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이 이제 2차 고려거란전쟁의 중반기를 넘어 후반기와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13화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시청자들이 가장 기대하고 있는 장면은 아마 서북면도순검사 양규와 귀주별장 김숙흥등의 거란군을 향한 분전과 장렬한 최후일 것이다.
하지만 그 밖에도 기대할 장면은 많고 많다. 당장 이번 화 마지막에서 창작인물인 동시에 실제 역사적 존재에서 모티브를 따온 충주호장 박진이 파천하던 현종을 포위한 만큼, 그 귀추가 주목된다. 오랜 빌드업을 통해 전쟁에 의해 아들이 희생된 아버지로서의 이미지를 가지게 된 인물이니만큼, 현종을 향해 어떤 분노를 토해내고, 현종은 그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지가 주목되는 바이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오늘 다룰 <고려거란전쟁>의 각색은 고려의 장군 대도수(大道秀)의 거란에 대한 항복에 대한 각색이다. 본 작품은 각 회차의 시작부에서 자막을 통해 언급하듯 드라마의 회차가 12화에 이르는 동안 상당히 많은 각색을 통해 작품의 내용을 꾸며주고 있는데, 대도수의 항복 또한 그 일환이다.
본 드라마에서, 대도수는 동북계도순검사 탁사정(卓思政), 중랑장 지채문(智蔡文)과 함께 서경으로 지원을 와 항복을 하려 한 서경부유수 원종석(元宗奭)을 제거하고 그 곳에서 서경 전역(戰役)에 참전하며 활약한다.
그러나 지채문이 마탄 전투에서 패전하고 도주하여 서경 내 분위기가 흉흉해 지고, 서경의 포위 역시도 목전에 다다르자, 탁사정은 서경이 거란군에게 완전히 포위되기 전에 대도수에게 함께 거란 성종 야율융서를 직공하자고 제안한다. 대도수는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며 거란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우고, 동문을 통해 출진한다.
<고려거란전쟁> 中, 대도수에게 출격을 설득하는 탁사정.
대도수가 동문을 통해 출진했다는 소식을 들은 탁사정은 서문을 통해 출진하지만, 실상 그는 거란군을 향해 진격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대로 병사들을 데리고 도주하였으며, 이에 탁사정과 합공을 하지 못한 대도수는 거란군과 싸우다가 중과부적으로 패배하고 포로로 잡힌다. 이후 서경 공성전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성종에게 끌려와 성종의 질문에 대답하면서도 '국경을 침범한 야만족을 어찌 그냥 두겠느냐'라며 힐난한다.
이에 대해 성종은 대도수를 비웃으며 '너를 죽이지 않을 것이며, 네 놈의 고국인 발해처럼 고려가 멸망하는 꼴을 살아서 보게 할 것이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후에도 개경까지 대도수를 끌고 다니며 조리돌림을 행했으며, 오늘에 이르러서는 그 조리돌림의 끝에 거란으로 투항한 이현운을 참살하고 본인 역시도 거란군에게 살해당한다.
<고려거란전쟁> 中, 대도수가 자신을 야만족이라 칭하자 그를 비웃으며 발해처럼 고려를 멸망시킬 것이라 말하는 성종 야율융서
그렇다면 실제의 대도수는 어떠했을까. 장렬하게 싸우다가 사로잡힌 뒤 마치 드라마 속에서처럼 거란의 황제를 향해 야만족이라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대도수의 모습은 사실이라고 볼 수 없다. 대도수는 애초에 스스로 항복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탁사정과 대도수가 함께 거란 성종과 거란군 지휘부에 대한 야간 합공을 약속하며 각각 서문과 동문을 통해 군대를 이끌고 출성한 것, 그리고 그러한 합공 계획은 실상 탁사정의 속임수였으며, 대도수를 미끼로 삼아 본인의 도주를 꾀한 것은 약간 차이는 있으나 실제 역사와 대략적으로 일맥상통하다.1 그러나 그 이후의 전개는 실제 역사와 다르게 창작된 바이다.
대도수는 탁사정이 도주한 것을 동문을 출성한 뒤라서야 파악하고 애초부터 거란 지휘부에 대한 합공전략 자체가 탁사정의 함정이었음을 깨달았다. 이 때 대도수는 자신이 이끄는 부대만을 이끌고 무모하게 돌격하지 못했다. 애초 당시 상황은 탁사정과 함께 공격을 한다 하더라도 실제로 성종을 잡을 수 있을지는 확실히 장담할 수 없던 상황이었다. 드라마에서의 상황 묘사와는 다르게 이미 거란군이 서경에 대한 포위망을 구축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2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전략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양측에서 거란군의 포위를 뒤흔들어야 했다. 그런데 탁사정의 부대가 이미 전장에서 이탈해 버린 이상 자신의 부대만으로는 거란군의 방어를 뚫을 수도 없었다. 애초에 탁사정이 내세운 전략 자체가 자신의 도주를 위해 대도수를 미끼로 던진 작전이었으므로, 이미 대도수에게는 작전 성공의 일말의 가능성조차도 허용되지 않았다.3
뭣보다 지휘관인 대도수가 탁사정이 도주한 사실을 알게 된 만큼 병사들에게도 탁사정의 도주 사실이 알려졌을 공산이 높다. 병사들의 사기가 무너진 상황에서 무리하게 공격을 해봤자 전멸을 면치 못할 뿐이었다.
그 상황에서 대도수는 서경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에 대도수는 자신의 휘하 군대를 이끌고 거란군에게 항복했다.4 여러 가능성이 있지만, 『요사』 성종본기와 맞추어 살펴보면 이미 서경이 포위된 상황에서 서경으로 복귀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의 포위선에 가깝게 전진한 탓에 퇴각을 시도할 시 큰 피해가 발생할 상황에 빠져 그대로 항복했을 가능성도 있다.
성종본기에는 이러한 기술이 있다.
高麗禮部郎中渤海陀失來降[고려 예부낭중 발해 타실이 와서 항복했다.] -『요사』 권15 성종본기 6권
발해 타실은 대도수를 의미한다. 그가 발해 왕가의 후손이었기 때문이다.5
거란의 입장에서 대도수는 '와서(來)' 항복했다(降)고 받아들여졌다. 대도수의 공격을 위한 방어선 접근이 곧 탁사정의 배신을 알아차린 대도수에 의해 항복을 위한 접근으로 바뀌고, 그로서 대도군이 무저항으로 항복한 탓에 거란측으로서는 대도수의 방어선 접근 자체가 처음부터 항복을 위한 접근으로 받아들여져 내항(來降)으로 기술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좀 더 조심스럽게 살펴보자면, 복귀 시도 자체는 가능했지만, 이미 거란에 대한 선제공격을 이끌었던 지채문도 마탄 전투에서 패전하여 도주하고, 최고 지휘관인 탁사정까지 자신을 속이고 도주한 이상 자신이 다시 서경으로 돌아가 보아야 이미 사기가 붕괴된 병사들로 성을 지켜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어쩔 수 없이 휘하 병사들이라도 살리고자 항복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사료 상에서 대도수의 항복 근거로 작용한 '始知見紿, 又力不可敵'[비로소 자신이 속아 넘어갔고, (탁사정이 도주한 이상)또 힘써도 대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서는]라는 기술은 비단 그의 현상황에만 적용될 수 있는 말이 아니며, 서경 전역 전체에 대한 그의 판단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란에게 멸망당한 발해의 후손이며 1차 고려거란전쟁 때에도 안융진 전투에서 활약했던 대도수가6 어차피 현 상황에서는 자신이 복귀해 보아야 서경을 지키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항복했다는 추정을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의 서경의 상황이 그만큼 절망적이었다는 점, 당시 고려군의 다른 수훈 지휘관들 역시도 상황이 악화된 와중에 도주를 택하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등의 행보를 보인 점, 믿었던 최고 지휘관에게 배신을 당한 점 등을 생각해 보면 대도수가 현황과 배신감에 절망하여 서경 복귀 시도가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포기하고 휘하 병사들만이라도 살리고자 항복했을 가능성도 열어두어야만 할 것이다.7
명확한 사실은, 대도수는 탁사정이 도망친 상황에서도 최후까지 싸우다 자신의 부대를 전멸시키고 포로로 잡히기 보다는, 탁사정이 자신을 배신한 최악의 상황에서 자신의 휘하 부대의 생존이라도 도모하기 위해 그들을 이끌고 거란에게 항복했다는 것이다.
이 이후 대도수와 그 휘하 부대에 대한 기록은 사라지지만, 『요사』 지리지 권2 동경도의 기록에 2차 고려거란전쟁 중 포로로 잡힌 고려 내속 발해인들을 영주(寧州)와 귀주(歸州)에 정착시켰다고 기술되어 있다는 점을 보건대, 아마도 해당 지역에 적당한 관직과 함께 정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8 이와 관련하여 1028~29년에 발발한 대연림의 반란과 관련하여 어떻게든 연관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대도수의 추정 연령을 생각해 보자면 이미 그 이전에 자연사 했을 공산이 더 크다고 보여진다.
또한 그와는 별개로, 대도수의 항복 자체는 고려에서도 나름대로 정상참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대도수의 항복에 대해 탁사정의 배신을 선행하여 다룸으로서 그의 항복이 어쩔 수 없었다는 점을 피력하는 기조가 조선까지 유지되었기에, 그의 항복의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이해된 것 같다.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서 대도수가 끝까지 분전하다가 결국 포로로 잡히고, 성종 야율융서를 향해 야만족이라고 칭하기 까지 하는 각색이 이루어진 것은 그의 캐릭터성이 '망국의 후예로서 자신의 나라를 멸망시킨 거란에 강한 적개심을 지니고 있는 노장'으로 설정되었기 때문이다.
실제의 대도수의 성격이 어떠했을진 몰라도 드라마에서의 대도수는 거란에 대한 분노와 강한 적개심을 지닌 서사를 지닌 것으로 묘사되었다. 그런데 그런 인물이 자신과 함께 출정한 탁사정이 도망친 것을 보고서 그대로 싸우지 않고 부대를 데리고 거란에 항복했다는 것은 아무리 당시의 상황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와닿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되려 기를 쓰고 거란에게 항전하다가 부대가 전멸하고 본인은 포로로 잡히는 것이 그의 '드라마 속' 캐릭터성에 더 부합한다. 그리하여 대도수로 하여금 거란군과 싸우다가 포로로 잡히게 만들었고, 그러한 연출을 통해 드라마의 대도수의 캐릭터 서사를 더욱 강화하고, 특색을 두드러 지게 했다고 보여진다.
물론, 실제의 대도수의 행적을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드라마 속의 대도수의 모습을 보고 되려 '탁사정이 도주한 상황에서 거란에 대한 분노 탓에 철퇴 시도도 하지 않고 무모하게 거란군에게 덤벼 부하들을 전멸시켰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드라마에서는 대도수가 탁사정의 도주 사실을 알지 못한 것처럼 묘사하여, 탁사정이 합공을 해 줄 것을 믿고 거란에 대해 공격을 시도했다고 볼 수 있게 해주었다.
드라마 속의 모든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인 것은 아니다. <고려거란전쟁>의 이야기 역시도 그러하다. 작품의 서사와 연출을 위해, 짜임새 있는 작품 구성을 위해 각색이 들어가게 된다. 대도수의 항복 역시 그 중 하나다. 실제 역사에서 그는 안융진 전투서 활약한 뛰어난 지휘관인 동시에 최고 지휘관으로부터 배신을 당한 상황에서 자신의 병사들을 살리기 위해 거란에게 항복한 비운의 장수였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망국의 후예로서 자신의 선조의 나라를 멸망시킨 거란에게 과감히 돌격하다 포로로 잡히고서도 거란을 향한 힐난을 멈추지 않고, 최후에는 고려를 배신한 도통부사 이현운을 참하는 투지 가득한 용장이 되었다.
1.『고려사절요』 권3 현종 1년 12월 병진(12일). 思政懼紿將軍大道秀曰, “君自東門吾自西門出, 前後夾攻, 篾不勝矣.” 遂以麾下兵夜遁. 기사로는 병진일이지만 기사에는 다음날로 넘어가는 대목이 있으므로 실제 날짜는 13일인 정사일이다. 단, 실제 출성 자체는 14일인 무오일일 가능성도 크다. 바로 다음의 기록이 15일인 기미일로 이어지고, 또한 대도수가 13일에 패한 뒤 거란군이 서경을 포위하였으므로 포위가 이루어지는 동안, 그리고 고려군이 대응을 모색하는 동안 시간이 지났을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2.『고려사』 권 94 열전7 지채문 열전, (전략) 契丹回兵擊之, 我軍敗, 遂圍城.
3.『고려사절요』 권3 현종 1년 12월 병진(앞과 같음), "始知見紿, 又力不可敵"
4.『고려사절요』 권3 현종 1년 12월 병진(앞과 같음), "遂率所部, 降于契丹."
5.박홍갑, 「발해 유민 大氏의 한반도 정착 과정-영순현과 영순태씨를 중심으로」, 『동북아역사논총』 16, 동북아역사재단, 2007, 114~115쪽.
다만 이에 대해서는 대도수와 발해타실을 구분하여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박옥걸, 1996, 『고려시대 귀화인 연구』, 국학자료원, 99~100쪽). 이는 당시 대도수의 관직이 예부낭중이 아니고 무반직 정 4품 장군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대도수가 투항하면서 자신의 관직을 문관직으로 소개하였거나, 혹은 거란 성종이 항복한 대도수에게 예부낭중의 관직을 내렸을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6.『고려사』 권94 열전7 서희 열전. 遜寧以蒙戩旣還, 久無回報, 遂攻安戎鎭. 中郞將大道秀, 郞將庾方, 與戰克之, 遜寧不敢復進, 遣人促降.
7.대표적으로 이원(李元)은 완항령 전투에서 거란군의 예봉을 일시적으로 격퇴하는 전공을 세웠으나 마탄 전투 패전 이후 개경으로 도주한 뒤 현종의 호종을 자처했다가 급한 상황에서 모습을 숨긴 바가 존재하며, 최창(崔昌)도 서경 전역에서 지채문과 함께 활약했으나 개경으로 도주한 이후 현종의 호종을 자처했다가 모습을 숨긴 바가 존재한다. 『고려사절요』 권3 현종 1년 12월 임신(28일).
8.『요사』 권38 지 8 지리지 권2 동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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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 한참 방영할 때 매 주 방송 끝날 때 마다 이런 글 직접 논문, 사료 읽어가면서 쓰고 해설했는데 양규 죽고 스토리 나락가고 내 억장도 나락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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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수거
진짜 양규 죽기전까진 축제였는데 양규 죽고 나서 그냥 ㅠㅠㅠ
그 시발 분명 오프닝에선 물려받던데 강감찬이 아니면 최소한 양규의 아들인 양대춘이라도 활을 물려받고 귀주대전에서 성장한 모습으로 김종현과 함께 중기병대 선봉에 서던가
난 원작대로 양규가 죽고 양규가 남긴 활을 강감찬이 이어받고 오열하는걸 보고싶었음. 삼국지 연의에서 제갈량의 백우선을 강유가 이어받으며 오열하는것 처럼. 근데 그없ㅋㅋㅋㅋ
하다못해 그 궁중암투가 정도전 속 정치묘사마냥 세련되었으면 "전쟁과 정치 모두 잡으려다 둘 다 완벽하지 못한 비운의 사극"정도로 생각했을텐데 현실은...
오프닝은 정말 쩔었는데. 강감찬이랑 거란대장이랑 마주보는 장면이 인상적이였고.
아니 ㅋㅋㅋㅋㅋㅋ 양대춘은 안나오는데 양규 부인인 홍씨는 마지막에 개성 방어에 나옴
Q: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꾼 장군은 A: 많고 많은 비!
진짜 양규 죽기전까진 축제였는데 양규 죽고 나서 그냥 ㅠㅠㅠ
난 원작대로 양규가 죽고 양규가 남긴 활을 강감찬이 이어받고 오열하는걸 보고싶었음. 삼국지 연의에서 제갈량의 백우선을 강유가 이어받으며 오열하는것 처럼. 근데 그없ㅋㅋㅋㅋ
그 시발 분명 오프닝에선 물려받던데 강감찬이 아니면 최소한 양규의 아들인 양대춘이라도 활을 물려받고 귀주대전에서 성장한 모습으로 김종현과 함께 중기병대 선봉에 서던가
아니 ㅋㅋㅋㅋㅋㅋ 양대춘은 안나오는데 양규 부인인 홍씨는 마지막에 개성 방어에 나옴
하다못해 그 궁중암투가 정도전 속 정치묘사마냥 세련되었으면 "전쟁과 정치 모두 잡으려다 둘 다 완벽하지 못한 비운의 사극"정도로 생각했을텐데 현실은...
현쪽이와 고려 닌자의 자강두병 암?투 실제 고려 수준이 저랬으면 성종이 현쪽이 옆에 앉혀놓고 개경에서 축하파티 했을듯ㅋㅋㅋ
나도 피해자 중 1명이야
제목부터가 고려 거란 전쟁인데 왜 쓸데 없는 정치싸움에 분량을 투자한건지...
프룰루룰
14화 기점으로 기억하고 있음
프룰루룰
봉황36이 고거전 원작을 쓴 길승수 작가. 고거전 쓰려고 고증만 10년 넘게 들였다고 들었음. 원작자가 대본작가라고 까는 양반이 이정우작가고. 고거전에서 평가가 안좋은 부분 대부분이 그양반이 담당한 파트. 고거전 초반에 개쩌는 부분들은 윤지혜라는 각본가분이 쓰셨다는데 모종의 이유로 중간 하차했다고 함. 그러고 나서 슬슬 대본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
오프닝은 정말 쩔었는데. 강감찬이랑 거란대장이랑 마주보는 장면이 인상적이였고.
Q: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꾼 장군은 A: 많고 많은 비!
우천 중단 엔딩ㅋㅋㅋㅋㅋ
적어도 탁사정은 상하이조로 보였어 후궁싸움 ㅅㅂ
후반부를 ㅅ1발 그리 조질줄은 몰랐지...
고려거란전쟁 한국사극 나오면서 오랜만에 전통사극 제대로 된 거 나오나 싶었는데 작가 헛짓거리로 결국;; 오히려 근초고왕 광개토태왕보다 더 망작일지도 모름;; 열연을 펼친 배우들이 안타까울 따름 그나저나 작성자도 역사 자료 사료 찾아가면서 글 작성한 역덕후인데 억장 무너지는게 이해됨;;
우천콜드게임으로 전쟁 끝나는게 진짜 최악이었다. 뭐하려고 만든 드라마여 ㅋㅋㅋ
오마이갓! 플라잉 현종이다!! 이런 환단고기도 울고갈 역사 고???증??? 잘 살리는 혁신적인 드라마가 어디있다고. ㄲㄲㄲ
양규 죽을 때도 골골대는 애 바로 앞에서 칼든 수십명이 아무것도 못하고 어버버버 하는 연출이 너무 유치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