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평생 그러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잠시 후 우리는 일어나서, 선미는 옷을 갈아입었고 나는 냄비 등을 부엌으로 가져가 설거지를 했다. 적어도 이 정도는 내가 하는 게 매너겠지.
선미는 생각보다 빨리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아, 오빠. 선미도 도울게."
"아니. 됐어. 어차피 금방 끝나는데 뭐."
그렇게 말하며 선미를 돌아보니 집에서 편하게 입는 옷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만 한 짧은 스커트와 얇은 상의를 입고 있었다.
으윽. 이성관. 너 바보냐? 왜 두근거리는 거야. 여동생이잖아! 아무리 여자 친구가 없다고 해도 그렇지.
"치, 치마가 좀 짧은 거 아니니?"
고개를 돌려 다시 개수대를 쳐다보며 보통은 아빠가 할 만한 소리를 중얼거린다.
"에? 어때서? 어차피 볼 사람도 없는데."
선미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말한다. 볼 사람이 없긴, 내가 있잖아! 라고 하면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처럼 들릴까?
"너…밖에서도 그런 옷 입고 돌아다녀?"
만약 그렇다면…오빠로서 매우 곤란하다.
"오빠, 지금 걱정해주는 거야?"
어쩐지 선미는 기분이 좋은 것 같다.
"그야 당연하지. 남자들이 어떤 눈으로 보는지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우후후. 걱정하지 마. 선미는 집에서만 이런 옷 입을 거니까."
그 말을 들으니 안심이긴 한데…어쩐지 기분이 이상하다. 원래는 그 반대 아닌가?
"보통 집에 있을 땐 바지 같이 편한 거 입지 않아?"
"선미는 이게 더 편한데? 시원하기도 하고."
"…으음. 네가 좋다면 할 말 없지만."
그 말을 끝으로 설거지에만 집중하자, 혼자 남겨진 선미가 지루했는지 내게 다가온다.
"응? 오빠. 도와줄 것 없어?"
"어, 없어. 금방 끝나."
이미 충분히 접근했음에도 그 애는 나와 맞닿을만한 거리까지 뒤로 다가붙는다.
서, 선미야. 가슴이 조금씩 닿고 있는데…. 그 애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그 자세에서 손을 앞으로 뻗어 그릇을 가리킨다.
"오빠. 저-쪽 거품, 아직 안 사라졌어."
"그, 그래. 고맙다."
나는 쓸데없는 생각이 떠오르기 전에 서둘러서 설거지를 마무리 지었다.
"와하하! 드디어 끝났다. 이제 방으로 돌아가 볼까? 너도 오늘 피곤할 테니 푹 쉬어."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는 말들을 횡설수설 늘어놓으며…뒷걸음질치듯이 서서히 선미와 개수대에서 떨어진다.
"응. 오빠도 잘자."
다행히 선미는 더 이상 나를 도발해오지 않았다.
결국, 도망치듯이 방으로 돌아오는 꼴이 되고 말았다. 휴우. 나에게는 선미의 저런 모습이 너무 낯설다고. 본인은 아무런 자각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순수한 동생으로서 행동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이런 모습을 처음 보는 나로서는 당황할 일들 투성이다.
내가 그동안 모르고 살아왔던 것일 뿐, 원래 다른 집 남매들도 다 이런 건가? 그렇다면 차츰 적응이 되겠지만….
아까까지의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해방돼, 혼자가 되고 나자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여동생과의 관계는 오빠 하기 나름인 건가. 내가 어렸을 때 선미에게 조금씩만 더 양보하고 조금씩만 더 잘해주었더라면 이런 화기애애한 관계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하. 지금에 와선 그저 선미와 사이가 좋았으면 하고 바랐던 게 바보같이 느껴지는군. 소원은 바라기만 해서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조금만 더 빨리 움직였더라면, 흰 돌의 도움이 필요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것으로 드디어 꿈에 그리던 가정을 손에 넣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다 흰 돌 덕분이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뿐. 곧 다른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점프를 해본다면?
일단 충분히 사이가 좋아진 만큼 한두 번 정도 더 점프를 한다고 해서 관계가 크게 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악화되지는 않을 테니 점프를 한다고 해서 손해 볼 것은 없다.
진용이의 경우도 떠올랐다. 분명히 선미와 나의 관계도 이젠 평균적인 남매, 혹은 그 이상이라고 생각되지만, 진용이네 남매에 비하면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다.
그야 남과 비교하는 것만큼 의미 없는 일도 없고, 진용이처럼 되고 싶다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처럼 순조롭게 진행되기만 한다면 좀 더 선미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인생이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다. 1주일 전에만 해도 이렇게 인생이 변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잖은가? 이 돌을 돌려주게 되면 평생 두 번 다시 사용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평생 후회하지 않겠다는 확신이 있을 때까지 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 한 번만 더 해보자.
각오를 굳힌 나는 다시 서랍을 열고 흰 돌을 꺼냈다. 후후후. 그러고 보면 처음에 이 돌을 진용이에게 받았을 때만 해도 이게 무슨 시답잖은 장난인가 싶었는데, 이제는 너무 자연스럽게 사용을 하게 되는군.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돌을 꼭 쥔 채 눈을 감는다. 오늘은 어떤 상황으로 이동하게 될 것인가? 오래전 앨범을 넘겨보듯이 잊고 있었던 추억 속으로 몸을 던진다.
[LT] 여동생 만들기 -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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