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 앞은 어둠 뿐,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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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뱀의 붉은 눈초리로 내 발은 다시 바닥에 달라붙었다.
내가 선 곳에 ‘공포’라는접착제가 발라져 있는 것 같았다.
사실 그 눈초리만이 공포라 할 수 없었다.
50층짜리 빌딩 몇 백 채는 쌓아도 충분치 않을 그 몸의 크기와 길이만으로일반적인 사람은 굳어버릴 것이다.
금속으로 된 그 몸집으로 기어만 다녀도 인간의 아바타는 지나가는 개미 밟듯 깔리거나 풍압으로 날아가 충돌 혹은추락사할 것이다.
“허, 정부 기관에 이어서이번엔 거대한 뱀이냐?”
“뭐?”
사람에 따라 반응은 각기 다를 수는 있다.
그런데 이 소녀는 저 덩치 앞에서 너무나 태평하다.
목소리도 내 옆까지 오는 걸음걸이도 전부
거대한 뱀의 움직임으로 인한 진동으로 목소리가 조금 묻히긴 했지만, 바로옆에서 말하니 뭐라고 말하는지 들릴 정도는 되었다.
“기억 잃은 소녀에 보호자가 생기고,정부 사람이 찾아오는 건 물론 이젠 거대 괴수까지? 이게 무슨 이세계 먼치킨 장르야? 시나리오 쓴 사람이 있다면 아주 개막장 시나리오를 썼구만.”
아니, 먼치킨 없이 개고생 하는 것보단 낫지 않나? 그냥 운이 좋은 거겠지.
는 개뿔 지금 상황 파악 안 돼!?
“이봐, 저거 보고도 그런태평한 소리가 나와!?”
어이없음 + 진짜 궁금해서 한 번 물어본다.
“저 두 높으신 분은 저게 눈에도 안 들어오는 모양인데?”
사회자&해설자 맡았던 게임 정부의 진과 레이 말하는 건가?
방금 전 소동에도 도망치치 않은 둘이 앉아있는 테이블을 보았다.
소녀의 말대로다.
시선은 서로를 마주본 채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리고 있다.
거리와 최소 서로의 대화를 위해 내기 위한 목소리 크기로 봐선 진동이 없어도 내 귀까지 들릴 것 같지도 않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지금이 상황에.”
“거대한 뱀이 그냥 우리를 쳐다볼 뿐인데?”
“그러니까 그게…………”
잠깐
쳐다볼 ‘뿐’?
그러고보니 진동이 많이 얕아졌다.
땅 위로 보이던 뱀의 몸 마디도 더 이상 돌아가지 않는다.
뱀은 붉고 거대한 눈으로 우리를 지켜본다.
단지 ‘그 뿐’
우리에게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붉은 눈동자도 원래 붉구나 하면 단순하게 넘어갈 수 있는 사항이다.
움직이면 발생할 것 같은 방금 전 진동도 단순 자연 재해로 생각하면 넘어갈 수 있고, 저 거대한 덩치를 움직이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마치 무언가를 확인하기 위해 나온 것 같은
……잠깐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나 저 뱀 누구인지 알 것 같아.”
실제로 본 적은 없다.
다만 라쿠엔의 생활 및 게임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 중 하나이다.
슈퍼컴퓨터 ‘이모텝’이라쿠엔의 모든 것을 관리하는 것은 사실이다.
반대로 말하면 이모텝이 없으면 라쿠엔의 모든 것을 관리할 것이 없어지기에 라쿠엔 자체가 초비상 상태가 된다는이야기.
이모텝에 문제가 생길 것을 염려하여 만들어진 ‘서브컴퓨터’
이모텝이 손이라면 그들은 손가락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13체의 ’마키나 디스크(Machina Disk)’ 중 하나인 ‘그레이트 코어(Great Core)’. 여러 매체에서 묘사된 특징으로 종합하면 그 녀석일 거야.”
‘그레이트 코어’
마키나 디스크를 직접 목격한 세례가 적은 만큼 그 모습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레이트 코어를 목격한 자들의 공통적인 증인은 이렇다.
‘그 몸은 길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길다.’
세계 관리용 컴퓨터인만큼 그 모습과 설계도, 그리고 특징에 대해 묘사한사이트가 공식적으로 존재한다.
거기서 묘사된 모습과 특징을 눈앞의 뱀과 비교하면, 일치하는 사항이그레이트 코어뿐이다.
사이트에 따르면 목 주변에 떠 있는 ‘착지(鑿地)륜’을 한 곳으로모아 드릴처럼 회전시켜 지면을 뚫어 땅 속으로 이동한다고 한다.
아마 저 머리 뒤에 떠 있는 4개의 갈기 같은 것이겠지.
단순히 관리 컴퓨터가 직접 찾아왔구나 한다면……
사실 마냥 안심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의문만 커질 뿐이다.
“마키나 디스크가 직접 등장하는 경우는 ‘사형수’ 혹은 ‘자살자’가 죽음을 장시간 거부할 경우 사살용으로 나타나는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시피 할 텐데?”
지금 하나 있다면 ‘메트레유닛 엔젤’에의한 듀얼 관람자의 죽음 정도
그것 때문이라면 이 출현에는 문제가 있다.
“’듀얼 시스템 오류 등에 의한 듀얼 관련 사고사’는 어느 쪽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을 텐데?”
슬러그에 머리가 날아간 사람의 몸은 그대로 있다.
턱만 빼고 머리 윗부분이 전부 날아간 채 쓰러지지 않고 두 발로 선 채로 죽어 있다.
무게중심 참 잘 잡았네.
정부의 2인조는 여전히 수다나 떨고 있다.
저 거구가 여기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행동하는 것 같다.
저 뱀의 존재 자체는 넘어갈 수 있어도 등장에 대해 의문조차 품으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방금 전 문제를 일으킨 몬스터는
펑!
포탄 발포 같은 산탄총 저격 소리가 또다시 귀를 울린다.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자, 내 눈을 의심하고 있었다.
산탄총의 각도를 좀 더 위로 향하게 치켜든 금속 갑옷의 천사의 모습도 놀랍다면 놀랍다.
그것이 쏜 탄이 팅! 소리를 내며 저 금속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뱀의표면에 튕겨져 나갔으니까.
몬스터로 인식한 공격인지 간이 팅팅 부은 도발인지는 잘 모른다.
아니,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방금 전 사고로 듀얼 강제 종료 안 됐어?”
옆에 있는 소녀에게 물었다.
“끝났지. 솔리드 비전도종료돼서 내 [푸른 눈의 백룡]이 사라졌는데?”
그 대답대로 [푸른 눈]의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거기서 또다른 의문이 생긴다.
“그럼 쟤는 왜 아직도 있냐?”
솔리드 비전으로 나온 저 천사도 사라져야 한다.
“나도 몰?루.”
당연한 듯이 소녀도 답한다.
솔리드 비전이 꺼졌는데 아직도 나와있다……?
한 가지 생각이 소름을 온몸에 쫙 퍼뜨린다.
“저거 설마, 솔리드비전이 아니야?”
그렇다면 방금 전 사고도 설명이 된다.
갑옷 입고 코스프레 한 인간이 진짜 총으로 사람을 쏜 것이다.
“X발, 라쿠엔에서살인 저지르면 친족에 관련된 사람까지 사형감이라고……”
저 거구가 여기 나타난 이유를 알 것 같다.
“저 몬스터 코스프레 한 천사 죽이러 온 것 같네. 그걸 소환한 그쪽도 같이…”
저 정부의 둘은 여전히 서로 대화 중이시다.
방금 전 사고가 듀얼 외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고 저러는 것이면, 그대화가 이 둘에 대한 처벌 내용일 가능성이 있다.
그레이트 코어도 바로 이 둘을 죽이지 않고 놔두는 이유도 어느정도 설명이 된다.
목격자일 뿐인 ‘나’까지휘말릴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경고하는 것이다.
당장 이곳에서 떠나라고, 안 그러면 나까지 죽을 수 있다고
“아 그래?”
소녀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나온 말은
“어쩌라고.”
“………….뭐?”
내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 반응이 맞아?
‘너 곧 죽어요.’ 라는말 듣고도 겁먹기는 커녕 표정 하나 바꾸지 않는 그 태도
이젠 눈까지 의심하는 지경에 이른다.
“못 들었어? 그쪽이 소환한몬스터, 사실 몬스터 아니라 사람이고, 방금 전 사고도 진짜살인이라고! 저 뱀이 살인죄 저지른 저 사람이랑 당신까지 전부 짓뭉갤 거라……”
“그래서 어쩌라고?”
황급히 상황을 최대한 요약해서 설명해보지만, 반응은 똑같았다.
아니, 전하려는 말의 의도를 그대로 돌려받았다.
“당신부터 걱정할 일 아니야? 저뱀대가리가 날 먹든 독으로 죽이든 당신이 상관할 일 아니지 않아? 저게 마디 하나 움직였다간 당신까지휘말릴 판인데.”
“아니 그건 그런……데……”
그런 사람이 걱정해주는 상황임에도 상황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않는다.
아니, 알고는 있지만 자기 신경 쓸 바가 아니라는 것 같은 말과 행동
오히려 ‘너나 잘 해.’를비틀어 말하는 식으로 시비 거는 것 같았다.
“잠깐, 당신 양녀였나동생으로 입양한 사람 있다고 하지 않았나?”
게임정부의 레이가 듀얼 상대로 이 소녀에게 안내하던 중, 그런 말을들었던 것 같다.
그렇다는 말은
“어쩌라고, 언니도 죽으니까같이 죽을 준비 하라고?”
“아니, 죽을 준비라니나는 그렇게까진……”
말하려 하지 않았다.
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이 기가 막혀서 목구멍이 막혔다.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와도 겁 하나 먹지 않는 이 소녀의 태도 때문이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렇다면 그 날 트럭 앞에서 굳어버린 난 뭐가 되는데?
“무슨 일이야?”
소녀의 양언니로 추정되는 여성이 카페 문을 열고 나왔다.
나와 이 소녀가 만났던 그 카페
아마 그레이트 코어가 나올 때의 진동을 느끼고 나온 것이겠지.
그리고 그녀의 뒤로
“무슨 일이냐?”
얼굴에 주름이 보일 정도로 나이가 있어 보이는 할아버지도 나왔다.
저 카페 건물주라고 들었던 것 같다.
……잠깐만
가족이 된 언니는 그렇다 쳐도……
그렇다면 저 할아버지는 관계없지 않나?
분명 마키나 디스크가 출현할 때 나오는 ‘긴급 경고 메시지’를 받고 대피했을 터인데?
주민들도 그것 때문에 피한 것이 아닌
…잠깐
목격자인 나에게는 왜 메시지가 오지 않았지?
“아, 심각한 상황인 것같은데 죄송합니다만……”
게임 정부의 진이 여기 있는 모두가 들을 정도로 큰 소리로 말한다.
스피커가 마이크가 있는데 저걸로 왜 말하지 않는지? 라는 의문은 그다음 말을 듣고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레이트 코어 출현으로 인해 56명의 사망자가 나왔다고 하네요?”
…………………………………..
“뭐?”
등장했을 때 빌딩 몇 채가 날아갈 정도의 크기이기는 했다.
모든 마키나 디스크가 그런 크기이기 때문에 등장할 때는 항상 긴급 대피 메시지를 등장할 시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에있는 모든 아바타에게 보낸다.
보통은 피해 예상 범위도 같이 보여주기 때문에 재빨리 그곳에서 벗어나는 것이 기본일 것이다.
상황 파악을 못하고 휘말려 죽는 멍청한 인간이라도 1-2명으로 그치겠지.
그런데 두 자릿수나 되는 사망자 수는 내 머릿속을 한 가지 생각으로 채웠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
그런 머릿속을 정리하고 다른 생각을 해도 의문에 의문이 더해질 뿐이었다.
이 소녀를 죽이러 온 것이 아닌가?
방금 전 대화는 혹시 예상치 못한 등장에 대한 것이었나?
보통은 경고 문구를 보내면서 왜 이번엔 보내지 않았지?
혼란한 나와는 달리 소녀는 태연한 입을 열었다.
“영원한 것은 없어. 세계도, 인간의 목숨도.”
허공을 바라보고 말하는 것 같은 그 모습
아니, 시선에 허공이 있을 것 같지 않다.
하나뿐인 그 눈에는 하늘마저 뒤덮을 크기의 ‘그 존재’가 있었으니까.
마치 그것에게 하는 말처럼 들려왔다.
쿠구구구구구!!!!!!
땅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것은 포효인지 기계음인지 알 수 없는 울음소리를 내며 땅에 박아 넣은 거대한 몸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쩌저적
소녀의 발 사이로 균열이 보이기 시작한다.
소녀가 밟고 있는 도로의 바닥에 생긴 균열이었다.
그 틈은 점점 벌어지더니
쾅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커지며 소녀를 집어삼켰다.
“꺄악! 유카리!?”
소녀의 양언니가 동생이 떨어진 땅의 균열을 향해 달려가려 했다.
그러나 그 전에 뒤에 있던 노인이 재빨리 팔을 붙잡아 저지당했다.
적어도 그 장면은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 균열에 다가간 것은 가족이 아니다.
어째서였을까?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머리가 멍해지는 잠깐의 순간, 나는 소녀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지금 내 시야에는 소녀를 집어삼키려는 끝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이 펼쳐져 있었다.
또 하나 그녀를 향해 뻗는 손이 있기는 했다.
소녀가 소환했던 몬스터, 아니 몬스터 행세를 했을지도 모르는 천사였다.
균열에 뛰어들기 전에 그 천사가 빛의 날개를 펼쳐 먼저 균열로 뛰어드는 것을 보았을 터였다.
내가 뛰어들지 않더라도 그것이 소녀를 구해줄 것이었다.
잠깐이지만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던, 그러나 이제는 들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리운목소리
형?
무슨 소리야?
저 소녀를 구하라고?
어느새 붙잡은 손을 소녀를 내 품까지 당겨왔다.
소녀를 껴 앉은 채 우리는 깊은 어둠으로 추락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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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은 보이지 않습니다. 뒤는 어둠뿐입니다.
아래를 본다고 그걸 좋은 의미로만 받아들이긴 어려울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