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가 끝난지 25년이 지난 21년 1월 7일에 원작자인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직접 감독과 제작을 맡아서 슬램덩크 신극장판을 발표했다. 원작의 팬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인터하이 32강전 북산고 VS 산왕공고가 애니메이션의 내용이다. 이 소식에 원작을 접한 사람들은 전국대회편이 마침내 애니화된다는 소식에 전율했고, 심지어 최종장인 산왕전이라는데서 더욱 열광했다. 모두가 그 결말을 알고 있고, 그 때의 감동을 잊지 않고 있으니까. 대부분 원작팬들은 그렇게 되기를 바랬다.
그래서 한 번 더 비틀었다
슬램덩크의 원작자이자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이 영화의 제목을 '더 퍼스트 슬램덩크'라고 지은만큼 이 영화가 상업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 첫 도전이었다. 게다가 원작이 재현된다면 이 작품에 애정을 갖고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만족스러울지언정, 26년만에 애니화되는 작품인만큼 처음 보는 관객에게 허들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인터하이 32강전에 새로운 서사를 부여하기로 했다. 놀랍게도 그 역할을 맡은 것은 포인트 가드인 송태섭이다.
수많은 원작 팬들이 이 결정에 깜짝 놀랐으리라 믿는다. 나도 그랬으니까. 송태섭의 역할은 작중 그렇게 주목받지도 못했고, 특히 산왕공고와의 32강전에서는 이명헌에게 탈탈 털려대서 더욱 그렇다. 게다가 이미 산왕전은 서사적으로 완벽한데 굳이 각색할 필요가 있냐는 꼬리표가 따라붙기도 쉬웠다. 물론 송태섭을 부각시키는만큼, 산왕전에서 나온 수많은 명장면과 다른 고교 인물들은 곁가지로 치부되어 가지치기를 당했다. 하지만 송태섭의 서사는 그만큼 처음으로 영상화된 산왕공고전에 알맞은 소재다.
송태섭의 과거는 원작자가 직접 만든 단편인 피어스를 각색해 극 중 플래시백으로 사용된다. 이는 송태섭이라는 인물이 가진 심리와 그가 지니고 있는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장치로 관객들에게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한다. 송태섭과 이한나의 러브라인 역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두 사람의 관계 또한 틈틈이 부각된다. 무엇보다 원작에서 나름 명장면으로 여겨지는 NO.1 가드 또한 그대로 나온다.
그리고 원작에 없는 서사 또한 추가됐다. 포인트 가드인 송태섭을 차기 주장으로 인정하며, 그에게 새로운 롤을 부여하는 오리지널 장면은 송태섭을 확실히 각인시킨다. 여기서 나오는 지략과 전술을 통해 산왕공고를 추격하고 마침내 역전까지 그리는 과정은 원작의 구성 못지 않게 탄탄함을 자랑한다.
그렇다고 원작의 수많은 장면들이 빛을 바래는 것도 아니다. 비록 관점이 달라지면서 나오지 않은 대사들도 많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영화를 통해 체현되는 속도감과 트리키한 장면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이 북산고와 산왕공고의 선수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게 만든다. 신극장판에서 원작의 많은 장면이 각색되고, 주연 성우들의 목소리가 바뀐 것은 이 경기를 관전하고 참여하는 관객에게 정말 중요하지 않다. 그 동안 숱한 스포츠 애니메이션들이 가지지 못했던 속도감과 흐름을 온전히 구현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그 본연의 가치를 증명해냈다.
꺾이지 않는 마음
하지만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2022년 한 해를 마무리한 역대급 명언이 하나 떠오를 것이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2022년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쉽에서 우승한 데프트 김혁규 선수의 인터뷰에서 나온 이 메시지는 2023년 벽두에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작중 고교 최강이라는 산왕을 상대로 꺾이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북산고 농구부의 투혼은 중꺾마 그 자체다. 제목 그대로 초심으로 돌아간 슬램덩크는 다시 한 번 꺾이지 않는 마음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싶다. 영화가 가진, 애니메이션이 가진 감동과 전율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열정을 태우고 도전하기를 희망한다. 세상이 자기를 등진 것 같고, 불가능할 것 같은 일들이 내 앞에 놓여있다고 해도, 꺾이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도전한다면 결과를 떠나 후회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개인적인 소감이지만 그 동안 나태해진 내게도 다시 한번 자극을 준 영화였다.
영화 관람을 마친 후 상영관을 나서는데, 부모님께 "나도 송태섭처럼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될래요"라고 말하는 초등학생의 이야기를 엿듣었다. 분명 부모님이 원작을 좋아해서 같이 본걸테지만,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는 부모님의 입장은 어떨까? 세대를 가리지 않고 슬램덩크가 주는 감동은 여전하다는 걸 느꼈다.
영화를 보면 왜 송태섭이 주인공 이여야 하는지 이유가 설명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