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ologue
/ Outside
어둠 속에서 청년은, 달음박질을 하고 있었다.
" 허억, 허억, 허억... "
몸 속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가쁜 숨을 뱉어내며 청년은 쉼없이 달린다.
과부하가 걸려버린 것만 같은 무거운 다리따위는 개의치 않는다.
그저― 이 청년에겐― 지금― 목숨이― 중요할 뿐이었으니까―
온 몸의 신경들이 아우성치고 있다.
지금― 도망가지 못하면 죽을 것이라고.
" 허억, 허억...젠장...!! "
청년은 앞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높은 돌담벽을 마주하고선 자리에서 멈춰섰다.
청년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후회했다.
" ...역시 알지도 못하는 골목길 따위로 들어오는게 아니었어...!! "
청년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담벽을 등지고 돌아서려 할때...
또―각.
또―각.
또―각.
또―각.
또―각.
그저 평범하게 들려왔을 뿐이었다.
거리에서 들려오는 여자들의 흔한 구두굽소리.
청년의 귀에 겨우 잡힐듯 하다가도,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조금씩 소리를 키워가고 있는 일정한 소리.
그 소리의 주인공은 어느 곳을 목표로 하고 있었던 것일까.
청년에게 그런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이곳을 어떻게든 벗어나야만 한다는 일념으로 골목길을 빠져나가기 위해서
들어왔던 길 그대로 나가려고 하려던 찰나,
희미하게 비춰지는 빛 사이로 그림자가 비춰든다.
그것은 사신의 그림자.
아무리 발버둥 쳐보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올가미 같은 공포.
온 몸의 신경이 날카로이 세워진 청년에게 있어서 그 그림자는 죽음의 선고.
그 그림자는 일정한 속도로 세력을 키워가고 있었다.
골목길을 지배해버릴 정도로 세력을 키워나가던 그림자의 크기가 절정으로 치닫을 때 즈음,
골목길 사이의 희미한 빛을 등지며 누군가가 나타났다.
" ...말도 안돼...겨우 이 정도 뿐이에요...? 난 걸어서 쫓아왔을 뿐인데... "
식은땀이 범벅이 된 얼굴로 청년은 목소리의 출처를 따라 눈을 굴린다.
그 곳에 있는것은, 자그마한 소녀.
극히 평범하다면 평범할 정도의 소녀일 뿐이었다.
베이지색 바탕에 검은색 십자선으로 체크무늬가 조화를 이룬 스커트는 위험하리만치 짧았고,
셔츠의 목부분에 정갈하게 매여진 빨간색 리본은 마치 불타오르는 불꽃보다도 선명했다.
" ...원망하지 마세요. 그저, 당신이 재수가 없어서 제 눈에 걸려든것 뿐이니까요. "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맑고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약간이나마 긴장감을 와해시킨다.
그러나 청년에게 있어서 그것은 사형을 명령하는 저승사자의 목소리 같을 뿐이었다.
" 우,우우우, 웃기지....마! 대체 내가 무, 무슨 잘못을 했다고....! "
소녀에게서 짧은 조소 소리가 울려퍼진다.
그 골목길은 좁고도 넓은 곳인지라, 소녀의 조그마한 조소 소리도 마치 동물의 표효만큼이나 웅장했다.
"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그저 당신은 재수가 없었을 뿐이라고 "
" ...젠장,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것 같아...! "
청년은 저 정도의 소녀라면 이길 수 있을것이라 확신했다.
그저 도망쳐 올때는 느껴지던 극강한 살기에, 무언가 매섭게 생긴 자일줄 알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나타난것은 자그마한 소녀일 뿐이었기에, 청년은 그나마 긴장감이 조금은 줄어든것 같았다.
그러나, 소녀에게서 뿜어져나오는 극강한 살기는 아까의 그것과 같았다.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은, 마치 살기만으로도 사람 하나쯤은 베어넘길것 같은 그런 살기.
청년은 잇는 힘껏 지면을 박차며 소녀에게로 달려들었다.
분명 이길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저, 상대는 연약하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소녀였기에.
분명 이길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지금까지 이 주먹으로 이기지 못한 자가 없었기에.
분명 이길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주먹을 뻗기만 하면 복부를 강타할 수 있을만한 거리까지 다다랐을 땐,
사―악―
온 몸의 체중을 제대로 실었다고 생각한 청년의 주먹이 소녀의 복부 바로 5m지근에서 뚝 하고 멈추었다.
청년은 100%를 확신하며 들어갔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분명 성공 했다라면 묵직한 타격감이 온 몸에 전해져 왔어야만 했다.
그러나 청년의 주먹은 소녀의 복부를 강타하지 못하고 손가락 몇개만 들어갈 간격 사이에서 멈추어 있었다.
" ...어...째서... "
직전에 들려오던 바람소리는, 왜 났던 것일까.
빛마저 완벽하게 차단해버릴것만 같았던 높은 담벽으로 이루어진 골목길에서.
그런 깔끔하고도 스산한 바람 소리는 어떻게 난 것인가.
아니, 그 이전에.
왜 지금― 내질러진 팔에는 감각이 없는가―
툭.
청년의 생각이 끊김과 동시에 바닥으로 떨어진다.
분명 붙어 있어야만 하는, 붙어있어야 정상인 어느 것이 바닥으로 툭하고 떨어진다.
말도 안된다는 눈빛으로 청년이 내려다 본 바닥에는
분명 몇 초 전까지만해도 자신의 것이었을. 자신의 일부분 이었을 것이 몸에서 분리되어 바닥에 떨어져있다.
" 으....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
청년이 질겁을 하며 뒷걸음질 치자, 그제서야 깨끗하게 잘려나갔던 절단면에서
검붉은 선혈이 흩뿌려지기 시작했다.
청년이 제정신이 아닌채로 잘려나가지 않은 왼손으로 잘려져나간 오른팔의 절단부분을 눌러보지만,
누르는 힘보다 솟구쳐 나오려는 선혈의 역류는 그것만으로 막기에 부족했을 뿐이었다.
" 으,으어어.....으어어어어어.... "
믿을 수 없이 깨끗이 절단된 단면을 바라보며 청년은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그런 청년을 반기고 있는 것은 절대 넘어가지 못할 어둡고 차가운 돌담벽.
겁에 질린 청년의 눈에는 점점 생기라고는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탁한 빛을 띄며 흐려져갔고,
앞의 소녀는 자신의 손 끝에 묻은 선혈을 자그마한 혓바닥을 내밀어 낼름하고 맛을 보았다.
" 이 정도라면, 나쁘진 않은거 같으니까. 이봐. "
소녀가 청년이 아닌 다른 쪽을 보며 누군가를 부르자,
그림자가 잠식하고 있었으나, 소녀의 조그마한 체형으로 인해 골목길 전부를 잠식하지 못했던 그림자가
순간 무언가로부터 배가되어 좁은 골목길을 전부 잠식해버렸다.
" 네,네에...부르셨어요...? "
소녀의 옆으로 또다른 소녀가 엉거주춤하며 다가온다.
청년의 흐릿해져가는 동공에 또 다른 소녀의 형상, 얼굴이 망막에 각인된다.
" 으...너, 넌.... "
하지만, 그것도 잠시.
청년이 끈질기게 생명의 끈을 붙잡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던 또 다른 소녀가 청년을 보고선
청년에게로 뚜벅뚜벅 걸어나온다.
바닥이 울린다.
두근―
그저, 자신의 팔을 순식간에 앗아간 소녀보다 정상적으로 보이는 소녀임에도
두근―
분명, 자기 자신을 구해주러 온 것이라 철썩같이 믿었던 소녀에게서
두근―
운동화를 신은 발이라 발자국 소리는 뚜렷하지 않은데도 선명하게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
두근―
얼굴 표정과 몸 동작은 겁에 질린 듯 주저주저 하지만, 동네 산보라도 나온 듯 가볍고도 경쾌한 발걸음.
두근―
다만, 여기에서 청년이 믿을수 없었던 것은,
두근―두근―
망막에 각인된 그 소녀의 모습이 잘 알고있는 같은 반의 클래스메이트였다는 사실.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늘상 봐오던 그 여자애의 소심하고, 멍해보이기까지 해서, 심심할때마다 괴롭혀왔던
약하고 온순한 초식동물 같았던 여자애.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아무리 괴롭히고 짓밟아도 무릎을 꿇은 채 눈물섞인 표정으로 살려달라고만 외치던 그 소녀에게서―
청년은― 살기를 느꼈다.
또 다른 소녀가 청년의 바로 앞에서 무릎을 굽혀 쪼그려 앉는다.
" ...미,미안해요...이러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
이미 청년에게 있어서 그런 말 한마디 조차도 죽음의 선고.
소녀의 손이 청년의 머리 위쪽과 턱부분에 올려진다.
이제 끝이다―
청년은 그 손에서 뭐라 이루말할수 없는 차가운 기운만을 느꼈을 뿐.
청년은 결국 지금까지 끈질기게 붙잡아왔던 생명과 가늘게 연결되었던 끈을 놓아버렸고,
마지막으로 들려오던 고개를 푹 숙인채의 소녀가 짧게 내뱉은 한마디는 청년의 귓가에 들려오지 않았다.
" ...죽어 "
청년의 머리 위에 올려져 있던 왼손과 턱 쪽을 잡았던 오른손이 일순간 빠른 손도로 움직인다.
뚜드드득―
/ Outside - End.
# 1 - 고요의 밤
/ Outside
낙하하는 것은 자유롭지 못하다.
그저 중력의 힘에 이끌려 한없는 나락 속으로 떨어질 뿐.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은 어느 것도 있지 않다.
그러기에.
이미 떨어지고 있는 그것은 체념할 뿐,
자신의 등에 날개라도 돋아나지 않는 이상은 살 수 없다. 라고.
그저, 떨어질 뿐이다.
떨어지면, 그동안 떨어진 속력에 비례해 모든 것들은 산산히 부서지게 된다.
어떻게든 되라는 식일 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길 바란다는 쪽에 기대를 걸기보단,
그냥 모든걸 체념해버리는 평온감이 더더욱 나을 뿐이니까.
떨어지고 있는 방향쪽으로 시야를 돌린다.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어둠속에 묻혀 검게만 보이던 지면이 조금씩 가까워진다.
지면과 점점 가까워지는 것과 동시에 일어나는,
이미 체념했으면서도 어쩔수 없이 느끼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렇게, 그 것은 어둠의 마수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가버리고야 마는 것이었다.
/ Outside - End.
/ Inside
" ...어나... "
분명 의식은 아직 잠에 취해있다.
그러는데도 귓가로 희미하게 달콤한 목소리가 파고 들어온다.
그것은 너무나도 달콤한 소리.
그러면서도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여서 깜짝 놀란다거나 하는 반응은 없다.
" ...어나라니까... "
귓가로 달콤하게 파고드는 목소리에 취해 자리에서 쉽게 일어나질 못한다.
이렇게 파묻은 채로 일어나지 않으면 계속 들을 수 있을것만 같아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몸이 이렇게나 무거운건, 어제 엄청난 무리를 했을 뿐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언가 정신적으로 눌려오는 무게감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눌려오는 듯한 무게감에 의아함을 느끼며 살짝 눈을 떠보았다.
살짝 열린 동공에 기다렸다는 듯 눈부신 햇빛이 쏟아진다.
익숙해지려면 몇초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역시, 이런건 매일 아침마다 느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 ...정말, 안일어날거라면, 내 마음대로 해도 좋다는 걸로 받아들이겠어? "
그제서야 파고들어오던 햇빛에 익숙해진 시야가 정상적인 화면을 비춰온다.
그것과 동시에 온 몸을 스치듯 미끄러지는 부드러움.
마치 무언가 소중한 도예품이라도 되는 것마냥 부드럽게 쓰다듬는 손길은,
마치 물 흐르듯 가볍게 흘러가는 듯 하면서도 거친 것이어서, 약간 밀려드는 쾌감에 온 몸을 흠칫거렸다.
" ...아니, 이제 깼으니까, 그만 하면 좋겠는데? "
잠시나마 부드러운 손길에 저릿한 쾌감을 맛보고 있던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 올라오던 손을 덥석 잡았다.
" ...체엣, 재미있었는데... "
내 손에 붙잡혀버린 손은 아쉽다는 말을 하곤 부드럽게 내 손을 빠져나간다.
" ...그건 그렇고, 어떻게 들어온거야? "
" 에? 어떻게냐니? "
" 분명히 어제 밤에 귀가하자마자 잠궜던 현관문의 잠금장치를 어떻게 풀고 니가 지금 여기 들어와있는지에 대해서 묻고 있는거야 "
" ...분명, 스페어키, 나한테 줬잖아? 그걸로 당당하게 열고 들어온건데? "
" ...그런것 따위, 준 기억은 없는데... "
" 물론이지, 저번에 청소 부탁한다면서 열쇠 맡겼을때 복사한 스페어 키니까 "
" ...정말이지, 누구 맘대로 열쇠를 복사하는건데? "
" 결국, 준건 오라버니니까, 내 잘못은 아니잖아? 탓하려면 오라버니의 무신경함을 탓하라구. "
" ...정말이지... "
몸을 짓누르고 있는 물체를 옆으로 살짝 밀어내며 상반신만을 일으킨다.
" 꺅. "
" ...그런 소리 내지마. 누가 들으면 오해한다고. "
" 뭐 어때, 누가 있는것도 아닌데...읏챠- "
내 손에 의해 침대 가장자리로 밀려났던 여자는 침데에서 몸을 일으킨다.
지금까지 해왔던 이야기로 보다면 연인이라던가, 적절한 관계는 아닐 것 같지만,
저 녀석과 나는 그저 단순하게 남매일 뿐이었다.
사카모토 시즈코. 나와 두 살 터울인 여동생이라지만, 전혀 피 같은건 섞이지 않은 사이였다.
내가 어릴 적이던 5살 즈음, 어머니는 병으로 돌아가셨다.
그 때 당시의 의학으로 밝혀낼 수 없었던 병이었는데,
하나같이 어머니를 진찰했던 의사들은 병 자체가 무언지도 몰라 손을 쓸수 없었다. 라고 아버지께 들었다.
그러면서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아버지는 새어머니를 데리고 왔고,
아버지와의 관계가 한창 소원했을 그 당시에 나는 따로 밖에 나와 혼자 살았었기도 했기에
아버지에게서 재혼한다는 연락은 받지도 못한 채, 학교만 다니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던 바로 작년.
아버지마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그저 이틀간을 앓다가 숨을 거두셨다는 소식과 마지막 말씀이 담긴
우편을 건네받음으로, 그것이 아버지와 나의 마지막 작별이었달까.
그런 상황에서 나는 집에 얼굴을 비출 수밖에 없었고,
별다른 친척들이 없던 우리 집안은 그저 새어머니와 나, 그리고 새로 생긴 여동생이라는 아이만이
아버지의 장례식을 진행했을 뿐이었다.
그 때 당시에 처음 알게된 시즈코는 마치 자신의 친아버지가 돌아가시기라도 한 양
몇일간 눈물을 쏟아내고 탈진하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울고 쓰러지고를 반복하던 시즈코를 집에 눕히고 다시 장례식장으로 돌아왔을 때,
그저 향냄새가 진동할 뿐인 아버지의 영정을 껴안고 울고 있는 새어머니를 보았을땐,
나는 다시 발걸음을 돌려 장례식장을 빠져나올수 밖에 없었다.
새어머니의 슬퍼하시는 모습이 아련하게 마음속으로 다가옴과 동시에 아버지의 웃는 사진을 보는 순간,
난 두 사람을 지켜야겠다고 결심했고, 이 가문의 유일한 남자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느꼈을 뿐이었다.
" 그건 그렇고...이렇게 이른 아침에 무슨 일이야? "
나는 수마의 기운을 떨쳐내고 이불 밖으로 나와
간밤에 굳어버린 몸을 풀기 위해 약간의 스트레칭을 해보았다.
" 그냥, 오라버니 아침이나 해줄까 하고 왔지만, 목적은 다른데에 있으니까 "
" ...용돈이라면 거절. 나, 이번 달 생활비도 약간 빠듯하거든. "
시즈코는 부엌을 향해 총총걸음으로 걸어가며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부엌을 뒤지기 시작했다.
" 나, 용돈 받아봐야 쓸데도 없는걸. 그리고 생활비가 위험하다면 약간의 자금 조달정도는 해줄수 있을거라 생각하는데? "
" 한심하게, 여동생 자금이나 조달해서 쓰는 그런 바보같은 오빠는 되고싶지 않아... "
시즈코가 능숙한 손놀림으로 선반 위에 놓여져 있던 냄비를 내리곤 그 안에 물을 가득 채운다.
무슨 요리라도 하려는 모양인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주인의 허락없이 잘도 냉장고를 뒤지고 있다.
" 역시, 아침은 밥 먹고 가는게 낫겠지? "
" ...빵으로도 충분한데 말이야 "
내 오른편에 세워져있던 전신거울 쪽으로 눈길을 주자, 머리가 심할 정도로 뻗친게 눈에 들어왔다.
어차피 씻은 다음에 드라이만 잘 한다면야 문제 될 것은 없지만,
이런 사소한것으로 무언가 이질감이라는 것을 느껴버리는 나 자신에게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인다.
전신거울 속에 있는 녀석도 마찬가지로 나에게 노골적으로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어온다.
" 거울 속의 자신이랑 눈싸움 할 시간이 있다면, 씻는게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오라버니? "
" ...아아, 그래야지 "
...시즈코(靜子:조용한 아이)라는 이름은 대체 어딜봐서 어울린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되지도 않는 생각을 하며 욕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 ...그렇게 된건데...오라버니? 듣고는 있는거야? "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에 갑자기 끼어든 시즈코의 말에
내 생각의 회로는 잠시 브레이크가 걸려버렸다.
" ...응? 아아, 미안. 잠깐 다른 생각좀 하느라 못들었는데 "
시즈코는 노골적으로 한숨을 쉬며 들고있던 숟가락으로 식탁을 탁탁 내리치며 말했다.
" 정말이지...이렇게 여자를 앞에 두고 다른 생각이나 하다니. 그러니 오라버니가 여자한테 인기가 없는거라구 "
...그런 거랑 이번 일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느껴질 뿐인데...
" ...쓸데없는 걱정을. 네 녀석에게 그런 조언을 받을정도로 무르지는 않아. 라기보다, 내가 전부터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말야 "
" 응? 뭔데? 뭔데? "
그제서야 나는 지금까지 머릿속 한 켠에 박아두었던 말을 꺼내 조심스럽게 입에 담아올렸다.
" ...너랑 시즈코라는 이름, 전혀 어울리지 않는거 같아. "
" 왜? 나는 괜찮기만 한데 "
시즈코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어온다.
...이 녀석, 정말 자각이 없는걸까...
/ Outside
" ...여기가 맞나요? "
싸늘한 눈초리로 여자는 건물의 곳곳을 빠르게 눈으로 탐색하는 중이었다.
그 눈은 매나 독수리처럼 높은 곳에서 먹이를 탐색하는 눈매만큼이나 매서워서,
전체적으로 어려보이는 얼굴의 여자와는 어울리지 않는 대조적인 눈빛이었다.
" 예에...그렇긴 한데요... "
그 옆에서 자신감없는 목소리로 말하는 여자는 무엇이 그리 불안한 건지 이야기를 하면서도
주변을 경계하는 눈빛을 풀지 않았다.
마치 상처입은 고양이가 주변을 경계하기라도 하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그 경계심이란 것은 커도 위협감 자체가 없어서 그저 상처입은 조그마한 새끼고양이처럼 보일 뿐이었다.
" ...뭐, 나름 괜찮은 곳이긴 하네요 "
" ...그럼...여기로 오시는 건가요...? "
" 에에, 뭐 그것도 나쁘진 않겠죠. "
무표정한 얼굴로 말하는 여자와는 다르게 얼굴에 함박웃음을 띄우며 무표정의 여자를 끌어안는 다른 여자.
그것은 기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표현하는 어린아이 같은 순진함과 천진난만함 이었으리라.
무표정의 여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음에도 아무렇지도 않은듯
품에 안긴 여자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고, 품 안의 여자는 기쁜듯 눈을 가늘였다.
" ...언제까지나 함께인거죠...? "
품에 안겨 눈을 가늘게 뜨던 여자가 품 속에서 무표정의 여자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눈빛이 너무나도 순진무구하고 초롱초롱해서 무표정의 여자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저, 그 순진한 존재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고 있을 뿐, 입을 닫아버린 여자였다.
" ...말, 안해주셔도 상관없어요... "
품 속의 여자는 올려다보던 눈을 다시 지그시 감으며 가늘였다.
이대로의 생활이 계속 된다면, 아무것도 개의치 않을 자신이 생겼다.
그저,
이 사람이 곁에 있어 준다면,
이 사람이 평생 나와 함께일 수 있다면,
이 사람이 나를 떠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이 나를 버리지만 않는다면,
어떠한 일이든 다 할 수 있을 것이라고.
/ Outside - End.
/ Inside
" ...한가지 물어볼게 있는데 말야? "
" 응? 뭔데? "
나는 문을 걸어잠그고 있는 시즈코의 등뒤에 대고 질문을 던졌다.
" ...왜, 그것도 1학년인 주제에, 학교도 채 3개월도 다니지 않았으면서 어째서 전학 온거야? "
문을 잠그고 돌아서는 시즈코를 뭇마땅하다는 듯한 시선으로 쳐다보았으나,
앞으로 돌아선 시즈코는 그것을 깜끔히 무시하고 옆 집의 문이 잠겼는지 손잡이를 잡고 돌려본다.
" 응? 그저, 오라버니랑 같은 학교에 다니고 싶었을 뿐. "
시즈코는 상쾌하게 말을 툭 던지더니 '자, 그럼 늦었으니까 빨리 가자' 라며 내 손을 잡고 끌고간다.
" ...게다가 바로 옆집으로 이사라니...랄까, 그것보다!! 왜 하필 옆집 따위인 건데!! 그리고, 옆 집이면서 밥은 왜 내 집에 와서 먹는거냐고!! "
그런 불평섞인 내 말을 듣지 않겠다는 듯 양 손으로 자신의 귀를 감싼 시즈코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질려버리겠어.' 라는 말과 함께 말을 이어간다.
" 그치만, 어차피 같이 살겠다고 하면 '안 돼!'라면서 거절할테고, 그리고 옆 집이 아니면 의미가 없어서 기존에 있던 사람한테 부탁에 부탁을 거듭해서 이루어 낸 내 소중한 공간이라구. 그렇게 거친 말은 안해줬으면 좋겠는데. 게다가, 어차피 먹는 밥이면 혼자서 먹는 것보단 둘인게 낫잖아? "
중간에 내 목소리까지 흉내내며 여유롭게 말을 잇는 시즈코의 연사포 공격에
나는 저항할 기력마저 잃어버리곤 한숨을 내뱉는다.
" 하아...정말이지, 어머니는? "
" 엄마라면...배낭여행 가셨어 "
" ...뭐? "
아무렇지 않게 흘러 나온 시즈코의 말에 적잖아 충격을 받았다.
마치 만화책에서나 봐왔던 100톤짜리 망치가 머리를 가격한다면 이런 느낌인걸까.
멍청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내 시선을 시즈코가 무슨 일이냐는듯 쳐다본다.
" 무슨 일이야? "
" ...어머니, 예전부터 프리하시다는 생각은 했지만, 설마 이 정도로 프리하실 줄이야... "
지끈거리는 머리를 오른손 엄지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보았지만, 그런것 따위에 효력은 전혀 없었다.
" 뭐, 솔직히 말하면 나도 놀랬거든. 갑자기 자다가 일어나서 방에서 나와보니 탁자에 통장이랑 쪽지가 있어서 말이야, 쪽지를 펴봤더니, '나는 자유로운 영혼. 그러니 이곳 저곳 보지 않으면 안되니까. 당분간 시즈코는 혼자 있게 되어도 심심하진 않을거라고 생각해. 지금까지 혼자서도 잘 해왔잖아? 집도 내놨구 옆집의 이노우에 아줌마에게 맡겨뒀으니, 이 통장에 있는 돈으로 집도 구하고 알아서 생활하길 바랄게' 라고 써있어서 기회다 싶어서 그대로 전학 수속을 밟구 집을 구해서 이리로 들어오게 되었다. 라는 스토리. "
...이 녀석, 뭔가 엄청난 말을 어머니 목소리까지 흉내내며 하고 있어...
" 하아...내 앞날, 시커먼 먹구름이 끼었군 "
" 응? 오라버니 앞날에 먹구름이라니? 어째서? "
...시끄러 이 원인 제공자야...
안녕하세요 (꾸벅)
루리웹에 처음으로 와서 첫글 올려봅니다 'ㅅ'/
현재 쓰고 있는 글이긴 하지마는...
제 눈으로 보기에도 무언가 어색한 문장들도 많고 하지만...
용기내서 한번 올려봅니다 'ㅅ'
즐감해주셨기를 바라며 비평이나 지적도 감사히 받겠습니다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