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짓하면 소리 지를 거야.”
“OK. 이상한 짓 할 거니까 여기서 그만두자.”
“농담! 농담! 농담! 너무 이상한데만 만지지 말아줘.”
평상시처럼 실없는 소리로 평상시의 모습을 재현한다. 하지만 지금부터 할 일은 평상시와는 달랐다.
나는 커다란 수건을 바닥에 깔았다. H와 즐길 때 사용……아니 여기선 생각하지 말자.
그리고 수건 위로 옆 부분을 벨크로로 조일 수 있는 스포츠 브라와 끈으로 묶을 수 있는 팬티 차림의 R이 엎드렸다.
R은 베개에 턱을 얹고 날개 달린 양 팔을 좌우로 펼쳤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라고 스스로 묻고 ‘다른 방법은 없다.’ 라고 스스로 답하는 나는 R의 허벅지 양쪽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R이 나에게 준 연고를 손에 짜며 물었다.
“그런데. 이 약 제대로 효과 있는 거 맞아? 상표도 없는데?”
“몰라. 실습 끝나고 마사지 할 때 이것도 같이 바르라고 준거니까. 파스 같은 것보다는 나은 거라던데.”
“이거 나으면 낫는 대로 안 좋은 거 아니냐? 내일도 그렇게 굴리겠다는 말 같은데.”
“……나 갑자기 삶에 대한 애착이 사라졌어.”
손에 충분히 연고를 묻혔다. 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고. R을 내려다보았다.
나 아래에서 속옷차림으로 양팔을 펼치고 엎드려 누워 나에게 몸을 맡기고 있는 R.
옷을 입었을 때에는 마냥 가녀려 보이던 몸. 하지만 그 안에 가려져 있는 몸은 가녀림과는 거리가 있었다. 비행으로 단련되어 군살 없이 근육의 윤곽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몸이다. 그러나 인공적으로 발달시켜 과하다는 느낌은 없다. 늘어지는 부위 없이 탄탄하게 조여진 몸이다.
나는 눈으로 새겼던 R의 몸을 손으로 새기기 시작했다.
등 브래지어 바로 아래.
등 한 가운데에 움푹 들어간 골을 따라 손바닥을 이용하여 옆으로 밀어준다. 뜨겁고, 부드럽다. 단단하지만 손에 힘을 주면 밀려나며 들어간다.
“윽!”
“아파?”
“아, 아니. 그냥. 갑자기 시작해서. 조금만 더 세게 해줘.”
R의 요구에 따라 좀 더 강하게 누른다.
마사지만 받으려니 심심했는지 R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거 알앙? 우릿! 비행가느응. 종족들 대부부운은. 물리학적으로 보!면. 비행이. 불갓!능 하데.”
내가 등을 누를 때마다 배가 눌려 R의 발음이 이상해졌다.
“그래?”
“응. 내 날개도 실!제 비행하려면 이것보다 훨씬 커엉!야 하고. 근육도 지금보닷! 발달해야 한데.”
R의 등을 누를 때마다 R의 근육과 뼈의 모양이 느껴졌다.
“그런데 날잖아.”
“응. 그리고 산소도 칼로옷리도 실제 비행량에 비해 턱없이 적겟 소비한데.”
“왜?”
“몰라앙.”
타이밍 좋게 낸 소리가 야했다. R도 그것을 자각했는지 얼굴을 붉히고 킥킥거리며 물었다.
“좀 야했지?”
“몰라앙.”
좀 과장되게 R이 방금 낸 소리를 따라했다. 돌아보지마. 얼굴 뜨거우니까.
일전에 사진을 찍었을 때는 몰랐던 R의 몸의 감촉이 느껴졌다. 살아있는 몸이라는 느낌이 확연히 실감되었다. 여자의 몸이라는 것도 실감되었다. H와는 다른 여자의 몸.
등골을 따라 계속 내려가다보니 R의 꽁지깃이 난 부분에 도달했다. 여기서 조금 주저한다. 바로 옆과 아래에 엉덩이가 있었다.
더 내려갈까? 아니다. 다시 올라가자.
이번에는 다시 등골을 따라 올라간다.
마사지를 받아 혈액순환이 잘 되는지 R의 몸은 처음보다 뜨거웠다. R의 몸 곳곳에서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리고 힘을 쓰는 나도 몸이 뜨거워지고 땀이 났다.
다시 올라가던 등골계곡이 브래지어의 밴드에 막혔다. 이제 어쩐다.
“야. 브래지어 위로 발라도 연고가 피부에 닿을까?”
R은 내 말을 듣더니 “음.”하고 소리를 내며 생각에 빠졌다. 잠시 후. R은 양 옆구리에 난 브래지어 벨크로에 손을 뻗더니 그것들을 뜯어냈다.
스포츠 브래지어에 눌려있던 가슴살들이 옆으로 밀려 해방되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는 괜찮지?”
“너 엄청 대담하다.”
“이미 다 보여줬는데. 뭘. 새삼스레.”
일전에 알몸 사진을 찍었던 것을 거론하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하는 R. 하지만 R의 귀와 목덜미는 R의 붉은 머리카락에 지지 않을 정도로 붉었다.
그리고 역시나 감탄한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처럼 말한 나의 얼굴도 더 뜨거워졌다.
나는 연고를 새로 손에 묻히며 다시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스포츠 브래지어 등 부분을 들어 위로 젖히자 스포츠 브래지어에 눌린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등이 보였다.
한 번 더 작게 한숨을 내쉬고 나는 등골을 타고 올라가는 여정을 이어나갔다.
등을 눌렀다.
“…….”
아래쪽과는 달리 푹신했다. 왜 일까?라고 생각해보니 답은 금방 나왔다.
등의 반대쪽. 등을 누를 때마다 가슴이 눌려 몸 옆으로 비져나오는 게 보였다.
오. 맙소사. 많이 큰 건 알고 있었고 본 적도 있지만 이런 식으로 체감할 줄은 몰랐는데.
그리고.
“응. 으응. 응. 응. 앙.”
“……너 지금 일부러 이상한 소리 내는 거 아니지?”
“너야 말로 음흉한 마음품고 이상하게 누르는 거 아냐? 폐가 눌려서 절로 소리가 난다고!”
“그건……”
‘네 가슴이 커서 그런 거잖아!’라고 항변을 못하겠다. 이 이상 이상한 분위기를 만드는 짓은 지양하자.
나는 누르던 동작 대신 힘주어 문지르는 것으로 바꿨다. 그러자 R도 이상한 소리를 내지 않았다.
날갯짓에 필요한 근육들이 잔뜩 몰려있어서 그런지 다른 곳보다 훨씬 발달하고 복잡한 등 윗부분. 그 부분들이 내 손끝을 통해 내 뇌리에 각인되어갔다.
R의 어깨는 R의 체구에 비해서 훨씬 넓었다. 그것은 골격 때문이 아니라 발달한 근육 때문이란 것을 이번에 마사지를 하면서 처음 알았다.
R의 몸을 마사지하면 마사지할수록 R의 몸에 대한 비밀을 속속들이 알게 된다. 피부와 근육과 혈관에 가려진 골격조차 손에 닿아 그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었다.
내 손길이 닿을 때마다 움찔거리며 굳는 근육들. 하지만 조금만 만져주면 내 손길에 따라 풀려 부드럽게 변해갔다.
“후우~”
그리고 한숨을 내쉬는 R.
“좋냐?”
“응.”
“밥 사라.”
“응.”
아무렇지도 않게, 대수롭지도 않게 평상시처럼 이야기를 주고받지만. 가슴 속은 평상시와 다르게 뭔가 근질근질하다.
부끄러워서 그런거지. 뭐. 부끄러워서.
R의 목덜미를 엄지와 나머지 네 손가락으로 풀어준다. 혈관이 맥동치는 게 느껴졌다. 격렬하고 빠르다.
부끄러워서 그런 건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아니면 종의 차이 때문에 그런 건가. 평상시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을 맥동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며 이제는 팔로 넘어간다.
날개가 달린 팔. 날기 위한 깃털이 난 팔을 조심스럽게 헤집어가며 양쪽으로 동시에 나아간다.
날기 위한 날개깃, 그 반대쪽에서 맨살이 노출 되지 않게 난 팔등깃, 그리고 안쪽의 부드러운 솜털. 그리고 이 깃털이 난 가느다란 팔.
이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나의 손과 큰 차이가 없는 손과 만난다.
R은 내 손바닥이 자신의 손바닥이 닿자 내 손바닥이 자신의 손등과 닿게 손깍지를 낀다. R은 내가 손을 빼려고 하니 더 강하게 움켜잡으며 말했다.
“이대로 바깥쪽으로 쭉 늘려줄 수 있어?”
“팔이 늘어나게?”
“응. 아. 넌 팔이 짧아서 안 되려나?”
“이게 날 뭐로 보고. 내가 너보단 충분히 길어.”
도발 같지도 않은 도발에 나는 응하여 R과 손깍지를 낀 채로 팔을 양쪽으로 뻗었다.
저절로 나의 몸이 R의 몸과 가까워진다.
R의 냄새가 났다. 평상시와는 다른 샴푸와 바디클렌저 냄새, 연고의 냄새 그리고 평소보다 더 진한 몸 냄새.
“흐으으으으으으으으응.”
R이 길게, 신음소리에 가까운 한숨을 내쉬고 나서야 내가 너무 오랫동안 했다는 것을 깨닫고 몸을 일으켰다.
“만족했어?”
“으음.”
R은 양 손을 모아 그 위에 턱을 괴더니 고개를 저었다.
“꽁지깃이 난 부분도. 아까 빠트렸더라.”
“…….”
엉덩이를 건들 수밖에 없는 부위라 일부러 빼먹은 건데. 뭐. 자신도 알고 있으니 이상한 소리는 안하겠지.
나는 연고를 다시 손에 묻히고 다시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등을 타고 천천히 꽁지깃이 난 부분까지 주무르며 내려왔다.
인간이라면 흔적기관으로만 남아있을 부위에 길고 탐스러운 붉은색 꽁지깃이 나있었다. H의 검은 꼬리와 비슷한 부위에 위치했지만 확연하게 다른 느낌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주위를 손끝을 세워 눌러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R은 손으로 내 손목을 붙잡으며 외쳤다.
“앙! 변태야!”
찰싹!
“아팟!”
“헛소리 할래?”
헛소리 하는 R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때려 응징했다. R은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궁시렁 거렸다.
“장난인데.”
“다른 사람이 보면 장난으로 안 보일 장난하지 마.”
하지만 덕분에 껄끄러운 기분은 많이 가셨다. 난 손바닥을 이용하여 적극적으로 꽁지깃 주변을 문질렀다. 탄탄하고 말랑말랑했다.
“허벅지도 필요해?”
“응. 무게 중심 옮길 때 가장 많이 쓰는 부위가 허벅지거든.”
R의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었다. 다시 손에 연고를 바르고 다신 조용히 한숨을 내쉰다.
고개를 내려 허벅지를 보니……젠장 저절로 R의 벌려진 다리 사이로 시선이 가버렸다. 자세가 안 좋았어. 자세가.
나는 몸을 돌려 R의 허리 양쪽에 무릎을 꿇고 R의 허벅지에 손을 댔다. 포동포동하다. 하지만 많이 쓰는 근육이라는 게 거짓은 아닌지 그 속에 단단히 자리 잡은 근육이 만져졌다. 한쪽 허벅지마다 양손을 써서 강하게 주물렀다.
“으으으으.”
“아프냐? 더 살살할까?”
“으으으으응. 아픈데 기분 좋아. 그대로.”
지난번에 D교수님과 식사를 했을 때 이야기가 복잡해지는 게 싫어서 R이 마조히스트라고 시인해버렸는데. 나중에 정정할 필요가 없겠구나.
왼쪽, 오른쪽 오금이 있는 곳까지 그리고 새의 다리를 닮은 부분까지 마사지를 끝냈다.
“후. 끝났다.”
나는 R의 몸 위에서 비키며 땀을 닦았다. 마사지라는 게 상당히 힘들구나.
“아직 남았어.”
“뭐? 아직? 어디?”
R은 몸을 뒤집었다.
“앞.”
“…….”
브래지어를 풀어서 흘러내리는 가슴을 한쪽 팔로 받치고 붉어진 얼굴로 날 올려다보는 R. 그런 R을 보고 나는 R의 옆에 다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찰싹!“
“아팟!”
복근이 뚜렷한 R의 배를 손바닥으로 때려주었다.
“네 손 닿는 부분은 네가 해라.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니 보따리까지 꺼내달라는 격이네.”
“넌 유비가 노인을 위해서 세 번 물을 건넜던 일화 몰라? 이왕 선의를 베푸는 거 끝까지 바른 심성으로 베풀어야 제대로 된 선의지!”
“난 그걸 착취를 정당화하기 위한 날조된 일화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이라서.”
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난 손 씻는 김에 세수도 하고 나올 테니까 그 동안 내가 못 볼 부위 마사지나 해둬라.”
“깍쟁이.”
“네가 손이 없냐, 발이 없냐. 그래도 네 손 안 닿는 부분은 전부 해줬잖아.”
“칫!” 이 이상 고집 부리는 건 장난이 아니라 진짜 이기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R도 항의를 이어가지 않았다.
“알았어. 하지만 마지막으로 이것만 해줘.
R은 양팔을 벌렸다.
“뭐?”
“팔 늘리는 거. 이거 엄청 시원하더라.”
그건……혼자 못 하겠네.
나는 R의 허벅지 양쪽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R과 양 손깍지를 끼고 천천히 늘렸다.
다시 R과 가까워진다. 또 다시 그 냄새가 났다. 평상시와는 다른 샴푸와 바디클렌저 냄새, 연고의 냄새 그리고 평소보다 더 진한 몸 냄새.
그리고 가슴이 닿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빼려고 했으나 자세가 좋지 않아 그러지 못했다. 하려면 팔로 땅을 짚어야할 텐데. 나의 양손은. 우리의 양손은 서로의 손과 깍지를 끼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엄청 부끄러운 자세다. 마사지 하는 것도 부끄러웠긴 하지만 이건 그것과 다르게 부끄러웠다. 서로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수 있는 자세. 거의 포옹에 가까운 자세. 평소 R이 나에게 안기는 일은 빈번했지만 지금은 R이 반쯤은 알몸인 상태이니 평소처럼 장난으로 받아들이기도 힘들었다. 나는 R과 눈이 마주치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얼굴이 뜨거웠다.
잠시 후.
“으으으응. 그만.”
R은 만족했는지. 혹은 고통스러웠는지 팔 늘리기를 종결시켰다.
손깍지를 풀고 나는 바닥을 짚고 일어섰다. 나는 부끄러움을 노동의 피곤함으로 숨기며 말했다.
“덥다, 더워. 마사지 하는 것도 엄청 힘드네. 난 세수하고 조금 천천히 나올 테니까 그 동안 내가 못 볼 부위나 다 마사지 해둬라. 알겠지?”
“응.”
R은 다리를 오므려 앉고 바닥을 짚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화장실로 도망쳤다.
수도꼭지를 틀어 물을 받았다. 차가운 물. 나는 그것을 두 손으로 모아 얼굴에 문질렀다. 한참을. 충분히 얼굴이 식은 나는 생각했다.
나는 단지 친구의 부탁을 받아 친구에게 마사지를 해줬을 뿐이다. 이성친구이긴 하지만 동성친구만큼이나 허물이 없는 사이. 그래서 친구도 나에게 마사지를 부탁했고. 그리고 마사지도 도를 넘는 짓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데.
왜 죄책감이 생기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