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는 굉장히 보수적인 집단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시대에 맞춰 나갔어.
왜냐하면 이길 짓을 하면 이기고 상대는 이길 짓을 하는데 자기는 안 하면 확실하게 지기 때문이야.
되도록이면 검증된 것(그게 전술이든 기술이든)만을 쓰려고 하다보니 보수적인 집단이기도 하지만, 기존의 전술과 기술을 넘어서고 무용지물로 만들 새로운 것이 등장하면 너도나도 그걸 받아들이는 것이 군대임.(그렇지 않은 군대는 패배하지)
진짜 인명경시, 무식해 보이고 귀족들이 신사이니 정정당당하게 싸운답시고 그렇게 싸웠던 것이 아니고 대단히 실리적인 이유로 그렇게 싸웠던 거야.
전열보병은 당시의 기술과 전장 환경 등 다양한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나온 당시의 최소 안전빵은 되는 검증 된 전술이야.
왜 그들이 그렇게 싸워야 했나 간단하게 짚고 가자.
* 복장의 화려함은 어째서? - 당시는 대규모 징병이 시작 된 시기였어. 사기가 낮은 병졸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피아 구분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눈에 띄고 화려한 색의 제복을 입혔음.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인사격은 있었다. ;
그리고 소수 운용되던 경보병, 강선총 사수들(라이플맨, 사냥꾼 등)은 주전열에서 이탈해서 별도로 싸웠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눈에 덜 띄는 녹색이나 회색 등 어두운 색 계통의 제복을 입었음.
* 전장식&활강 소총이 주무장이었던 당시 기술의 한계 탓이 크다. - 전장식 소총과 분리 된 탄약의 한계로 장전 시간이 오래 걸렸어. 숙달 된 사수도 1분에 2~3발 정도 쏘는게 한계였어.
또한 강선이 없기 때문에 탄에 회전으로 인한 관성이 걸리지 않기 때문에 명중률이 강선을 판 총기만 못했어.
+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련 된 사수의 명중률과 유효 사거리는 의외로 좋았어.
(우리가 전장식 총을 처음 조총이라 부르게 된 것에는 새를 맞힐 수 있을 정도였기 때문에 조총이라 부른 것)
1) 슬슬 군대가 대규모 징병을 하기 시작한 때에다가 총기가 익숙한 환경이 아니었어. (지금은 어렸을 때도 각종 매체로 총기의 존재를 알고 대략의 사용법 등을 군대 안 가도 알 수 있잖아?) 그 반면에 당시의 전장식 총기는 장전하는 것부터가 어려웠어. 실제 전투 도중에는 정신 못 차리고 순서 틀리거나 절차를 빠뜨려서 불발 나는 경우도 많았어.
(미국 남북전쟁 중의 게티스버그 전투가 끝나고 전장에서 회수한 주인 잃은 소총 중 가장 많은 탄이 장전되어 있던 총은 9발이었던가 19발이었던가 장전되어 있었다더라, 사수는 앞서 장전한 8발이 불발 난 것도 모르고 계속 새 탄을 쑤셔 넣었던 것임, 책을 읽은 지 하도 오래 되어서 9발인지 19발인지 정확한 기억이 안 남)
숙련 된 사수를 키울 돈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적에게 효과적인 피해를 입히려면 대규모로 적의 대열을 향해 탄을 쏟아버리는 것이 나았어.
2) 그러면 "흩어져서 싸우면 총을 덜 맞을텐데 왜 뭉쳐서 싸웠지?" 싶겠지만 밀집 대형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어.
기병이 현역인데 총의 명중률도 낮고 연사도 느렸어. 즉 산병전을 벌였다가는 기병한테 사격 한 번 해서 죽이면 다행인데 맞히지 못하면 그 뒤로는 도망가지도 못하고 차탄 장전도 못하고 순식간에 다가온 기병의 사브르에 목덜미가 썰리거나 기창에 몸이 꿰뚫리는 거야. 기병의 돌격을 저지하고 맞서 싸우기 위해서 밀집 대형을 이룰 것이 강제 되었어.
+ 당시에 강선총이 없던 건 아니었어. 다만, 강선을 파는데 수고와 기술이 필요해서 강선총 만드는데는 돈이 더 들었고
강선을 판 총은 결정적으로 장전이 힘들고 오래 걸렸어. 당시는 후-장식 총이 등장하지 않았던 때라 전장식 총만 존재했고 탄이 강선에 꽉 맞물려야 강선의 효과가 있는 건데 그런 뻑뻑한 탄을 총구에서부터 안쪽 끝까지 밀어 넣어야 한다고 생각해봐.
그래서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각국은 강선총을 소수의 유격병 정도나 쓰게 했고 프랑스는 아예 나폴레옹의 의지로 강선총을 제식 채용을 안 했어.
+ 당시 영국군이 레드코트로 유명했던 이유 - 단순히 군복이 빨갛기에 그런 것이 아니고, 그만큼 실적을 보였기 때문이야.
영국은 당시 대부분의 나라가 예산 문제로 못하던 실사격훈련을 하는 몇 안 되는 나라였음. (화약과 부싯돌은 비싸다)
그렇기 때문에 영국군의 숙련도가 높았음. 장전도 더 빨리 하고 실제로 총성과 화약연기를 경험해보고 전장에 투입 되니깐 겁도 덜 먹고.
+ 당시 군대는 대규모 징병이 시작되었는데 훈련시킬 시간과 돈 문제로 훈련이 부족하고 사기가 낮으니 대열 유지시킨답시고 가혹행위가 심했음.
적의 선빵에 겁먹지 않고 대열 유지하고 전진해서 제대로 된 일제사격 날리고 총격에 와해 된 적을 돌격해서 백병전으로 도륙하는 식으로 승리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 돈이 필요한 훈련에만 의존하지 않고 가혹행위가 두려워서라도 대열을 지키게 만듬.
+ 그리고 보다 과거의 전쟁에서도 그래왔지만 전투에서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는 시점은 한 쪽이 진형 유지를 포기하고 패주하기 시작할 때야. 그 때부터 이겨가는 쪽이 전과 쓸어담기를 시작하는 거지.
공방을 주고 받는 시점에서는 의외로 사상자가 덜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