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쯤 사실이긴 한데,
재판전의 상황을 조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제자중에 하나인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의 연인이자, 아테네의 장군으로 군공을 세웠지만
정적들에 의해 재판 받을 위기에 처하자
스파르타로 넘어갔고 이후 군을 이끌고 아테네를 개박살 내버린다.
이후 스파르타에서도 사고치고 페르시아로 가고
페르시아에서 자기 손으로 박살낸 아테네와의 교두보를 하겠다고
외교대사 같은 신분으로 와서 정계복귀를 했다.
얘까지는 재판받을 위기<- 이걸 초래한게
아테네의 정치인들이라 우리 잘못도 있으니 입을 닫고 있었다.
또 하나의 제자인 크라티오스는
스파르타가 아테네에게 이기자
스파르타 똥꼬를 빨면서 아테네 총독 같은 느낌의
친 스파르타 과두정 30인 참주의 우두머리를 하면서
반대파를 숙청하며 공포정치를 펼쳤다.
이후 아테네는 공포정치를 물리치고 민주정으로 돌아왔고,
소크라테스도 30인 참주에 대해 비판을 한 것도 있고
민주정 하면서 과두파에게 과거의 죄를 묻지 않는다 했으니
꼽지만 참을 수 밖에 없었다.
유,무죄에 대한 판결을 진행한 이후에
어떠한 처벌을 내릴지에 대한 판결이 진행되는 아테네의 법정에서
281:220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소크라테스는
생각보다 자기편을 들어준 사람이 많다고 생각해서 희대의 묘수를 던진다.
"내가 사형으로 고발 당했으나 아테네를 위해서 헌신한 위인인데,
오히려 포상을 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허나, 벌금형을 제안한 사람들이 있으니 그 정도는 받아줄 의향이 있다."
지 제자들 때문에 해상 대제국인 아테네는 커다란 피해를 입었는데
반성하기는 커녕 적반하장의 행보를 보여버렸으니
80명의 소크라테스 편을 들었던 배심원들이 절래절래 하면서
사형에 찬성을 던졌고 361:140으로 소크라테스는 죽게됬다.
플라톤은 어리석은 시민들이 위대한 스승을 죽였다며 중우정치의 위험성을
크세노폰은 주변의 인물들(아키알데아스, 크라티오스)의 영향으로 스승이 죽게됬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못생긴데, 이완용 같은 그레이트 ㅆㅅㄲ를 둘이나 길러놓고, 반성은 커녕 나는 위인이다. 라고
선언을 하는등의 ㅈ같은 말을 하고 다녀서 죽었다. 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