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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펜타르키에 대해 araboja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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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해보자면 유스티니아누스가 개입을 하지 않았다면 합성론파만이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직에 올랐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함. 왜냐하면 칼케돈 공의회 이후로 시리아-이집트는 합성론을 단순히 종교적인 이유뿐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로도 지지했기 때문에 ㅇㅅㅇ
건전함을추구합니다 | (IP보기클릭)58.125.***.*** | 22.02.16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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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의 입장에서는 콘스탄티노플이 수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동방 최대 도시이자 로마 다음가는 위상을 지녔던 자신들을 제끼고 로마 다음가는 자리를 차지한 것이 고까웠으며 안티오키아의 입장에서도 수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로마 다음으로 기독교에서 중요한 위치를 지녔던 자신들을 제낀데다가 자신들의 담당 권역을 뜯어간 콘스탄티노플이 상당히 고까웠을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인데다가 에페소스 공의회, 칼케돈 공의회에서 각각 안티오키아 학파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주장을 이단으로 낙인찍어버린 상황이니 더더욱 양성론을 혐오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던...
건전함을추구합니다 | (IP보기클릭)58.125.***.*** | 22.02.16 23:11

1. 알렉산드리아에만 3명의 총대주교가 존재하는 상황은 역으로 알렉산드리아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보여주는 증거네요. 확실히 헬레니즘 시기부터 알렉산드리아가 대도시이자 학문의 중심 중 하나로 기능했으니, 말이 안 되는 상황은 아닙니다. 현재는 콥트교 총대주교 이외의 총대주교는 유명무실한 상황일 테지만요. 이집트 내 크리스트교 인구 중 다수를 차지하는 콥트교인들도 군부의 비호가 없으면 대중에 의해 심하게 탄압받을 정도로 콥트교가 이집트 내에서 상황이 썩 좋은 편은 아니니, 다른 종파는 말할 필요도 없겠죠. 2. 합성론파 vs. 양성론파 간의 갈등은 유스티니아누스나 이라클리오스도 수습을 못할 정도로 심각했는데, 본문을 읽다 보니 유스티니아누스가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직에 간섭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잠깐 궁금해졌습니다. 물론 합성론파와 양성론파의 대립이 워낙 심해서 유스티니아누스의 개입이 없었어도 갈등이 더더욱 심해졌을 것 같긴 합니다. 합성론 자체는 제국 내에서 워낙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그 세력도 만만치 않아서(심지어 테오도라 황후도 합성론파였죠) 양성론 vs. 합성론 간의 갈등은 그 누구라도 봉합하지 못했을 듯합니다. 기실 제국의 분열은 필연적이었다고 해야겠죠.

_ 잉여잉여칠면조 | (IP보기클릭)110.9.***.*** | 22.02.16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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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해보자면 유스티니아누스가 개입을 하지 않았다면 합성론파만이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직에 올랐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함. 왜냐하면 칼케돈 공의회 이후로 시리아-이집트는 합성론을 단순히 종교적인 이유뿐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로도 지지했기 때문에 ㅇㅅㅇ

건전함을추구합니다 | (IP보기클릭)58.125.***.*** | 22.02.16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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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론 vs. 합성론 갈등은 세속적인 요소도 작용했다고 듣긴 했습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가 관할하던 지역과 안티오키아-이집트 간 지역 갈등이 굉장히 심했다고 들었거든요. 문득 떠오른 건데, 니카의 반란으로 유명한 녹색당과 청색당 중 녹색당은 시리아-이집트 지역의 상공업자, 관료 중심으로 구성되었고 합성론을 신봉했는데, 그런 녹색당과 반대되는 청색당은 역으로 수도의 귀족 세력 중심으로 양성론을 신봉하는 세력이었죠. 아나스타시우스 1세가 합성론파이기도 해서 녹색당을 지지했다가 청색당 세력으로부터 엄청나게 욕을 먹었던 사례도 있었고요. 어떤 종파를 믿느냐에 따라 정치적 견해도 확 갈릴 정도니, 양성론 vs. 합성론 갈등은 종교적 요인과 정치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갈등을 해결하는 게 거의 불가능했을 것 같다는 생각만 굳어지네요.

_ 잉여잉여칠면조 | (IP보기클릭)110.9.***.*** | 22.02.16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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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의 입장에서는 콘스탄티노플이 수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동방 최대 도시이자 로마 다음가는 위상을 지녔던 자신들을 제끼고 로마 다음가는 자리를 차지한 것이 고까웠으며 안티오키아의 입장에서도 수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로마 다음으로 기독교에서 중요한 위치를 지녔던 자신들을 제낀데다가 자신들의 담당 권역을 뜯어간 콘스탄티노플이 상당히 고까웠을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인데다가 에페소스 공의회, 칼케돈 공의회에서 각각 안티오키아 학파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주장을 이단으로 낙인찍어버린 상황이니 더더욱 양성론을 혐오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던...

건전함을추구합니다 | (IP보기클릭)58.125.***.*** | 22.02.16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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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이 이슬람의 발흥 때 안티오키아와 이집트가 이슬람 세력에 넘어간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한 것도 같습니다. 양성론 세력이 심히 혐오스러우니, 차라리 타 종교의 권역으로 넘어가는 게 더 낫겠다고 판단했을 수 있었겠죠. 물론 이슬람 세력이 해당 지역에서 확실하게 권력을 잡은 이후로는 이슬람을 우대하는 경향이 굉장히 심해져서, 안티오키아와 이집트에 잔존한 크리스트교 신자들이 십자군 전쟁 당시에는 크리스트교 세력에 협조하긴 했지만 말이죠.

_ 잉여잉여칠면조 | (IP보기클릭)110.9.***.*** | 22.02.16 23:25

펜타르키가 무엇인가 하고 1장 맨 앞으로 가서 총대주교라는 의미를 알아내긴 했습니다만, 그 수가 하나의 고유명사격 단어로 굳은 걸 보면 얼마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느냐를 넘어서 그 권위가 상상이 갈 정도네요.

큰읍내 | (IP보기클릭)222.109.***.*** | 22.02.24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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