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도전, 설렘과 두려움 사이
사실 이렇게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매우 조심스러워요. 왜냐면 아직 뚜껑이 열리기 전인데다,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조금 두려운 마음도 있고요.
'장옥정, 사랑에 살다'를 만난 건 작년 겨울 무렵이었어요. 계속 이야기가 나왔고, 감독님과 미팅을 했죠. 사실 전부터 연기에 관련해서는 속상한 일들이 조금 있었기 때문에 기대가 크지 않았어요. 그래서 미팅 때도 '안되겠지...'라는 마음으로 갔었고요. 물론 의욕만만으로 감독님과 대화를 나누기는 했지만, 안된다고 하더라도 익숙하니까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뜻밖의 좋은 결과가 있었어요. 저에게 '숙빈' 캐릭터가 주어진거예요. 감독님이 쓴 소리도 해주시며 자리에서 바로 확정을 지어주셨거든요. 돌아오는 길에도 뭔가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었고, '진짜 찍는거야?' 싶더라고요.
집에 돌아오니,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저를 처음 보시고는 '같이 하자'는 감독님의 말을 떠올리니까 눈물이 나더라고요. 처음에는 얼떨떨해서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뭔가 인정을 받은 것만 같고 진짜 내 모습을 보여줘서 한 번에 '오케이'를 받은 적이 있었던가 싶기도 했고요. 눈앞에서 '너 잘 할 것 같아'라는 말을 들은 게 처음이라고 할까요. 더군다나 감독님의 말이 진심으로 느껴져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그동안 예능프로그램이나 카라 속 한승연의 단편적인 이미지들이 강해서 대중들이 생각하는 저는 늘 웃는모습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또 6년 동안 활동을 해오면서 스스로를 과소평가 하고, 주눅 든 부분도 많았고요.
음...뭐랄까요, 정말 뛰어난 재능을 지닌 친구들에 비해 저는 우직하게 노력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저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것들을 편하게 하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목이 아프고 힘들어서 눈물이 나도 '연습을 계속 해야 돼, 오늘 쉬면 영원히 안돼'라는 마음으로 몰아 쳤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자신감은 조금씩 줄어들었고, 주눅이 든 거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연기에 대한 욕심은 잠시 뒤로 미루었죠. 사실 연기에 대한 관심은 가수가 되고 싶다는 마음 보다 훨씬 이전인 초등학생 때부터였어요. 당시에 신문에서 연기 학원에 대한 광고를 보고, 직접 오려서 엄마께 보여드렸어요. '다니고 싶다'고 말했죠. 이후에는 단역, 엑스트라를 하면서 새벽에 일어나 엄마와 촬영장을 가기도 했어요. 그래서 연기에 대한 선망 같은 게 늘 있었죠.
그런데 스물여섯이 된 지금, 제가 성인연기를 하게 돼 감회가 새로워요. 설레기도 하고, 또 부담도 크고요.
◆ 숙빈은요...
숙빈 역으로 캐스팅이 된 다음 저는 연기 선생님을 비롯해서 주위 분들에게 '이거 저에게 독이 되는 건 아닐까요?'라고 물었어요. 급격히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이기도 했고, 괜한 욕심은 아닐까 싶더라고요.
그런데 또 다르게 생각하니까, 도전하는 걸 무서워하면 언제든 안되겠더라고요. 언제가 됐든 시작은 두렵기 마련이잖아요. 스타트 지점은 어떻게든 끊어야 하고, 그래서 해야겠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 마음을 다잡고 숙빈을 입기로 했죠.
그리고 다음으로 든 생각은 저의 실제 성격과 대중들이 가지고 계신 이미지의 괴리감이었어요. 음.. 사실 저는 애교도 없고 떼 부리는 성격이 아니에요. 예능프로그램 속 모습은 실제 성격과는 조금 동 떨어진거죠. 데뷔 초에는 그래야했고, 또 아이돌그룹으로서 항상 웃는 얼굴을 유지해야만 했어요. 웃지 않으면 사나워 보이고, 화난 것 같단 말을 들었거든요.
최근에는 좀 더 솔직하게 방송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러던 중에 숙빈을 만난거죠. 어쩌면 이번 기회로 저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도 들었어요.
아이돌로서 갖고 있는 이미지를 연기로 가지고 가면, 스펙트럼이 좁아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 가지에 고정된 이미지를 갖기가 싫기도 했고. 여러 가지 다양한 것들을 해보고 싶은데, 어찌됐든 카라 한승연의 밝은 이미지를 굳이 연기 쪽에 가지고 와야 할 필요를 못 느꼈어요. 물론 그렇게 했다면 보는 분들도 좀 더 익숙하고 편하시겠죠. 저 역시도 카메라 앞에서 웃는 건 이제 익숙하기 때문에 편하게 할 수도 있었겠고요.
그런데 언제까지 하나의 이미지로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 저도 이제는 다른 모습을 보여드려야 할 것 같아서... 고민하고 결정했어요. 변신을 해보자고! 두렵지만 한 번 시작해보자고.
출연을 확정짓고 감독님이 책 두 권을 선물해주셨어요. 숙빈 최씨에 초점이 맞춰진 책이에요. 많은 분들이 악독한 장희빈에 익숙해져있고, 인현이 너무 가련했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숙빈은 애매한 위치였어요. 그리고 '동이'라는 작품이 워낙 잘됐고, 그만큼 한효주씨의 동이가 시청자들에게 익숙하죠. 그런데 숙빈 최씨는 사실 이름이 없어요. 동이라는 이름이 허구고, 기록도 많이 남아있는 편이 아니에요.
책에 보면 숙빈에 대한 구절이 이렇게 표현되어 있어요. '남의 말을 옮기기를 즐겨하지 않으며, 성격이 바위와 같고 입이 무거우며 온화하다'. 이 구절을 깊게 생각해봤고, 덧붙여진 스토리를 읽으면서 그의 삶을 그려봤어요. '동이'가 생활력과 의지가 강한, 밝게 살아가려는 숙빈을 그렸다면 저는 닳고 닳은 숙빈을 표현할 예정이에요. 엄청 강하고, 현명하고 계산이 빠른 인물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 "부족하겠지만, 예쁘게 봐주시길"
지금 저는 '장옥정, 사랑에 살다' 준비에만 몰두하고 있어요. 결과야 어떻든 스스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요. 조선시대, 어렵잖아요. 사실 역사에 빠삭한 편이 아니라 잘 모르는 것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책도 많이 보고, 드라마도 보고 있어요. 남들이 몇 년에 걸쳐서 볼 것들을 지금 한 번에 몰아서 접하고 있는 거죠. 완전히 마스터 했다고는 못하겠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집에서도 사극 톤을 녹음해서 듣고, 카메라로 찍어놓고 표정도 보고요. 두 번 정도 촬영하긴 했지만, 이후에는 대기 상태거든요. 너무 불안해요. 현장에 가서 기다리는 게 마음이 더 편할 것 같아요. 드라마 중간에 투입되는 것이기 때문에 '한참 뒤에 나왔는데 이것밖에 준비가 안됐어?'라는 이야기를 들을까봐 겁도 나고요. 저는 되게 열심히 준비를 했는데, 시청자들이 보시기에 깊이가 떨어질 수도 있잖아요. 걱정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우선 저에게 첫 작품인 만큼 '내가 인정할 수 있는가'라는 부분은 제게 중요한 기준이 될 것 같아요. 현장에서 잘 섞이고, 역할을 위화감 없이 소화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제가 만족할 수 있도록, 사실 자신이 보는 눈이 더 날카롭거든요.
시청자분들도 그런 부분들을 믿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만은 알려드리고 싶어요. 카라 한승연이 아닌, 숙빈으로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만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