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와 강의 사이의 1시간짜리 공강 시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그 시간을 나는 연인 H와 캠퍼스 데이트로 보내고 있었다.
1000원짜리 캔음료를 사서 학교 내 연못 옆에 있는 정자의 벤치에 앉아 시시한 이야기를 나누지만 충실하다고 느껴지는 시간. 그런 시간에 나는.
“내 친구랑 자주면 안 될까?”
연인 H에게 이런 소리를 들었다.
‘잔다.’라는 단어가 단순히 수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어리지도 순진하지도 않은 나다. H와 이미 수차례, 아니 수십 차례, 아니 수백 차례, 그것도 온갖 방법으로 잠자리를 함께 했는데 모를 수가 없다.
그래도 완전히 상식에서 벗어난 소리인지라 나는 되물었다.
“뭐라고 했어?”
나의 질문에 H는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태도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나의 시선을 피하고 얼굴을 붉힌 채, 귀를 눕히고 풍성한 꼬리를 끌어안고 불안하게 만지작거리는 것을 보면 내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닐 것이다.
H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친구랑……자주면……안……될까?”
분위기로 보아, 태도로 보아, 내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한숨을 내쉰 후 콜라를 마신 다음에 말했다.
“너…….”
나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켰다. 욕설이었기 때문이다.
“미쳤어?”
그러나 튀어나오고 말았다.
내 반응에 H는 다급히 폰을 꺼내며 말했다.
“알아. 알아. 이상한 소리 했다는 거. 하지만 이거 좀 봐주라. 응?”
H는 폰을 조작한 후에 나에게 들이밀었다. 폰에는 한 여자의 사진이 있었다. 가련한 퇴폐미가 느껴지는 검은 장발의 미녀가 있었다. 이 미녀랑 자 달란 의미겠지.
“예쁘지?”
“내가 미추를 문제 삼는 게 아니잖아.”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H도 그것을 깨달았는지 허겁지겁 말을 이었다.
“응응응응. 알아. 알아. 바람을 피우라고 말하는 게 이상한 소리라는 거.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거라면 바람을 피우는 건 아니잖아?”
“내가……”
나는 반박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하지 못했다. 머릿속에서 온갖 말들이 떠돌아다녔지만 이를 논리정연하게 정렬하는 것이 힘들었다. 감정적인 거부감이 욕설의 형태로 먼저 튀어나오려고 했다.
“하……시발.”
그리고 다시 나는 욕설을 내뱉었다.
“아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
나는 나의 흉흉한 심사를 표현하고 또한 그것을 가라앉히기 위해 거칠게 마른세수를 하며 신음소리를 흘렸다.
어느 정도 진정한 후 나는 H를 바라보았다. H는 내가 너무 큰 거부감을 드러내자 기가 완전히 죽어있었다. 그 모습에 나의 화도 어느 정도 누그러들었다. 나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게 조심하며 물었다.
“너, 설마 협박받아서 그런 건 아니지?”
“내가? 설마. 어떤 정신 나간 년이 나를 감히 협박해?”
H는 자신의 종족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태도로 대답했다. 검은색 귀와 꼬리가 빳빳하게 서서 자신을 주장했다.
아인. 그중에서도 지옥랑이라고 불리는 반인반수 중 최강의 종족이 내 연인이었다.
하지만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옛날이라면 모를까. 육체적인 능력보다는 법과 돈이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현대에서는 협박을 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돈을 빌렸다거나 약점을 잡혔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아니야.”
“정말로?”
“진짜로. 그리고 내가 협박을 받으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절대로 가만히 안 있지. 신입생 때 똥군기를 잡으려던 시대착오적인 선배들과 싸우고 공론화하여 악습을 폐지해버린 게 H다. 부당한 일이 있으면 일단 들이박고 보는 성격이니 협박을 받아서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은 아니리라.
“아니. 그러면 왜? 설마 부탁받아서 그걸 거절 못한 거야?”
“그, 그렇다고 볼 수도 있긴 한데. 그것보다는……” H는 말끝을 흐렸다. 나는 H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H는 곧장 말을 잇지 않았다.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고, 손을 주물럭거리고, 꼬리를 쓰다듬으며 누가 보더라도 말을 꺼내는 것이 힘들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서 허벅지를 비비며 호흡이 가빨라지고 얼굴이 붉게 변했다. 흥분한 모습이다. 성적으로. 그 모습에 나는 또 다른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너 설마…….”
내가 말을 끝내기 전에 H가 대답했다.
“내, 내가 원해서.”
“……하아아아아아아아!”
나는 얼굴을 부여잡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에는 자신의 연인이 다른 사람과 성교 하는 것을 바라고 흥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평소에 그런 소리를 접하면 미친 거 아닌가 하며 욕을 하던 나였다.
그런데 그 미친 작자가 나의 연인이었다.
“와. 진짜.”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어떤 소리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죽어도 싫다.
연인이 다른 사람과 성교를 하는 것은 당연히 싫고 내가 연인을 두고 다른 사람과 성교를 하는 것도 싫다. 그 상대가 아무리 예쁘더라도!
나는 눈을 감고 심호흡하며 속으로 천천히 숫자를 세었다. 1부터 20까지. 그래도 부족하여 다시 한 번.
적당히 진정했다. 나는 눈을 떴다.
내가 눈을 뜨자 H는 나의 팔에 기대어 색기 가득한 애교를 부리며 속삭였다.
“한 번만이라도. 응? 내가 원한거니 이걸로 뭐라고 안 할게. 응?”
“싫어.”
“사진봤으니 알잖아. 예쁘지? 사실 실물이 사진보다 더 예쁘다? 몸매도 좋고. 한 번만. 그러면 앞으로 더 잘할게. 아. 지금이 덜 사랑한다는 게 아니라 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의미야. 응? 제발.”
“싫어.”
“아. 혹시 얘가 문란해서 무슨 병이 있을 것 같아서 걱정하는 거야? 걱정 마. 내가 설마 이상한 애를 불러서 네가 기분 나쁘게 하겠어? 얘 내가 알기론 아직까지 한 번도 연애 해본 적 없으니까. 그래도 걱정되면 내가 같이 병원에 가서 무슨 병이 있는지 확인하고 올 테니까. 응?”
H의 몸은 뜨거웠다. 성욕으로 달아올라 있었다. 나의 팔에 닿는 H의 가슴을 통해 격렬하게 뛰는 H의 심장을 느낄 수 있었다. H의 뜨거운 몸에서 나는 체취도 평소와 달랐다. 함께 알몸으로 사랑을 나눌 때에 맡았던 그 냄새. 수컷을 발정시키는 발정한 암컷의 냄새였다.
그러나 나는 H를 뿌리쳤다.
나는 옆에 내려놓았던 가방을 둘러메고 콜라를 비운 후에 H와 거리를 벌렸다. 내가 거리를 벌리자 H는 버림받은 강아지 같은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표정이 나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켰지만 나의 거부감에는 한참 못 미쳤다.
나는 차갑게 말했다.
“우리 당분간 떨어져서 지내자. 서로 충분히 머리를 식히고 상대가 원하는 게 뭔지 숙고한 후에 다시 대화하자. 지금은 서로 자기 의견만 내세우고 있으니까 제대로 된 대화가 안 되네.”
“I.”
“나 먼저 강의실에 간다. 강의실에 왔을 때 내 옆에 앉지 말고 떨어져서 앉자.”
“I.”
H가 나를 불렀지만 나는 그것을 무시하고 빠른 걸음으로 강의실로 향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분노와 혐오 때문이다. 그리고……성욕과 그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기도 했다.
거부감을 표현하기는 했지만 나도 한창 때의 남자다. 예쁜 여자와 함께 잠자리를 가질 수 있는 상황. 그리고 연인이 그것을 공인하고 그것에 흥분하는 상황이 나를 흥분시켰다. 그리고 그런 것에 흥분하고 끌리는 내가 혐오스러웠다.
내가 겁쟁이라서 이런 것은 아니다. 타인이 보면 ‘변태냐?’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할 온갖 망상을 하고 그것을 실현 시킨 적이 있는 나다. 아니 우리다. H도 만만찮게 변태이니. 내가 H를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다.
H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가 나중에 H도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울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다.
내가 H 외의 다른 여자와, 연인 외의 다른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는 나의 신념과 가치관의 문제였다. 이는 나의 출생과 성장과정과 깊은 연관이 있다.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나의 비밀. 사람들은 내가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인간과 더불어, 소수이지만 다종다양한 아인(亞人, 이종족)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내가 인간이 아님을 숨기고 다니는 이유는 나의 어머니 때문이다.
나의 어머니는 음마다.
생존을 위해서 음식물 섭취 외에도 타인의 정기를 성교를 통해서 섭취해야하는 생물. 그리고 선천적으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의 성욕을 불러일으키고 유혹하는 생물. 그렇다. 나의 어머니는 그런 존재다.
자의와 타의로 자연스럽게 난교를 하는 종족인 어머니께서는 평생 단 한 사람. 나의 아버지만을 사랑하셨다.
음마가 오직 한 사람만을 사랑한다는 것은 기이할 뿐만 아니라 음마의 생존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음마가 성교상대를 여럿 만드는 것도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생존에 위협이 되는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오직 아버지만을 사랑하셨다. 그리고 아버지 또한 어머니를 위하여 수많은 것들을 희생하셨다.
내 평생 그분들의 옆에서 그분들을 보아왔기에.
그분들이 당신들께서 선택하신 방식으로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하신 것을 알고 있기에.
그리고……당신의 천성으로 말미암아 저지른 일 때문에 자신을 저주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신 어머니께 더 고통을 드리지 않기 위해서.
그러하기에.
음마의 아들이지만 나는 외도를 거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