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항의 간양록을 다시 읽어보고 있는데
간양록을 보다 보면 강항이 이상할 정도로 좀 좋게 써준 일본 인물이 하나 있음.
모리 테루모토.
엄연히 임진왜란 때 제7군 군단장이었고 영지가 꽤 커서 임진왜란 때 가장 많은 병력을 보낸 인물인데.
그래서 그를 소개할 때 강항은 '경서(京西: 교토 서부 지역)의 대수(大帥)로 임진년 전역 때 원수(元帥)였던 자다'라고 썼지.
간양록을 보면 한자 이름인 '휘원'이라 그대로 쓰여 있음. 근데 그에 대한 인물평은 제법 호의적임. 되려 임진왜란 때 직접 병력을 출병시키지 않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보다도 더.(강항은 오히려 이에야스를 굉장히 사납고 거친 느낌의 무장으로 소개했지)
"성질이 자못 너그럽고 완만하여 우리나라 사람의 기질이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의 코를 벨 때는 약간 불쌍히 여기고 민망히 여기는 뜻을 가졌다고 한다"
"그 물력(物力: 경제력)의 웅장함과 풍부함이 왜경(교토)에 견줄만 하며, 풍속도 왜의 모든 곳에 비해 약간 후한 편이다."
그리고 테루모토의 성격을 서술하기 전에 모리 가문의 내력을 소개하고 있는데 여기서 '그 가문은 백제 임성태자의 후예인 오우치 씨를 모셨던 가문이다'라는 말도 쓰고 있고. 이를 의식해서 조금 우호적으로 테루모토를 본 모양인데.
사실 그런 선량해 보이는 평가와는 달리 테루모토 역시 전형적인 전국시대 영주답게 자기 가신들을 심심찮게 숙청하거나 심지어는 어느 가신을 죽이고 그 부인을 자기 첩으로 삼는 금태양스러운 행동도 보였지.
흥미로운 건 강항 외에도 아시카가 막부의 마지막 쇼군이었던 아시카가 요시아키도 자기를 잘 대접해 준 덕분인지 테루모토를 호의적으로 평가하기도 했음. 거기에 요시아키가 죽고 나서는 제사까지도 세심하게 챙겼고.
비록 실권은 잃었지만 지체 높은 전임 쇼군은 좋게 볼 정도로 행동했기에 끌려온 조선의 유학자 강항의 시각에는 '왜놈들 중에선 그나마 어진 듯한 모습이' 좋게 보였던 것 같지만 정작 가신들은 함부로 숙청하는 요즘 시각으로 보면 다소 강약약강(?)스러운 일면이 엿보이지. 뭐 이건 테루모토에게만 두드러지는 게 아니라 영주와 가신들이 협력과 반목을 반복하던(심지어는 형제나 부자간에도)일본 전국시대의 특성 상 매우 흔했던 일이었지만.
일본의 전국시대물에서도 테루모토는 어딘지 모르게 얼빵하거나 어리바리한, 개인의 능력은 평범한 인상으로 많이 그려지지만 실제로는 은근히 음험한 모습을 꽤 보이는 점에선 "바보인 척 하는 진짜 무서운 놈" 콘셉트가 실제 테루모토의 인상에 더 가까울 거.
뭔가 새로운 시대를 개척한다거나 대단한 정치가는 될 수 없지만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는 권력"을 지키는 능력 하나만큼은 꽤 뛰어났던 인물 정도로 보면 될 거.
여담으로 테루모토의 교육을 전담한 인물이 코바야카와 타카카게인데, 임진왜란 때 전라도 공격을 맡았고, 이치 전투와 행주대첩에서 권율과 싸웠던 걔 맞음 ㅇㅇ 타카카게가 바로 이 테루모토의 숙부임.
결국 사서도 저자의 주관이 개입된다는 점을 주의해야....
모략의 모리잖아 자기네 나라 게임이나 만화에서도 한번도 멀쩡한 놈으로 나온 적 없는 실눈캐
결국 사서도 저자의 주관이 개입된다는 점을 주의해야....
뭐 정작 저 테루모토가 다스린 땅의 후예들이 먼 훗날 메이지 유신의 주축이자 일본 군국주의의 중심세력이었던 쵸슈 번이라는 걸 생각하면...(실제로도 테루모토가 초대 쵸슈 번주니까)
모략의 모리잖아 자기네 나라 게임이나 만화에서도 한번도 멀쩡한 놈으로 나온 적 없는 실눈캐
전국시대 제일의 모략가라는 모토나리 핏줄이 어디 안가지 ㅋㅋ 딱 현상유지 내지는 '내가 가진 기득권'을 지키는 데 상당히 특화된 인물이었던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