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티브를 얻은 만화)
인류의 전쟁사를 논할 때 우마무스메를 빼놓을 수 없는 법이다.
최초의 전차는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의 ‘캅카스’에서 등장한 것으로 여겨진다. 2명 혹은 4명의 우마무스메가 끄는 이륜전차가 원시 인도유럽인들에 의해 운용되었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지속적으로 출토되고 있다.
이후 전차 기술은 이집트 문명과 히타이트 문명, 뮈케나이 문명, 동시기의 중국 문명 등에 전파되었고, 전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전력의 자리를 차지했다. 예나 지금이나 달리는 것을 좋아하는 우마무스메의 특성을 활용하여 높은 기동성을 확보하고, 활이나 창을 든 히토미미 병사가 공격을 전담하는 방식이었다. 우월한 완력을 가진 우마무스메 병사를 전차에 태우면 더 큰 전투력을 기대할 수 있었겠지만, 어째서인지 전차에 타는 것은 남성 히토미미 병사들 뿐이었다고 한다. 전차에 탄 우마무스메들이 직접 달리고픈 충동을 참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현대의 학자들은 추정한다. 그와 더불어, 남성을 태운 우마무스메들이 본능적으로 이성에게 어필하기 위해 더욱 세차게 달리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우마무스메 보병, 통칭 ‘우마병’이 등장한 후로 전차는 빠르게 쇠퇴했다. 전차와 마부의 존재 때문이었다. 전차를 제작, 유지보수하는데 드는 비용, 마부를 육성,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 전차 자체의 무게, 전장의 지형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기동성 등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기원전 5세기 무렵 등장한 우마병은 빠르게 그 세를 불려나가 전차를 순식간에 대체했다. 대열을 이루어 거대한 무기를 들고 일제히 돌격하는 우마병들이 등장함에 전쟁의 판도가 통째로 뒤집혔다고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니다.
당시 전장에 선 병사들은 발을 맞춰 돌격하는 우마병들이 만들어내는 진동을 마주해야만 했다. 일반적으로 우마병의 돌격 속도는 우마무스메가 낼 수 있는 최고 속도(약 시속 70km)에 크게 못 미치는 빠르기였으나, 히토미미 병사들의 대열을 깨부수고 유린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지축이 울린다’라고 하는 표현을 아는가? 당시의 기록을 보면 우마병들의 돌격에 대지가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는 언급이 있다. 일반적인 병사들은 그 위압감을 견디다 못해 대열을 이탈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렇게 대열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우마병들은 겁에 질린 히토미미 병사들의 배후를 손쉽게 공격해 일방적인 대학살을 벌였다.
1578년의 젬블루(Gembloux) 전투가 그 전형적인 예시다. 당시의 네덜란드 독립군은 약 2만 5천 명 규모였으나, 1200명에 불과한 스페인 우마병들이 돌격하자 패닉에 빠져 대열이 붕괴되었다. 당시 2만 5천 명의 독립군 중 1만 명 가량이 사망했으며, 그 중 4000명은 혼란 속에서 아군에게 밟혀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때문에 야전 지휘관들은 우마병들을 마주하고도 굳건히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보병들을 강도 높게 훈련해야만 했다. 단 한 명이라도 공포에 질려 섣불리 움직이면 전원이 참살당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도망치지 않는 것은 단지 시작점일 뿐, 우마병들의 반복 돌격을 막아내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우마병 1파가 돌격 후 후퇴, 이어서 2파, 3파가 연이어 돌격해 오면 필연적으로 방진에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고, 결국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 패주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일반적인 인식과 다르게 우마병 돌격을 막아낼 수준의 창병을 양성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기 때문에, 우마병과 보병의 격돌은 언제나 보병에게 더 큰 손실을 강요했다.
게다가 정면 돌격만이 우마병의 전부가 아니다. 설령 적측의 히토미미 부대가 잘 훈련된 정예부대라 한들, 바람같이 내달려 측후방을 타격하는 우마병은 여전히 큰 위협이었다. 널리 사용된 ‘망치와 모루’ 전술에서 우마병들은 망치 역할을 수행하는데 가장 적합한 병종이었다. 전방의 보병과 전투를 하는 도중 급작스럽게 찔러들어오는 우마병에게 대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제아무리 사기가 높고 잘 훈련된 보병이라 해도 아군 우마병의 지원 없이 적 우마병과 싸우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1524년부터 1526년까지 3년간 이어진 독일 농민전쟁이 그 좋은 예시다. 당시 종교계의 착취에 분노해 일어난 농민병의 규모는 약 15만 명 정도였으나, 한 줌도 채 되지 않는 우마병들에게 일방적으로 학살당하고 말았다. 당시 전투용 우마병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던 농민병들은 잘 훈련된 귀족 측의 우마병들에게 조금도 저항할 수 없었다.
이러한 설명을 들으면 우마병이 좋기만 한 것 같지만, 마냥 그런 것은 아니었다. 여러 군주들이 우마병을 필요한 만큼만 육성하고 유지한 것은 모두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우선 첫째로, 우마병들의 유지비는 히토미미 병사들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기본적으로 우마무스메들의 식사량이 매우 막대한 만큼, 우마병들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큰 규모의 보급부대를 꾸리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적에 의해 보급에 차질이 생기면 우마병들의 전투력은 즉각적으로 크게 하락했으며,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우마병은 한낱 짐덩이로 전락하고 만다. 이 점을 이용해 보급부대만을 집요하게 노려 우마병들을 패퇴시킨 사례가 여러 번 있었다. 크고 작은 전투에서 대부분 이기고도 보급 비용이 부족한 탓에 전쟁에서 진 사례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두번째로, 우마병들의 성욕이다. 우마병들은 육체적 전성기인 우마무스메들을 선별해 조직한 것이기에, 성욕 역시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우마병들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게 아무리 엄격히 훈련 및 관리를 한들, 우마병들의 본능은 도무지 억누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우마병을 운용하기 위해서 우마병 전용 거세 남창 부대를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전투로 흥분한 우마병들의 성욕을 감당하는 것은 상당히 가혹한 일이라, 척추나 골반이 부러져 사망하거나 연이은 뾰이를 견디지 못해 복상사 하는 경우도 꽤 흔했다고 한다. 자연히 남창 부대는 일반적인 히토미미들에게 기피되어 범죄자, 부랑아, 탈영병, 그리고 그 외 일부 이상성욕자들로 채워졌고, 그들을 통제하는 것은 오롯이 지휘관의 부담으로 돌아갔다.
세번째로, 우마병들의 낮은 전투 지속력이었다. 우마병들은 단시간 동안이라면 히토미미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폭발적인 전투력을 뽐낼 수 있었지만, 전투가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눈에 띄게 기량이 하락했다. 때문에 노련한 지휘관들은 우마병들을 상대할 때 아군의 결정적인 피해를 회피하며 끊임없이 소모전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승률을 끌어올렸다. 우마병의 기동력을 제대로 살릴 수 없는 우거진 숲이나 진흙탕이 전장인 경우, 이러한 경향은 특히나 심화되어 역으로 우마병들이 보병들에게 패배하는 경우도 생겼다. 기진맥진한 우마병들은 궁병의 집중사격, 긴 장대 무기, 올가미 등의 수단에 의해 쉽게 무력화되어 포로가 되거나 사살되었다.
마지막 네번째로, 통제의 어려움이다. 일반적인 히토미미에 비해 우마병들은 ‘본능’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본능을 억누르고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전장에서는 이러한 기질이 아주 큰 결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제대로 훈련받지 않은 우마병들의 경우, 돌격할 때 대열을 흐트러뜨리거나, 수비 태세를 멋대로 깨뜨리고 적에게 달려간다던가, 점령지를 무단으로 약탈하는 등의 문제를 자주 일으켰다. 상술한 우마병들의 성욕 문제와도 맞물려, 통제를 벗어난 우마병이 전용 남창이 아닌 히토미미 남자를 범해 임신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이러한 경우 군법으로 엄격히 다스려야 하지만, 우마병들이 워낙 고급 병종이다 보니 아주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한 실제로 벌을 내리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전근대까지의 전장에서 우마병들은 절대로 막을 수 없는 창이었다. 우마병에게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같은 우마병 뿐이었고, 모든 국가는 우마병을 상시 확보해야 했다. 우마병에 대한 수요가 언제나 넘치다 보니, 전장에서 공을 세우고 영지를 하사받기 위해 수많은 우마무스메들이 전장으로 뛰어들었다는 이야기도 꽤나 널리 알려져 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재 유럽의 성씨 중 약 20%는 우마무스메가 일구어낸 가문에서 이어져 내려왔다고 한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오래도록 전장을 지배해 왔던 우마무스메들이 화기가 등장한 이후로는 자취를 감추었다는 사실이다. 소음에 민감하고 스트레스 내성이 약한 우마무스메들은 총성과 폭발음이 난무하는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전장을 견디지 못했다. 소음으로 가득찬 전차와 전투기 조종 역시 그들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필연적으로, 우마무스메들은 각종 공장과 건축 현장 등에서 전투 수행을 간접적으로 보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 압도적인 신체능력이 어디로 가지는 않아, 지원 활동에 있어 눈부신 활약을 보일 수 있었다.
-오토나시 에츠코 저, <우마무스메와 인류의 역사> 中 ‘우마무스메와 인류의 전쟁사’ 에서 발췌
우마무스메 작중 특성보면 유목민족이 존재 할 수 없는 구조라 역사가 현실과는 엄청나게 차이날듯
한때 유라시아를 정복한 말딸의 국가가 있었다.
중세 기사나 기병의 가치 생각해보면 높은 확률로 귀족이나 특권층이 되었을 듯. 대신 식량 소비량도 감당이 어려웠겠지만... 현실성 고려하는 작품은 아니긴 한데 이쪽 세계관에서 현대 이전 인간 여성 가치가 어떨지 궁금함...
와 유목 아마조네스 너무 재밌겠다 써주세요
말이 없지만 우마무스메만 있는 유목 아마조네스같은게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흥미로움
우마무스메 작중 특성보면 유목민족이 존재 할 수 없는 구조라 역사가 현실과는 엄청나게 차이날듯
아으앍아
말이 없지만 우마무스메만 있는 유목 아마조네스같은게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흥미로움
와 유목 아마조네스 너무 재밌겠다 써주세요
역사가 어떻게 돌아갔는지는 몰라도 아일랜드가 왕국으로 존재하는 세계관
우마무스메가 유목민족 역할했겠지.
우마무스메들이 인간이랑 식성이 같은데다 엄청 먹어서 정주 못하면 아사할게 뻔하니
자기 발로 몽골 평원을 달리며 유럽을 평평하게 만든 '칸'과 그 일족 우마무스메들... 개쩔잖아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한때 유라시아를 정복한 말딸의 국가가 있었다.
중세 기사나 기병의 가치 생각해보면 높은 확률로 귀족이나 특권층이 되었을 듯. 대신 식량 소비량도 감당이 어려웠겠지만... 현실성 고려하는 작품은 아니긴 한데 이쪽 세계관에서 현대 이전 인간 여성 가치가 어떨지 궁금함...
그 관점도? 매우 흥미로운데? 한 번 직접? 써보시면 어떨까요? 유게에는 괴문서 작가가 필요해요 이런 유게이들은 공식설정 볼 시간이 없어요... 그들은 순간의 알림으로 빠른 괴문서를 원합니다