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흑백요리사도 흥하고
몇 년 전에는 오마카세다 뭐다 미식/퀴진 이런 거에 대해서 관심이 높아진 데에 반해
한국음식에 대한 인터넷 상의 약간의 폄하들이 눈에 띄더라고.
그래서 예전부터 생각했던 것들을 나름대로 정리하자면
한 문화의 음식이라는 것은 그 문화의 정체성이고 특성을 대변한다고 생각해.
그런 의미에서 삼겹살에 소주라는 조합은 지금 한국의 정체성 그 자체라고 생각하걸랑.
1. 20세기 후반 급격한 산업화와 함께 이뤄낸 경제성장
2. 그 경제성장에서 희생한 노동자/서민들
3. 격렬한 노동에 지친 노동자/서민을 위로할 수 있는
"가격 대비 가장 값싸고 빨리 취할 수 있는 소주"와 "가격 대비 가장 기름진 삼겹살"의 조합이야말로
구한 말-일제강점기-한국전쟁으로 이전의 모든 것과 단절되고 산업화를 통해 어떡하든 살 길을 찾으려고 했던 한국사회에서 찾은 우리가 찾은 정체성이라고 생각함.
아무튼 난 한국음식에는 세가지 특징이 있다고 생각함.
1. 극한까지 뽑아낸 엑기스
돼지국밥/설렁탕/삼계탕 등으로 대변되는 국물요리들.
돼지국밥은 돼지 한 마리를 온전히 담아낸 한 그릇이고
설렁탕은 소 한 마리를 온전히 담아낸 그릇이듯이
그 원재료 본연의 맛을 넘어선 그 원재료의 골수 끝까지 탐닉하는 것.
2. 오케스트라
어디선가 봤던 글인데
'일본 요리가 바이올린 독주라면 한국 요리는 오케스트라다'
위에서도 말 했듯이 원재료 그 본연의 맛을 넘어 골수까지 빼내는 방식이 있고
반면 여러 원재료의 조합이 이루어지는 특징.
이러한 방식이 메인 원재료의 맛을 해친다거나 단순히 자극적인 맛만을 추구한다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A에서 A'가 아니라 AB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라고 생각함.
3. DIY
위 1~2 특징은 전세계 보편일 수도 있을거 같아.
근데 DIY라는 부분이 외국 음식과 가장 차별화되는 점인 것 같은데
일반적으로 외국 음식들을 보면 한 접시에 완성된 요리를 담아내는 것이 보통이지.
하지만 한국음식은 그게 아님.
밥이 있고 반찬이 있고 국이 있지.
고깃집에 가도 여러가지 양념/소스와 곁들여 먹을 채소들이 있고.
상에 앉은 사람 마음대로 해도 되는거야.
난 이게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함.
상추에 싸도 되고 깻잎에 싸도 되고
거기에 쑥갓을 올려도 되고
쌈장을 찍어도 되고 고추장을 찍던 새우젓을 찍던 초장을 찍던
손님이 원하는대로 마음껏 해도 되는거고
그럼으로써 그 상 자체가 하나의 요리이고 코스라고 생각함.
그리고 이러한 특징들이 한국 문화 그 자체를 대변한다고 생각함.
최근 이런저런 인터넷 게시판들을 보니까 한식이 파인다이닝에는 안 어울린다 어쩌고 하는 얘기도 보이고 해서
생각난김에 주저리주저리 써봄....
태클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