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방으로 돌아가 진용이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한다. 사실 내일 학교에서 이야기해도 되는 일이었지만,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축하한다. 이것으로 너도 한을 풀었겠군."
"그래도 정말 신기한 일이야. 딱 한 번을 잘해줬을 뿐인데, 이 정도로 상황이 변하다니."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 한 번을 잘 대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상황까지 갔던 것인지도 모른다.
"바로 그 한 번이 두 번의 계기가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되었던 거야. 도미노의 맨 끝단이 쓰러지게 되면 차례대로 모든 블록이 쓰러지는 것과 비슷한 거지. 그러니까 과거를 함부로 바꾸면 위험한 것이기도 하고."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됐다. 만약, 내가 직접 경험을 해보지 않았더라면 '고작 한 번으로 변할 리가 없다.'라고 생각했겠지만, 그 도미노를 쓰러트려 본 이상 부정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 넌 대체 과거에서 무슨 일들을 했기에 동생이랑 그렇게 사이가 좋은 거냐?"
"후후후. 글쎄?"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것을 보니 말하기 싫거나 말로 하기에는 어려운 내용인가 보다. 어차피 나도 더 묻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어쨌든 이 돌, 조금 더 갖고 있어도 되지?"
"물론. 난 당분간 쓸 일이 없을 테니까 너한테 빌려주는 동안은 마음대로 사용해도 돼."
전화를 끊고 나서 잠시 후, 효진이가 내 방에 왔다. 선미도 아니고 이 애 혼자서 나한테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기에 조금 놀랐다.
그녀가 말은 나를 더욱 놀라게 했다.
"오빠. 우리 피자 시켜 먹을 건데 오빠도 같이 먹을래?"
"피, 피자!?"
"응."
아니! 평범한 여동생이 있는 집안에선 이렇게 훈훈한 일도 일어난다는 말인가? 여동생 만세다!
나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감지덕지할 일이지.
"고마워.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그럼 오빠도 만원만 보태."
내가 감격의 눈물을 찔끔 흘리기도 전에 그녀는 갑자기 냉담한 태도로 그렇게 말했다.
"뭐!? 1인당 만원? 뭐가 그렇게 비싸?"
"에이. 어차피 오빠가 제일 많이 먹을 거잖아?"
"?"
그 말은 그만큼 비싼 것을 시킨다는 뜻이 아니라, 제일 많이 먹어댈 나더러 그만큼 부담을 많이 하라는 뜻인 것 같은데…. 어째 훌륭하게 속아버린 듯한 기분이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이미 정해져 있는 문제일 것이다.
나는 순순히 지갑을 열었다. 으윽. 기쁜 일을 위해서라면 그만한 희생이 뒤따르는 법이다….
효진이는 환하게 웃으며 지폐를 받아들고는 팔랑거리며 흔든다.
"고마워. 이따 도착하면 부를게."
그야, 도착하면 인터폰이 울리니까 부르지 않아도 나도 알게 될 수밖에 없다고 보지만….
아무튼, 피자를 먹는 것 자체도 오랜만이지만, 여동생과 그 애의 친구랑 같이 먹는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즐겁게 느껴졌다. 지금까지는 저녁 식사 때 같은 식탁에 나란히 앉는다는 것 자체가 불편하게 느껴졌었으니…그만큼 더 특별하게 생각될 수밖에.
지출은…일단 생각하지 않기로 하자.
피자가 도착하고 나서 우리는 오순도순 거실에 모여 앉는다. 박스를 개봉하고 뜨끈뜨끈한 피자를 바라보게 된 나는 어쩐지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피자는 분명히 15,000원인가 16,000원이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내가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건가?"
크기가 작은 것이 불만인 건 아니다. 어차피 저녁으로 먹을 생각도 아니었고. 다만, 내가 부담한 액수가 지나치게 크다고 생각되는 것은 단지 착각일 뿐인가?
효진이는 우는 애한테 사탕을 주는 것처럼 선심 쓰듯이 내게 말한다.
"알았어. 알았어. 남자가 쪼잔하긴. 그럼 우리가 반만 먹을 테니까 나머지는 오빠가 다 먹어."
"너, 너 말이야. 가격 상으론 반을 먹어도 내가 손해 보는 건데 생색내는 척하지 마!"
그러자 효진이는 토라진 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
"뭐야. 나랑 같이 피자를 먹을 수만 있다면 돈은 얼마든지 내주겠다는 남자가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오빠는 복 받은 줄 알아야 돼."
"그럼 다음부터는 그 쌔고 쌘 남자한테 얻어먹도록 해."
"뭐라고!?"
그렇게 우리가 아옹다옹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묵묵히 피자를 오물거리던 선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사이가 좋네."
그러고 보니 선미를 잊어버리고 있었구나. 아차 싶었다. 소외된 느낌에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미안. 선미야. 지금까지 외로웠지?"
"뭐?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자. 내가 먹여줄게 '아'해봐."
나는 오이 피클을 집어 선미에게 내민다. 선미는 무뚝뚝하게 대답한다.
"필요 없어."
"오빠. 그럼 나 줘. 아-."
효진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옆에서 입을 벌린다.
얼떨결에 효진이의 입에 넣어주자 그녀는 맛있다는 듯 오물거리며 자기도 피클을 집어 내게 내민다.
"이번엔 내가 줄게. 아-."
"놀구들 있네."
선미는 조금 짜증 섞인 목소리로 내뱉는다. 이런, 괜히 자극만 하게 된 건가? 그때 효진이가 얼른 선미에게 다가붙는다.
"아이. 화내지 마. 네 오빠 뺏어가지 않을 테니까."
"흥. 뺏어가도 상관없어. 그냥 영원히 가져가지그래?"
선미는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내가 원했던 것이 바로 이런 광경이었으니까.
점프를 해서 다행이다…. 나는 진용이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날 밤.
나는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하얀 돌을 다시 꺼낸다.
고작 한 번, 과거의 일부를 바꿨을 뿐인데, 이렇게 많은 일이 달라지다니. 한 번 더 점프를 하게 되면, 얼마나 더 변할 수 있을까?
진용이의 동생처럼 브라더 콤플렉스라는 느낌이 들 만큼 가까워지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보다 조금 더 친해질 수 있다면….
그동안 잃었던 시간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좋아. 한두 번만 더 해보자.
물론 지금이 불만스럽다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이런 기회는 평생 다시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여기에서 그만둬 버리면…언젠가 후회하게 될 것만 같다.
내가 점프를 하는 이유는 선미와의 관계를 위해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멈추는 게 오히려 잘못일 지도 모르는 것이다.
과거의 내 잘못에 대해 속죄하는 차원에서라도…. 나는 흰 돌을 품에 안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반복해서 선미에 대해 생각을 했으나, 이번에는 쉽게 점프가 되지 않았다.
마치 소풍 전날 기대감으로 인해 잠이 오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몸을 뒤척이면서 빨리 과거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원했다.
[LT] 여동생 만들기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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