의 한 가운데에서 회수 동작이 큰 기술을 썼다고 한다면, 적 한 마리는 해치웠을지언정 결국엔 어마어마한 패널티를 입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1:1 공방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움직임들이 도출되게 된다.
액션 게임은 보통 이 모든 것들이 짧은 시간에 빠르게 이뤄진다. 마치 제한시간이 짧은 퍼즐을 연속해서 푸는 것과 같다. 이런 전략성에 플레이어가 대응하거나 혹은 그걸 넘어설 때, 주인공 캐릭터가 하늘에서 공중제비를 돌고 벽을 달리며, 고립시킨 적을 베어넘긴 뒤에 큰 모으기 공격을 준비할 공간을 마련할 때, 어떤 초월감이라고 할만한 것이 발생한다. 그 때 플레이어는 적들의 공격을 보고 판단해서 플레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적의 공격을 앞질러서 먼저 판을 짜고 그 안에서 적들을 요리하는 식으로 게임을 플레이한다.
뭣보다도, 이 글에서 두 번째로 예시로 든 “난 피지컬이 안되서 이런 게임은 못하겠어”는 분들도, 사실 전술성을 높이면 이런 게임들을 즐길 수 있다.
내게 위와 같은 전술성에 대한 생각을 갖게 해준 게임이 하나 있다. 액션 게임은 아니지만, 액션 게임의 이러한 묘미를 턴제에서 구현시킨 Fights in Tight Spaces라는 택티컬 턴제 게임이다.
ㄷ) 자원관리
자원 관리? 무슨 자원 관리? 슈터처럼 탄환 수가 제한된 것도 아닌데,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많은 근접 액션 게임은 체력 게이지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흔히 말하는 필살기 게이지가 있는 경우도 많고, 스테미너 게이지를 통해서 기동성을 조절하는 경우도 많다. 전술성에서는 당연히 어러한 부분도 포함된다.
이 글에서는 여기서 어떤 게이지를 관리하는 것을 전부 자원관리라고 부른다.
배트맨 아캄 시리즈의 예시를 들어보자. 배트맨 아캄 시리즈에서는 콤보 게이지가 존재하고, 이 게이지가 높아지면 비례해서 공격력도 높아진다. 플레이어는 콤보 게이지를 계속 유지함으로써 높은 공격력을 확보하는 것을 지속할 것이냐? 아니면 일단 콤보가 이어지지 않더라도 포위망에서 빠져나와 안전한 곳으로 위치를 옮길 것이냐? 하지만 그러다가 공격을 당하게 되면 콤보 게이지를 잃는 것뿐만 아니라 체력도 잃게 될 텐데? 하는 식의 고민을 하게 된다. 전투의 양상은 이런 식으로 작은 자원을 관리하는 데서도 변화가 일어난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스테미너 게이지를 채용한 게임 중에서도 인왕은 굉장히 흥미로운 선택을 하고 있다. ‘잔심’이라고 불리는 메커니즘을 통해서 동작 애니메이션이 끝난 직후에 스테미너를 회복할 수 있는 수단이 있으며, 무기에 따라서는 이 ‘잔심’이 무적 프레임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어 좀 더 어그레시브한 플레이를 유도한다. 그러나 여기에 더해서, ‘잔심’ 중에 자세를 한번 혹은 연달아 바꾸는 ‘유전’이라는 메커니즘을 통해서 공방 전체의 흐름을 바꾼다. 적의 스테미너는 깎아내면서도, 나의 공격 도중에 내 스테미너는 유지되도록 조절하는 매니지먼트 과정이 스탠스(=스타일) 체인지로도 이어진다. 다양한 기술의 구사가 단순히 현란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공격의 주도권을 계속 쥐고 있을 수단으로도 기능하는 것이다.
3. 유연성
사실 이 개념은 지나치게 넓다. 이건 공방에서 말한 캐릭터 조작이나 옵션 뿐만 아니라, 나아가 적의 구성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예를 든 ‘잡몹’x7, ‘덩치’x2, ‘돌팔매’x3이라는 전투 시나리오를 다시 보자.
당신에게 한손검과, 길다란 봉이 있다고 할 때, 굳이 ‘돌팔매’부터 잡기보다는 길다란 봉으로 ‘잡몹’들 여러마리를 먼저 보내버리는 범위 공격을 하고, 그 다음에 ‘돌팔매’를 잡고 ‘덩치’에게 도전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플레이가 바뀔 수도 있다. 아니면 ‘한손검’으로 ‘돌팔매’와 ‘잡몹’을 잡은 뒤에 좀 더 데미지가 높은 봉으로만 ‘덩치’들을 상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무기 교체하기 번거로우니 그냥 한손검만 써서 아까 말한 플레이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옵션이 늘어남으로써 유연성이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덩치’는 봉으로만 잡을 수 있다고 정해지면 어떨까? 두번째 옵션인 ‘한손검’으로 ‘돌팔매’와 ‘잡몹’을 잡은 뒤에 봉으로만 ‘덩치’를 상대하는 식으로 전투양상이 바뀔 것이다. 적의 구성으로 인해서 유연성이 줄어든 것이다.
유연성이 절대 만능은 아니다. 유연성을 줄이는 대신에 긴장감을 높이는 방식의 근접 액션 게임도 얼마든지 있다. 최근에 발매한, 무기가 오로지 주먹 하나 뿐인 sifu도 그러한 예시였다(물론 여기에도 기술 넣는 방식이 있긴 하지만, 무기 실시간 교체가 되는 게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렇단 얘기다). 하지만 이런 게임들은 보통 “한 번 게임을 클리어하고 나면” 그 게임으로 다시 돌아갈 이유가 없다. 유연성이 이를 방지한다. “그거 적 패턴 파훼하면 끝 아냐?” 라는 질문에 대한 반박이 여기에 있다.
이 부분은 사실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케이스다. 애초부터 “한 번 게임을 클리어” 했는데 다시 게임을 해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혹은 유연성을 줄이더라도 게임의 난이도를 높여서 훨씬 더 긴장감 넘치는 전투를 즐기는 편이 재플레이하는 쪽이 재밌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분명 근접 액션 게임에 있어서 플레이어에게 전투 시나리오라는 캔버스를 주고, 다양한 옵션이라는 물감을 주어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퍼포먼스적인 성향이 있음을 무시할 수는 없다.
아케이드적인 랭킹, 스코어 시스템이 대표적인 요소다. “게임을 한 번 클리어”하여 자신에게 습관이 된 방식에 그치지 않고, 더 높은 점수를 노리는 것으로 즉 게임이 요구하는 다른 방식의 플레이를 통해 더 다양한 플레이들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 글은 메커니즘의 범위를 넘어서게 된다.
“근접 액션 게임”을 하는 이유가 뭘까?
그 중에 하나는 분명 ‘판타지’를 채우는 부분도 있다. 액션 영화에서 무술 고수가 수 많은 적에게 둘러싸였지만 좌우로 싹 스캔한 뒤에 순식간에 적의 진형을 와해하고 멋있게 적을 쓰러뜨리는 걸 ‘내가 직접’ 해보고 싶다, 거기에 더해서 멋있는 기술로 마무리까지 장식하면 더할 나위가 없다, 적어도 나는 그것이 하고 싶어서 “근접 액션 게임”을 플레이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유연성이 높은 게임을 선호한다.
어떤 게임을 좋아할지야말로 플레이어의 자유다. 하지만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까지 콤보를 짜는 거지? 저러면 플레이가 더 쉬워지나?” 혹은 “액션 게임란 건 적 패턴 파훼하고 클리어하면 끝 아냐?”라고 생각하는 초보자들 중에, 이 글을 통해 “아 그런 것도 있구나, 나도 해볼까?”라는 생각을 갖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