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이 없는 거리,
함께라는 이름의 기적을(上)
"나중에 자기 탓이라고만 생각하는 건 자만이야
한 사람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잖아?"
-후지누마 사치코-
괴력을 내거나 순간이동을 하는 등의 마법 같은 능력이 없더라도
네가 용기를 낸다면 주변을, 세상을 구할 기적을 일으킬 수도 있어.
혼자가 아닌 함께 난관을 해쳐나갈 용기라면 말이지
나만이 없는 거리는 타임루프물이자 히어로물입니다.
하지만 시간을 반복하며 횟수로부터 무언가를 깨닫기보단 스스로의 변화로부터 활로를 찾는 작품이고
단순히 능력에 기대는 것이 아닌 능력이 만들어준 틈새에서 주인공이 깨달아나가는 기적을 보여주는 작품이죠.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지만 아쉬운 점이 없는 애니메이션은 아닙니다.
분량 상의 문제로 진범에 대한 서사가 크게 줄어들면 원작에 비해 카리스마나 설득력이 약화되었고 그럼에도 큰 폭의 각색 없이 꾸겨 넣는 것을 선택해 작품에서 진범이 붕 뜨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건 분명 단점이지만 선택과 집중의 결과물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제 생각에는 애니메이션이 후반부까지 숨겨 놓고 위기를 만드는 장치로 활용되는 진범보단 사토루에 집중한 것이 아닌가 싶거든요.
나만이 없는 거리의 주제의식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용기가 주변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과 홀로 할 수 있는 것의 한계, 그걸 극복해내는 믿음으로 만들어지는 함께라는 기적이죠.
사토루는 의외로 본격적인 리라이벌 전과 후의 내적인 변화가 큰 사람 입니다.
작품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만 집중하면 놓치기 쉬운 부분이지만 사토루는 1화 직전 시점에서 자신의 것, 진심을 찾지 못해 실패만 거듭하는, 방황하는 인물입니다.
처음 1988년으로 워프하고 나서 시간을 보내며 하는 독백과 켄야가 사토루의 변화를 눈치 채는 부분도 사토루가 오리지널 시간선과 달리 남에게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에 부딪히는 부분이죠.
다시 말해 사토루는 과거 납치살인사건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았다거나 하는 이유로 오리지널 시간선에서 자신의 진심에 파고들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남에 맞추고 스스로를 미뤄두는 성향의 사람이었다는 거죠.
그런 사토루에게 어느 날 갑자기 리라이벌이라는 능력이 생깁니다.
조절하거나 원할 때 사용할 수 있는 그런 편리한 기능은 아니지만 주변의 위기상황을 되돌리고 바로 잡을 수 있게 해주는 어쩌면 사토루의 등을 떠미는 능력입니다.
다만 이건 단순히 29살 피자배달부 청년1에게 그냥 주어진 능력이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영웅을 꿈꾸며 누군가를 구하는 것에 대한 동경을 가진 소년이 그 마음을 펼칠 수 있게 해주는 기폭제에 가깝습니다.
이전까지는 트럭에 치일뻔한 아이를 구해주는 등의 사소한(?)일에만 발동되던 리라이벌은 과거와 연관되어 있는 한 인물을 포착하면서 직전이 아닌 먼 과거까지 되돌아가는 본격적인 타임루프를 시작합니다.
사토루는 어릴 적 영웅을 꿈꾸었습니다. 티비 속에서 악당을 무찌르고 사람들을 구하는 특촬물 속 주인공을 말이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같은 반 여자아이가 일을 당했던 그 날, 그녀를 보았음에도 일을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하였죠.
어머니가 살해를 당한 충격도 잠시 경찰에게 쫓기다 루프를 하게 된 사토루에게 이 모든 문제를 바꿀 기회가 생겼습니다.
분명히 연관이 있을 아동 연쇄 납치살인 사건을 막아내고 진범을 찾아내면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초능력도 강한 힘도 권력도 없고, 기억도 희미하고 단서도 거의 없지만요.
대신 사토루에겐 그 때 구하지 못한 소녀를 구하겠다는 의지와 그걸 행할 용기가 있었으니까요.
개인은 거대한 사건 앞에서 무력한 경우가 많습니다.
주변에서 살인이나 납치 같은 강력범죄가 일어났을 때 개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설사 미리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한낱 일반인에 불과한 한 명이, 심지어 초등학생의 몸으로 가물가물한 과거를 되짚어가며 그걸 막아내야 하는 사토루는 현실의 우리보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물론 현대에서 일어난 사건과 리라이벌이라는 컨트롤할 수 없는 현상에 휩쓸렸다곤 해도 사토루는 다른 길을 선택할 수도 있었습니다.
꼭 사건을 직접 해결해야만 리라이벌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걸 1화에서 보여주기도 했고, 사건이 일어난 이후 범인을 잡는 것이 오히려 쉬운 일 일 것입니다.
사건의 시점과 장소를 모두 알고 있기에 현장을 잡거나 그걸 토대로 증언을 수집해서 범인을 특정하면 단순한 피해자에 대한 목격증언만 있던 오리지널 시간선보다 훨씬 수월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겠죠.
하지만 피해자를 위험에 빠트리지 않고, 사건 자체를 무마하며 진범을 찾는다.
이건 이뤄야 하는 목표를 더 어렵게 가는 바보 같은 일이죠.
특촬물 속 영웅이나 할법한 순수히 정의로운 일.
하지만 그런 바보 같은 일은 오히려 주변을 감화시키고 그런 사토루를 진정으로 믿을 수 있게 하는 무언가를 일으킵니다.
본인은 도통 깨닫지 못해 바보냐는 소리를 줄창 듣지만 사실 어느새 일어나고 있던,
'함께'라는 기적이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